지났으니까 하는 이야기

지난 해 여성의 날 행사에 갔던 것은 민우회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몸 쓸 거니까 (힐 신지 말고) 운동화 신고 오세요’ 류의 안내(경고) 메시지를 무려 ‘여성 단체’에서 발견하고는,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분위기인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여성의 날 행사는 참 좋았다. 옷 맞춰 입고, 구회 외치고, 피켓 들고, 행진하고, 이렇게 써 놓으면 여느 집회와 다를 바 없지만, 보라색 티셔츠며 고깔이며를 맞추어 깔깔거리며 걷고 있던 그네들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단순히 여성들이 모였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 여성의 날에도 갔는데, 아차, 제대로 알아보고 갈 것을. 이번에 내가 간 것은 민주노총 여성대회였고, 그냥 여성 참가자 비율이 월등히 높은 민주노총의 일반적인 집회일 뿐이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것도 하나 있었다. 무대에 오른 한 남성(의 몸을 한) 참가자가 말했다. 여성으로 사는 게 참 힘드시겠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다 잊으십시오, 여러분의 날을 축하드립니다. 뭐 이런 식으로. 그야말로 식겁, 장애인의 날 행사에 온 정치인 발언이랑 어찌 그리 딱 떨어지는지. 대체 누구였을까, 그 인간은.

아무튼, 다 지났으니까 하는 이야기다. 또 민우회에 대해 왈가왈부 할 텐데, 이건 다 민우회가 좋아서다. 민우회의 여성주의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방향과 나아간 거리가 나의 것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이만큼 폭 넓고 이만큼 열심히 하는 단체는 흔치 않으니. 어딜 가나 이름이 보여서, 그래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그래서 좋아하는 단체다, 민우회는.

운동화를 신고 오라, 는 식의 팁이 올해도 민우회에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본 것은 ‘차도녀’ 캠페인이다. 차별에 눈감지 않는 도시 녀자, 였던 것 같다. 세 마디의 표현, 그 중에서 두 마디가 탁, 하고 걸렸다. 눈감지 않는, 과 도시. 어느 쪽도 나의 것으로는 삼을 수 없는 슬로건이었다.

눈을 감지 않아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사람을 알고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최대한의 힘을 주어도 희미하게밖에는 볼 수 없는 사람을 알고 있다. 지인의 범주에 들어가는 사람도, 2호선 지하철에서 종종 마주치는 사람도, 티브이에서 본 사람도 있다. 보지 못하지만, 눈을 감고 있지만, 차별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차별에 눈감지 않는 사람이 되라, 고 나는 말할 수 없다.

촌스럽다, 는 말은 아직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거나, 시대의 첨단을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에, 그들을 놀리는 데에 말이다. 시골 사람들, 그러니까 ‘촌사람’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자연스럽게, 촌스럽다, 는 말이 쓰일 뿐이다.

도시, 라는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이유도, 여유도, 내게는 없다.

지났으니까 하는 이야기다.

차별에 눈감지 않는 도시 여자, 나의 길로 삼을 수 없는 이야기.

블로그 필명 변천사

고등학교 시기 전은 뭘 썼는지 기억나지 않고,

고등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스틸로. 프랑스어 stylo, 만년필이라는 뜻-이라고만 알고 썼는데 볼펜도 똑같이 부르더라.
글, 이라고 하면 나는 만년필이 생각난다.

그 사이 시기는 또 기억나지 않고,

대학교에 다니던 언제부턴가

懶惰[rata]라고 썼다. 게으를 나, 게으를 타. 괄호 안의 알파벳은 발음 기호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발음 기호이자 Rage Against The Authority의 줄임말이다. 내 시대의 ‘권위’들은 내게 늘 부지런하기를 요구했으니까.

그리고 작년인가, 블로그를 이리로 옮기면서 가독성 높은 걸로 아무 거나 해 두자 싶어

요즘, 이라고 써 두었다. 블로그에서 하는 거라곤 어떤 식으로는 근황을 기록하는 일이니까.

오늘은,

안팎이라고 바꾸었다. 안팎으로 돌아다니고, 안팎으로 싸우고 그렇게 살아 왔다 싶어서. 나의 안과 나의 밖이든, 내가 속해 온 모임의 안과 밖이든.

얼마전부터 폰 메신저 알림말로 ‘안팎 없이 넘나들기’라고 써 두기도 했고.

당신에게 당신을 팝니다

<메가 마인드>를 봤다.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어쩌다 봤는데, 드림웍스에서 만든 거더라. 악당 메가마인드와 괴물 슈렉이 겹치면서, 이런 게 요즘의 ‘드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되는 디즈니의 꿈을 지나, 공주나 왕자가 될 수는 없음을 깨달았지만 악마나 괴물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꿈을 꾸게 된. 그리고 그 꿈은, 영화를 통해서나 꾸고 있다.

얼마 전에 유니클로에 갔다가, 티셔츠 카피를 봤다. "티셔츠는 단순한 티셔츠 이상입니다.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표현이죠. 당신이 어디에서 살았는지, 당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그리고 해마다 수백 가지의 한정 판매 되는 티셔츠로, 당신은 당신의 느낌을 정확하게 말해 주는 단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유니클로 티셔츠의 철학입니다." 대충 이런 말이, 심지어 영어로 적혀 있었다.

지구 인구가 60억을 넘는다는데, 수백 가지면 될까. 한정 판매라 겹치는 사람이 적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자기 꿈도 자기가 꿀 수 없고, 자기 표현도 자기가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나 싶어 좀 슬프다.

신림역

모니터 너머에서나 보던 일을―영화는 잘 보지 않고 티브이는 없으므로― 실제로 대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모니터 너머에, 그러니까 모니터와 연결된 내 방 바깥의 세상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만 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마음 한 켠에 묻어 두고 넘겨 온 그런 일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림역을 지나고 있었다. 환락의 거리, 유흥가라 불리는 그곳. 누군가는 돈 몇 푼으로 그 유흥을 사고, 누군가는 돈 몇 푼에 그 유흥을, 자신의 행복을 팔고. 또 누군가는 아무런 수고 없이 남의 유흥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을 그 골목.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여자 한 명이 내렸다. 추워 보이는 짧은 치마와 공들인 화장.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보도방’이었다. ‘도우미’니, ‘아가씨’니 하는 말들을 대문짝 만하게 써 놓은 간판을 달고 있는 술집이야 수없이 보지만,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은 보도방은 본 적이, 혹은 눈치 챈 적이 없었다.
아니겠지, 하고 지나가려는데 승합차에서 내린 그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승용차로 다가갔다. 골목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서 있던 그 차에는 남자 하나가 타고 있었다. 왼쪽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가 타고 있는 승용차에 다가간 짧은 치마의 여자는 문조차 두드리지 못하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앳된 것인지, 앳되 보이게 화장을 한 것인지. 어려보이는 그녀는 잠시지만 추위에 떨었다. 담배를 다 피운 남자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 그를 발견하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1초, 길어야 2초 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스쳐가며 본 광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 갔다. 승합차에서 내린 그녀가 승용차에 올라타는 모습, 승용차가 어딘가를 향해 출발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채 자전거는 달렸다.
몇 년 전 마산에 갔을 때, ‘쌍라이트’를 처음으로 보았다. 회전봉 두 개가 돌고 있으면 성매매 업소라고 했다. 그 이후 어디에서나 그 두개의 기둥이 보인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나의 세계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 그 일들은 한 번의 발견이면 너무도 쉽게 내 세계에 들어왔다.
어디서 또 보게 될까.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나쳐야 할까. 지나쳐도 좋을까.

걸어서 언덕을 넘었다

                        손가방을 등가방처럼 지고, 단단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학교로 넘어가는 언덕은 높고 가파랐지만, 차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소리 내어 읽은 책들의 활자는 수많은 엔진들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걷다가 몇 번쯤, 주차되어 있는 차나 가로등, 혹은 이런저런 표지판에 가로 막혀 멈춰서야 했다. 인가도 상가도 끝이 난 언덕의 정상쯤에서야 나는 아무런 맞닥뜨림 없이 책을 읽으며 걸을 수 있었다.


                        한순간, 흩어지던 활자들이 또렷이 공기중에 새겨졌다. 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내 앞으로 두 명, 내 뒤로 한 명이 언던을 걸어 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책을 덮고, 빈 도로를 주시했다. 고정된 시선을 거쳐, 내 뒤를 걷던 한 사람마저 내 앞으로 가 버려 내 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다시 차들이 하나 둘 씩 달리기 시작하고, 앞을 향해 걸으며 책을 다시 펼칠 즈음에는 내 앞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활자는 다시 흩어졌다. 도로는 여전히 시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