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충정로, 아현, 오줌과 담배

을지로에서 새벽까지 술을 먹었다. 가본 적 없는 골목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는 잠깐 길을 잃었다. 빙빙 돌다 접어선 아는 길을 타고 집을 향했다. 자전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 충정로 역에 들어갔다. 지하도 입구는 열려 있었고 불도 켜져 있었지만,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셔터 앞에는 노숙인 몇 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가다 아현역에 들어갔다. 긴 통로를 따라 여러 명의 노숙인이 자고 있었고, 그 사이에 앉아 있는 한 명, 서서 벽에 붙은 지도를 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앉아 있던 사람이 무어라 말을 건네기에 헤드폰을 벗고 되묻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시각을 물었고, 나는 세 시라고 답했다. 새벽 세 시 정각이었다. 그들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화장실 표지판이 보였고 그 뒤로는 내려진 셔터가 보였다. 되돌아 가려는데 지도를 보던 이가 말을 걸어 왔다.

그는 담배가 있느냐고 물었다. 박하인데 괜찮겠느냐고, 여기서 피우시겠냐고 되물었다. 여기선 피우면 안 되지 않느냐고, 나가서 피우겠다고 그는 답했다. 계단을 오르며 그는 천안에서 왔는데 차가 끊겨서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로 올라와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여 주려 하자 그는 라이터는 있다며 스스로 불을 붙였다. 담뱃갑에서 담배 몇 개비를 더 꺼내 주자 그는 말 없이 받아들었다. 잠시 후 혹시 잔돈이 있느냐고, 차비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아까 담배를 사고 남은 이천삼백 원, 주머니에 삼백 원이, 지갑에 이천 원이 들어 있었다. 현금이 없다고 답했다가 삼백 원이 있다며 이거라도 필요하시냐고 했다가, 잠깐만요, 혹시 현금이 있으려나, 이천 원이 있네요, 그렇게 이천삼백 원을 그에게 주었다.

담배가 타는 동안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서울까지 와도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정부는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걸핏하면 세금이나 올린다고. 새벽이었지만 그는 목소리가 작았고 띄엄띄엄 차들이 달렸으므로 그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세금 이야기 뒤로는 중국에서는 세금만 안 내도 사형이라더라, 프랑스는 인권을 중시해서 그런 일이 없다고 하더라, 미국은 사형은 안 하는 것 같던데 길에서도 총을 맞는 나라니 무서워서 살겠나,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다.

계단을 오르기 전 그는 나에게 지하철을 타러 왔느냐고, 아직 두 시간은 있어야 될 거라고 말했다. 화장실을 찾아 왔다고 하자 새벽엔 원래 다 닫아 놓는다며, 큰일이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답했더니 그럼 아무데나 누면 되지 뭘 내려왔느냐고 말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하던 중에 한 번, 이제 정말 화장실에 가야겠다며 말을 끊었다. 나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다시 한 번 내가 말을 꺼내고, 그는 물을 마셔야겠다며 어디론가 향했다. 자전거에 올라서는 내게 그는 다시 한 번, 길가에서 볼일을 보라고 했다.

조금 더 가다 어느 허름한 건물의 다방에 딸린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은 가게 밖에 있었고 문도 잠겨 있지 않았다. 건물을 나와서는, 나와 함께 출발한, 그러나 걸어 온 사람과 마주쳤다. 그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내리막길을 미끄러져 집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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