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본부 점거 농성장

기대앉은 파티션 뒤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파티션 너머에 있는 사무기기의 분실을 우려한 것인 듯, “들어가지 말아주세요”라고 써 붙여 놓은 노끈을 들추고 들어가 자고 있는 사람의 소리다. 농성장의 밤은 열악하다. 덥고 지저분한 것, 그런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의 혼숙, 그것은 누군가의 잠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반대로, 남녀분리가 그러한 조건인 사람도 물론 있다.)
세어 본 것은 아니지만, 계단을 오르내리며 얼핏 보기에도 농성장에는 남자가 훨씬 많다. 불편하지 않거나 불편함을 참고 이곳에서 자는 여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불편함을 참지도, 그렇다고 집에 가지도 못한 한 사람은 지금 출입이 금지된 파티션 너머에서 자고 있다.
오랜만의 농성이다. 농성장을 방문한 일이야 많지만, 농성장에서 밤을 보내는 건 홈에버 파업 이후 처음이지 싶다. 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2005년 이후 처음으로 열린 비상학생총회가 쉽사리 성사되고, 그 자리에서 점거가 결정되고 실행에 옮겨지는 장면을 보고 있는 일은, 한편으로는 즐겁기까지 했다.
한편으로만 즐거웠던 것은, 내가 의결권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농성이 걱정스러워서이기도 했다. 코앞에 있는 농성장을 내가 무시하고 내 생활을 지킬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과, 기어이 농성장을 찾은 내가 편히 있지 못하리라는 불안감이 겹쳐졌다. 그렇게 농성 첫 날을 불편하게 앉아 농성장에서 보내고, 오늘 또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4년을 운동했는데, 당시 함께 운동했던 친구들은 운동을 그만둔 이와 지금도 함께 운동할 자신의 친구가 있는 이로 나뉘었다. 졸업을 하고 2년째, 학교에서 내가 하던 운동을 이어 하고 있는 이들을 만난 바 없는 나로서는, 함께 농성장에 올 사람이 없었다.
슬프기보다는 억울했다. 지난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싶어서. 그렇게 종일 망설이며, 오늘 농성장을 올까 말까를 고민했다. 오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겠지만, 홀로 와서 우두커니 있으면 슬퍼질 것이었다.
고민 끝에 결국 결단을 내리고 아무런 기대 없이 찾아 온 농성장 앞에서 친구를 만났다. 함께 운동했던, 더 이상의 활동은 (아마도) 하지 않는 친구. 종일 고민하면서, 연락을 해 볼까 말까 했던 친구였다. 연락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친구가 거절하지도 수락하지도 못할까 싶어 걱정되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내가 농성장에서 공부를 할 것이라 말하자 친구는 고민 없이 자기도 같이 하겠다고 했다. 그래놓고 지금은 옆에서 자고 있지만.
언론이 비춘 것처럼, ‘역시 서울대생’들이 모여 ‘공부 시위’를 하고 있지는 않다. 네 층 중 반 층만이 온전히 공부하는 이들로 차 있고, 나머지 공간에서는 카드놀이와 노래와 춤과 웹서핑과 잠과 수다가 한데 섞여 있다.
편하지 않은 농성장이 싫지만은 않은 것은, 다양한 것을 위한 분리된 공간이 주어지지 않은 그곳에서는 많은 것이 한데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섞여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가운데 서로 알게 되어 가는 것, 그것이 좋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되었지만, 모르는 사람을 구경하는 일은 여전히 즐겁다. 이 친구는 아마 자주 농성장에 오지는 못할 텐데, 나는 구경을 위해서나마 이곳에 자주 올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덮어 두기

지금의 이 블로그엔 남아 있지 않지만, 언젠가 겪었던 놀라움에 관한, 그리고 그 사건과 사이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놀라움이란, 학생 운동을 하는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서로 자기소개를 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었다. 열 명쯤 되었을까, 그 자리에 있던 이들 중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자신은 너무도 편하게 살아 왔으나 세상에 편치 못한 사람을 사는 사람이 많음을 알게 되면서 운동을 시작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놀랐고,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결코 편하게 살지 못했노라고, 그들이 ‘알게 된’ 종류의 불편함, 그러니까 빈곤―물론 나의 유년은 빈곤했지만―이나 장애, 혹은 고용 불안 같은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나는 이 세상을 살면서 나 자신의 불편함을 느껴 왔노라고, 그렇게 말했다.

가족이, 학교가, 직장이, 혹은 사회가 가하는 억압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불편한 일이었다. 가까이는 ‘자율’ 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내 몸을 구속했던 학교에서부터, 조금 멀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가정 형편과 조금 더 멀리는 신경이 쓰여 그냥 묻어 둘 수 없었던, 나보다 더 곤궁한 사람들의 존재까지가 모두 내게는 불편한 일이었고,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 운동을 하노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거짓은 없었고, 지금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이자 말일 뿐, 현실에 그대로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싶어 운동을 택했지만, 여전히 그 선택을 안은 채 살고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해결되리란 희망은 눈곱만치도 품고 있지 않은 탓이다. 오로지 절박한 필요에 의해서 해결을 도모할 뿐, 그저 그럴 뿐인 탓이다.

나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절박한 필요가 있고, 그 필요는 저절로 충족되지도 않으며 나나 타인 개인의 힘으로 충족시킬 수도 없는 것이기에, 사회에, 국가에, 혹은 세상에 해결을 요구한다. 그것이 나의 운동이다. 그러나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는다면, ‘요구한다’는 행위는 정말이지 폭넓게 해석되고 실현될 수 있다.

애매하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해결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러니까 운동을 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가 말이다.

표면적으로 지금의 내게 운동은 박봉을 감내하며 진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것, 직업 활동 이상으로 집회에 가고 시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 정도다. 그러나 집회에 가는 것과 기사를 쓰는 것, 그리고 블로그에 글을 끼적이는 것과 트위터에 한 마디 내뱉는 것이 ‘요구’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만큼 차이 나는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선은 정말이지 애매하다.

운동을 한다는 것과 운동을 한다는 느낌을 갖는 것, 둘 가운데 내가 어느 쪽에 있는지, 어느 쪽에 있을지, 어느 쪽에 있으면 되는지 그 어느 것도 분명하지 않다. 친구들에게는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한다고 쉽게, 또한 자신 있게 말해 왔고 앞으로도 말할 것이지만,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보다 미묘한 문제다.

어디를 향할 것인지는 알아도, 어디에 있고 싶은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이 편한 곳에 있으면 된다, 고 생각하지만, 어느 곳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한지 알 만큼의 경험이 내게는 없다. 그것을 알기 위해 당장 끌리지 않는 노력과 시도를 할 마음도 없기에, 나는 여전히 애매한 상태로 남는다.

지금조차도,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지 운동을 한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지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이런저런 핑계로 기자 일을 줄여 가고 있기에 더더욱 그렇겠지만,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다.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 싶다. 미묘하다고, 미묘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 걱정하거나 신경 쓰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한 번쯤 말해 두고 싶었던 것도 같지만, 일단은 그냥, 지금은 잘 모른다고, 덮어 두기 위해, 뚜껑을 닫기 전에 내용물을 한 차례 더 확인해 본 셈 치기로 하자.

황망한 심사 가눌 길 없어라

몇 차례나 하고 있는 이야기지만, 비장애인의 몸을 중심으로 한 비유는 마뜩지 않다. 그런데 그게, 제일 곤란한 경우는 장애인이 그런 표현을 사용하고 있을 때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있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도 마뜩잖아 하면서 별 수 없이 사용하고 있을 사람이 말이다.

장애인 집회에 가면 늘 나오는 노래들에 "노동으로 일어 설 기회마저 빼앗긴 동지여"(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 "굴종의 사슬을 끊고 다시 일어서라 동지여"(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같은 가사가 나올 때도 같은 마음이다. 집회에 오는 장애인 대다수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데, 그들이 원하는 인간으로서의, 혹은 인간다운 삶, 아니면 투쟁하는 삶을 나타낼** 말이 ‘일어서다’밖에 없어서이지, 그 말이 정말로 좋아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무대에 오른 사람들 역시 참지 말고 함께 일어서자는 식의 말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객석의 반응 역시 뜨겁다. 나의 신경에, 별다른 불편함이 감지되지는 않는다. 비유의 의미로 사용된 ‘일어서다’라는 말의 비장애인 몸 이미지는 이미 충분히 희석된 걸까, 생각해 보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마음은 또 불편하다.

그제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 결의 대회에 갔을 땐 어느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경찰을 향해 "이 병신 새끼야"하고 외치는 것을 들었다. 그 말을 하면서 그가 뜨끔 했을지, 혹은 아차, 했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그랬고, 아마 또 누군가가 그랬을 것이다. 비판보다는 슬픔이 앞선다. 언제나 나쁜 의미만 부여된 삶을 사는 이들에겐, 다른 나쁜 것을 이야기할 언어가 주어져 있지 않음에.

병신, 이라고 하지 않았더라도 뻔하다.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누구나가 의도를 이해하면서 발화자의 격한감정까지도 담을 수 있는 말, 그러니까 ‘욕’은 흔치 않다. 미친 놈, 이라고 했어도, 바보, 라고 했어도, 개새끼나 씨발 놈이라고 했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정신장애인연대에서 온 사람도, 발달장애인도, 여성, 혹은 여성주의자도 있었다. 그 자리가 아니라도, 그런 사람은 있다.

당사자에게 무어라 말은 붙일 용기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다, 황망한 것은. 단지 쓸만한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 수 있는 말이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않아서.

* ‘장애인 투쟁’은 이동권 투쟁을 시작으로 지금에까지 왔다. 그러니까, 휠체어나 목발을 이용하는 이들의 싸움부터 시작되었다. 그간 발달장애, 정신장애 등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의 싸움 역시 벌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메인’이라 할 만한 것은 이동권 투쟁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활동보조 이슈를 이동권의 연장에 두어도 좋다면.) 발달 장애인, 시각 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함께 모이지만 아직 그만큼의 세를 이루지는 못한 것 같다. 최근 단체를 결성하고 활동을 시작한 정신 장애인의 경우, 이 날 무대에 오른 이의 말대로, 당사자들은 여전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

**나타내다, 앞, 과 같은 표현들에도 시각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아, 이미지라는 말에도.

그릇

길에 보이는 웬만한 물건들은 다 주워 오고 싶어 한다. 어딘가에 쓸 데가 있겠지 싶기도 하고, 그냥 무언가가 버려지는 게 슬프기도 하고 해서. 그런 중에서도 특히 선호하는 것은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다. 상자나 가방, 병이나 책꽂이 같은 것에서부터 스피커나 씨디, 비디오테잎, 책 따위에 이르기까지, 물리적인 것이건 아닌 것이건 무언가를 담을 수 있는 물건들은 왠지 소중하다.

인사동에서 어느 도예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그릇이 있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왔다. 잘게 금이 간 것 같은 저 무늬는 흔히들 크랙이라고 부르는데, 다기의 경우 오래 사용하면 저 선을 따라 찻물이 든다. 일년이나 십년, 혹은 그 이상을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다기는 다른 모양을 띠게 된다.

식탐이 아무리 많아도 먹는 것에 대한 애착은 크지 않고, 그래서 먹을 것을 담는 그릇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쓰지 않지만, 찻물이 든 다기만은 조금 다르다. 매일 한 잔씩 마신 차의 흔적이, 차를 함께 마신 사람들의 흔적이나 차를 마시면서 한 생각들의 흔적이 그릇에 남기 때문이다.

대개 크랙은 정방형이나 원형을 일그러뜨린 것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릇은 세로로 긴 모양을 하고 있었다. 마치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실개천 같은 모양이었다. 무늬를 따라 새겨진 기억들도 아래로 흘러 가운데 고일 것 같은 모습이어서, 참 좋았다.

담아 고으고 싶은 기억들이 참 많은데, 나는 그릇이 너무 작다. 어쩌면 그래서, 그릇들을 모으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잡담

요즘은 정말이지, 집중력이 눈꼽만큼도 없다. 언제라고 집중력 좋았던 때가 있냐만은, 이젠 읽고 듣는 게 안 되는 걸로 모자라 생각해 둔 걸 타이핑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도,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제였나, 카페에 가 앉아서 한참을 타이핑하다 글이 조각조각 끊어지는 걸 보고는 그만 두고 집에 들어 왔었는데, 오늘 다시 시도했더니 이번엔 조각조각이나마도 써지지가 않길래 또 포기.

몇 시간 동안 앉아서 두 단락을 겨우 써 놓고는, 옆자리 사람들 잡담하는 거 듣가다, 음악 듣다가, 웹서핑 좀 하다가, 잡지 좀 읽다가 하고는 결국 가방을 싸고 자리를 정리했다. 잡담을 훔쳐 듣고 잡지의 조각글들을 읽는 것조차 좀, 밖에는 되지 않는 요즘. 아직 졸업하려면 한참 남았는데 어쩌나 이걸, 싶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쓴 건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에스프레소를 시켜 먹는 건 순전히 그게 제일 싸서다. 마땅히 앉아서 글 쓸 곳이 없어 카페를 가는데, 먹을 만한 과일 음료 같은 걸 시키자니 말도 안 되는 가격대 뿐이라, 결국은 그냥 자릿값 내는 셈 치고 제일 싼 커피를 마신다. 쓰더라 역시, 설탕을 아무리 넣어도.

비장애인의 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비유들, 그러니까 이해하다는 뜻의 보다, 드러내다는 뜻의 보여주다 따위는 쓰고 싶지 않은데―물론 여전히 습관적으로 쓰지만― 철학 텍스트’이어야 할’ 학교에 낼 글들을 쓰자니 도리가 없다. 단어를 분류하고 분류해 드러내다와 보여주다를 전혀 다른 뜻으로 쓰는 이 세계에서, 자의적인 단어 선택은 오해를 낳고 공격을 받기 십상이다.

일상 언어의 세계만 해도 충분히 공고한데, 균열을 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은데, 언어로 구축된 공고한 세계, 언어가 끝도 없고 공고한 이 세계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아 물론, 말을 만들어서 써도 되는 지위에 오르면 할 수 있긴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위에 오르라, 는 말이 똑같이 적용되는 주제에 학문이랍시고 떡하니 버티고 있다니.

아, 책상 갖고 싶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