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온 편지

자전거를 타려는데, 바구니에 뭔가 담겨 있는 게 보였다. 곱게 접은 종이. 선교회에서 배포한 글이었다. 접은 채로 오래 뒀는지 겉만 색이 변해 펼쳐 두면 나름의 무늬도 새겨져 있는데, 아쉽게도 스캔에는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 – – –

종말에 나타나는 귀신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한국의 기독교인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중에 영 분별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사람들은 무분별하게 영을 받아 들인다. 악령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겉보기에는 같다. 마귀는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성령을 그대로 흉내 내므로 택하신 자라 하더라도 미혹한다고 하셨다. 악령에게 놀아나는 한국의 기독교인들, 정신병원에 가면 은혜 받다가 미쳐서 입원한 사람이 수두룩하다.

태생이 구복신앙에 바탕을 둔 무당신앙이 조상대대로 전해온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예언을 사모하여 그 영을 받아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귀신처럼 알아 맞힌다. 영풍한 곳으로 빠지고 있는 한국의 기독교, 예언이 올수록 진리 곧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 그 말씀은 멀리 가버리고 날이 갈수록 영 분별을 못하고 귀신의 역사함에 동참한다. 한국인은 귀신을 조상 때부터 타고났으니 예언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부르기만 하면 즉시 모여들어 귀신같이 맞히며 유혹한다. 귀신의 특징은 구질구질한 것들을 알아맞힌다. 알아맞히니까 하나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신 줄 알고 좋아하는 기독교인들, 귀신이 자신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을 보며 얼마나 조롱을 할까? 사소한 것들을 알아맞히는 것은 기독교인의 예언보다 무당의 예언이 더 정확하다. 한국의 기독교는 무당종교로 바뀌어져 가고 있고, 성경을 점치는 책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경의 진주 같은 진리는 점점 외면 당하고 있다. 진리를 찾는 교인도 없다. 무당, 점쟁이 집보다 많아져 가는 기독교 점쟁이들, 앞으로 닥쳐올 환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나? 귀신은 사람 속에 영적인 집을 지으면 나가지 않는다. 예언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미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정신병원에 가면 예언하다 미쳐서 온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쌓도록 내버려 두셨다가 종말에 가서 예언하는 사람 먼저 치신다. 이유는 예언이 진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천국은 예언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간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열리리라” (13: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 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13:2), “사람이 예언할 것 같으면 낳은 부모가 하나님 이름을 빙자한 그 예언을 할 때에 칼로 찌르리라” (13:3), “그 날(종말)에 선지자들이 예언할 때에 그 이상을 각기 부끄러워할 것이며 (지금은 자랑을 하나) 털옷(선지자의 옷)을 입지 아니할 것이며” (13:4), “예언하는 사람들이 종말에 말하기를 나는 선지자가 아니요 나는 농부라 내가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노라 할 것이요” (13:5), “선지자들을 내 가 치리니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하나님)가 말씀 하셨다 하는 예언자들을 내가 치리니” (23:30~) 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예언을 들으러 가는 자들 곧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뇨 하며 예언을 들으러 가는 자들에 대해 내 가 그 집을 벌하리라” (23:33~) 고 하셨다. 종말에는 7년 대환난이 있다. 반으로 나눠 전 3년반은 나팔재앙으로 하나님이 자녀들의 죄를 씻고 마지막 나팔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데려가시는 때이다. 그러나 후 3년반 대접재앙의 때에는 우상을 치시는 기간으로 예언자들을 치신다. 그 때의 환난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환난이다. 예언은 우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부분 예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뒤에서 조종하는 귀신의 말에 미혹을 받는 것이다. 성경 자체가 예언서 이며 진리 안에는 예언이 들어있다. 예언자는 성경에 보면 말라기 시대에 이미 끝났다고 쓰여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선지자 노릇 곧 예언하는 사람을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알고 계신 성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사람들이며 예언하는 자는 주님께서 모르신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다 예수님이 주시는 줄 알고 착각하고 있다가(알아맞히는 맛에) 지옥까지 마귀의 예언에 꿀려 따라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어야 천국에 가는 것인데 예언에는 열매가 없다.

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였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내 백성이 되지 않게 하신다.” (4:6) 고 하셨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언제까지 예언 곧 귀신의 속임수에 꿀려갈 것인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예수님)은 예언자들에게 밀려 교회 밖으로 떠나가셨다. 예언에 잡히면 회개도 못한다. 스스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줄 착각하고 환난의 날까지 꿀려간다. 예언에 잡힌 사람들은 회개를 모른다. 귀신의 영이 잡고 있어서 회개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언자에게는 환난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소래선교회

담뱃갑과 경계

외관 ― 인종이나 차림새, 혹은 눈빛이나 냄새까지도 ― 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때로 누군가를 경계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상적이지 않은 상대를 보고 경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죄책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며칠 전 집에 가는데 길에 서 있던 누군가 팔을 뻗고 말을 붙였다. 이리저리 페인트가 묻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홍대 길거리에 흔한 미술가이려니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엔 상하의가 다 좀 더러워 보였다. "라, 라, 라…" 그는 말을 더듬었다. 표정은 어딘가 멍했다. 덩치는 컸다.
무서웠다 ― 불안했다, 고 쓰는 쪽이 더 정확할 것 같지만 ―, 하지만 피하지는 않았다. 몇 번 쯤 라, 를 반복한 끝에 그는 뒤에 이터, 라는 낱자들을 덧붙일 수 있었다. "라이터요?" 하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이터를 건네자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여전히 표정은 멍했다.
우습게도 약간의 안도를 한 것은 그가 꺼낸 답뱃갑을 보고서였다.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길에서 주운 꽁초도, 어디서 났는지 모를 꼬질꼬질한 담뱃갑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하루 전쯤 가게에서 산 것처럼 보이는, 구겨지지 않은 담뱃갑. 아무 거나 달라고 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이름을 말하고 골라서 샀을 브랜드.
그 담뱃갑을 보고야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라이터를 돌려 받고, 서로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집으로 마저 가면서 나는, 그 얼룩들을 생각했다.

전단지 붙이던 사람

학교에서 학술대회 포스터를 붙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동아리나 학생회 혹은 학술대회 포스터/자보는 피하고 상업 광고는 개의치 않고 가렸다. 어느 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고, 그 옆 다른 게시판에 또 붙이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건다. 짜증 섞인 목소리다. "저기요, 제가 방금 붙였는데 그 위를 저렇게 덮으시면 어떡해요." 방금 붙인 포스터를 보니 악기 레슨 전단지를 1/3 정도 가리고 있다. "저것 좀 옮겨 붙여 주세요."

"네"하는 대답을 듣고서도 그는 여전히 짜증난 표정이었지만, 전단을 마저 붙이러 떠났다. 나는 돌아가서 전단을 옆으로 옮겨 달았다. 그리고는 이어 다른 게시판들을 옮겨 다니며 포스터를 붙였다. 내가 지나간 모든 게시판에 그 전단지는 먼저 붙어 있었다. 때로는 기업 광고 위에, 때로는 동아리 회원 모집 공고 위에, 또 때로는 학생회 선거 대자보 위에.

슬펐다.

자전거

간만에 학교에서 홍대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언제나처럼,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간만에 타는 큰 자전거는 시원시원해서 좋았지만 상체를 숙이고 타자니 허리가 아팠다. 작은 바퀴에 익숙해 진 몸이, 큰 바퀴를 움직이려다 가끔 당황하기도 했다.

신림역 앞은 혼란스러웠다. 인도쪽으로는 차가 이중으로 주차되어 있었고, 불과 십 미터 앞에 차가 오는데 중앙선을 밟고 유턴하는 차도 있었다. 엉켜도 멈추지 않는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취객들도 있었다.

새벽 두 시 반, 오늘도 서울의 새벽에는 행인들이 많았다.

양화대교를 건넌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공사가 끝나 이제는 다시 곧아진 다리를 인도로 건넜다. 다리 초입, 좁은 인도에서는 밤길을 걷는 세 명의 일행과 마주쳤다. 스쳐 지나갈 수는 없는 너비였고, 우리는 모두 멈추었다. 한쪽으로 붙어 서며 멈추던 그들은 내가 멈추가 옆을 지나갔고,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셋이 도미노처럼 고개를 숙였다.

양화 대교를 건너 홍대 큰 길에서는, 길 왼쪽이 집인지 오른쪽이 집인지 잠시 헷갈렸다.

저들의 영광

그냥 사람들이랑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문득 떠올랐다.
구세대의 사람들이 유신 시절에 향수를 느끼는 건 어쩌면, 그 시절을 거치면서 비로소 먹고 살 만하게 되었다거나 하기 때문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저 그 시대만이, 별달리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럴싸한 이름이 주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삶에 명분이 주어지는 흔치 않은 시대 아닌가. 단지 먹고 살기 위해 고생해야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의 고생이 무언가 가치있는 것이라는 허상이 주어진 흔치 않은 시대.

그 이름이래봐야 물론 별 것 아니다.
국가 부흥에 복무하는, 산업역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헌신하는, 참전용사.
따위의 것들. 고된 하루하루가 단지 육신을 유지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믿음을 줄 수 있었던 이름.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주었던 유일한 이름, 그런 이름이 있었던 유일한 시기.

자유로운 삶을 얻고 나면, 자신의 존재 가치는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게 된다.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 때를 그리워들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