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4.(토)

서울에 다녀왔다. 순전히 놀러. 산적한 마감을 생각하면 이럴 때가 아니지만, 다행히 이렇게 되기 전에 잡아 둔 약속이므로 놀기에 그럴듯한 핑계다. 작은 전시를 하나 보고 카페에 갔다가 공원에 갔다가 불 꺼진 낡은 상가에 갔다가 했다. 만난 친구에게는 책 한 권과 필름 두 롤을 선물했다. 수리 맡긴 카메라를 찾을 거래서 필름을 챙겼는데 수리가 끝나지 않아 카메라는 구경하지 못했다.

지난 저녁엔 의림지에 다녀왔다. 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보다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재미 없는 길이지만 일이 바쁜데 논밭 사이를 기약 없이 걷는 데 시간을 다 써버리면 곤란하므로 샛길로 빠질 일 없는 이쪽이 좋았다. 그간은 낮에만 가 본 곳이다. 늘 한적했지만 밤에는 사람이 많았다. 걷다가 누군가와 손을 꽤 세게 부딪었다. 그는 자기 손만을 한 번 슥 보았을 뿐 뒤돌아 나를 보지는 않았다.

오가는 길에는 음악 대신 오디오북을 들었다.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 목소리에 정신을 팔지 않아도 워낙에 그렇긴 하지만, 내용은 흘려보냈다. 소설이다. 조만간 일이 좀 줄면 활자로 다시 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는 산 너머에서 사라지기 직전의 ― 집을 나섰을 땐 이미 어두웠다 ― 노을 빛을, 오는 길에는 구름에 번진 달을 찍었다.

막차를 타고 왔으므로 집에 이른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었으므로 땀에 젖었지만 샤워를 하는 대신 이삿짐을 뒤져 카메라를 꺼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오른쪽으로 한껏 비틀자 보름달이 보였다. 불안한 자세로 찍느라 썩 좋지 않은 설정으로, 달을 몇 장 찍었다. 씻고 앉았다. 누울 것이다.

2021.07.23.(금)

이삿짐 옮긴 날을 기준으로 딱 2주가 되었다. 그날엔 쓰지 않았으므로 이것이 열네 번째 일기다.

서울에는 세 번 다녀왔다. 첫날 짐만 내려 두고 살던 집을 청소하러 간 것을 빼면 두 번. 친구를 몇 만났고 회의를 하나 했고 리뷰를 써야 하는 연극을 한 편 보았다. 제천에서는 온라인으로 회의를 두 번, 스터디를 한 번 했다. 화상통화를 한 사람은 두 명이다. 원고는 한 편을 썼다. 원래대로라면 어제까지인 마감이 하나 더 있었지만 일이 추가되면서 다음 주로 밀렸다. 그리 하여 다음 주엔 한 편의 번역과 두 편의 글을 보내야 한다. (번역도 글이지만.) 이번 주에도, 다음 주에도 한 번씩 서울에 간다.

아침 일찍 책상에 앉았다. 두 단락 정도를 번역하고는 어제의 컨디션 난조가 가시지 않은 것이 느껴져 다시 누웠다. 잠들 것 같아 알람을 맞추고 친구에게도 제때 깨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정작 누워보니 잠들 기미는 없어서 친구가 아직 확인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송취소했다. 그리고는 까무룩. 몇 분 지나지 않아 내 코고는 소리에 깼다. 마침 친구가 (취소하지 않은 다른 메시지에) 답을 보내 왔다. 어김없이 뒹굴고 노닥거리며 오전을 보냈다. 몸이 좀 괜찮아졌다.

점심은 또 콩국수, 로 정하고 길을 가다가 근처의 메밀막국수집으로 들어갔다. 비빔막국수를 시켰다가 메밀콩국수라는 것이 보여서 얼른 다시 주문했다. 콩물이 좀 달았지만 소금을 치니 먹을 만했다. 소금을 좀 많이 쳤다. 면도 많았고 삶은계란도 들어 있었다. 건더기만으로도 배가 차서 콩물은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콩국수를 먹기 전에 따라 둔 물도 반 컵만 마셨다. 생각해 보니 그 전에 먼저 보리밥 약간을 먹었었네.

카페에 앉았다. 거의 저녁 때가 되도록 일은 하지 않았다. 다섯 시쯤 비로소 번역을 시작하며 보니 몇 시간 전에 번역하다 만 문장 반쪽의 끝에서 커서가 깜빡였다. 여섯 시 조금 지나까지 했을까, 얼마 하지 못했다.

인터넷으로 주문해 택배를 이용하는 것과 대기업 매장을 이용하는 것, 어느 쪽이 더 나쁠지를 생각하다 생각 났을 때 사지 않으면 생각만 하다 시간을 다 보내리란 데 생각이 닿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수퍼에 들렀다.

입구에서는 어느 방송국 무슨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라는 해비타트 팀을 마주쳤다. 무어라 말을 걸길래 무심코 다가갔더니 스티커를 붙여 달라며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독거 노인과 빈곤 아동(후자는 정확히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두 개의 칸이 있고 사진 위로 스티커들이 어지러이 붙어 있었다. 편히 도우실 수 있다면(역시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쪽을 먼저 돕겠냐고, 그 쪽에 스티커를 붙여 달라고 했다. 이미 내 손 끝에 붙어 있던 스티커를 돌려주고 돌아섰다. 희미하게 웃으며 그냥 갈게요, 하고만 말했다.

식기건조대를 사고 싶었지만 팔지 않았다. 프라이팬을 들었다가 뚜겅을 팔지 않길래 제자리에 두었다. (표기된 사이즈만 보고 뚜껑을 따로 샀더니 미묘하게 크기가 맞지 않았던 적이 있다.) 유리 물병도 필요했지만 찾아보지 않았다. 식재료라도 살까 하다 역시 그만 두었다. 적어도 식재료는 집 앞 마트에서 사는 편이 ― 대기업을 피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운 날 먼 거리를 들고 걷는 것은 현명치 못하므로 ― 나을 것이었다. 이 마트에서는 식기건조대도 프라이팬도 물병도 아직 살펴 보지 않았다.

또 일과가 끝나지 않았지만 쓴다. 밤에는 최대한 끊지 않고 일해야 한다. 그 전에, 그러니까 지금, 잠시 산책을 다녀올 생각이다.

2021.07.22.(목)

오전부터 번역을 시작했다. 한 시도 새벽, 여섯 시도 새벽이라 지난 밤엔 한 시까지만. 두 시 좀 넘어서 잠든 것 같다. 느릿느릿 번역을 하다 나가서 콩국수를 사먹고 카페에서 또 번역. 친구가 티라미수 이야길 해서 나도 티라미수를 먹기로 했다가 커피만 시켰는데 카드 결제가 끝나는 순간 커피, 티라미수 세트 할인 광고가 보였다. 염치불고 취소를 요청하고 새로 주문했다. 티라미수는 달았다.

역시 느릿느릿 했다. 그렇잖아도 빠듯하던 마감이 조금 더 빠듯해졌다. 추가된 원고인 탓에 이 챕터의 개별 마감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는데 굳이 편집자에게 언제까지 드리겠노라 선언을 했다. 느리게라도 쭉 하면 문제 없을 일정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멈췄다.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져 집에 가기로 했다, 가 친구가 말을 걸어 와서 한참 노닥거렸다.

저녁 때가 됐지만 식욕이 없어 곧장 집에 와서 누웠다. 한 시간 정도 잤고 두 시간 정도를 더 누워 있었다. 샤워는 하고 누웠나, 가물가물하다. 미역국이든 카레든 간단한 거라도 해 먹을 생각이었지만 너무 오래 누워 있었더니 허기가 심해 또 라면을 끓였다. 마트에서는 다섯 개를 주었고 이제 두 개가 남았다. 다 먹으면 당분간은 안 사야지…

다시 누울 것이다. 일은 내일.

2021.07.21.(수)

밤 열 시 반이지만 일과가 끝나지 않았다. 되는 데까지 일을 하다 잘 것이다. 일기를 먼저 쓰는 건 소소한 일탈이다.

오전엔 어김 없이 뒹굴과 노닥. 마트 사은품 라면과 정체 모를 즉석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앉았다. 번역 중인 책의 재판에 후기가 추가되었음을 며칠 전에야 알게 되어 급히 원고를 받았는데, 근거 없이 대여섯 페이지 쯤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에누리 없이 한 챕터 분량이었다. 다른 일을 미루고 번역을 시작했다. 속도는 평이하다. 평이한 속도로 하면 일정이 빠듯해진다. 그나마도 친구와 시간을 정해 놓고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어떻게든 애쓴 덕에 나온 속도일 텐데.

배가 고파져서 조금 일찍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냉모밀. 모밀이 아니라 메밀, 이라고 배웠고 대개 그렇게 쓰지만 냉메밀은 어째선지 입에도 손에도 안 붙는다. 면은 잘 씹지 않으므로 식사는 5분만에 끝났다.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기분상으론 음식이 나오기까지 20분 가량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두 세 건의 배달이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는 ― 지나치는 바람에 조금 되돌아 가서 ― 약국에서 소독용 알코올을 샀다. 책꽂이를 닦는 데에 쓸 것이다. 번역을 마친 후에야 짐 정리를 재개할 테니 급하지는 않지만 생각난 김에 사 두기로 했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대용량, 1리터짜리 병을 샀다. 책꽂이 청소에 이만큼이 필요할 리는 만무하지만 어디에 써도 쓰겠지. 지난 번엔 200밀리리터짜리를 샀고 반년 쯤 쓴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일을 재개, 하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파일을 찾아 오래 된 하드디스크들을 뒤졌다. 여남은 개가 있는데 절반쯤을 컴퓨터에 꽂아 확인했지만 파일은 찾지 못했다. 나머지 절반쯤은 구형이라 젠더를 써야 연결할 수 있다. 젠더가 어딨는지는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 중 하나엔 그 파일이 들어 있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여간해선 지우지 않는 종류의 파일이지만 하드디스크 용량이 충분치 않았던 시기에 받은 대용량 파일이므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꽤 한참을 날린 후 번역을 시작했다. 평이한 속도에 조금 못 미치는 속도로 하고 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사러 나가려다 물러가고 있는 바나나가 생각나 믹서를 꺼냈다. 서울에선 주로 1/3손, 많아야 반 손짜리를 샀더랬는데 여기서 처음 산 바나나는 한 손짜리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껍질이 검어졌고 속도 조금씩 무르기 시작했다. 짐에 파묻혀 있던 믹서를 씻어 바나나 여섯 개를 까 넣고 돌렸다. 물을 좀 섞을 생각이었지만 물이 없어 그냥 걸쭉한 채로 천천히 마셨다. 물을 사려면 어차피 한 번은 나갔다 와야 한다.

오늘은 산책은 생략. 새벽까지 일할 것이다. 한 시도 새벽이고 여섯 시도 새벽이지만.

2021.07.20.(화)

아침엔 조금만 뒹굴었다. 약속을 하나 잡았다.

카페에서 일했다. 많이는 아니다. 오늘은 점심을 챙겨 먹기로 미리 정했으므로 커피만 시켰다. 점원이 어제의 일 ―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샌드위치가 나온 ― 때문에 커피만 시키는 걸까 생각할까봐 조금 걱정했다. 그가 나를 기억할는지 어떨는지는 모른다. 커피를 주문했더니 커피만이냐고 되묻긴 했다.

번역 일을 조금 하고 점심으로는 콩국수.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스터디가 잡혀 있었다. 오후를 재밌게 보냈다. 공부를 많이는 안 했다는 뜻이다. 요즘은 두 개의 스터디를 한다. 둘 다 장애가 주제다. 아마 다음 달부터 하나를 더 하게 된다. 이미 하고 있는 둘은 대학원 동료들과, 곧 시작할 것은 춤추는허리에서.

스터디를 마치고는 의림지까지 걸었다.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지만 차도를 따라 가는 길이므로 조금 지루하다. 물가에 잠시 누워 있다가 의림지를 한 바퀴 돌았다. 하늘에 뜬 구름 사진, 물에 비친 구름 사진을 조금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구름을 여러 장 찍었다.

집과 의림지의 가운데 쯤에 있는, 지난 번에 의림지 가면서 보아 둔 황태해장국집에서 밥을 먹었다. 황태떡콩나물해장국, 이었던 것 같은데 떡은 안 들어 있었다. 서빙하시는 분께서 ― 실은 주방에서도 그 분이 일했지만 ― 음식을 내어 오며 콩나물이 다 떨어져서, 로 시작하는 말을 무언가 하셨는데 한 번 되묻고도 알아듣지 못했다. 콩나물은 많이는 아니지만 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사골 육수를 쓴 것 같았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는 오늘의 세 번째 샤워를 했다. 책을 조금 꽂을까 했다. 남아 있는 책꽂이엔 곰팡이가 조금 슬어 있다. 지난번 집에서 여러 번 물이 샌 벽에 닿아 있었던 책꽂이들이다. 대강 닦고 꽂으려다 내일 알콜이든 락스든을 사다 제대로 닦고 꽂기로 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누운 채로 두어 시간을 보냈다.

번역을 조금 더 하고 잘까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금방 오려니 했던, 친구가 선물한 커피 드립백은 오늘 발송되었다고 한다. 아닌가, 문자메시지가 왔는데 자세히는 안 봤다. 내일 발송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