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9.(목)

또 심기일전을 위한 대낮에 일기쓰기.

지난밤엔 씻고 잠시 누웠다가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커피를 샀다. 배를 채우고 잠을 깨워 글을 쓰자, 고 다짐했지만 오래 앉아 있지는 못했다. 친구와 이야기를 좀 하다가 다시 누웠다.

일곱 시에 깼다. 여덟 시에서 아홉 시 사이에 다시 오겠다는 등기우편물 안내문 때문에 맞춰둔 알람 소리를 듣고서였다. 누워서 시간을 보내다가 노크 소리에 일어섰다. 안내문에는 나와 성은 같고 이름은 다른 이에게 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우편함에 남아 있는 지난 거주자의 우편물에 적힌 이름도 나와 성이 같아서 그의 것일까 했으나 확인해보니 이름이 달랐다.

해외 쇼핑몰에서 주문한 물건의 배송 현황을 확인해 보고서야 내 것임을 알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늘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 필름카메라용 중고 렌즈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멀쩡한데, 아직 카메라에 끼워 보지는 않았다. 사양을 자세히 보지 않은 탓에 사소한 문제가 하나 생겼지만 말 그대로 사소한 문제다.

좀 더 쉬면서 친구와 이야기를 하거나 업무 메시지를 주고 받거나 했다. 열한 시가 조금 못 되어 집을 나섰다. 커피, 샌드위치 세트를 먹으며 일을 할 생각으로 곧장 카페로 향했다. 깜빡하고 커피만 시켰다. 빠르게 쓰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는 계획으로, 이번에는 주문을 고치지 않았다. 빠르게 쓰지는 못했다. 두 시간동안 아주 짧은 문단 두엇을 썼다.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하고 업무 메일 하나를 보냈다.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배는 아직 고프지 않았지만 곧 고파질 것이므로 밥을 먹었다. 또 콩국수. 이 식당의 카운터를 지키는 이는 매번 영수증 버려드릴게요, 하고 말한다. 나는 매번 네, 하고 답한다. 그는 사실 영수증을 버리지 않는다. 포스에 영수증 출력 여부를 묻는 창이 뜨면 ‘아니요’를 누를 뿐이다. 영수증 필요하신가요, 하고 물으면 손님들이 생각에 잠겨 시간을 끌었을까. 영수증 필요 없으시죠, 하고 묻는 건 무례하게 상대를 예단하는 말로 들렸을까. 별다른 이유는 없을지도 모른다.

종종 가는 작은 카페를 지나 집으로 왔다. 앉았다. 아무래도 느리게 쓸 모양이다.


느리게 썼다, 고 할 수도 있긴 하겠다. 아주 조금 썼으니까. 쓸 말은 다 정했는데도 도무지 진척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책꽂이를 닦았다. 곰팡이가 핀 면적은 넓지 않지만 나머지까지 닦았으므로 시간도 알코올도 많이 썼다. 휴지도. 소주 냄새가 집에 퍼졌다. 몇 번인가 알코올을 쏟았다. 손끝의 생채기가 쓰렸고 책꽂이나 바닥에 알코올이 고였다. 80%, 농도가 높았으므로 금세 증발했다. 바닥에 떨어진 땀은 오래 남았다.

씻고 다시 일을 하자.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씻기 전에 나갔다 오기로 했다. 며칠 전에 사고 아직 설치하지 않은 식기건조대를 한 치수 작은 것으로 교환하고 춘장도 샀다. 집앞 마트에 간 것이었지만 친구와 통화를 하며 서성이느라 시간을 꽤 보냈다.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서야 맥주도 사려고 했단 걸 깨달았다.

식기건조대와 춘장을 넣어두고 다시 단지 입구 편의점으로 갔다. 작은 사이즈 다섯 캔 만 원. 점원은 여섯 캔을 입력했다. 하나를 삭제하고 결제했다. 이 맥주 ― 같은 것으로 다섯 캔을 채웠다 ― 맛있나요, 하고 그가 물었다. 저도 모르겠네요, 보이는 거 아무거나 산 거라. 앞은 사실이지만 뒤는 거짓이다. 싫어하는 것을 제하고 남은 것을 골랐다.

맥주를 홀짝이며 글을 쓸 생각이었다. 몸은 멀쩡하고 다만 기분이 가라앉아서 글을 쓸 수 없는 ― 일기는 쓰는 걸 보면, 정확히는, 일을 할 수 없는 ― 것이었으므로. 그야말로 일순 앉기만 했다가 포기했다. 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누웠다. 편집자에게 양해를 청하는 메시지를 (또) 보냈다. 내일까지 드리마고 했지만 며칠 더 여유를 주셨다.

그대로 누워 저녁때를 넘겼다. 느지막히 일어나 식기건조대를 설치했다. 냉동실의 두부와 양파를 꺼내 녹이고 감자를 썰었다. 기름과 춘장. 즉석밥. 짜장밥을 해 먹었다. 남은 감자는 두부를 꺼낸 자리에 넣어 얼렸다. 오랜만에 해 본다. 냉동실엔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는지 모를 춘장이 조금 남아 있다. 곧 버릴 것이다. 오랜만에 한 짜장밥은, 기름이 많고 춘장이 적었다. 분명 감자 하나를 집어 다 익은 것을 확인하고도 한참을 더 끓였는데 감자가 하나같이 서걱서걱했다. 남은 절반을 데울 땐 약간의 조치가 필요하겠다.

카레를 하면서 뭔가 허전하다 싶었는데 마늘을 빼먹었더랬단 걸 짜장을 만들며 깨달았다. 오늘은 또 뭘 잊었을까. 밤이다. 책을 꽂아야 한다. 걸을까도 싶다.

2021.07.28.(수)

여섯 시에 깼다. 그저께 맞춘 알람 소리에. 네 시에도 알람 소리를 듣고 깼었나, 가물가물하다. 한 번 깨긴 했다. 창문을 닫았거나 열었다. 선풍기를 켰을 수도 있다. 금세 다시 잠들었다.

일곱 시가 조금 못 되어 집을 나섰다. 산책을 하기로 했다. 아파트 앞 논밭을 가로질러 건너에 있는 마을까지 갔다. 가는 덴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길을 기억해두지 않았으므로 아무렇게나 돌아왔는데, 오는 데는 40분 정도 들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볕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밤엔 끈적한 발라드가 나오던 산책로 가로등 스피커에서, 아침이라 그런지 조금은 밝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단지에서는 목걸이를 한 흰 고양이를, 건너편 마을에서는 줄에 목이 묶인 검은 염소를 만났다.

샤워를 하며 보니 가슴팍이 줄무늬 모양으로 붉어져 있었다. 왤까, 어디 엎드리지도 않았고 이렇게 길고 곧게 긁었을 리도 없는데. 한참 생각해 보니 흰색과 검은색이 이어지는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걸은 탓인 듯했다. 두면 가라앉을까, 이대로 까맣게 타는 걸까. 어차피 안 보이는 곳이니 상관 없다. 아무 생각 없이 ― 땀을 흘리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 씻고 나서도 다시 그 옷을 입었다.

낮엔 쉬기로 했다. 책을 들고 카페에 갈까, 도서관에를 가볼까. 전자로 마음이 기울었지만 책을 잊고 맨몸으로 나섰다. 애초에 책을 고르지도 않았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를 향하다 멈췄다. 잠시 고민하고는 도서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읽어볼까 싶은 책이 두엇 있었지만 소장도서 목록에 없었다. 신착도서 서가를 어슬렁거리다 『이세린 가이드』라는 만화를 뽑아들었다.

친구의 글에서 본 기억이 있는 책이었다. 친구의 글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이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는 대개 좋은 것에 대해 쓰므로 좋으려니 했다. 음식 모형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다. 첫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는 자전적인 만화거나 적어도 인터뷰이가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쩌다 눈치챘더라, 이상하다 싶어 작가 후기를 먼저 읽었다. 음식을 좋아하지만 맛에는 관심이 없어, 다른 좋아하는 것인 모형과 더해 상상해 낸 이야기라고 했다.

음식 모형을 만드는 사람 ― 젊은, 오빠 둘이 있는, 가부장적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결혼하지 않은, 여성 ― 의 이야기다. 작가 후기에는 여성이니 평등이니 혹은 노동이니 하는 말이 전혀 없었지만 음식이나 모형보다는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가끔 웃으며, 즐겁게 읽었다. 그러면 슬퍼진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이 어떤 불의들임을, 배우거나 집어 말하지 않아도 알 만한 불의들임을 생각했다.

휴대전화로 친구의 글을 다시 읽으며 돌아왔다. 저녁 메뉴는 짜장밥, 으로 정하고 예의 대기업 수퍼에 들렀다. 춘장은 없었다. 대신 아이스크림과 청소용 솔을 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까지 마저 걸었다. 세면대를 청소했다. 또 샤워를 했을까, 잠시 후의 나는 누워 있었다. 오는 길에는 저녁에 잡혀 있는 회의 공지 메시지를 받았다. 곤란한 일이다. 저녁엔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무어라 쓸지 생각하는 시늉을 하며 누워 있다가 저녁에 또 나가서 걸었다. 시간을 맞춰야 하므로 이번에도 의림지. 카메라를 챙겨 밝은 하늘의 커단 구름을 몇 장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논밭도 두어 장 찍었다. 춘장이 없으니 또 카레, 로 정했던 것마저 취소하고 식당에서 밥을 먹고 들어왔다.

회의는 조금 전에 끝났다. 씻고 다시 앉아 오늘 밤까지 보내기로 한 원고를 쓸 것이다.

여유는 있었는데 메일도 문자메시지도 돈도 보내지 않았다. 아침엔 등기우편이 왔는데 그것도 못 받았다. 내일도 못 받으면 반송된다고 한다. 국제우편인데…

2021.07.27.(화)

결국 원고를 쓰지 않고 잤다. 알람 소리에 네 시에 한 번, 여섯 시에 한 번 깼다. 여덟 시쯤 일어나 씻고 집을 나섰다. 평소에 가던 카페들은 아홉 시, 열 시에 문을 연다. 여덟 시 반이었으므로 근처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갔다. 일곱 시에 여는 곳이다. 바게뜨 한 쪽과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세 시간쯤 일했다. 번역을 마쳤다. 미주도 모두 옮겼다.

대강 방향만 확인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간 왔던 카페 ― 지금 앉아 있는 곳 ― 을 향해서였다. 중간에 마주치는 적당한 곳에서 식사를 해결할 요량이었다. 언젠가 아는 길로 접어 들었다고 생각했다. 쭉 걸었다. 모르는 곳에 이르렀다. 지도를 확인해도 목적지와 멀다는 것 외엔 딱히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마주친 분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열무국수. 나보다 늦게 들어와 무언가 탕을 주문한 사람보다도 늦게 받았다. 금세 먹었다.

몇 번씩 지도를 확인하며 길을 찾았다. 혹시나 싶어 지도를 볼 때마다 매번, 가야 하는 길과 반대 방향으로 꺾은 참이었다. 왕복을 더하면 한 시간쯤을 헛되이 걸었을 것이다. 더운 시간대 ― 그래봐야 두 시 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 에 차가 많은 ― 그래봐야 서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 길을. 많이는 아니지만 땀이 났고 지쳤다. 배도 고파온다.

여기까지가 오전의 일. 정확히는 오후의 삼사십 분을 포함하고 있지만. 땀을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여기까지 먼저 쓴다. 이제 번역한 것을 읽는다. 오탈자를 고친 후 편집자에게 보내고 다음으로는 어제 못 쓴 글을 쓸 것이다.


오탈자 확인만 한 수준인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들었다. 한 번 읽은 글을 또 읽을 때면 그렇잖아도 없는 집중력이 처음 읽을 때보다도 몇 배나 떨어진다. 아는 내용을 또 봐서 그런 게 아니라 아는지 모르는지 판단할 수도 없을 만큼. 번역한 글을 읽는 건 언제나 또 읽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써야 할 원고의 편집자에게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번역 편집자에겐 (내가 나서서 다짐한 일정이었으므로) 미리 말했지만 그에겐 따로 연락하지 않았더랬다. 마감 일정을 묻는 문자였다. 양해를 청하며 밤까지 보내겠다고 답했다. 퀄리티는 못 맞춰도 마감은 맞춘다, 는 신조가 무색한 하루였다.

심기일전.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쯤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밥은 하지 않았다. 마지막 라면을 먹었다. (일기에 기록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나머지 한 개는 잠들지 못했던 밤에 생으로 먹었다.) 식사를 하며 틀어두었던 영상이 끝날 때까지 마저 쉬었다.

열흘간 드문드문 생각한 것들을 ― 무엇을 왜 모르겠는지를 ― 썼다. 열흘 전엔 네 페이지쯤 될 거라고 생각했고 오늘은 두 페이지를 쓰기로 맘먹었는데 결국 세 페이지를 썼다. 글이 영 미심쩍어서 친구에게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고는 산책을 나섰다. 거의 걷지 않고 물가 벤치에 한동안 누워 있었다. 모기가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현관에 이르자 배가 고파왔다. 집에 와서는 어제 산 복숭아를 하나 먹었다. 무르고 물이 많았다. 손을 씻고 자리에 앉자니 휴대전화 LED가 점멸하고 있었다. 친구가 원고 여기저기에 메모를 달아 보낸 것이 2분 전이었다. 엄하지는 않았고, 이 부분은 설명을 더 해주면 좋겠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사이사이에 다른 것도 있었다.

설명엔 재능이 없으므로 충실히 고치지는 못하고 송고했다.

씻고 누울 것이다. 내일도 또 한 편을 써야 한다. 여유가 있다면 몇 군데에 문자메시지와 메일과 돈을 보낼 것이다. 모레부터는 정말로 짐 정리를 해야지. 그래봐야 글피까지다. 그글피엔[1]그글피, 란 말이 표준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찾았다. 『전라북도 방언사전』에는 표준어 김제, 부안, 군산, 완주, 익산, 정읍, 무주에서 … (계속) 또 서울에 간다… 또 연극을 보러…

1 그글피, 란 말이 표준어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찾았다. 『전라북도 방언사전』에는 표준어 김제, 부안, 군산, 완주, 익산, 정읍, 무주에서 “그글피”의 대응어로 쓰이는 방언 “그글피”가 실려 있다. 고창, 남원, 임실, 장수, 진안, 순창에서는 “그그페”가 쓰인다고 한다. (115쪽)

2021.07.26.(월)

오늘 낮에 쓴 어제 일기 말미에 적은 데서 딱히 나아가지 못했다. 카페에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진도가 더뎠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콩국수.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하라, 고 스스로를 보채 보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법이다. 집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역시 진도가 더뎠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저녁으로는 카레를 해 먹었다. 채식을 하므로 시판 소스나 가루는 대개 쓰지 못한다. 순강황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카레 치고는 거창해 보이지만 미리 썰어 얼려 둔 재료를 한데 붓고 볶다가 강황가루를 넣고 또 볶다가 ― 생토마토를 익히는 귀찮은 일은 할 위인이 못 되므로 ― 케첩을 넣고 볶는다. 오늘은 얼마 전에 먹고 남은 시판 로제 소스도 섞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강황을 더 넣었다. 전분 푼 물을 넣고 끓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제 소스 병에 전분과 물을 넣고 흔들어 한 번에 부었다.)

그 통에 1.5인분쯤이 나왔다. 반만 덜어 즉섭밥에 얹어 먹었다. (역시 정확히 말하자면 그릇에 카레부터 넣고 그 위에 밥을 얹었다.) 재료를 익히며 강황을 찾고 전분을 찾았던 것처럼, 잠시 이삿짐을 뒤져 가위를 찾았다. 김치를 썰었다. 책상에 앉아서 먹었다. 또 설거지는 미룬다. 그릇에 물만 부어 두었다.

또 빨래를 돌려 놓고, 나가서 걸었다. 40분 정도. 그간 다닌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비슷한 풍경이지만 도로나 아파트와 훨씬 가까운 구간만 걸었다. 오늘도 노을과 구름을 몇 장 찍었다. 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복숭아와 감자를 샀다. 감자는 두 알에 2400원 정도 했다. 무게로 따지면 세 배쯤 되는, 보다 작은 감자를 담아둔 것이 2000원이었다. 제때 다 먹지 못할 것이 뻔하므로 알이 굵고 비싼 것을 조금만 샀다.

들어와 빨래를 널고 음료수와 복숭아와 감자를 냉장고에 넣고 씻었다. 자리에 앉았다. 오늘 마감인 원고가 있으므로 나머지 번역은 내일의 몫이다.

2021.07.25.(일)

여독 때문인지 일하기 싫어서인지 늦게 일어났다. 늦게 집을 나섰다. 메밀콩국수를 또 먹어볼까 하다 막국수를 시켰다. 비빔막국수를 주문하려다 무심코 메밀막국수요, 라고 말했는데 물막국수로 주문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고치지 않고 그냥 받아 먹었다.

카페에서 또 번역. 마음이 급한지 평소보다는 조금 더 집중했다. 오래 가지는 않았다. 금세 배가 고파 왔다. 예정보다 일찍 일어나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왜 그랬더라, 특별한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집에서 좀 더 하다 저녁을 먹을 요량으로 마트에 들렀다. 식재료가 없지는 않지만 요리를 하기는 귀찮을 것이 분명하므로 적당한 레토르트를 사기로 했다. 문득 얼마 전에 사지 못한 이것저것이 떠올라 잡화 코너를 먼저 살폈다. 식기건조대와 락스를 집었다. 물병은 적당한 것이 없었다. 프라이팬은 살펴보기 귀찮아 미루었다. 먹거리를 사려던 건 잊었다. 카운터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까지를 챙겨 세 가지를 결제했다.

집에 도착해 번역을 이어 했다. 식기건조대는 설치하지 않았다. 요리도 역시 귀찮았으므로 즉석밥에 명란젓을 얹고 참기름을 둘러 비벼 먹었다. 전날은 놀았고 전전날은 뻗은 탓에 마감을 맞추려면 철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철야를 한대도 검토할 시간까지 생각하면 어차피 온전히 맞추지는 못할 터였고 비몽사몽으로 번역해 봐야 좋을 것이 없으므로 결국 (멋대로) 미루기로 했다.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두어 시간을 뒤척이다 일어나 번역을 조금 더 하고 다시 누웠다. 설핏 잠들었다 금세 깼다. 친구가 나를 피하는 꿈을 꾸었다. 10분쯤 잔 것 같다. 또 몇 시간을 뜬눈으로 보냈고 해가 떴다. 빨래를 돌리고 번역을 조금 더. 빨래를 널고 누웠다. 이번에는 30분 남짓 잤다. 그대로 뒹굴다 씻고 나왔다. 나오는 길에는 며칠째 검어져 가고 있던 바나나껍질을 내다 버렸다. 끼니는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때울 요량이었는데 생각보다 늦게 나와서 그냥 식당에 들어갔다. 열 시 반.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었고 영업 개시 전이었다.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켰다. 번역은 하는둥 마는둥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