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늦게 잤으므로 또 늦게 일어났다. 두어 시쯤 먹은 점심은 김치만둣국. 먹고는 또 누웠다. 네 시쯤 다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씻고 다섯 시쯤 집을 나섰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다. 제천에 와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기로 하고 조금 걷다가 멈췄다. 귀갓길에 저녁거리를 사야 하니까 마트랑 가까운 곳으로 가자, 고 생각했다. 그 카페를 가더라도 마트에 들르기 크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카페가 다른 곳들에 비해 멀다는 것도 같이 깨달아 버렸다.
자주 가는 옆동네 카페에 가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어차피 오래 앉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오래 있을 게 아니라면 작은 동네 카페에 가도 상관 없다. 그 생각을 한 것이 마침 어느 카페 앞이었으므로 그리로 들어갔다. 역시 처음 가보는 곳이다. 주로 목재를 써서 이를테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둔 곳이었다. 카페 이름에도 나무라는 말이 들어간다. 팀버나 우드는 아니고 트리지만. 목재 가구만 있는 게 아니라 나무를 심어둔 화분도 있지만. 나무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황정은의 『일기』(창비, 2021). 커피가 쌌다. 화장실 휴지통조차도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알듯말듯한 일들을 차분하게 쓴 ― 이상한 말이지만,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황정은의 글이다 ― 일기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절반쯤 읽었는데, 코로나19와 산업재해와 아동의 권리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 동료들이 일기에 쓸 것 같은, 나도 ― 특히 《워커스》의 레인보우 코너에 ― 종종 써온 소재들. 건녀편 테이블이 종이를 잔뜩 쌓아 두고 앉은 이가 몇 번인가 휴대전화로 (이어폰 없이) (강의로 추정되는) 영상을 재생해서 한동안은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생협 매장과 동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귀가했다. 하루 반을 누워만 있느라 답하지 못한 업무 메일 하나에 늦은 답장을 썼다. 저녁은 누룽지탕. 누룽지탕용이 아닌 누룽지는 꽤 오래 국물에 잠겨 있고도 여전히 단단했다. 중간에 한 번 더 끓여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침실에 들어 왔다가 다시 나가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채소를 사면 가짓수만큼 스티로폼 접시와 비닐랩이 나온다. 오늘은 청경채와 파프리카와 표고버섯과 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샀다. 바나나도 샀다. 스티로폼 접시와 비닐랩을 쓰지 않고 포장된 것은 팽이버섯 뿐이었다. 비닐봉투에 들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업무메일에도 답장했다. 씻었다. 잘 것이다. 또 여섯 시에 잠들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