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9.(금)

또 늦게 잤으므로 또 늦게 일어났다. 두어 시쯤 먹은 점심은 김치만둣국. 먹고는 또 누웠다. 네 시쯤 다시 일어나 설거지를 하고 씻고 다섯 시쯤 집을 나섰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다. 제천에 와서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기로 하고 조금 걷다가 멈췄다. 귀갓길에 저녁거리를 사야 하니까 마트랑 가까운 곳으로 가자, 고 생각했다. 그 카페를 가더라도 마트에 들르기 크게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카페가 다른 곳들에 비해 멀다는 것도 같이 깨달아 버렸다.

자주 가는 옆동네 카페에 가기로 하고 방향을 틀었다. 이번에는 어차피 오래 앉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오래 있을 게 아니라면 작은 동네 카페에 가도 상관 없다. 그 생각을 한 것이 마침 어느 카페 앞이었으므로 그리로 들어갔다. 역시 처음 가보는 곳이다. 주로 목재를 써서 이를테면 아기자기하게 꾸며둔 곳이었다. 카페 이름에도 나무라는 말이 들어간다. 팀버나 우드는 아니고 트리지만. 목재 가구만 있는 게 아니라 나무를 심어둔 화분도 있지만. 나무로 만든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황정은의 『일기』(창비, 2021). 커피가 쌌다. 화장실 휴지통조차도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알듯말듯한 일들을 차분하게 쓴 ― 이상한 말이지만,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황정은의 글이다 ― 일기를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절반쯤 읽었는데, 코로나19와 산업재해와 아동의 권리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내 동료들이 일기에 쓸 것 같은, 나도 ― 특히 《워커스》의 레인보우 코너에 ― 종종 써온 소재들. 건녀편 테이블이 종이를 잔뜩 쌓아 두고 앉은 이가 몇 번인가 휴대전화로 (이어폰 없이) (강의로 추정되는) 영상을 재생해서 한동안은 음악을 들으며 읽었다.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가 생협 매장과 동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귀가했다. 하루 반을 누워만 있느라 답하지 못한 업무 메일 하나에 늦은 답장을 썼다. 저녁은 누룽지탕. 누룽지탕용이 아닌 누룽지는 꽤 오래 국물에 잠겨 있고도 여전히 단단했다. 중간에 한 번 더 끓여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침실에 들어 왔다가 다시 나가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정리했다. 채소를 사면 가짓수만큼 스티로폼 접시와 비닐랩이 나온다. 오늘은 청경채와 파프리카와 표고버섯과 새송이버섯과 팽이버섯을 샀다. 바나나도 샀다. 스티로폼 접시와 비닐랩을 쓰지 않고 포장된 것은 팽이버섯 뿐이었다. 비닐봉투에 들어 있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업무메일에도 답장했다. 씻었다. 잘 것이다. 또 여섯 시에 잠들지도 모르지만.

2021.10.28.(목)

언제쯤 잤을까, 늦게 일어났다. 여덟 시쯤 깨서는 창을 열어 찬 공기를 들이고 보일러를 끄고 진통제를 한 알 먹었다. 코가 막히고 열감이 있었는데, 보일러를 평소보다 높은 온도로 설정해 둔 탓인지 전날 백신을 맞은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환기를 시키고 기온을 낮춘 덕인지 진통제를 먹은 덕인지 점심께쯤 일어났을 무렵에는 괜찮아졌다. 삭신이 쑤셨지만 평소에도 종종 있는 일이다. 말하자면 어제보단 안 좋지만 그제랑은 비슷하다고 해도 좋을, 그런 정도의 컨디션.

점심은 처음 가는 식당에서 먹었다. 두부버섯전골. 두부와 버섯이 든 빨간 국물에 새우가 한 마리. 다른 재료도 있었던지는 가물가물하다. 양이 많았다. 밥을 한 그릇 추가하고도 끝내 남아서 크게 썬 두부 두 조각은 밥 없이 먹어야 했다. 다음에 또 간다면 남은 걸 담을 그릇을 챙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에 가서 책을 읽을 생각이었지만 곧장 귀가했다. 두고 나온 것이 있어 집에 들를까 어쩔까 하다 그냥 귀가하기로 해 버린 것이다. 집에서 책을 읽어도 좋았겠지만 잤다. 너댓 시쯤 한 번 깼을 때 진통제 한 알을 더 먹었다. 백신을 맞은 탓이었던 모양이다. 별 이유 없이 그제 같은 상태가 오후까지 이어지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흔하지도 않다.

한숨 더 자고 일어나 저녁은 집에서 토마토스파게티를 해먹었다. 그리고는 또 누웠겠지. 종일 자다시피 했고 깨어 있는 시간에는 대개 90년대 중반에 방영한 미국 시트콤을 봤다. 누워 있다보니 잠든 것 말고, 자기로 맘 먹고 누운 것은 자정을 좀 넘겨서였을 것이다. 잠든 것은 여섯 시가 지나서다. 바깥이 조금씩 밝아졌다. 새벽에는 배가 고파져 요거트를 조금 먹었다. 플레인요거트에 시럽을 조금 풀었다. 진통제도 한 알 더 먹었다. 긴 새벽에는 2010년대 중반에 방영한 ― 최근에 줄곧 틀어두고 있는 ― 미국 시트콤을 보다말다 했다.

2010.10.27.(수)

오전에 한 번쯤 깼을까, 정오가 지나 일어났다. 두 시에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이 예약돼 있었다. 처음엔 ― 1차 접종 6주 후로 일괄 배정 되었을 땐 ― 11월 6일이었고 다음엔 ― 일괄적으로 한 주 당겨졌을 땐 ― 10월 30일이었다. 일정이 애매해서 오늘로 바꿨다. 어제의 일이다.

점심은 시내 보리밥집에서 먹었다, 고 생각했는데 실은 생선구이집에서 먹었다. 보리밥집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내까진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으나 운행 현황 전광판에 아무것도 뜨지 않았으므로 그냥 걸어 갔다. 버스가 안 다니지야 않았겠지만.

덕분에 병원에는 늦었다. 그래도 가는 길엔 붕어빵을 하나 사 먹었다. 환자가 거의 없었고 접종은 금세 끝났다. 1차 때 아프진 없었냐길래 팔만 약간 아프고 말았다고 답했더니 타이레놀은 드셨죠? 하고 다시 물어 왔다. 그럴 만큼 아프지 않았다고 했더니 갸우뚱 하는 표정이 돌아왔다.

십오 분을 대기한 후 별일 없이 나왔다. 이십 분쯤 걸어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오며가며 본 적이 있지만 들어가 보긴 처음인 곳이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모두 낮은 자리에 앉았다. 보통은 하지 않는 선택이다. 대개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니까. 오늘은 집에서 챙겨 간 책을 읽었다.

유진목의 『거짓의 조금』(책읽는수요일, 2021).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책이다. 유진목의 시집은 몇 권 가지고 있다. 역시 선물 받은 것들이다. 읽은 것은 아직 몇 편 되지 않는다.

『거짓의 조금』은 대개 슬픔이나 우울이나 화나 분노에 관한 문장으로 읽혔다. 즐거운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즐겁게 읽었다. 유진목은 이렇게 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그중에서도 책을 읽다가 울었다는 부류다. 그들은 “오래 울었다”고 쓴다. 그냥 “울었다”고 쓰지 않는다. “울었다. 오래 울었다”고 쓴다. 그러한 반복에서 자신이 쓴 문장에 좀 더 슬픔의 ‘딥한’ 무게가 실린다고 여기는 듯하다. […]
그와 달리 “이 책 슬퍼 뒤짐”이라고 쓰는 부류가 있다. 나는 그런 부류를 좋아한다.

나는 대개 전자 같이 쓰지만 유진목의 문장은 좋았다. 후자처럼 쓰인 문장은 좋아하지만 자주 읽지는 않는다. 유진목의 문장이 후자 같지는 않았다.

다 읽고는 왔던 방향을 반쯤 거슬러 돌아가 장을 봤다. 요거트와 파스타 소스, 건전지와 세면대 배수관을 샀다. 저녁으로 먹을 초밥도 샀다.

건전지는 현관 센서등에 쓸 것이다. 지난번 집에 이사한 직후에 사서 두어 달 쓰고는 넣어둔 물건이다. 전선은 싱크대 후드 쪽에 연결했다. 현관에는 등이 없고 부엌등 스위치는 안쪽에 있어 불편했다. 생각보다 어둡고 생각보다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이걸 떼고 220V용 센서등을 사서 달았더랬다. 지금 집은 현관문 바로 옆에 거실등 스위치가 있지만 문을 덧댄 탓에 누르기가 불편하다. 그 앞에다 수납장을 세워 두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꺼내 보았다.

파스타 소스는 두 개짜리 묶음 상품을 할인하길래 그걸로 골랐다. 육류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설비에서 생산하지만 ― 적어도 표시성분 기준으로는 ― 육류가 들지 않은 토마토 소스다. 한 개짜리를 샀다면 괜한 상자 하나를 더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긴, 뜬금없게도, 사은품으로 ‘푸시팝’이 포함되어 있다. 실리콘제려니 했는데 “고분자 플라스틱”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자에는 8세 이상 사용가, 봉투에는 14세 이상 사용가로 표시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초밥을 먹었다. 먹은 것을 정리한 후 두어 시간 정도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오늘도 별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배수관을 집어들었다. 이사 온 지 세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허공에 물을 뿜는 채로 세면대를 쓰고 있었다. 오늘 산 것은 배수구에 닿을 만큼 긴 것이다.

배수구 앞이 막혀 있어 달기가 쉽지 않았다. 함참을 씨름하다 결국 칼을 꺼내 들었다. 문자 그대로 칼. 실리콘을 가르고 배수구를 가리고 있는 것 ― 이름 모를, 세면대를 받치고 있는 도기 ― 을 뜯어냈다. 그렇게 겨우 교체를 마쳤다. 배수관 끝은 긴 나사에 걸쳐 배수구에 고정해 두었다. 배수관을 꽂을 수 있는 배수구 덮개를 먼저 사려고 했는데 사이즈가 맞는 것을 찾지 못했다. 조만간 덮개에 구멍을 뚫을 생각이다. 모두 마친 후 이름 모를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 두었다. 며칠 써 본 후 문제가 없으면 ― 배수관이 물살을 이기지 못해 빠지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 다시 실리콘을 바를 것이다.

시트콤을 틀어두고 일기를 쓴다. 도중에 요거트에 씨리얼을 먹었다. 요거트는 남았는데 씨리얼이 다 떨어졌다. 취침 시각은 미정. 몸살기운 같은 건 (아직) 없다. 팔뚝은 1차 접종 때보단 조금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이름 모를 도기를 뜯다가 힘을 너무 줘서 어깨가 한동안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만.

2021.10.26.(화)

세 시쯤 누웠다. 다섯 시쯤 잠들었을까. 늦게 일어난 모양이다. 점심값은 오후 2시 2분에 결제했다. 메뉴는 보리밥이었다.

옆동네 카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곧 쓸 글에 참고할 짧은 글을 하나 읽었다. 발표문에 오자가 있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진 이라 들은 어느 분의 번역문이었는데 페이지당 0.3자 정도의 오자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괜히 아무 글이나 하나 잡고 번역을 시작했다. 나중에 읽으려고 북마크해 둔 글들 중 하나를 열었다가 너무 길길래 그 글이 실린 잡지의 최신호를 열어서 제목만 보곤 정했다.

저녁은 파스타집에서 먹었다. 몇 번 갔던, “육류를 싫어하시는 분을 위한” 버섯 위주의 메뉴가 몇 개 있는 곳이다. 크림소스를 쓴 것을 주문했다. 오렌지에이드 ― 기본 메뉴에 음료가 포함되어 있다 ― 를 곁들였다.

산책을 할까 하다가 곧장 귀가했다. 집에 와서는 번역을 조금 더 했을까. 밤에는 예능 프로를 하나 봤다. 자정이 지난 시각에 번역을 재개했다. 별로 재미가 없어 도중에 덮을까 하다 길지 않은 글이라 끝까지 봤는데 역시 재미가 없었다.

세 시쯤 누웠을까. 다섯 시가 좀 지나 잠들었다.

2021.10.24-25.(일-월)

2021.10.24.(일)

오전엔 잔 모양이다. 점심은 베트남 쌀국수 식당에서 먹었다. 양과자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집에서 일했다. 또 느리게 일해서, 저녁 때가 되어서야 송고했다.

저녁은 카레. 마늘을 다지고 양파와 버섯을 썰고 냉동 야채 믹스와 함께 볶았다. 생협 채식 카레 믹스를 썼는데 조금 부족했다. 스파게티용 토마토 소스를 넣으려 했는데 곰팡이가 (조금) 슬어 있었다. 방울토마토를 썰어 넣으려다 말고 언젠가 쓰고 얼려둔 레드커리 페이스트와 케첩을 넣었다.

방울토마토는 야식, 이 될 뻔했다. 그런데 여기도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어제나 그제쯤 냉장고를 제대로 안 닫았던 걸까. 대신 아이스크림을 먹었나. 양과자를 언제 먹었더라. 가물가물하다. 일찍 누웠다. 누운 시각에 비해선 늦게지만 요즘의 다른 날에 비해선 일찍, 두 시가 좀 못 돼 잠든 것 같다.

2021.10.25.(월)

낮에는 빨래를 했고 점심도 챙겨먹었지만 저녁 전까지는 주로 잤다.

점심은 짜장 라면. 집 앞 수퍼에 갔더니 세 가지가 있었다. 주로 먹는 ― 기본형쯤 되면서 짜장 소스가 액상 형태인 ― 것은 없었다. 매운 맛이 가미된 것을 제하고 나머지 둘 중에서 고르기로 했다. 하나는 유통기한이 지난 3월까지였다. 다른 하나는 8월까지. 돌아 나가려다 혹시나 하고 다시 봤는데 3월까지인 것 옆에 12월까지인 것이 끼어 있었다. 그걸 집어 들고 귀가했다. 저기 있는 것들 다 유통기한이 지났네요, 말하고 나오려다 말았다. 저번에 자세히 보지 않고 산 과자가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 상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도 아무 말도 않았다.

오늘 산 것은 짜장 가루가 들어 있다. 가루가 다 뭉쳐서 어디는 짜고 어디는 싱거운 것이 나왔다. 뭉친 걸 조금이라도 풀어보겠다고 한참 비비는 사이 면도 퍼져버렸다.[1]”붇다”는 뜻의 “퍼지다”가 방언일까 표준어일까 싶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표준어다. 생각해보니 “붇다”라는 말은 글로만 … (계속)

저녁은 곤드레밥집. 배불리 먹고 나와 양과자집에 들렀는데 정기휴일이었다. 가까운 길을 두고 비행장을 지나 귀가했다. 달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별은 많이 보였다. 한참을 누워 있다가 열한 시쯤부터 뉴스 브리핑쯤 되는 간단한 글을 썼다.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역시 같은 수퍼에서 지난주에 사둔 것이다. 이건 유통기한이 한참 남았다.

누울 것이다.

1 ”붇다”는 뜻의 “퍼지다”가 방언일까 표준어일까 싶어 사전을 찾아 보았다. 표준어다. 생각해보니 “붇다”라는 말은 글로만 봤지 실생활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서울말을 쓰는 이들도 “라면 불겠다”라고 하지 “라면 붇겠다”라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