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06.(수)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쓴다. 조금 전에 사 온 것이다. 네 캔 만 원, 을 잠깐 고민하다 삼천오백 원짜리 한 캔을 샀다. 네 캔을 사면 기약 없이 냉장고에서 자리만 차지할 테니까. 집을 나섰는데 먼발치서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술에 취해 혀가 굳은 듯한 중노년 남성들. 노래방을 가네 마네 하는 중이었다. 셋. 한 명은 지금 노래방에 갔다가 집에 가면 열두 신데 내일 할 일이 있으니 그냥 파하자고 했다. 한 명은 딱 한 시간만 놀다 가자며 택시를 부르면 된다고 했다. 한 명은 여자 부르지 마, 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다들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그가 제일 많이 반복했다.

택시를 부르면 된다는 사람은 아름답게 놀고 가자고도 몇 번 말했다. 한 시간 놀고 택시 타고 얼른 집에 가자, 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택시를 불러 노래방에 가자는 말이었다. 아름답게, 우리끼리 깔끔하게, 놀자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 역시 아니었다. 여자 부르지 마, 그건 아니지, 하는 말들은 모두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는 막무가내로 택시를 불렀다. 어디어디 편의점 앞으로 와달라고 했다. 그들이 선 곳은 아파트 후문. 편의점은 바로 옆 건물. 그 건물에는 노래방도 있다. 노래연습장. 그건 아니지, 한 사람이 저기 노래연습장 있잖아, 하니까 그는 연습은 안 되지, 했다.

맥주를 산 것은 독서를 위해서다. 독서를 시작하기 위해서. 낮에는 조금 읽었다. 우선은 집 앞 카페에 갔다. 이곳의 소소한 장점 하나는 카페가 거의 언제나 한산하다는 것. 오늘도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용하지도 않았다. 지난여름부터 얼마 전까지 대개 비어 있었던, 그래서 혼자서도 않고 둘이서도 앉았던 육인용 테이블에 요새는 종종 여섯이 앉아 있다. 거리두기정책이 완화된 후의 일이다. 원래는 구석에 있던 것을 가운데로 옮기기까지 해서, 그런 날이면 카페 어느자리에 앉든 소음에 방해를 받고 만다. 오늘도 그랬다.

조금이나마 더 집중해 보겠다고 전화기도 집에 두고 나간 터라 거의 허공만 보다시피 하며 조금 앉아 있다가 카페를 나왔다. 집을 지나 건너편 저수지를 향했다. 물가 벤치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면서 읽었다. 가는 길에는 제천에서의 첫 뱀을 만났다. 뭔가 꿈틀거리길래 커다란 지렁이인가 했는데 작은 뱀이었다. 고왔지만 금세 도망쳐버려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벤치에는 흙먼지가 쌓여 있었다. 새똥의 흔적도 있었다. 개의치 않고 누웠다, 고 쓰고 싶지만 그런 성정은 못 되어서, 그나마 제일 말끔한 것을 고르고 맨살이 닿는 ―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으므로 ― 곳엔 가방을 깔았다. 마침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뜻하지 않게 일광욕을 했다. 하필 그곳이 볕이 제일 잘 드는 곳이어서 종종 맨눈으로 햇살을 받았다.

오래지 않아 책을 덮었다. 물수제비를 뜨려 했는데 납작한 돌을 찾을 수 없었다. 납작한 게 아니더라도 돌을 전혀 찾지 못했다. 나름대로 산책로로 정비해 둔 곳이라 보도블록과 고운 흙과 마른 풀만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괜히 물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는 물에 던져 넣었다. 마르면서 둘둘 말린 나무껍질 하나도 주워 물에 던져 넣었다. 다시 누워 책을 읽기 시작하자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잡은 데만 빼고 책장이 계속 넘어갔다. 슬슬 화장실도 가고 싶어져서 미련 없이 귀가했다.

그리고는 뭘 했더라. 책을 읽지는 못했다. 달리 무언가를 한 건 아니니까 카페에서와 비슷했을 것이다. 정신을 차리려 산책을 나가 한참을 걸었다. 마침 가볍게 장도 봐야 해서 논밭으로 가지 않고 인가 사이로 난 크고 작은 길을 걸었다. 지나간 적은 있으나 어디인지는 잘 모르는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5분 전쯤 지난 곳을 또 지났을 때, 그러니까 길을 잃었을 때, 전화기를 꺼내 길을 확인했다. 곧장 집을 향했다.

오는 길에는 최근에는 잘 안 다닌 길 하나를 지났다. 몇 달째 비어 있은 ― 정확히는 마른 풀 같은 것들로 덮여 있었던 ― 곳에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모양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사유지 경작 금지 표지판은 뽑혀서 옆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인구가 늘 동네는 아닌 것 같은데 아파트는 계속 생긴다. 이곳은 아주 크지는 않다. 560세대쯤. 아주 크지는 않다, 는 건 서울에서 본 광고들에 비교해서이므로 실은 여기 기준으로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아파트 단지 몇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학교가 있었던가, 학원은 많이 있다. 이 아파트 이름인지 슬로건인지에는 에듀 어쩌고 하는 말이 들어가 있었다.

돌아와서는 배가 고파져 밥을 해 먹었다. 최근에는 냄비밥을 해 먹는다. 전기레인지는 화력을 조절해도 식거나 달아오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다소 성가시다. 점심에는 조금 설익은 밥을 먹었다. 이번에는 잘 됐다. 밥을 먹고도 책을 펼 기미가 보이지 않아 편의점에 다녀왔다. 맥주는 마시기 시작했지만 책은 아직이다. 오랜만에 맥주를 마시며, 늘 그렇듯 할 일을 미루며,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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