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인지 된장인지

이번 일로 그에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국가가 되었으면 한다는 발언(그나마도 나중에 수위 조절을 하려 애썼던 그 발언)으로 그를 약간은 다시 본 적이 있긴 하지만, 그가 서울 곳곳의 농성장과 노점들에 어떤 짓을 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게 무언가 크게 기대한 적도 없고, 애초에 그와 나는 속한 선거구가 달랐으므로 투표용지를 들고 고민한 적도 … [읽기]

오늘 주운 쪽지

지하철 역을 걷다가 곱게 접힌 쪽지 하나를 주웠다. 여러 사람에게 밟힌 듯, 이미 얼룩덜룩해져 있었다. 어떤 편지일까 궁금해 하며 쪽지를 펼쳤다. 1. 설렁탕 2. 삶은 달걀 3. 아다다라고     말해서      2014        11        14 라고 적혀 있었다. 잠깐 생각하고야 알았다. 『운수 좋은 날』과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와 『백치 아다다』에 관한 것임을 … [읽기]

글을 잘 쓰고 싶다

오랜만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그 전에는 일상적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고, 시답잖은 글짓기 대회들에서는 종종 상을 받았으므로, 그런 생각을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지금과 똑같이, 노력 없이 떠오르는 글들을 적어 대기 시작했던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 [읽기]

충정로역

충정로 역 근처를 걸어서 지났다. 며칠 전에도 신호등이 있는 것을 못 보고 무단횡단을 했던 바로 그 횡단보도를, 이번에도 적색등이 켜진 중에 발을 디뎠다가 거두고, 겨우 지나 또 한 번의 신호를 기다렸다 길을 건넌 참이었다. 큰 횡단보도를 지나, 작은 횡단보도를 앞둔, 차도 위의 섬을 밟은 참이었다. 누군가 길을 쓸고 있었다. 허름한 차림, 빗자루를 들고 있었지만 쓰레받이는 … [읽기]

그의 국밥값

어느 노인이, 자신의 장례식을 치를 이들을 위한 국밥값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다. 면식이 있기는커녕 빈소의 위치를 알아내기도 어려울, 기사를 통해서만 접한 사람이었지만 조문을 하고 싶었다. 평소라면 먹지 않는 육개장과 편육, 그런 것이라도 자리를 차지하고 꾸역꾸역 씹어 삼키고 싶었다. 이튿날이었다. 그가 남긴 돈이 십만 원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장례식에 찾아올 사람들을 ― 그런 이가 있는지조차 알지 …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