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박수밖에는 없었다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에 다녀왔다. 스스로를 피해자, 혹은 생존자라고 부르는 몇 명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영상을 상영하고, 연극을 상연했다. 누군가가 나오고 들어갈 때, 하나의 이야기나 노래가 끝날 때, 그 때마다 관객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다. 멋져요, 하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티나지 않게 박수는 쳤지만, 그 이상은 하지 못했다. 집회에서 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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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밍이 안 좋았다

  국회 앞에서 농성중인 여성농민회를 찾아 가는 길이었다. 취재하러 가는 것이었지만, 오전 일정이 언제 끝날지 감이 오지 않아서 따로 약속은 잡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사무실에 가는 길이라, 혹시나 취재를 못 하게 된다 해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여의도 역을 지나 여의도 공원에 가까워지자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투쟁가의 가락이었다. 공원 앞에는 전국 단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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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콕

  페달을 밟아서는 넘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긴 오르막, 뿌옇게 보이는 언덕 너머 하늘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끌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평지에서 시작한 완만한 경사가 끝나고 언덕이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즈음에서 하얀 물체 하나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셔틀콕이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차로 가득한 차로와 맞닿은, 버스 정류장에서 누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걸까. 신기했다. 사람들 사이를 걸어 그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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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지 말아야지.

사무실에 가는 길에 누가 말을 걸더라. "학생, 혹시 전화 한 통만 쓸 수 있어요? 핸드폰 좀 빌려 줘요." "죄송한데, 지금 배터리가 다 돼서요." "아, 네." 그리고 잠시 후. "저기 앞에 경찰서 가시면 아마 전화 쓰실 수 있을 거예요." "저런 데 가기가 어디 쉽나, 여자가, 이 친구야." 그 사람은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이 착찹했다. 언젠가 나의 전화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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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달구지

  집시 달구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은 아니다. 시詩에 대해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달구지에 시를 모으는 집시, 내 머릿속에는 책이 가득 실린 수레 앞에서 즐거이 웃고 있는 한 사람의 집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랑하며, 음악을 즐기며, 자유롭고 즐겁게. 나의 이름이 집시였기를, 나는 바랐다.   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