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역

모니터 너머에서나 보던 일을―영화는 잘 보지 않고 티브이는 없으므로― 실제로 대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모니터 너머에, 그러니까 모니터와 연결된 내 방 바깥의 세상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만 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마음 한 켠에 묻어 두고 넘겨 온 그런 일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림역을 지나고 있었다. 환락의 거리, 유흥가라 불리는 그곳. 누군가는 돈 몇 푼으로 그 유흥을 사고, 누군가는 돈 몇 푼에 그 유흥을, 자신의 행복을 팔고. 또 누군가는 아무런 수고 없이 남의 유흥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고 있을 그 골목.
승합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여자 한 명이 내렸다. 추워 보이는 짧은 치마와 공들인 화장.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보도방’이었다. ‘도우미’니, ‘아가씨’니 하는 말들을 대문짝 만하게 써 놓은 간판을 달고 있는 술집이야 수없이 보지만, 이름표를 달고 있지 않은 보도방은 본 적이, 혹은 눈치 챈 적이 없었다.
아니겠지, 하고 지나가려는데 승합차에서 내린 그 사람은 바로 앞에 있는 승용차로 다가갔다. 골목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서 있던 그 차에는 남자 하나가 타고 있었다. 왼쪽을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그가 타고 있는 승용차에 다가간 짧은 치마의 여자는 문조차 두드리지 못하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앳된 것인지, 앳되 보이게 화장을 한 것인지. 어려보이는 그녀는 잠시지만 추위에 떨었다. 담배를 다 피운 남자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다 그를 발견하고, 문을 열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1초, 길어야 2초 쯤.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스쳐가며 본 광경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흘러 갔다. 승합차에서 내린 그녀가 승용차에 올라타는 모습, 승용차가 어딘가를 향해 출발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채 자전거는 달렸다.
몇 년 전 마산에 갔을 때, ‘쌍라이트’를 처음으로 보았다. 회전봉 두 개가 돌고 있으면 성매매 업소라고 했다. 그 이후 어디에서나 그 두개의 기둥이 보인다.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으나 나의 세계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 그 일들은 한 번의 발견이면 너무도 쉽게 내 세계에 들어왔다.
어디서 또 보게 될까.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나쳐야 할까. 지나쳐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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