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쓴 어제 일기 말미에 적은 데서 딱히 나아가지 못했다. 카페에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진도가 더뎠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일어나 식당으로 갔다. 콩국수.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하라, 고 스스로를 보채 보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도 밥은 먹어야 하는 법이다. 집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지만 역시 진도가 더뎠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저녁으로는 카레를 해 먹었다. 채식을 하므로 시판 소스나 가루는 대개 쓰지 못한다. 순강황분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카레 치고는 거창해 보이지만 미리 썰어 얼려 둔 재료를 한데 붓고 볶다가 강황가루를 넣고 또 볶다가 ― 생토마토를 익히는 귀찮은 일은 할 위인이 못 되므로 ― 케첩을 넣고 볶는다. 오늘은 얼마 전에 먹고 남은 시판 로제 소스도 섞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었다. 강황을 더 넣었다. 전분 푼 물을 넣고 끓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제 소스 병에 전분과 물을 넣고 흔들어 한 번에 부었다.)
그 통에 1.5인분쯤이 나왔다. 반만 덜어 즉섭밥에 얹어 먹었다. (역시 정확히 말하자면 그릇에 카레부터 넣고 그 위에 밥을 얹었다.) 재료를 익히며 강황을 찾고 전분을 찾았던 것처럼, 잠시 이삿짐을 뒤져 가위를 찾았다. 김치를 썰었다. 책상에 앉아서 먹었다. 또 설거지는 미룬다. 그릇에 물만 부어 두었다.
또 빨래를 돌려 놓고, 나가서 걸었다. 40분 정도. 그간 다닌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갔다. 논밭으로 둘러싸인 비슷한 풍경이지만 도로나 아파트와 훨씬 가까운 구간만 걸었다. 오늘도 노을과 구름을 몇 장 찍었다. 오는 길에는 마트에 들러 음료수와 복숭아와 감자를 샀다. 감자는 두 알에 2400원 정도 했다. 무게로 따지면 세 배쯤 되는, 보다 작은 감자를 담아둔 것이 2000원이었다. 제때 다 먹지 못할 것이 뻔하므로 알이 굵고 비싼 것을 조금만 샀다.
들어와 빨래를 널고 음료수와 복숭아와 감자를 냉장고에 넣고 씻었다. 자리에 앉았다. 오늘 마감인 원고가 있으므로 나머지 번역은 내일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