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21.(수)

밤 열 시 반이지만 일과가 끝나지 않았다. 되는 데까지 일을 하다 잘 것이다. 일기를 먼저 쓰는 건 소소한 일탈이다.

오전엔 어김 없이 뒹굴과 노닥. 마트 사은품 라면과 정체 모를 즉석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앉았다. 번역 중인 책의 재판에 후기가 추가되었음을 며칠 전에야 알게 되어 급히 원고를 받았는데, 근거 없이 대여섯 페이지 쯤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에누리 없이 한 챕터 분량이었다. 다른 일을 미루고 번역을 시작했다. 속도는 평이하다. 평이한 속도로 하면 일정이 빠듯해진다. 그나마도 친구와 시간을 정해 놓고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어떻게든 애쓴 덕에 나온 속도일 텐데.

배가 고파져서 조금 일찍 일어나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냉모밀. 모밀이 아니라 메밀, 이라고 배웠고 대개 그렇게 쓰지만 냉메밀은 어째선지 입에도 손에도 안 붙는다. 면은 잘 씹지 않으므로 식사는 5분만에 끝났다. 시계를 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기분상으론 음식이 나오기까지 20분 가량 걸린 것 같다. 그 사이 두 세 건의 배달이 나갔다.

집에 오는 길에는 ― 지나치는 바람에 조금 되돌아 가서 ― 약국에서 소독용 알코올을 샀다. 책꽂이를 닦는 데에 쓸 것이다. 번역을 마친 후에야 짐 정리를 재개할 테니 급하지는 않지만 생각난 김에 사 두기로 했다.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대용량, 1리터짜리 병을 샀다. 책꽂이 청소에 이만큼이 필요할 리는 만무하지만 어디에 써도 쓰겠지. 지난 번엔 200밀리리터짜리를 샀고 반년 쯤 쓴 것 같다.

집에 오자마자 책상에 앉아 일을 재개, 하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파일을 찾아 오래 된 하드디스크들을 뒤졌다. 여남은 개가 있는데 절반쯤을 컴퓨터에 꽂아 확인했지만 파일은 찾지 못했다. 나머지 절반쯤은 구형이라 젠더를 써야 연결할 수 있다. 젠더가 어딨는지는 물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 중 하나엔 그 파일이 들어 있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여간해선 지우지 않는 종류의 파일이지만 하드디스크 용량이 충분치 않았던 시기에 받은 대용량 파일이므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꽤 한참을 날린 후 번역을 시작했다. 평이한 속도에 조금 못 미치는 속도로 하고 있다.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사러 나가려다 물러가고 있는 바나나가 생각나 믹서를 꺼냈다. 서울에선 주로 1/3손, 많아야 반 손짜리를 샀더랬는데 여기서 처음 산 바나나는 한 손짜리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껍질이 검어졌고 속도 조금씩 무르기 시작했다. 짐에 파묻혀 있던 믹서를 씻어 바나나 여섯 개를 까 넣고 돌렸다. 물을 좀 섞을 생각이었지만 물이 없어 그냥 걸쭉한 채로 천천히 마셨다. 물을 사려면 어차피 한 번은 나갔다 와야 한다.

오늘은 산책은 생략. 새벽까지 일할 것이다. 한 시도 새벽이고 여섯 시도 새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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