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반장’이 되고 싶었던 그

   그의 장래 희망 중 하나는 ‘홍반장’이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는 홍반장 말이다.(영화는 보지
않았으니, 그냥 카피 문구만 생각하자.) 그는 돈 잘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속한 단체나 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도 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면 언제든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도움이래 봐야 거창한 것도 아니다. 짐을 들어 주거나 못을 박아주고, 운전을 해 주거나 사람을 부축해 주는 일. 그런 소박한 도움들을 주며
살고 싶다고 그는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후배들의 이사 소식에 없는 차를 빌려 가서 짐을 날라다 주었고, 멀리서 부음이라고 있으면 또
밤새 차를 몰았다. 농활을 가서 낫에 손가락을 베이고도 남은 한 손으로 꾸역꾸역 일을 했고, 언제 어디서나 남의 짐을 나누어 들었다. 단체의
대표를 맡았을 때도, 혹은 무슨 무슨 국장 쯤 되는 자리를 맡았을 때도, 체면 치레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알고 지낸 지 6년
만에, 그를 감옥으로 보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는, 사회복무제 같은 것이 있었더라면 오히려 즐거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남을 도우기만 해도 되는 일상, 돈 걱정 잠자리
걱정 없이 그저 남을 위해 일하기만 하면 되는 그런 일상이 주어졌더라면 고마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끝내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해가 났을 때나 폭설이 내렸을 때, 남을 도울 기회가 생기겠지만, 그보다는 남을 부리거나 남에게 부림받는 훈련 혹은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해야 하는 군대가 그를 불렀기 때문이다.

   병역 거부, 결국 그는 그런 결정을 내렸다. 감옥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이미 몇 명의 병역 거부자들이 그런 일이 없을
것임을 몸으로 확인했지만, 양심의 가치를 아는 어느 판사가 나타나 무죄 판결을 내려 주기를 나는 여전히 기대하고 있다―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아마 머지 않아 감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도 서글서글 웃으며 방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병역 거부, 남을 도우며 바르고 착하게 살고 싶다는 그의 꿈은 어처구니 없게도 그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어쩌면 다행일는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꿈을, 자신의 양심을 접고 군대에 갔더라면 그는 ‘모범적인’ 군인으로 살았을 것이다. 동료
병사들에게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싫은 명령에도 잘 복종했을 것이고, 동료 병사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에 병을 얻고, 마침내는 양심을 거스른 죄의식까지 안고서 제대해 친구들의 곁으로 돌아오게 되었더라면, 그것이 더
슬펐을는지도 모른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병역 거부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도 평소처럼 씩씩하게 말하며 선하게 웃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도,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며 숙연해 진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군대 대신 감옥을 택한 그가 감옥에서 겪을 또 다른 군사주의의 문화, 그러니까
위계질서라든가 폭력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나는 걱정되지만 그래도 슬프지는 않다. 그가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감 생활의 끝에 다시 친구들의 곁으로 돌아 온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밝고 우직하게 살아 갈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의 병역거부 소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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