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자전거

  처음으로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 도로에는 그늘조차 없었지만, 강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는 나쁘지 않았다. 강가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었고, 벤치에 앉아서 쉬는 사람도 있었고, 낚시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강물 속에는 아마도 몇 가지의 물고기와 벌레들, 그리고 어쩌면 거북이나 자라 따위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자전거를 탄 사람과 부딪히지 않는 한, 어느 낚시꾼의 미끼에 걸리지 않는 한, 아마도 그들 모두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께 저녁부터 내린 비 때문에 강남역에 두고 온 자전거를 찾아서 사무실로 가는 길이었다. 강남 역에서 차도를 타고 반포 한강 공원으로 들어 간 후 강변을 따라 여의도까지를 달렸다. 여의도에서 다시 차도를 타고 서강대교를 건너 광흥창의 사무실까지 오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거리의 차도를 달릴 때에 비하면 거의 절반 가까이 단축된 셈이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나는 수많은 자전거들과 마주쳤다.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가는 방향의 자전거 도로에는 그야말로 수많은 자전거들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헬맛과 고글, 그리고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온몸을 뒤덮는 타이즈를 껴 입고 있었다. 몇 몇의 무리들이 지나갔지만, 각각의 무리들은 모두 똑같은 옷들을 맞추어 입고 있었다.
  수십만원 어치의 옷에 또 수십만원, 혹은 수백만원 짜리의 자전거를 갖춘 기백만원의 사람들 뒤로 덤프트럭이 따라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혹은 한강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변 개발 공사를 위한 차량들은 차도가 없는 그곳을 자전거 도로를 타고 들어왔다. 클락션 한 번 누르지 못하고 깜빡이를 켠채 자전거 뒤를 따르는 덤프트럭들에게서 흔히들 생각하는 ‘도로의 무법자’ 이미지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상부’의 지침일 것이다.운전자들 모두가 그곳이 자전거 도로임을 감안해 서행하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건설업체, 혹은 서울시에서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당부했을 것이다. 어쩌면 크락션 한 번에 몇 만원 하는 식으로 페널티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덤프트럭들은 처량하리만치 천천히 달렸다.
  평일 대낮, 남들처럼 일하는 대신 한강변을 달리며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곁에는 그들이 편히 달릴 도로를 닦는 인부들이 있었다. 그늘조차 없는 길가에서 웃통을 벗어 던진채 땀에 젖은 몸으로 삽질을 하고 시멘트를 나르는 인부들이 있었다. 그들의 한 달 수입 정도는 가볍게 뛰어 넘을 가격의 자전거들 수십대가 줄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그들이 뒤에서 치어다 보고 있었다.
  가끔씩 나와 같은 방향으로 타이즈 입은 사람이 자전거를 탈 때면 나는 미친듯이 페달을 밟았다. 무릎과 종아리가 아려왔지만, 타이즈를 뚫고 드러나는 살진 엉덩이를 지켜 보며 강변을 달리고 싶지는 않았다.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갖고 있는 경쟁심 따위는 그들에게 없는 걸까, 그들 중 누구도 다시 나를 따라잡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비싼 자전거를 탄 이들 중 몇 명 쯤은 밤새 일하고 새벽에 조각잠을 잔 뒤 건강을 위해 강변을 달리는 이들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은 이라 할지라도, 또 다른 몇몇은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고 말년에 와서야 겨우 자전거를 타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쩌면’일 뿐이다.
  강변을 달리는 것은 그 ‘어쩌면’이 아니라, 눈 앞에 실재하는 기백만원의 자전거들이다. 덤프트럭의 앞을 달리는 것도, 인부들의 옆을 달리는 것도 모두가 그들이다. 나 역시, 마주한 덤프트럭 기사의 눈에, 스쳐 지나간 인부의 눈에 똑같이 비쳤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나도 그저, 여유로이 강변을 달리는 한가한 사람일 뿐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달려본 강변은 너무도 힘들었다. 가파른 오르막도, 질주하는 자동차도 없었지만 강변의 자전거 도로는 전혀 수월하지 않았다. 여유로이 달릴 수 있는 공간조차 내게는 아니었다. 아빠와 세 아이가 나란히 자전거를 타던 어느 가족, 짐을 실은 허름한 자전거를 타던 어느 노인―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그 길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집을 나서면서, 실수로 헬멧을 두고 온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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