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너머의 익숙한 고민들 ― 영화 〈24주〉와 〈가타카〉가 던지는 재/생산에 관한 질문들

들어가며
가끔 쳇바퀴를 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에서 현행법상 낙태는 불법이므로, 낙태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공식적인 담론의 장에 진입하지 못한다. 낙태에 관한 공식적인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므로,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법을개정하는 논의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 낙태가 죄로 남아 있기에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고, 담론이 형성되지 못하므로 낙태는 죄로 남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낙태죄 폐지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요즘의 분위기는 고무적인 일이다.지난해 폴란드의 시위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에서도 열린 “검은 시위” 등이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끎으로써 공식적인 담론이라 할 만한 것이 형성되어 가고 있는 시기를 우리는 맞고 있다.검은 시위의 주요 구호 중 하나는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말이었다. 여성의 신체적, 성적 자기결정권을강조하는 이 말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일견 이론의 여지 없이 명백해 보이는 이말은 어쩌면 위험을 안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해묵은, 그리고 허구적인 양자 대립 구도를 반복할 위험 ― 다시 말하자면 임신과 출산 혹은 낙태 (그리고 양육) 과정에 수반되는 수많은 요소들을 간과하게만들 위험 말이다.물론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는 일시적인 전략일 뿐일 수도 있다. 임신 및 그 이후의 과정들을 둘러싼 다양한 요소들을 논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일 수도 있다. 아니, 그 이후에야 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의 자기결정권만을 생각할 때에도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는 시작일 뿐 궁극적인 목표일 수 없다 ― 법 개정 이후에도여전히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드는 사회와 싸워야 할 것이므로 ― 는 점에서 그 고민들을 마냥 미루어 둘 수는 없을것이다. 나는 믿는다.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없다면 그것을 쟁취할 수조차 없다.특별히 새로운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제목에 쓴 대로 그것은 “익숙한 고민들”이다. 다만, 최소한의 자기결정권마저 보장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고민의 뒤켠으로 밀려나 있는, 그래서 종종 잊혀지곤 하는,그런 고민이다. 영영 잊혀져서는 안 될 것이기에 간단히나마 기록해 두려는 것이 이 글의 작은 목표다. 추상적인 고민은 어려운 것이므로, 누군가가 상상한 어떤 ‘미래들’을 고민의 단초로 삼으려 한다. 영화 〈24주〉와 〈가타카〉가 그리는 미래들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들을, 조금이나마 ― 대개는 장애에 관해 ― 살펴 보려한다.

[후략]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 2017년 상반기 특강 “영화로 얘기해보는 ‘낙태죄’ 폐지와 재/생산 정치”에서 했(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정리한 것이다.
  • 전문: https://www.dropbox.com/s/lrapyzt74cgaa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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