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지고 돌아왔다

몇 번인가, 매주 촛불집회에 나갔다. 오랜 시간을 있지는 않았다. 모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연만 보고 발언만 듣는 집회는 익숙하지 않다. 그런 집회엔 안 간지 꽤 되었지만, 내게 익숙한 집회는 조직된 사람들이 함께 작전을 짜서 움직이는 집회다. 그 작전이란 때론 경찰 저지선을 뚫고 어딘가를 점거하는 것이고 때론 행인들을 상대로 유인물을 돌리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것도, 직접적으로 위협하기 위한 것도 아닌 집회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 많다는 건 역시 위협이 되는 모양이다. 경찰과 충돌하지도 통제선을 넘지도 않는 백만 명이 위협이 되었던 모양이다 — 물론 그 와중에 피를 흘리며 싸운 전봉준투쟁단 같은 이들도 있었지만. 그 위협에, 국회가 움직였다. 박근혜가 탄핵소추되었다. 직무가 정지되었고, 이제 헌법재판소에서 무언가 판단을 내릴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국민이 승리했다고.
백남기 씨는 결국 운명했고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는 광화문 앞을 밟지 못했지만, 새벽의 광화문에서 또 누군가 무력진압을 당했지만, 광화문에서 열린 혹은 서울을 제외한 각 지역에서 함께 열린 집회들만을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크게 무언가를 잃지는 않았다 — 많은 이들이 체력과 시간과 돈을 썼지만, 그걸 ‘잃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잃지 않고 무언가 얻어 보기는 오랜만이다. 아니, 어쩌면 처음이다.
그럼에도 이겼다는, 승리했다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이 모여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국회의, 혹은 대통령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드디어 그 결단을 끌어냈지만,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이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여전히 모든 것이 간접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의민주제라는 체제 하에서 이는 물론 자연스러운 일이다. 민주제라는 형식을 깨지 않는 한, 백만이 아니라 천만이 모여도 청와대에 들어가 박근혜를 거리로 끌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직접민주제를 채택하지 않는 한, 국회의 결단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기분이 찝찝한 것은, 지금의 대의민주제가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소환이 불가능하다는 점, 이것만으로도 지금의 대의민주제 하에서는 언제든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또 한 명의 대통령이 비리를 저질렀을 때, 국민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국회를, 그 때에도 보수적일 국회를 압박하는 것 뿐일 테니 말이다. 그것을 바꾸지 않는 한, 이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또 있다. <수취인분명>이라는 노래로 여성혐오를 표출했던 DJ doc는 결국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메인 무대가 아니라고는 해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모 단체가 주관하는 무대인 모양이다.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허점투성이, 아니 거짓말투성이 민주주의는 여전히 굳건하다.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이겼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국민이 승리했다고. 국민의 명령을 국회가 받든 것이라고. 반만 사실이다. 정권이 말하는 국민에 노동자가 없었듯, 지금 승리를 만끽하는 이들이 말하는 국민에는 여성이, 성소수자가, 청소년이, 없다. 절반의 국민만이, 혹은 그보다 적은 국민만이 승리했다. 국민에 끼지 못한 이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누군가가 시민대표자회의 같은 것을 추진하는 모양이다. 거론되는 대표자들은 하나 같이 ‘중진’이다. 정말로 중년 남성인 경우가 많고, 그렇지는 않더라도 학벌이든 무엇이든 든든한 것 하나쯤은 가진 이들이 더러 있다. 그 든든한 무언가가 지금껏의 활동으로 쌓은 지지도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그저 다른 무언가로 명성을 가진, 이 일에 관해서는 해낸 바 없는 이들이다.
그런 식으로, 가진 것 없는 이들, 힘 없는 이들은 또 한 번 밀려난다. 그래서 나는, 승리를 즐길 수가 없다. 늘 이런 식으로 씁쓸하게 무언가를 마무리하고 싶진 않지만, 씁쓸한 맛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겼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 게으르게나마 무엇이라도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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