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7.(수)

오전에 한 번쯤 깼을까, 정오가 지나 일어났다. 두 시에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이 예약돼 있었다. 처음엔 ― 1차 접종 6주 후로 일괄 배정 되었을 땐 ― 11월 6일이었고 다음엔 ― 일괄적으로 한 주 당겨졌을 땐 ― 10월 30일이었다. 일정이 애매해서 오늘로 바꿨다. 어제의 일이다.

점심은 시내 보리밥집에서 먹었다, 고 생각했는데 실은 생선구이집에서 먹었다. 보리밥집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시내까진 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었으나 운행 현황 전광판에 아무것도 뜨지 않았으므로 그냥 걸어 갔다. 버스가 안 다니지야 않았겠지만.

덕분에 병원에는 늦었다. 그래도 가는 길엔 붕어빵을 하나 사 먹었다. 환자가 거의 없었고 접종은 금세 끝났다. 1차 때 아프진 없었냐길래 팔만 약간 아프고 말았다고 답했더니 타이레놀은 드셨죠? 하고 다시 물어 왔다. 그럴 만큼 아프지 않았다고 했더니 갸우뚱 하는 표정이 돌아왔다.

십오 분을 대기한 후 별일 없이 나왔다. 이십 분쯤 걸어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 오며가며 본 적이 있지만 들어가 보긴 처음인 곳이었다. 의자와 테이블이 모두 낮은 자리에 앉았다. 보통은 하지 않는 선택이다. 대개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니까. 오늘은 집에서 챙겨 간 책을 읽었다.

유진목의 『거짓의 조금』(책읽는수요일, 2021). 얼마 전에 선물 받은 책이다. 유진목의 시집은 몇 권 가지고 있다. 역시 선물 받은 것들이다. 읽은 것은 아직 몇 편 되지 않는다.

『거짓의 조금』은 대개 슬픔이나 우울이나 화나 분노에 관한 문장으로 읽혔다. 즐거운 이야기들은 아니었지만 즐겁게 읽었다. 유진목은 이렇게 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는 그중에서도 책을 읽다가 울었다는 부류다. 그들은 “오래 울었다”고 쓴다. 그냥 “울었다”고 쓰지 않는다. “울었다. 오래 울었다”고 쓴다. 그러한 반복에서 자신이 쓴 문장에 좀 더 슬픔의 ‘딥한’ 무게가 실린다고 여기는 듯하다. […]
그와 달리 “이 책 슬퍼 뒤짐”이라고 쓰는 부류가 있다. 나는 그런 부류를 좋아한다.

나는 대개 전자 같이 쓰지만 유진목의 문장은 좋았다. 후자처럼 쓰인 문장은 좋아하지만 자주 읽지는 않는다. 유진목의 문장이 후자 같지는 않았다.

다 읽고는 왔던 방향을 반쯤 거슬러 돌아가 장을 봤다. 요거트와 파스타 소스, 건전지와 세면대 배수관을 샀다. 저녁으로 먹을 초밥도 샀다.

건전지는 현관 센서등에 쓸 것이다. 지난번 집에 이사한 직후에 사서 두어 달 쓰고는 넣어둔 물건이다. 전선은 싱크대 후드 쪽에 연결했다. 현관에는 등이 없고 부엌등 스위치는 안쪽에 있어 불편했다. 생각보다 어둡고 생각보다 배터리가 빨리 닳아서 이걸 떼고 220V용 센서등을 사서 달았더랬다. 지금 집은 현관문 바로 옆에 거실등 스위치가 있지만 문을 덧댄 탓에 누르기가 불편하다. 그 앞에다 수납장을 세워 두었기에 더더욱. 그래서 꺼내 보았다.

파스타 소스는 두 개짜리 묶음 상품을 할인하길래 그걸로 골랐다. 육류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설비에서 생산하지만 ― 적어도 표시성분 기준으로는 ― 육류가 들지 않은 토마토 소스다. 한 개짜리를 샀다면 괜한 상자 하나를 더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여긴, 뜬금없게도, 사은품으로 ‘푸시팝’이 포함되어 있다. 실리콘제려니 했는데 “고분자 플라스틱”이라고 적혀 있었다. 상자에는 8세 이상 사용가, 봉투에는 14세 이상 사용가로 표시되어 있다.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초밥을 먹었다. 먹은 것을 정리한 후 두어 시간 정도 화상회의에 참석했다. 오늘도 별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배수관을 집어들었다. 이사 온 지 세 달이 넘었지만 여전히 허공에 물을 뿜는 채로 세면대를 쓰고 있었다. 오늘 산 것은 배수구에 닿을 만큼 긴 것이다.

배수구 앞이 막혀 있어 달기가 쉽지 않았다. 함참을 씨름하다 결국 칼을 꺼내 들었다. 문자 그대로 칼. 실리콘을 가르고 배수구를 가리고 있는 것 ― 이름 모를, 세면대를 받치고 있는 도기 ― 을 뜯어냈다. 그렇게 겨우 교체를 마쳤다. 배수관 끝은 긴 나사에 걸쳐 배수구에 고정해 두었다. 배수관을 꽂을 수 있는 배수구 덮개를 먼저 사려고 했는데 사이즈가 맞는 것을 찾지 못했다. 조만간 덮개에 구멍을 뚫을 생각이다. 모두 마친 후 이름 모를 그것을 제자리에 돌려 두었다. 며칠 써 본 후 문제가 없으면 ― 배수관이 물살을 이기지 못해 빠지는 일이 생기지 않으면 ― 다시 실리콘을 바를 것이다.

시트콤을 틀어두고 일기를 쓴다. 도중에 요거트에 씨리얼을 먹었다. 요거트는 남았는데 씨리얼이 다 떨어졌다. 취침 시각은 미정. 몸살기운 같은 건 (아직) 없다. 팔뚝은 1차 접종 때보단 조금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이름 모를 도기를 뜯다가 힘을 너무 줘서 어깨가 한동안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다. 내일은 어떨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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