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5.(금)

잠깐 편의점만 다녀오고 꼭 시작해야지, 라고 썼지만 이십 분을 딴짓하다 겨우 일어섰다. 다행히 그러고 나서는 큰 지체 없이 일을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한 후에는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내일은 집을 비울 것이므로, 그제 생각없이 사버린 대용량 샐러드팩을 늦지 않게 먹어야 했다. 역시 오래 가지 못할, 조금 남은 버섯을 썰어 볶고 두부를 잘게 썰어 튀겨 곁들였다. 두부는 이번에도 향이 묘했지만 맛은 괜찮았고 배탈도 나지 않았다. 밤 동안 샐러드를 두 번 해 먹을 생각이었으나 한 번에 다 먹었다. 두 그릇을 따로 만들긴 했다, 연이어서.

그리고는 또 한 시간 정도 한 후에 비빔면을 해 먹었다. 설거지는 곧장 했던가 또 한동안 일한 후에 했던가. 재활용품을 내어 놓으러 나갔다 오기도 했다. 샐러드를 먹으면서는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을, 비빔면을 먹거나 설거지를 하면서는 미국 시트콤을 봤다. 자료를 찾아 인터넷과 책장을 뒤지는 데에도 시간을 좀 썼다. 이런 데 쓴 시간을 빼고 일한 시간 ― 일한다고 앉아서 트위터 본 시간을 포함해 ― 만 생각하면, 계획했던 것의 80% 정도 효율로 일했다. 집을 나서기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지만 제때 마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고로, 먼저 접고 일찍 나서기로 했다. 오늘이 마감이지만 늦을 수도 있다고 미리 언질해 두었으므로 담당자에게 아주 큰 일은 아니리라고 믿으며.


저기까지 쓴 것이 네 시 오십일 분의 일이다. 곧장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겼다. 다섯 시 반쯤 터미널을 향해 출발. 아직 어두웠고 길에는 행인이 없었다. 시내 구간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은 환경미화원. 조금 더 가서는, 아직 버스가 올 기약이 없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사람 하나를 지나쳤다. 터미널 근처에서는 (밭일할 때 흔히 쓰는) 차양을 두른 모자에 헐렁한 작업복, 고무 장화 차림을 하고서 어느 대문 기둥에 발을 얹고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피부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초로, 적어도 중년이라는 느끼이었는데 아주 유연했다. 터미널 앞 편의점 테이블에도 사람이 하나 앉아 있었다.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먹었다.

여섯 시 이십 분 차니까 도착하면 이십 분이나 남겠네, 했는데 알고 보니 십 분에 출발하는 차였다. 십오 분쯤 남기고 도착해 요기를 하고 승강장에 들어선 것이 여섯 시 삼 분전쯤. 벤치에 앉아 삼 분을 보내고 여섯 시 정각, 그러니까 정확히 출발 십 분 전이 되자 버스에 시동이 걸렸다. 승객은 대여섯 명 정도. 밤을 샜지만 잠이 오지 않아 두 시간을 뜬눈으로 앉아 있었다. 서울에 내려서는 우동을 사먹었다. 옛날 우동이라는 이름에 ― 한국 우동의 “옛날”은 언제일까 ― 마늘 플레이크가 올라가 있어 옛날에도 저렇게 먹었을까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흔히 쓰는 튀김 고명이었다. 다른 데서 보던 것보다 조금 더 납작하고 색이 짙었다.

일곱 시 이십 분 차를 타려다 여섯 시 십 분 차를 탔으므로 약속 장소에도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다. 약속을 여유 있게 잡아 두었으므로 약속 시각까지는 한 시간 반 가까이가 남았다. 친구에게 도착을 알리는 대신 동네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무 골목이나 발을 들이밀고 걷다가 눈에 띄는 곳에 카메라를 디밀었다. 도착했을 때부터 비가 조금 날렸던가, 아무튼 좀 돌아다니다 보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골목골목을 거슬러 약속장소인 지하철역으로 돌아와 근처 카페에 들어갔다. 이미 비는 다시 잦아든 뒤였지만.

단 커피를 주문하고 앉아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용무는 친구의 집 구하는 여정을 돕는 것. 친구가 알아둔 부동산 중개사 사무소에서 소개하는 집들을 돌며 옆에서 (조용히 마음으로만) 힘을 보탰다. 오전 오후를 모두 그 일로 보냈고, 점심께에는 서점에 다녀왔다. 강좌 수강신청 선착순으로 당첨된 책을 수령하러였는데 오픈 시각을 조금 넘기고 도착했지만 문이 닫힌 채였다. 종종 제시간보다 늦게 여는 곳이라 미리 공지를 확인했는데도. 다시 한 번 공지 게시판을 열었더니 개점 시각 이십 분 전쯤에 올라온 글이 있었다. 두 시간 정도 늦어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점심에는 서점 근처의 중식당에서 채식 짜장과 탕수버섯을 먹었다. 조금 남은 시간 동안 작은 서점 하나를 구경한 후 남은 집 구경을 마저 했다. 그렇게 오후 일정까지 마치고는 초저녁이라기에도 조금 이른 시각에 숙소에 들어가 누웠다. 두 시간 정도 자고는 피자를 사다 저녁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리고는 잠들지 못했다. 또, 네 시까지였나 다섯 시까지였나. 그간 보던 ― 이미 몇 번을 봤다는 그 ― 시트콤의 마지막화까지 다 보았다. 마지막 시즌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또 잠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면 이전 시즌으로 거슬러 올라가겠지.


샤워를 하다 피를 봤다. 면도기에 상처가 난 것이다. 면도날이란 예리하여 아주 깔끔한 상처를 내므로, 그다지 아프지는 않다. 이날은 1cm 조금 넘게 베였다. 모공이 부어 있었는지 다른 세 곳에서 점점이 피가 배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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