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주기

2009년 1월 20일. 이제 곧 10주기를 맞는다. 새벽에 있었던 일에 대해, 아마도 당시 소속돼 있던 단체의 사무국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았거나 뉴스를 보고 알았을 것이다. 너댓 시쯤에나 현장에 도착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먼저 온 이들이 경찰과 싸워 얻어낸 좁은 공간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있었다. 방금에야 겨우 자리를 얻었는지, 절을 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 바닥에 흩어진 화재의 잔해를 쓸고 있었다.

전투경찰이 가득한 건물을 둘러 싼 천조각에 사람들이 꽂아 둔 국화들이 보였다. “살려고 올라갔는데 죽어서 내려왔다”, “살릴 수도 있었다. 진압이 아닌 구조였다면…” 같은 문장을 쓴 피켓들이 눈에 들어왔다. “살인 진압 규탄한다” 같은 것들도 있었을 테다.

고인들을 추모하고 서울시와 건설사 ― 삼성과 포스코 ― 를 규탄하는 짧은 집회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행진을 시작했다. 앞에서 이끈 이들에게는 목적지가 있었을 테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경찰과 밀고 밀린 끝에 어느덧 명동성당 앞에 도착했다.

기약 없이 밀고 밀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누가 있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보도블럭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방패로 막았다. 길에 떨어진 것을 시위하는 이들을 향해 되던지기도 했다. 아마도 갑자기 무력 진압이 시작되었다. 돌에 맞거나 곤봉에 맞아 다친 사람들이 있었다. 주인을 잃은 안경들이 길에 굴러다녔다.

이후로 남일당 앞에서도, 고인들이 시신을 안치했던 순천향대학병원 앞에서도 숱하게 집회를 했을 것이다. 1주기를 며칠 남기고서야 겨우 장례를 치렀다. 장례식에는 가지 못했고, 1주기 추모 집회에 갔다. 마석 모란 공원에도 갔었는데, 시신을 안치할 때 갔던 건지 이후에 갔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일당 일대의 건물들을 점거하고 꾸린 대책위 사무실이나 몇몇 작가들의 작업실에도 갔었고, 근처에 문을 열었던 레아 호프에도 갔었다. 일단의 정리를 맞고 나서 수 년간 방치되었던 남일당 터에도 갔었다.

2012년 여름이었던 모양이다. 무슨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남일당 터 앞에서 작은 집회가 있었다. 마이크를 잡은 대책위 활동가는 울먹이는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 외쳤다, 고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여기가 남일당이 있던 자리 맞나요? 여기가 남일당이 있던 자리 맞나요? 남일당이… 어디 갔죠?” 잘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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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갑룡 청장은 [2019년 1월] 14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찰 물리력 행사와 관련한) 개선 사안 추진 상황을 봐서 적절한 때를 잡아 [용산참사 유가족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 민 청장은 “(진상조사위가) 권고한 사안에 대한 개선 조치를 계속 하나하나 추진해가고 있다”며 “어느 정도 개선이 진행되고 (결과를) 보여드릴 수 있을 때 경찰의 진정성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추진 상황을 봐서 적절한 때 사과하겠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14122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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