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Yeuda Elkana, “The Need to Forget” (Ha’aretz, 1988), Panarchy, n.d.
* 원문에는 필자의 이름이 예우다Yeuda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예후다Yehuda로 표기한다.
[편집자]주
1988년 3월에 《하아레츠》에 실렸을 때 소란을 일으켰던 이 글은 홀로코스트를 부도덕하게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는 이스라엘국에 대한 아픈 비판으로 읽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런 (“과거의 고통을 정치적 논거로 써먹는”) 이용은 이스라엘국이 온갖 잔혹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이를 유대 민족의 방어 행위로 내세움으로써 정당화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기억하고 배워야 할 홀로코스트의 교훈은 그것을 보존하고 알려야 할 바로 그들에 의해 잊혀지고 왜곡되고 있다.
나는 열 살 때 아우슈비츠로 끌려갔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다. 적군赤軍이 우리를 풀어주었고, 나는 러시아의 “해방 수용소Liberation Camp”에서 몇 달을 보냈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나는, 내가 만난 여러 민족 —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크로아티아인, 우크라이나인, 헝가리인, 러시아인 등등 — 의 행동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 어디에서나, 내 민족을 포함해 어느 민족에게나 벌어질 수 있음이 분명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올바른 정치적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을 통하면 그런 끔찍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필연적으로 인종학살로 이어지는 정치적 과정이란 없으며, 있었던 적도 없다.
1948년에 이스라엘로 이주한 후 지난 수십 년 간, 나는 홀로코스트에서 도출되는 잘 정의된 정치적, 교육적 메시지가 있는지에 의식적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 자신의 미래에 사로잡혀 있었고, 과거의 이용에 대한 이론적 일반화를 피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기를 참거나 거부했다는 뜻이 아니다. 네 아이들과는 종종 과거에 관해, 그로부터 내가 얻은 교훈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내 감정과 생각을 나누었다 — 하지만 오직 개인적인 수준에서만 그랬다. 아이히만 재판을[1] 지켜보기를 못내 꺼렸고 뎀얀유크 재판에[2] 강력히 반발했으며 아이들이 야드 바솀에[3] 갈 때 같이 가지 않았다 — 나는 이것을, 아마도 좀 별난, 개인적인 선호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이 문제를 다르게 본다.
최근 몇 주 동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게 여기서 태어났고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은 이들보다 나은, 묘한 이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례적인anomalous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그들은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 한다. 현실이 뺨을 후려친 후에야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러고 나면 상당수가 균형 감각을 완전히 잃고는 “다들 그렇지 뭐” 혹은 “이스라엘군이 그렇지 뭐” 같은 말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혹은 그런 일을 저지른 이들을 혐오스러워 하고, 또 우리를 그런 데로 몰아간 아랍인들을 증오한다.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인 대다수가 아랍인에 대한 깊은 증오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하고, 마찬가지로, 아랍인들 역시 우리를 깊이 증오할 거라고 믿는다. 둘 다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내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이례적인 일” 같은 건 없다. 문자 그대로다. 온갖 일을 목도했다. 불도저가 사람들을 산 채로 묻는 것을 보았고, 폭동을 일으킨 이들이 병원에서 노인들의 생명 유지 장치를 뜯어버리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이 어린 아이를 포함해 민간인들의 팔을 부러뜨리는 것을 보았다. 내게는 전부 새로울 것 없는 일들이다. 동시에, 나는 일반화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우리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유대인 모두가 아랍인을 증오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례”를 일으킨 이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행위를 용납한다거나 그들이 법의 엄준한 처벌을 받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한편,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의 더 깊은 뿌리들을 찾는다. 나는 이 민족의 절반이 짐승이라고 믿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야만성을 종족적 현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아니다. 우선 나는 방종한 행태가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더욱이, 이데올로기적 극단주의는 북아프리카나 아시아 출신 유대인보다는 훨씬 더, 러시아, 폴란드, 독일 출신 유대인의 특성이다. 어떤 이들은 안전감 부족, 경제적·사회적 압박이 개인적으로 실존적으로나 미래가 보이지 않는 — 고등교육을 받고 좋은 직업을 가질, 어엿이 스스로를 부양할, 괜찮은 집을 구하고 합당한 생활 수준을 이룰 희망이 없는 — 좌절한 세대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추측이 사실일지를 가늠하기는, 특히 이런 류의 좌절에 표면적으로 해당하는 이들의 수를 셈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개인적 좌절이 “이례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사회 상당 부분에 팔레스타인인들과의 관계에 관한 동기가 되는 가장 깊은 정치적·사회적 요소는 개인적인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홀로코스트의 교훈에 대한 특정한 해석에서 비롯되는 깊은 실존적 “불안Angst”이라는, 그리고 온 세계가 우리를 적대시하며 우리는 영원한 피해자라고 믿으려 하는 태도라는 쪽으로 점점 생각이 기울고 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공유하는 이 오래된 믿음에서 나는 비극적이고 역설적인 히틀러의 승리를 본다. 아우슈비츠의 잿더미에서,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두 개의 민족이 태어났다. 하나는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외치는 소수, 다른 하나는 “우리에게 이런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외치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다수다. 홀로코스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이렇게 단 두 가지라고 한다면 물론 나는 언제나 전자를 고수하고 후자를 재앙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여기서 이 둘 중 하나를 지지하기보다는, 오로지 혹은 거의 홀로코스트만을 토대로 하는 삶의 철학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규범적인 주장을 하고 싶다. 집단적 기억의 역사적 중요성을 무시할 일은 아니지만, 한 민족 전체가 과거의 교훈들에 방점을 두고 현재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고 미래를 직조하는 분위기는 —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평온하고 안전하기 살기를 원한다면 — 그 사회의 미래에 위험천만하다.
역사와 집단 기억은 어떤 문화에 있어서나 불가분적이지만, 과거가 사회의 미래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지배적인 요소가 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민주적 절차에 죽은 이들의 기억이 활발히 끼어들면 민주주의의 존재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 파시즘 체제는 이를 잘 알았고, 이를 이용했다. 이제는 우리도 안다. 그리고 나치 독일에 대한 많은 연구가 제3제국의 정치적 신화를 다루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과거의 교훈에 의지는 것, 과거의 고통을 정치적 논거로 써먹는 것 — 이것은 산 자들의 정치적 삶에 죽은 자들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는 과거에 대한 숭배와 양립할 수 없다고 적었다. 민주주의는 현재와 미래를 기른다. 너무 많은 제코르Zechor!(기억하라)는, 너무 많은 과거에의 중독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갉아먹는다.
홀로코스트가 민족의 의식에 이렇게나 깊이 파고들지 않았더라도 과연 이스라엘인들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충돌이 이렇게나 많은 “이례”로 이어졌을까. 오늘날의 정치적 평화 과정이 막다른 길에 부딪혔을까. 내가 보기에 이스라엘국의 미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홀로코스트가 체계적이고 강제적으로 이스라엘 대중의 의식을 파고들었다는 사실, 심지어는 홀로코스트를 겪지 않은 많은 이들과 여기서 태어나 자란 세대들의 의식까지도 파고들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수십 년째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모든 아이들을 몇 번이고 야드 바솀에 보냈다. 나는 비로소 그 심각성을 깨닫는다. 우리는 그 여린 아이들이 그 경험을 어찌 하기를 바랐던가? 우리는 무감각하고도 혹독하게, 설명조차 없이, 열을 올렸다. “기억하라!”, “제코르!” 무엇을 위해서 말인가? 아이들이 그 기억으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참상을 담은 수많은 사진들은 증오를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되곤 한다. “제코르!”는 쉽사리, 계속되는 맹목적인 증오에의 요구로 이해될 수 있다.
[이스라엘국이 아니라] 세상이 기억하는 것이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조차도 확신할 수는 없다. 어떻든 우리의 문제는 아니다. 독일인들을 비롯해 모든 민족이 각자의 방식을, 각자의 기준대로, 기억할지 말지를 정할 것이다. 우리는, 잊어야만 한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이 민족의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교육적 과업은 생명의 편에 서는 것, 우리의 미래를 창조하는 데에 전념하는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홀로코스트에, 그 상징들에, 기념행사에, 교훈에 골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역사적 “기억하라!”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뿌리뽑는 것이 그들의 할일이다.
가혹하게,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흑백론적으로 적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변덕을 부린 것도 아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낼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어떤 민족과 과거를, 그 모든 일들을 완전히 잊지는 않는다는 것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탁월성의 신화나 창조성의 신화 같이 우리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에 필수적인 신화들도 물론 있으며, 당연히 우리 역사를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홀로코스트를 우리 민족 경험의 중심축의 자리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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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1906 – 1962)은 독일인이자 오스트리아인인 국가사회당 간부로, 친위대 장교를 지냈으며 유대인 절멸의 주요 조직자 중 하나다. 그에 대한 재판은 예루살렘지방법원 특별 재판정에서 1961년 4월 11일에 시작되었다. 1961년 12월 15일에 사형을 선고 받았다.
↥2 존 뎀얀유크John Demjanjuk(1920 – 2012)는 여러 수용소에서 나치 경비대원으로 근무했다. 뎀얀유크의 재판은 예루살렘지방법원 특별 재판정에서 1986년 11월부터 1988년 4월까지 열렸다. 기소된 잔혹행위를 저지른 당사자라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스라엘대법원의 판결을 받고 1993년 7월에 석방되었다.
↥3 야드 바솀Yad Vashem은 나치 절멸 — 히브리어로는 쇼아Shoah라 불린다 — 희생자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식 추모 기관이다. 1853년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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