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Fadi Quran, “The Russian-Doll Carceral State,” Jadaliyya, 2022.05.24.

[이 글은 《자달리야》 팔레스타인 편집부에서 기획한 팔레스타인 수감자 시리즈의 일환이다.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중심으로 감금성carcerality과 식민주의,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을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해당 시리즈의 전체 목록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이제는 악명이 널리 알려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마바히스Mabahith” 취조실에[1] 들어가는 순간 기시감이 몰려왔다. 새벽 두 시다. 그날 밤의 세 번째, 마지막 심문이다.
먼지 쌓인 싸늘한 형광등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흔들렸다. 책상에는 서류며 상자며가 엉망으로 쌓여 있다. 교활한 인상의, 기고만장한, 말끔하게 면도한, 서른 몇 살쯤 되는 남자가 나를 보고는 활짝 웃으며 맞은 편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퀭한 눈에서 피로가 배어났지만 정말로 나를 봐서 신이 난 것 같았다. 책상은 방 오른쪽에 놓여 있었고 그의 뒤로는 그 방의 유일한 창이 작게 나 있었다.
조명, 방의 꾸밈새, 심지어는 심문관의 태도까지도 십 년 전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심문을 받았던 때의 복사판 같았다. 그때는 팔레스타인자유승객단Palestinian Freedom Rides을 조직했다가 구금 당했다. PA의 방은 딱 세 가지가 달랐다 — 우리를 내려다 보는 마흐무드 압바스의 초상, 카임 파야닥 알-이사르Qawim Fayadak Al-Isar, “저항하라, 네 손은 태풍이니”라고 적힌 압수품, 그리고 팔레스타인인 심문관.
이렇게 점령자와 피점령자를 비교하는 것이 내게 아픈 일임을 먼저 밝혀 두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 팔레스타인인 심문관은 내 민족people, 말하자면 내 “피붙이tribe”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악을 즐기고 라말라의 같은 카페들에서 시샤를 피운다. 그는 정치수들의 아들이자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 나와 다를 바 없이 고통 받는다.
그렇기에,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PA에 정치적으로 한 방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흔 해의 이스라엘 식민주의가 현재 팔레스타인 자기통치의 작동 메커니즘을 어떻게 오염시켜 왔는지를 분석하기 위해서이다.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감옥들에서의 감금 경험, 둘의 유사성은 그저 이 정치적 오염을 검토하기에 적절한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하지만 두 감금 체제를 비교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감금 국가는 도처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국가는 “감옥 같은 수감 시설을 갖고” 있으며 “각기 다양한 정책, 실무 지침, 제도를 통해 개인이나 공동체들이 사법 제도와 접촉하기 전후로 그들을 감시한다”.
감금 국가는 지구화된 현상이다. 이스라엘 공안은 미국 경찰을 훈련시키고 미국 공안은 PA 공안을 훈련시킨다. PA 공안과 이스라엘 공안은 공조해 체포 대상을 정한다. 합중국은 이 둘의 핵심 돈줄이며, 이런 결정들을 평가하고 저에게 득이 되도록 조종할 힘이 있다.
제2차 인티파다 후에는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가, 미국과 유럽연합의 재정 지원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감금 시설 확장을 감독하고 효율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스라엘이 감옥 체계의 일부를 민영화한 것은 합중국과 영국에서 배운 것이다. 영국의 경비 기업 G4S에서는 이스라엘에 핵심 감옥 기술들을 제공했다.
요컨대, 세계 각지의 감금 체계들은 자기복제적 연결망을 이룬다.
따라서, 이 같은 감금 체계들의 외적인 면모들 — 수용실 크기나 식사 종류, 면회 허용 횟수 등 — 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테다. 이런 차이들은 이 일의 정신이나 목적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인 차이들은 각자의 가용 자원 차이에 따른 것인 경우가 많다. PA에 비하면 이스라엘 정부는 광범위한 감금 기반시설에 수백만 달러를 더 쓸 수 있다.
이 글에서 비교하는 것은 물리적인 차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작차-식민 체제가 쓰는 감금의 사회 심리학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서 받아들인 그 체제의 운영 방식이다. 요점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억압 생태계라는, 거기서 PA의 감금 체계는 이스라엘의 대규모 감금 체계가 잉태한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회에서 감금의 핵심 목적은 사회 통제다. 그런데 사회 통제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마다 다르다. 일부는 주로 사유 재산과 사회 안정을 지키고자 한다. 다른 일부는 인종적 우월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권위주의적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사회 통제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같은 목적 구분은 흐려질 수 있으며, 실제로 종종 흐리다.
하지만 성지[팔레스타인]에서는 사회 통제의 목적이 명백하다. 바로 이스라엘의 정착자-식민주의와 팔레스타민 민족에 대한 지배를 지속하는 데에 필요한 불평등한 현상태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것이다. 부차적인 목표는 정착자 식민주의가 이어지는 데에 복무하는 PA의 권위주의를 지속시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PA에는 추가적인, 별도의, 독립적인 — 이스라엘로서는 중요하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정책과 충돌하지 않는 한 PA에서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는 — 이해관계도 있다.[2]
지난 십 년 동안 나는 PA와 이스라엘이 여덟 번 체포와/나 구금 당했다. 정치수들의 경험을 알기 위해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데에, 그리고 활동가나 아동을 위해 수감자 회복력 유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들였다.
아래의 분석은 내가 보아 온 바를 아우른 것이다.
나의 핵심 논지는 정착자 식민 기획에 복무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금 체계에는 세계 다른 곳의 감옥 산업들과는 다로 뚜렷이 구분되는 세 가지 핵심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세 가지는 바로 실존적 불안, 무기력 조성, 그리고 사회적 배반의 문화다.
아래에서는 내 경험을 간략히 소개하면서 각 특성을 설명할 것이다.
실존적 불안
2012년, 이스라엘 군인들이 내게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나를 바닥에 대고 눌렀다. 군용 험비humvee 차량에 내 머리를 찧었다. 그리고는 나를 체포했다. 헤브론에서 행진을 하던 중이었다. 십대 아이 두 명도 나와 함께 체포됐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군인 하나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개머리판으로 내 복부를 가격했다. 잠시 후에는 한 아이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더니 내가 그들의 “대장”이고 군대를 향해 돌을 던지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인정하라고 했다.
몇 달 후, PA 공안이 라말라에서 나를 한참을 끌고 갔다. PA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스라엘의 어느 전범과 회담을 연 데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였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같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 하나를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경관들이 그를 구타하는 동안, 우리는 동료의 고통을 멈추고 싶으면 “대중적 혼란”을 일으키려 했다고 자백하라는 말을 들었다.
PA나 이스라엘에 구금 당할 때면, 중요한 첫 번째 단계는 항상 갖가지 과도한 폭력과 감시였다. 거친 고함, 땅바닥에 끌고 다니기, 모욕, 포박해 불편한 자세로 앉혀 놓기, 건장한 남성 여남은 명이 총을 겨누고 둘러싸기, 무릎으로 목덜미 짓누르기, 복부 때리기, 카메라 여러 대가 설치된 방에 집어넣어 놓기 등이 이런 전술에 속한다. 전부 우리, 구금자들에게, 푸코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이제 유순한 몸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체포의 이런 면모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범행 사실”을 집중적으로 캐묻는 심문들로 구성되는 두 번째 단계도 마찬가지다. 처음의 심문들은 일단 구금자를 평가하고 가능하면 스스로 범행을 인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속이고 구타하고 위협해도 된다. 《CSI: 과학수사대》나 FBI 심문 장면이 나온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면 어떤 전술들이 쓰이는지 알 것이다. 이스라엘 체제나 팔레스타인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세 번째 단계는 상당히 독특하다. 내가, 내 동료들이 겪는 모든 심문에는 세 번째 단계의 취조가 있다.
“이런 시위로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이스라엘 정보 요원이 대뜸 말했다. 나는 헤브론 인근의 이스라엘 구금 시설에 잡혀 있었다. 죄목은 슈하다 거리 개방 요구 행진[역주1] 참여였다. “모든 파라오가 졌지, 모세한테 물어봐.” 후추 스프레이 때문에 눈도 못 뜨고 헐떡거리면서 치기 어린 대답을 했다. “우리는 파라오가 아냐. 들어나 보지, 무슨 수로 우릴 이길 건데? 다음엔 어쩌려고?” 심문관이 진지하지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3차 인티파다라도 벌일 거야?”
몇 년 후에는 PA 정보관이 비슷한 투로 말했다. 단호한 목소리였지만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너 ‘청년 운동youth movement’ 소속이지. 청년 운동은 추종자가 수천 명이고. 압바스랑 PA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키는 게 너희 목적이고 말이야. 너에 대해선 전부 알고 있어 … 그런데 뭐가 그렇게 급해? 압바스는 곧 물러날 텐데. 어차피 아무도 안 좋아하잖아.” 나는 피곤했다. 라말라에서 시위에 나갔다가 붙잡혔고 여섯 시간 째 구금된 터였다. 경험이 쌓이기도 했고 조금 지겹기도 해도 이번에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스라엘, 아랍 체제들, 배신자들. 나는 평생을 점령에 저항하며 보냈어. 우리 사회는 힘이 없어. 그건 어떻게 할 건데? 다음엔 어쩌려고? 네가 원하는 게 혁명이야?”
“다음엔 어쩔 건데?”
이스라엘 쪽이든 팔레스타인 쪽이든 감금 체계를 운영하는 이들은 늘 다음을 알고 싶어 한다. 언젠가는 무언가가 제 통제를 끝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그게 그들의 일이다. 현상태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하지만 지난 여러 해 동안 내게는 이 질문 아래에서 꿈틀대는 실존적 불안감이 느껴졌다.
실존적 불안은 흔히 “죽음은 불가피하다는 인식과 연관되는 전반적인 고통이나 절망감”으로 정의된다. 현상태를 바꾸고자 나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정착자 식민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절망감을 촉발한다. 봉기 현장에서 그들이 “붙잡는” 팔레스타인인들은 잠재적으로, 그들의 통제와 권력이 한때의 일일 수 있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다섯 해 동안 PA나 이스라엘에 잡힌 다른 정치수들을 인터뷰해 보니, 팔레스타인 정치수가 이 지점을 건드릴수록 심문관이 더 폭력적으로 나온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이론이 강조하는바, 우리는 특정 방식으로 존재하고 행위함으로써만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금 체계를 운영하는 이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 통제와 우월성의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제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구금 시설을 운영하는 한 PA 공안 관계자는 내게 “우리는 우리가 임박한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지키지 위해 여기 있는 거라고 믿도록 훈련 받는다”며 “그 위협을 교리처럼 확신하게 되거나 그런 체 할 수 있는 사람만 승진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당신들과 우리가 공존할 수 없다고 믿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물론 PA의 지배자들은 이 체제를 이용해, 개인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착자-식민주의의 맥락과는 별개로 개인적인 목적을 이루거나 앙갚음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PA에서나 이스라엘에서나 감금 체계에 있어 그들에게 의미를 주는 것 — “반체제” 팔레스타인인 탄압 — 은 언젠가 이 체제가 끝장날 수 있음을 끝없이 상기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불안의 나선을 형성하는 미묘한 역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감옥에서든 팔레스타인 감옥에서든 팔레스타인인들이 경험하는 감금의 중심에는 불안에 떨며 온갖 전술을 동원해 “다음엔 어쩔 건데?”를 캐묻는 포획자들이 있다.
양쪽 모두 이를 위한 다양한 전술을 개발해 왔다. 예로 “아사피르Asafeer”, 즉 지저귀는 새가 있다. 친구처럼 굴어 구금자들이 비밀을 털어놓게 만드는 훈련을 받은 가짜 수형자이자 정보원이다. 정보관들은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 이미 형을 선고 받은 이들에게까지도 친근하게 굴곤 한다. 다양한 형태의 고문과 협박도 쓰인다.
실존적 불안이 넘쳐 흐르는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감금 국가 메커니즘들은 자유의 행위를 처벌하고 미래의 일을 선제적으로 타격할 방법을 찾는 것을 중심으로 삼게 되었다. 정의, 교화, 처벌, 규율 — 이 모든 것은 이 체제와 그것을 떠받치는 이들에게 끝없는 두려움의 원천인 실존적 위협을 무력화한다는 핵심 목표에 비하면 전부 주변적인 문제다.
오랜 지배를 거치며 이스라엘의 감금 체계는 자유를 좇는 이들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선제적 조치는 무기력을 학습시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한편 PA는, 믿음직한 조교가 되었다.
무기력 학습시키기
학습된 무기력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든 현재의 상황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냉담한 태도“다. [미국] 상원 보고서를 통해 CIA에서 여러 심리학자들과 협력해 학습된 무기력을 심문 전술로 활용하고자 한 적이 있음이 알려진 바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학습된 무기력을 강제로 주입하려면 그 사람이 계속해서 부정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사건들을 맞닥뜨리게 해야 한다. 자신이 무어라도 바꿀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전부 잃을 때까지, 계속해서 패배하고 불확실성을 겪게 해야 한다.
효과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이스라엘과 PA가 마주하고 있는 실존적 위협이라 할 때, 가장 강력한 대책은 학습된 무기력을 심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감금 절차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무기력을 가르치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체계적으로 체포 당한다. 어릴 때부터, 종종 난데 없이 그런다. 학습된 무기력의 교육은 눈가리개를 씌우고, 수갑을 채우고, 명령을 따르라 말하고, 비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나 어둠 속으로 내동댕이치는, 체포 순간부터 시작된다.
언젠가 한 번은, [이스라엘군이] 한바탕 심문을 한 후에 나와 함께 체포된 이들을 라말라 인근의 오퍼 감옥에 떨구었다. 험비에서 끌려나가는 이들을 보며 나도 내릴 준비를 했다. 군인 하나가 내 가슴에 M16을 겨누며 소리를 질렀다. “너는 말고!”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더 갔다. 눈가리개가 씌워져 있어 내가 어디로 끌려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헤브론 근처의 한 정착 전초기지에 도착했다. 그 후로 이틀을 더러운 형광등이 걸려 있는 수용실에서 보냈다. 시간 감각이 사라질 때까지 불은 계속 켜져 있었다. 다른 수감자 한 명을 나랑 같은 방에 던져 넣어 두었던 몇 시간을 제하면 독방 감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온 방 안을 돌아다녔다. 그러더니 내게 개인적인 질문들을 던졌다. 나는 여기서 그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고는 답해주지 않았다. 이런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은 내 주위에 대한 통제감을 완전히 다 무너뜨리기 위해서다.
이스라엘의 자의적인 체포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아동용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우리는 기존 아동 수감자들이 겪은 일들을 분석했다. 야간 급습, 난데없는 폭력, 강도 높은 심문 전술 등을 포함하는 체계적인 심문 방식이 상대를 무너뜨려 완전한 무기력감에 빠지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보다 노련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겨냥해서는 체포와 심문을자기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준비하는 데에 몇 달을 투자한다. 이스라엘군은 활동가들이 자신이 체포되면 겪게 될 일들의 목록을 갖고 있단 걸 이미 알고 있으며, 그래서 통제불능의 감각을 심화시킬 충격적인 요소들을 새로 만들어낸다.
팔레스타인 예방안보국도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을 체포할 때 그와 비슷한 전술을 활용한다. 예리코 감옥이 구금자들은 대개 오랜 시간 포박 당하고 느닷없는 구타와 욕설에 시달린다. 간수들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모욕하는 데 동의하게 될 때까지 말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CIA의 전술과 매우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PA에 체포됐을 때 나는 수용실에서 끌려나와 소장을 면담했다. 다른 정치적 구금자들과 함께 단식 농성을 하던 중이었다. 소장은 내게 자신도 80년대에 정치수였고 단식 농성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 친구야, 나는 단식 농성이 어떤 건지도 알고 농성을 깨는 법도 알아. 지금은 통제감을, 권력감을 느끼겠지. 하지만 통제하는 건 나야. 자네랑 동료들에게 충분한 혼란과 불확실성을 가하면 자네들은 결국 무너질 테지 — 여기서 정말로 힘을 갖고 있는 게 누군지가 기억 나게 되는 거야. 이스라엘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한 짓이 바로 그거거든. 우리가 너희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단련 받았지 ….”
흥미롭게도, 점령의 통제 전술이 팔레스타인 공안 관리들의 정신에 스며든 것이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세계 어디에서나, 입건된 수감자들에게는 대개 규율적인 일과가 강제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그런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일부 수감자들은 결국 수 년 내에 학습된 무기력감을 갖게 된다. 물론 이는 수감자들의 정신 건강이나 감금 체계에 수감자 교화 프로그램이 있는지 등 여러 요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PA와 이스라엘에게 있어 학습된 무기력은 이 과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목적이다.
과거에 팔레스타인 정치수들은 어떻게든 집단적으로 이스라엘의 전술들에 저항했다. 수감자들은 단식 농성 등을 수단 삼아 희생과 불복종을 통해 자신의 존엄과 권리를 관철했다. 하지만 지난 스무 해 사이 모종의 불안감이 대다수 정치수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불복종 행동은 이제 집단적이기보다는 대개 개인적으로 행해진다. 이런 변화의 얼마 만큼이 학습된 무기력을 주입하는 이스라엘의 정책 탓이고 또 얼마 만큼이 팔레스타인 정치 운동이 쇠락한 탓인지는 별도의 학술적 연구 없이는 확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기력을 가르치는 것이 몫을 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PA의 감금 공정이 하나로 이어지는 곳은 학습된 무기력의 주입만이 아니다. 마지막 유사점으로, 배반의 구축이 있다.
구조적 배반의 문화 구축하기
정착자 식민 사업의 입장에서 무기력한 공동체보다도 유용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배반하고 억압자들에게 복무하기로 한 공동체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배반 행위는 “일시적인 권력감을 느끼기 위해 공통의 중요한 가치를 저버릴 때 [벌어진다]. 배반 가능성은 잠재적 동반자가 취약함을 느낄 때 어떻게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하는지를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이스라엘 정부와 PA 모두 학습된 무기력이 자아내는 취약성과 무력감은 힘과 의미에 대한 갈증, 자신들이 교묘하게 해소해 줄 수 있는 갈증을 자아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노골적인 — 예컨대 수감자가 공범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제공하거나 정보원이 되거나 하는 — 배신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과 PA의 감금은 실제로 이런 종류의 배반을 추구하며, 협박이나 재정적 보상 같은 전술을 써서 설득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직접적인 배신은 상대적으로 드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이런 직접적 배신이 아니다. 보다 미묘하고 간접적이며 파괴적인, 구조적 배반의 문화다. 감금 당한 팔레스타인인들이 —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온전히 알지 못한 채 — 중요한 가치를 저버리도록, 억압자들에게 부역하도록 서서히 떠미는 전략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기록이 하나 있다. 십 대 두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됐다. 이들이 꺾이지 않자 이스라엘 심문관들은 둘 각각과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소년 — 사미Sami라고 부르기로 하자 — 은 시위가 열린 곳이 내려다 보인는 언덕으로 데려갔다. 두 번째 소년 — 샤디Shadi라고 해보자 — 은 시위가 열린 곳으로 데려갔다. 심문관들은 샤디에게 가단한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너희 동네는 어디지? 우리가 어느 쪽에서 왔지?” 같은 것들이었다. 별 것 아닌 질문이라고 생각한 샤디는 이쪽 저쪽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그는 몰랐지만, 그의 친구 사미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샤디가 어떠 질문을 받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는 곳에서.
마치 샤디가 자신의 신뢰를 저버리고 어디에서 출발해 시위에 참여했고 어디서 군인들과 충돌했는지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의 배신을 “보고” 상심해 좌절에 빠져서,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처벌을 배로 받게 된다는 군인들의 말에 넘어가, 사미는 눈물을 머금고 다 털어놓고 말았다.
군인들은 사미의 자백을 녹음해 샤디에게 들려주었다.
그 어린 나이에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감이 들면, 그리고 이윽고 수치심이 들면, 그런 힘겨운 환경에서는 엄청나게 취약해진다. 그리고는 곧, 동료 수감자를 가장한 “아사피르” 정보원이 이 소년들에게 망가진 팔레스타인 사회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흘린다.
너무도 많은 맥락에서, 이 같이 배반을 유도하는 감금 전술은 가혹한 자기 비판과 그 어떤 변화의 가능성도 믿지 못하는 비관의 서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조종 당한 정치수들 일부가 나중에 팔레스타인 사회로 풀려나서 보면, 가장 부패한 지도자들이 돈과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자신들은 그렇게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적인 역할로 밀려난다. 이 충격은 그들로 하여금 부지 중에 저 서사를 퍼뜨리게, 혹은 가족들 사이에 숨어 더 이상 정치 참여를 하지 않는 소리 없는 관찰자가 되게 한다.
비극적이게도 이 같은 자멸적 서사는 자유를 추구하는 일의 가치, 희생의 가치, 집단적 신뢰의 가치를 약화시키고 나아가 배반한다.
PA 공안에도 구조적 배반과 패배주의의 문화가 뿌리 내리고 있다. 다만 그 방법은 다르다.
팔레스타인 정보부에 끌려 가 심문을 받은 적이 있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 장성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전쟁 범죄 증거를 모으는 사업 건이었다. 나는 심문관에게 전범들을 재판정에 보내도록 나를 돕기는 커녕 이런 질문들이나 하다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당신이든 당신에게 나를 구금하라고 명령한 사람이든 어디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답하며 자신이 팔레스타인 정보부에 들어온 것은 이스라엘군에 형제가 살해 당했는데 그를 넘긴 정보원은 결국 잡히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이것이 자신의 소명이자 임무라고 했다. 나는 그 형제가 했던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나나 다른 활동가들을 심문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다 소리를 질렀다. “질문은 네가 아니라 내가 하는 거야!” 내가 그 순간으로부터 희망을 읽어내려 한 탓일까, 무언가 베일이 걷힌 느낌이었다.
또한 이 경험을 통해 PA 보안군의 토대가 되는 착각에 눈이 뜨였다. 보안군의 핵심 집단, 기반층은 정말로 자신들이 민족의 대의에 복무한다고 믿으며 들어오는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서서히, 다층적이고 미묘하며 복잡한,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영웅으로 비쳐지는 관료 구조의 일각밖에는 보이지 않는, 정착자 식민 부역의 체제에 얽혀든다. 제 삶을 살고 봉급을 받기 위해서 자신들이 믿으며 들어왔던 그 대의에 복무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그 지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과 자신들이 믿는 가치 사이의 모순은 흐려지거나 심지어 정당화된다. 내부의 부패는 물론 동지애와 충의까지가 뒤섞여 구조적 배반이라는 파괴적인 문화가 만들어진다. 자유의 추구라는 가치에 반하는 행동들을 하면서 사회 전체가 망가지고 부패했으니 이래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런 PA 공안원들은 이제 제 민족을 투옥하고 구타하고 구금한다. 자기 민족이 적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온갖 확증 편향을 찾아낸다. 시위 현장에서 히잡을 입지 않은 젊은 여성을 보면 외국 첩자라서 그런 거라고, 네게브나 하이파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보면 이스라엘의 음모 탓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 그럼으로써 팔레스타인 사회를 더더욱 망가뜨린다. 오직 정착자 식민 감금 기획에만 득이 된다.
비극적이게도, 실존적 불안, 무기력 학습, 구조적 배반 강화의 악순환은 감옥의 어두운 담장 안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겹겹의 감금 군도群島가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집어삼킨다.
러시아 인형 감금 체계
감금성 개념은 감금 국가가 통제, 감시, 범죄화criminalization, 비-자유의 논리와 정책들을 통해 사회와 문화를 빚어내고 조직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포착한다 … [이런 정책들과 논리는] “약속이자 위협으로서의 사법 처리criminalization”, 그리고 “감금 가능성/감금이라는 해법”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처벌적 지향들”이다.
이스라엘과 PA의 감옥들에서 쓰이는 통제, 감시, 범죄화, 비자유의 정책들을 분석해 보면, 이런 것들이 그저 이스라엘 국가가 1948년 국경 내의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가하면서 사법 처리라는 고압적인 약속과 위협을 제시하는 감금성의 극단적이고 압축된 형태임이 명백해진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러시아 인형 감금 체계 속에서 살아가는 듯한 형국이다. 다섯 개의 “감금 인형”이 층층히 쌓여 있는 체계 말이다.
제일 큰 감금 “인형”은 이스라엘의 최상위 지배 체계로, 드론, 검문소, 아파르트헤이트 장벽, 정착촌 확장, 차별적 정책들, 그리고 다른 여러 인권 침해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지배 체계는 팔레스타인 자유 투사를 마주하는 감옥 소장의 경우와 똑같은 정착자-식민적 목적에 따라 움직이며, 마찬가지로 그 경우와 똑같은 실존적 공포를 겪는다. 이 실존적 공포는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끝없이 — 마치 삶(과 죽음)의 모든 면면을 지배하는 걸로는 존재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는 듯이 — 제 “존재”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이스라엘의 최상위 지배 체계 속에 있는 “감금 인형”은 PA의 통제 체계다. 민주적 절차를 차단하고 표현의 자유를 금지하고 굴종의 담론을 강요하는 PA 보안군의 전술들이 이에 해당한다. PA는 또한 제 통제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규모로 감시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PA가 팔레스타인 사회 내 “학습된 무기력” 담론의 중심 구동 엔진이라는 점이다. PA의 언어, 특히 압바스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서사는 미국의 선의와 외국의 원조에 의지하는 피해자 서사, 나약함의 서사이며 결코 팔레스타인의 주체성에 힘을 불어넣지 않는다.
PA의 최상위 부정의 체계에 도전하는, 혹은 주체적 행위로써 점령에 저항하는 이들은 네 번째 “감금 인형”, PA의 감옥에 갇힌다.
한편 이스라엘의 최상위 부정의 체계에 도전하는 이들은 다섯 번째, 가장 고도로 감시 당하는 “감금 인형” — 이스라엘의 감옥-감시 복합체에 갇힌다.
요컨대, 팔레스타인인이 하나의 감금 체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려 들었다가는 그 벌로 더욱 엄중한 체계에 잡히게 되며, 무기력과/이나 배반을 강제하려는 시도 역시 강화된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자유의 추구를 짓누르기 위해 설계된 하나의 통합적 메커니즘이다.
감금 체제들이 진화하면서,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 영역의 기술적 선두가 되면서, 팔레스타인 사회는 어마어마한 난관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는 이 러시아 인형 감금 체계를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
↥1 마바히스는 아랍어로 “수사관detectives”을 뜻하며 팔레스타인 알-비레Al-Bireh에 위치한, 수많은 경찰 심문이 행해지는 주요범죄수사국Detective Unit’s office을 가리킨다. 이곳에서의 심문은 경우에 따라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2 이러한 이해관계 중 하나로 특정 개인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이 최우선이 되는 부패한 계파주의의 유지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PA의 지배자들은 종종 이 체제가 이스라엘의 안보 장치에 부역하는 맥락과는 별개로, 각자의 개별적인 판단에 의거해 제 자기를 보전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하곤 한다. 이스라엘의 정착자-식민주의 맥락 바깥에 있는 개별적인 목적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며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역주1헤브론에 위치한 슈하다(Al-)Shuhada(순교자) 거리는 1994년 2월 25일에 미국계 이스라엘인 극우 시온주의자 바루흐 골드슈타인이 라마단 기도 중이던 팔레스타인 무슬림 29명을 학살한 이브라히미 모스크로 가는 길목이다. 생존자들의 반격으로 범인 역시 현장에서 사망했으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이스라엘군이 진압에 나서면서 팔레스타인인 20여 명이 더 사망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의 출입을 전면 금지했고 몇 년 후 통행 등 일부 활동만 다시 허가했다. 이에 아파르트헤이트 거리라고 불리기도 하다. 본문에 언급된 행진은 2010년부터 매년 열린 “슈하다 거리를 열어라” 시위다 (2021년 코로나19 유행 기간에 열린 온라인 캠페인까지 확인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