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Taqwa Ahmed Alwawi, “The Embroidery of Exile and Return,” Palestine Deep Dive, 2026.07.22.

팔레스타인 자수, 즉 타트리츠tatreez는 기념품이 아니다. 문화 상품으로 상연되는 민속 공연이 아니다. 타트리츠는 애초부터 유리벽 뒤에 고이 모셔두기 위한, 일상과 유리된 미적 대상으로 남겨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입기 위한 것, 몸과 함께 움직이고 땀과 먼지와 시간을 머금는 것이었다. 빨고 수선하고 대대로 물려 쓰는 것이었다.
타트리츠는 몸에 —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몸에 — 살기에 아카이브나 역사 기록은 종종 지키지 못했던 것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자수는 시가 말들을 꿰어 의미로 만들듯 실을 꿰어 문양을 그려 천에 기억과 정체성, 저항을 짜넣는다. 타트리츠와 팔레스타인 시에는 공통의 목적이 있다. 식민의 역사가 지우려 하는 것을 보존하는 것.
정치적 문제 혹은 국제적 분쟁으로 축소되기 오래 전에, 팔레스타인은 공동체와 연속체의 공간이었다. 대대손손 같은 땅에서 살고 죽었다. 역사는 단일한 서사로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앞선 것을 지우지 않고 제각기의 흔적을 남기며 — 가나안, 로마, 아랍, 오스만이 — 켜켜이 쌓였다.
타트리츠는 그 켜켜의 시간 속에서 발전했다. 타트리츠의 문양은 지배자나 연대年代가 아니라 현지의 존재들presence을 기록했다. 마을마다 서로 다른 문양으로[역주1] 수를 놓아 만드는 치마, 숄, 블라우스, 허리띠, 장신구, 장식품이 땅과의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기록했다. 다양한 양식과 바늘땀을 살펴보면 소속과 기억의 지도가 펼쳐진다. 오늘날에도 타트리츠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함께한다 — 한 땀 한 땀이 모여 서사를 이루고 문양 하나하나가 이어지는 생존의 시의 시구가 된다. 소중히 기억되는 마흐무드 다르위시나 파드와 투칸 같은 시인들의 시가 그러하듯.
살아 있는 지도들
팔레스타인 여성들에게 자수란 가사 노동, 계절의 리듬, 사회 구조와 결부되어 있다. 여성들은 농사일을 하는 틈틈이, 모임을 하면서, 대를 이어, 수를 놓았다. 타트리츠는 반복해서 보고 배움으로써 손에서 손으로 전수되는 지식의 전형이었다. 각 지역마다 땅, 노동, 환경과의 관계가 반영된 고유한 여러 가지 기법이 있었다. 해안 도시들에서는 교역과 개방성에서 비롯된 문양을 만들었다. 산간 마을들은 정주 농경 생활을 반영하는 조밀하고 대칭적인 디자인을 선호했다. 사막 지역들은 이동 생활과 가혹한 환경에서 비롯된 보다 자유로운 선들을 받아들였다.
팔레스타인 드레스는 사회적 지식의 표지였다. 잘 아는 이라면 지역, 혼인 여부, 재산 등을 한눈에 읽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지형도가 얹혀진 여성들의 몸은 살아 있는 지도가 되었다. 색상, 밀도, 위치, 문양 모두에 의미가 있었다. 결혼하지 않는 여성은 원색을 입었다. 결혼한 여성은 색상은 보다 은은하게 하되 바느질은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했다. 남편을 여읜 이는 채도를 낮추어 애도와 삼감을 표했다. 붉은 색은 힘의 생명력을 뜻했고 검은색은 존엄과 엄숙함을, 녹색은 땅과 비옥함을 나타냈으며 푸른색은 부적 역할을 했다. 한 땀 한 땀에 다 의미가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가 체계적으로 단절되면서 이 전통에 새로운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여러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파열은 근대 식민주의와 함께 찾아 왔다. 땅은 재산이 되었다. 이곳에 살려면 증거를 대야 했다.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서 소유권 제도는 선별적으로 작동했다. 관료 체제에 편입될 수 없는 것은 삭제되었다. 공식기록에서 여성의 노동, 구전 지식, 가사 활동은 비가시화되었다.
이윽고 1948년이 되었다.
나크바가 벌어지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은 집에서 쫓겨났다. 그들의 역사, 땅과의 관계가 의문에 붙여졌다. 마을들이 통째로 파괴되고 지도에서 이름이 지워졌으며 기록은 불타거나 새로 쓰여졌다. 줄곧 그 땅에서 살아온 인구집단이 일시적인 혹은 날조된 것으로 서술되었다. 역사를 가로막았을 뿐 아니라 덮어썼다.
타트리츠는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 소리 없이 끈질기게 이어지는 것으로 — 응수했다.
추방을 바느질하기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더는 돌아갈 수 없게 된 마을들의 이미지를 수놓았다. 치마가 이동식 아카이브가 되었다. 살아 있는 세상을 상징했던 것들이 잃어버린 것들의 상징이 되었다. 사이프러스는 가뭄 앞에서의 인내를 말했다. 포도는 풍요와 관대함, 고대의 농경을 상기시켰다. 말馬은 존엄과 저항을 떠오르게 했다. 이런 문양들의 위치 — 가슴이나 소매 혹은 끝단 — 는 여성들의 삶과 상상에서 각각의 중요도를 나타냈다.
난민촌에서 자수는 일상복의 장식에서 목적의식적인 보존 활동으로 변모했다. 실제 장소에 갈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타트리츠는 그 장소를 꼭 붙드는 방법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삭제가 폭력을 통해, 그리고 언어를 통해 — 재구성과 부정을 통해 — 벌어짐을 배웠다. 훔쳐간 것에 “분쟁이 있다disputed”는 딱지를 붙인다. 식민화는 “충돌conflict”이다. 삶들은 “수치數値”로 축소된다.
오늘날 팔레스타인은 알고리즘적으로 삭제된다. 팔레스타인의 비탄에는 “자극적” 혹은 “선동적”이라는 경고가 붙고 그런 비탄을 일으키는 폭력적 구조는 숨겨진다.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일은 드물다. 원자화해 소리를 잃게 만든다. 특히 팔레스타인 여성들은 점령 하에서 꾸준히 기억을 전달하고 돌보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타트리츠는 바로 그런 구조에 맞선다.
믿어 달라 간청하거나 제도의 승인을 구하지 않는다. 문양을 통해 진실을 전한다. 바늘땀을 뜯어도 천에는 흔적이 남는다. 여기서 지식은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된다.
저항을 꿰어 넣기
타트리츠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타트리츠를 금속, 사운드, 설치, 디지털 형식들에 통합한다. 이런 실천들은 자수를 그 뿌리에서 떼어 내는 일이 아니다. 자수의 어휘와 그것이 가 닿는 범위를 확장하고 자수가 저항과 지속의 도구임을 재확인하는 일이다. 이렇게, 동시대 예술가들은 자수를 정적인 공예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로 재창조한다.
하지만 타트리츠도 전유를 다 피하지는 못한다. 팔레스타인 문양들은 종종 그 맥락에서 뜯겨 나가 “중동풍”, “지중해풍”, 혹은 그냥 “에스닉”한 문양으로 팔리곤 한다. 미감은 남겨지지만 사람들은 지워진다. 이 또한 삭제다.
하지만 실은 저항한다. 아는 사람은 이 문양들을 알아본다. 기억은 공식적 인정 너머에서, 제도의 부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머니에게서 딸에게로, 여러 마을에서 디아스포라로 전해진다. 이 이야기들은 마치 — 특히 구술 전통의 — 시처럼, 손으로는 물론 목소리로도 전해지면서 대대로 말해지고 기억되고 재구성된다. 제도에서는 아카이빙되지 못하는 것들이 리듬과 반복, 호흡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간다.
타트리츠는 근본적인 진실 하나를 알려준다. 역사는 문서 속에서만 살아남는 게 아니라는 것. 역사는 실천과 반복, 돌봄 — 그 기능이 공격당할 때에도 그것을 버리지 않는 것 —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타트리츠가 주는 것은 종결이 아니라 지속이다. 파드와 투칸Fadwa Touqan은 대표작 〈나는 그것으로 족하네Enough for Me〉에서 “녹아 스러져 그녀의 흙이 되었다가 / 한 송이 꽃으로 움트”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의 시어들은 땅과의 육체적 유대를 영원한 귀환과 재탄생의 순환으로 전환함으로써 기억을 보존하고 팔레스타인과의 관계가 언제까지고 새로이 이어질 수 있게 한다.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천에 시를 바느질해 기억으로 옮겨 쓰는 한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우리를 잊으려 전심전력을 다하는 세상에서 수고를 멈추지 않는 그들의 손은 타트리츠를 하나의 아름다운 저항으로 만든다. 시와 마찬가지로 타트리츠는 삭제가 노리는 곳에서 창조에 임한다. 시와 타트리츠 모두 부재를 존재로, 침묵을 스러지지 않는 무언가로 바꾼다. 리파트 알아리르Refaat Alareer는 “내가 죽어야 한다면 너는 살아서 내 이야기를 전해”라고 썼다.[역주2] 생존 자체가 이야기하기의 행위가 됨을,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시와 저항 모두를 이어가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는 말이다.
↥역주2 리파트 알아리르, 류송 번역, 〈내가 죽어야 한다면〉, 《팔레스타인 시선집》, 접촉면, 202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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