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Walid Daqqa, “Free Yourself By Yourself,” The New York War Crimes.
* 아랍어 원문은 이것인 듯하다.

38년간 옥고를 치른 자유 투사 왈리드 다카는 최근 그에게 가해진 억압에 맞서 이 글을 《알-하다트Al-Hadath》 신문에 실었다. 그는 시온주의 감옥에서 죽임 당하기까지 자의적인 이감, 고립, 면회권 박탈 등의 고초를 겪었다. 지식인으로 활동하고 정액을 밀반출해 아내 사나 살라마Sanaa Salama와 2020년 2월 3일에 딸 밀라드Milad를 낳은 데 대한 벌이었다. 옥중에서 세 번에 걸쳐 송고한 이 글에는 민족 해방 기획과 국가 건설 기획 사이에 끼인 채 무너져 버린 팔레스타인 민족 정체성을 재건할 단결의 정신을 되찾는 데 필요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참여 문학의 문화가 기울고 이미지와 단문의 소비를 특권적인 위치에 놓는 문화가 선호되는 시대에 감옥에서는 전자의 중요성이 커진다. 감옥에서는 이 깊은 문화가 수감자 개개인이 꺾이지 않고 버티기 위한 도구로 기능한다. 한편으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라는 기술의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어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발전이 수감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런 현실을 직시해야 함을 점점 더 깨달아서기도 하다. 현대성은 간수들 — 현대적 도구들과 복잡한 인간 공학에 기대어 그들을 가두고 억압하는 이들 — 을 통해 수감자들의 세계에 흘러들어온다.
민족국가의 현실에서는 현대적 시스템들이 그 주권과 교육과정 통제 능력을 약화시키고 그 문화적 프로그램들에 — 세계화의 압박으로 인해 — 사회를 파편화하고 그 응집력을 약화시키는 가치들을 도입했다면, 수감이라는 맥락에서는 그런 도구들이 감옥을 총제적 감시와 압박이 이루어지는 폐쇄적 기관으로 변모시켰다. 낡은 민족 담론으로 분명히 식별하거나 대적할 수 있는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고 말이다. 약해지거나 고통을 겪는 원인은커녕 인권 단체들이 기록할 수 있을 폭력으로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물리적 현실이 약해지고 싸울 때의 선택지가 단순해지면, 시야가 분명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당신의 적이 온갖 과학적 수단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앞에서 물리적으로 패배해 바닥에 쓰러지고 그들을 마주볼 수 없게 된다. 더 심하게는 당신의 패배나 약점을 설명할 수도, 심지어는 비명을 지를 수조차도 없게 된다. 해방 운동 같은 민족적 조직적 도구가 없을 때 개인인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파편화되고 흩어지기를 거부하는 것, 당신의 서사를 고수하는 것, 당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도록 남들 앞에서 외치기 전에 그것을 되뇌는 것 뿐이다.
민족운동가로서 우리가 한때 마주한 것이 민족 운동의 도구와 담론을 이용하는 정보원들, 요원들 — 식민주의와 점령의 끄나풀들 — 이었다면 (“송곳니가 난 / 개 아부 나브Abu Nab” 단계), 이 포스트모던 점령 국가에서 우리는 조작을 통해 의식을 개조하고 개개인의 머릿속에 잠입하려는, 점령자의 연장을 써서 그들을 점령자가 원하는 곳으로 흘러가게 하려는 시도들을 마주한다 (“하이에나 단계”). 옛날이야기에서 하이에나는 당신을 단숨에 집어삼키지 않는다. 우선 최면을 걸어 의지와 의식을 잃고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지경이 되게 만든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하이에나굴에 끌려와 벽에 머리를 부딪고는 피를 흘리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다른 어디도 아닌 머리에서 흐른 피는 정신을 차리고 도둑 맞은 의지를 되찾아야 함을 상징한다.
이런 의미에서, 해방이라는 기획과 대비되는 자유라는 가치는[역주1] 포스트모던 시대의 점령 하에서 새로운 의미, 의지의 조건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큰형(조지 오웰)을 흉내 내고 그의 말을 주워섬기고 그의 제품을 소비하려 드는 통에 그는 감시자가 되어버렸다. 당신은 생방송으로, 기꺼이 그리고 공개적으로, 더없이 내밀한 속사정을 점령자에게 털어놓고 자유를 헌납하면서 자신이 자유를 실천하고 있다고 망상한다. 실상은 그저 최면에 걸려 점령자 뒤에서 그의 말을 따라하고 있을 뿐이다. 그를 “아빠”라고 부르면서.
오늘날 수감자 운동이 경험하는 포스트모던 감옥은 더욱 복잡해져서, 우선 감옥을 해체하고 현실로서 이해해야 고문이나 고통을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수감을 직시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전보다 더 정신에 주목하는 섬세한 도구 혹은 담론 혹은 문화가 필요하다. 근대에는 특히 감옥 간수는 몽둥이를 휘두르고 수감자는 손목에 수갑을 찬, 더없이 분명하고 단순한 모습이었던 아랍 독재 국가들에서는, 구분이 분명했다.
“우리”와 “저들”의 거리가 — 간절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아몬드 꽃이 피지도 단풍이 지지도 않는 — 감옥의 겨울과 여름이 다른 만큼이나 분명할 때, 그런 확실성은 매혹적이고 안심을 준다. 진지한 재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기를 높이고 끈기를 독려하며 집단적 담론에 안주한다. 이 길이 옳다는 데에는 증거가 필요치 않다. 족쇄 만큼이나 분명한 문제다. 집단적 담론은 그 본성상 이데올로기적, 감정적으로 강렬하며 그 어휘의 초점은 주로 물리적 끈기다. 따라서 정치 문화를 선악의 문화로 단순화하고 투쟁을 단 하나의 형태로 축소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출발점이 된 토대적 서사와 거리를 두고 민족국가 쪽으로 끌리게 되는 듯하다 — 고국과는 멀어지면서.

이스라엘 감옥의 포스트모던 시대에 감방이 그 기능의 일부 — 빛의 박탈과 고립 — 를 내려 놓으면서도 세 번째 기능 — 어두운 지하 동굴에서 족쇄를 채워 수감자를 숨겨두지 않으면서도 그에게 햇빛을 내어주지 않는 수감 — 은 유지할 때, 이것은 감옥이 덜 끔찍하거나 잔인한 곳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초점을 바꾸어 수감자의 몸이 아니라 정신을 겨냥한다는, 그의 정신을 문자 그대로의 감방으로, 그의 감각을 고문 수단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리고 수감의 새로운 의미 — “스스로 스스로를 고문하라”라는 말로,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오는 “스스로 스스로를 교육하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 에 비추어 볼 때, 수감자 운동에서 교육은 민족적 끈기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개인적 끈기의 도구로서, 그리고 정신과 심리의 균형을 유지해 첫째로 인간이자 도덕적 가치로서의, 둘째로 민족적 가치로서의 자아를 보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중요성을 띤다. “네 적을 알라” 문화 같은 분파적 문화 담론이 오슬로 협정 이후 거의 사라졌으며 남아 있는 것도 더는 민족의 현실, 특히 수감자들의 현실과 그 복잡성을 설명해 주지 못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1980년대 말에 제 분파에서 민주집중제의 원칙에 기반해 수감자들에게 제공했던 교육은 가까이서나 멀리서나, 해안에서부터 안전한 고국땅까지, 우리의 방향을 일러주는 신호였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그래 보였다. 정치가 아직은 경제와 분리되지 않았던, “해방 운동”이라 불렀던 민족적 구조물 속에 개인의 가치와 집단의 가치가 아직 서로 얽혀 있었던 시절에 우리에게는 확실성이 있었다. 한때는 제 분파가 마치 민족국가와 같이 각자의 신념을 구성했다. 하지만 그런 신념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제를 택하고 그 역사적 기능들을 저버렸다. 시민들을 각자도생의 운명에 내버려두고 민족 정체성 형성이라는 역할을 저버렸다. 포스트모던의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오늘날, 문화는 각자의 신념을 찾는 개개 수감자들에게 나침반 혹은 GPS와도 같다.
민족 해방 운동은 그렇게, 오슬로를 택하며 제 역할을 저버렸고, 국가 지위를 위해 고국땅을 포기했다. 그 결과 해방과 주권이 고국땅과 역사적 서사를 갉아먹고 있다. 안보를 들먹이는 박해로 인해 자유가 사라져버렸다. 이는 감방 안에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바라보는 수감자를 혼란에 빠뜨렸다. 민족 정체성 고취라는 과업을 각 수감자 개인의 할 일로 바꾸어버렸다.
정체성이란 비록 상상적인 것, 어떤 이들의 말대로 “집단적 상상”일지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확실성이자 우리가 민족으로서, 현실이 이해불가능한 것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 감옥에서는 이성적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보루다. 정체성은 당신의 ‘자아’와 정체성을 생산하며 그것에 새로운 도덕적, 민족적 의미를 부여해 미친 현실의 그림자 속에서도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당신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자신의 힘과 집단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당신을 좌절시키고 미치게 만드는 당면한 팔레스타인의 집단적 현실에 따라서가 아니라 당신의 정신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성을 생산하고자 하는 상상들에 따라서, 당신의 집단적 유대를 새로 쓴다. 단식 농성 끝에 몸에는 아무 기운도 남지 않고 오직 이성적 의지만이 남아 있을 때, 계속했다가는 확실히 죽을 것이기에 곡기를 끊기를 그만두는 것과 같다.
여기서 수감자들은 글 없이 경험을 발견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의 피부로 배운다. 그런데 이런 깨달음이 형성하는 것은 내면의 자아다. 간수 혹은 점령자에게 협력하면서는 “밀가루 없이는 토라Torah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둘 사이의 딜레마를 해소하려 애쓰다 수감자는 두 형태의 사유 — 도구적 사유와 영혼, 마음, 도덕의 필요성을 포괄하는 이성 — 을 형성하는 빵과 토라 사이의 이 같은 긴장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이제는 고국을 규정함에 있어 다원성이 파괴적 힘이 아니라 건설적 힘이 된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슬람주의자에게, 종교적인 이는 세속적인 이에게 — 타자를 부정하지도 악마화하지도 않는, 서로가 공유하는 진실이라는 핵심을 함께 만들 가능성을 열어주는 정체성이라는 틀 속에서 — 다가간다. 이런 맥락에서, 그런 의식을 형성하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과 현실로 만드는 데에 학술 학습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옥중에서 정체성을 고취시키는 문화적 텍스트는 반드시 글로 쓰인 텍스트는 아니다. 오히려 수감자들이 집단적인 민족적, 도덕적 가치를 재생산하는 일련의 일상적인 행동이나 태도인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 그들은 정체성의 경계를 확장하고 수감자라는 존재를 “살아 있는” 텍스트로 만들며 서로에게 열려 있는 책이 되어 서로를 주고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이란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며, 집단적 차원을 갖는다. 수감자가 자기 자신의 텍스트인데 그를 글로 쓸 수 있는 팔레스타인 지식인이 없을 때 — 인내의 거인과 그 장군들이라는[역주2] 수사를 떠났을 때 — 지식인 수감자는 광경인 동시에 그것을 보는 이가, 고문 당하는 이인 동시에 그 고문을 알리는 이가, 추상인 동시에 세부가 된다. 어려운, 종종 거의 불가능해 보이곤 하는 과업을 맡게 되는 것이다.
감옥 당국이 수감자들의 학술 교육을 금한 것은 그저 제한이나 보복이 아니라 — 어느 정도는 그렇긴 했지만 —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히브리방송통신대학교에, 나중에는 아부 디스Abu Dis에 있는 알-쿠드스대학교Al-Quds University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대학교들에 입학하는,[역주3] 감옥으로서는 그들의 영혼을 훔치고 텅 비워버리기를 바라는 시간을 책과 팸플릿에 파묻혀 보내는 모습에 경각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학술 학습은 수감자들에게 자신들의 현실을 직시할 과학적인 도구를 제공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사회과학, 정치학, 국제 관계 같은 분야들의 이론을 접했다. 구호나 이데올로기적 수사와는 거리가 먼 이런 학습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팔레스타인을 위해 싸워 왔는지, 동지들에 어떤 팔레스타인을 위해 순교했는지를 깨달았다. 전에는 온전히 몰랐던 것들이었다. 문화적, 민족적 결집이 불가능한 감옥에서 학술 학습이 의식의 수호자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습은 팔레스타인이 분열된 상황에서 의식의 왜곡을 막아주었고, 학생 수감자들은 팔레스타인의 분열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온갖 분파 소속의 수감자들이 모이는 학습 모임은 민족 문제를 객관적으로 토론하고 민주적 대화를 연습할 자리가 되어 주었다. 또한 이스라엘연구 석사과정 — 유창한 히브리어 실력을 요하는 — 은 안보·군사 지식에 국한된 ‘네 적을 알라’ 렌즈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식민 기획 너머에 있는 지적·종교적 토대를 이해함으로써 ‘타자’를 이해할 기회를 주었다. 그럼에도, 특히 이런 경험이 하다림 감옥에 국한되어 있기에, 전체 수감자 수에 비해 학생 수감자는 여전히 소수 엘리트에 지나지 않으며 아직 민족 운동과 수감자 운동의 방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주
↥역주1 왈리드 다카 인터뷰 〈34년째 수감 중인 왈리드 다카: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을 분열시켰고, 지도부는 민중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베이루트 함무드, 2019) 참고.
↥역주2 수감된 투사들을 이르는 말. “옥중의 지도자”, “불굴과 인내의 장군”(위의 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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