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Susana Khalil, “Palestine: Decolonizing the Lexicon,” Orinoco Tribune, 2026.05.05.
이 글은 고백이자 증언이다 —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인의. 어린 시절 나는 사람들이 제국주의에 맞선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민족 해방이라는 대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저 코흘리개 꼬마일 뿐이었던 나는 그들이 모르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알게 할 방법을 몰랐다. 어린시절은 내게 눈물이라는 숭고한 선물을 주었고 나는 울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고통을 안다는 것을 알지만, 쉰여덟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유럽중심 식민주의적 시대착오에 맞선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민족 해방이라는 대의를 이해시킬 길을 모른다.
오늘날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유럽중심 식민주의적 시대착오의 종식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용서 받지 못할 일이리라. 지금은 역사적인 기회요 역사적인 도약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용어들을 탈식민화해야 한다.
1부
우리가 안락하고 매혹적인 식민적 유럽-시온주의 미학에 사로잡혀 있는 한, 취해 있는 한, 유폐되어 있는 한, 대중great multitude은 — 고통스러움에도, 그리고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native Semitic Palestinian people에게 연대함에도 불구하고 — 기만적이게도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시대착오적 유럽중심주의적 식민주의에 맞선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민족 해방이라는 대의의 근간과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말과 글의 공간을 탈환하자. 어휘를 고쳐 쓰자. 멍에를 벗어던져야, 우리 스스로를 해방해야, 용어들을 탈식민화해야 한다.
다음 두 가지에서 출발해 보자.
- “유대민족Jewish People”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슬림민족Muslim people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신론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 1948년에 팔레스타인에 떠맡겨진 “이스라엘”은 성경의 이스라엘과는 관련이 없으며 셈계도 아니다.
새로운 용어를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는 용어를 쓰려는 것이다. 그래야 명확히 밝힐 수, 분명히 설명할 수, 정의할 수, 교육할 수, 방향을 잡을 수,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팔레스타인 대의를 추상의 영역에서 끌어낼 수 있다. 보기 좋은 포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추상적인 미학은 우리를 굴종하게 만들며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구체적인 단어의 우주를 기름지고 비옥한 지식과 이해의 장으로 삼자는 것이다.
대중에게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확하고 실체에 부합하는 용어 말이다. 대중에게는 팔레스타인을 해방할 힘이 있다.
우리 고유의 어휘와 용어를 제시하고 설명하자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유럽중심 식민주의적 시대착오로부터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을 해방하기 위한 투쟁에 임함에 있어 나는 용어, 단어, 직설적이고 솔직하고 분명한 문구들의 목록 혹은 사전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세계의 시민들이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대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알 수, 배울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존재에 깊이 박혀 있는, 바이러스처럼 주입되어 있는 여러 용어들, 문구들을 무너뜨려야, 제거해야 한다.
추상적 주체는 검열하는, 매력적이고 효과적으로 무지를 조장하는 정교한 수단이며 식민주의를 강화한다. 가장 고약한 것은 바로 이 추상화 — 선동적이고 인위적이며 조악하고 어설프고 어리석은 — 가 학자들이 젠체할 수 있게, 지식인들이 우아를 떨 수 있게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아래의 용어집을 제안한다.
2부
용어집
1.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이스라엘”이라는 용어에는 무의식적으로는 혹은 의식적으로 감정적인, 매력적인, 인상적인, 매혹적인, 숭고한, 거룩한, 사랑스러운, 시적인, 황홀한, 흥미를 끄는, 신성한, 서사시적인, 애정어린 함의가 담긴다. 서구 복음주의 및 가톨릭의 층위에서만이 아니라 비종교적, 세속적, 진보적, 좌파적, 심지어는 무신론적 영역에서도 그렇다. 지적 영역에서는 물론 헐리우드나 그 파생지들에서도, 또한 너무나 안타깝게도 과학적이어야 할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영역들이 1948년 “이스라엘”이 성경 감성의 이스라엘이라 믿도록 유도되고 조종 당했다.
주
요점: 1948년에 유럽과 유럽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떠넘긴 “이스라엘”은 성경의 이스라엘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요점: 1948년에 유럽과 유럽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떠넘긴 “이스라엘”은 셈계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 위장을 걷어내야 한다.
제안: 결코 그냥 “이스라엘”이라고 말하지 말라. 반드시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
- “이스라엘”이라는 식민주의적 시대착오. 갈등이 이미 설명된다. 또한 추상에서 끄집어내어 진다.
- “이스라엘”이라는 유럽중심주의적 식민 체제. 팔레스타인 대의가 무엇인지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추상에서 끄집어내어 진다.
- “이스라엘”이라는 유럽중심 식민주의적 시대착오. 팔레스타인 대의가 명시적으로 요약되고 설명된다. 혼란을 주고 추상적인 종교적인 갈등, 수천 년 묵은 갈등[이라는 틀]로부터 끄집어내어 진다. 혹은 구출된다. 그간 이어져 왔으며 그다지도 강력한 온갖 잡소리들로부터.
- 이 기초과정에서는 팔레스타인 대의가 무엇인지를 암묵적으로 설명해 주는 두 가지 요소가 분명해지며, 동시에 팔레스타인 대의가 추상으로부터 끄집어내어 진다.
주: 두 가지 요소
- 이것은 추상과 거리를 두는 일인 동시에 지금의 “이스라엘”이라는 시대착오, 유럽중심주의, 식민주의로부터 성경 속 이스라엘의 매력과 정서를 끊어내는, 분리하는, 구별하는 일이다.
- 실체적이고 구체적이고 정확할 것. 전도傳導하고 지향하고 인도할 것. 시대착오, 유럽중심주의, 식민주의 같은 기술적記述的인 개념들을 수식어로 써서 설명하고 이해시킬 것.
주: 통사론적으로나 입에 올릴 때나 어려움이 수반되도록 이 말은 반드시 반복적으로 써야 한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도전을 피하지 않고 미학적 굴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스라엘”의 다른 표현들
2. “이스라엘국State of Israel”
“이스라엘”은 국가가 아니라 식민 집단colonial entity이다.
대안적 용어:
시온주의 집단 혹은 집단. 이것이 정확한 표현이지만 쓰는 사람이 많지 않으며 대중과 접점이 없다. 여전히 이 분쟁을 보다 깊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쓰인다. 우리는 대중에게 가닿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대중이 분명하고 정확한 어휘를 늘리고 재생산하게 해야 한다. 대중이 유럽중심적 식민주의에 맞서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대의를 설명하고 널리 알리게 되는 것이다.
주: 무분별한 일로 여겨지지만, 두려워 말고 식민체제라 칭해야 한다.
3. 이스라엘인Israeli는 이스라엘 민족Israelite이 아니다.
[주로 성경을 통해 이야기되는, 고대의] 이스라엘 민족은 — 역사, 우화, 전설, 혹은 신화적으로 — 레반트 지역 셈계에 속한다. 오늘날 셈계 아랍-팔레스타인인의 선조 중 하나다.
4. “테러리스트” “국가” “이스라엘”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려워 말고, 국가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 “이스라엘”이라는 테러리스트 식민 집단
- “이스라엘”의 식민-테러리즘
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주: 물론 통사론적으로나 입에 올리기에나 복잡하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5. 인종학살 “국가” “이스라엘”
인종학살 집단은 맞다. 하지만 국가는 아니다. 인종학살은 식민화의 전개에 내재하는 근본 성격이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가 아니다. 이는 인종학살의 현실을 설명하고 특정하고 정확히 짚어낸다. 이 인종학살 집단의 형식만이 아니라 식민적 배경까지 드러내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 인종학살적 성격은 팔레스타인 선주민에 대한 식민적 본성에 따른 것이다.
6. 아파르트헤이트 “국가”
국가가 아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다. 아파르트헤이트 범죄가 모든 식민화에 내재하는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식민 집단의 본성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목적이 아니라 식민화, 절멸 과정의 수단이다.
주: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이 아니라 식민주의의 종식을.
“1948년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식민주의과 연결되어야, 식민주의로 설명되어야 한다.
식민이라는 용어가 입말에서나 글말에서나 가장 정확하고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말이다.
7. 영아살해 국가
국가가 아니다. 식민주의적 시대착오다. 영아살해 체제인 것은 맞다. 그리고 이 영아살해는 식민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민족으로부터가 아니라 민족을 가장하는 운동으로부터 나온, 선주 인구를 절멸시켜야만 하는 식민주의에의 강박이 있는 는 가부장제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선주민이 독립을 이룩하면 식민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고전적 식민주의에서와는 달리 이 식민자는 민족(고향땅)에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식민자는 선주민을 절멸시켜야만 한다.
주: 우리의 단어 목록에서 국가라는 용어를 지워야 한다. 1947년 국제연합 결의안 181호[팔레스타인 분할 결의안]는 식민주의를 인정하지만 그것은 불법적이고 위법적이며 부도덕한 결의안이자 조롱이고 모욕이다. 횡포다. 국제연합에는 세계 어느 민족의 것이든 영토를 분할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국제연합의 역할은 그 반대편에 있다. 제 민족의 주권, 영토, 인권을 보호하고 방어하고 보장하는 것 말이다.
8. “유대민족”
“유대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교가 있을 뿐이다.
“유대민족”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다분히 이상하고 기만적인 개념이다. 식민적 배경을 숨기고 식민 확장주의적 시대착오를 미화하는 사기다.
한쪽의 “허상”을 다른 한쪽에 강요하는, 인식론적 살해epistemicide다.
간단하다. 유대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슬림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독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신론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민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후략.
주: 동시에, 그 믿음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불합리하고 터무니 없고 역행적인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21세기에, 세속적 가치들에 함께, 민족적ethnic 뿌리가 아니라 종교에서 뻗어나온 민족people이 있다고 믿으라고 하다니, 그 믿음을 조작해 “유대민족”이 민족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려 하다니 말이다.
1948년에 팔레스타인에 들어앉은 “이스라엘”은 역사 조작이다.
10. “히브리” 군대와 “히브리” 언론
매력적이지만 이상하고 기만적인 개념이다. 히브리는 셈계다. 현재의 점령군은 히브리 군대가 아니라 식민 군대다. “히브리 군대”라는 말을 재생산하면 이 식민자들이 고대의 히브리 민족이라고 인정하는 꼴이, 역사 조작을 재생산하는 꼴이 된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고전적 식민주의에서와 같이 한 민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운동에서 비롯된 식민주의임을, 민족이 아니기에 선주민족의 역사와/나 신화를 가져다 쓰는 것임을 명심하자.
11. 유대 기원Jewish origin에 관하여
매력적이고 이상하고 사칭적인 개념이다. 유대 기원을 가진 사람은 없다. 무슬림 기원을 가진 사람은, 기독교 기원을 가진 사람은, 무신론 기원을 가진 사람은, 공산주의 기원을 가진 사람은, 자본주의 기원을 가진 사람은 없다.
“그는 유대 기원이다”라는 말은 출신 민족a nationality, a people, a nation, an ethnicity을 함의하지만 실상 그것은 종교적 신앙일 뿐이다.
나아가, 이 말에 담겨 있는 불합리하고 역행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알리고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역사 조작에 기여하는 저 말의 식민적 성격을 무너뜨려야 한다.
12. 유대 민족주의Jewish Nationalism 및/혹은 민족적 시온주의National Zionism
매우 매력적이고 잘 먹히지만 몰역사적일 뿐더러 이상한 말이다. 유대 민족주의에 관해 이야기하다가는 종교 공동체를 민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매력적인, 유사과학적인 조작이다.
13. 현대 이스라엘
매력적인, 이상한, 기만적인 표현이다. 과학적으로 부족하다. 완전히 엉터리다. 그럼에도 인상적이어서 효과가 상당하다. 현재의 이스라엘(1948)은 인도-유럽계 식민이다. 고대 이스라엘은 셈계였다.
14. 유대 디아스포라/떠돌이 민족Wandering People
낭만적인, 그래서 먹히는 표현이다. 이상하고 기만적인 말이다. 무슬림 디아스포라도, 기독교 디아스포라도, 무신론자 디아스포라도, 마르크스주의자 디아스포라도, 노동자 디아스포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이 그저 불합리한 말이 아니라는 것, 매력은 둘째 치고, 이 터무니 없는 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며 범죄의 도구로 쓰인다는 점이다.
15.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평화를.
오슬로 협정 이후 일부 팔레스타인인들은 더 이상 팔레스타인 해방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런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 나는 평화를 원해, 유대인들과 함께 살고 싶어.
평화라는 말은 매우 강력한 동시에 기만적이다. 선good과 이어지는 말이며 그렇기에 쉽게 악용되고 물신화된다.
추상적인 평화는 마취제에 불과하다. 무력화한다. 평화는 훌륭한 가치이기는 하지만 식민 시온주의 미학에 의해 가장 많이 악용된 것 중 하나다.
16. 두 국가
유럽중심주의적인 안이다. 식민주의적인 방안이다.
덫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유럽중심 식민주의적 시대착오는 두 국가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기획이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 아랍반도 일부, 이란 일부, 이집트 일부를 집어삼키려는 확장주의적 “대이스라엘” 기획임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선주민 절멸에 기여하고 아랍-페르시아 세계의 존재를 위협하는 허울 좋은 말을 무책임하게 믿을 수는 없다.
이 허위적 유럽중심주의적 식민적 두 국가 안은 다리를 잘라버리기 위한 진통제다… 식민자들이 절멸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카드다.
세상 어느 나라가 영토의 45%를 내어주고는신이 약속한 땅이라는, 혹은 “이천 년이 지나 선조들의 땅으로 돌아온다”는 주장에 끝내 영토의 80%를 빼앗기는 데 동의하겠는가?
17. 민족-종교적. 민족성애적ethnosexual, 민족축구ethnosoccer
“민족-종교적”이라는 말은 이상하고 기만적이며 비과학적이다. 물론 매력적이기는 하다.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유럽중심 식민적 시대착오를 정당화, 미화한다.
민족종교를 이야기하는 것은 민족성애, 민족축구를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8.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독립”
1948년 5월 14일이 “이스라엘 독립”의 날이라 말하는 것은 역사에의 잘못이며 더없이 교묘한 역사 조작이다.
1948년 5월 14일은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유럽중심주의적 식민 시온주의 운동이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을 식민화한 날이다.
이 식민사업은 유럽인들 중에서도 영 제국과 시온주의의 완벽한 협동을 통해 현실화되었으며 이미 1907년(배너먼 보고서Bannerman Report), 이어서 1917년(발푸르 협정Balfour Agreements)을 통해 계획된 것이었다.
1948년 5월 14일은 알-나크바의 날, 재앙의 날, 유럽 파시트스 식민 시온주의 운동이 오랜 아랍-셈계 선주민, 팔레스타인 민족을 추방한 날이다.
19. 수천 년 묵은 갈등
매력적인, 이상한, 그리고 기만적인 표현. 이것은 수천 년 묵은 갈등이 아니라 지금의 갈등이다. 유럽에서 태어났고 (세계대전이라고 잘못 불리는) 제2차 유럽대전 이후에 — 유대 홀로코스트라는 유럽의 제 잘못 탓으로 — 현실화되었다. 서구의 이익에 복무하는 “군사 기지”로서의 식민 집단을 레반트 지역에 건설하는 유럽 식민 논리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20. 종교 갈등
“이스라엘”을 사칭하는 식민주의에 맞선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의 민족 해방이라는 대의는 종교적 대의가 아니다. 정치적이고 [반]식민주의적인 대의다.
주: 아랍-페르시아 세계를 종교적 사안으로 축소하는 “분석”이라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이는 무고하지 않다. 우리 21세기에 벌어지는 시대착오와 유럽중심주의적 식민의 야만을 은폐하는 데 복무한다.
그런 분석에서 아랍-페르시아 세계는 종교적 상품으로 축소된다. 과도한 단순화요 무능이며 선동이다. 이런 관행이 괜찮아져 버렸다.
끔찍한, 조악하고 불합리한 지독한 장막이다. 이 불합리가 셈계 팔레스타인 선주민을 절멸하는 근거가 된다. 우리에게는 인간적 사고가, 사유라는 행운이 없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이 떠오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대의를 잘못 아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울곤 했다. 수많은 가식적인 학자, 지식인, 분석가, 정치인이 사유를 포기하는 것이, 그들을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만든다.
스페인어 원문: Al-Mayadeen
서영 번역: 《오리노코 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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