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주의가 동성애를 이용하는 데에 처벌 제도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무사 샤디디, 2018)

원문: Musa Shadeedi, “The Employments of the Punitive System in Zionism’s Exploitation of Homosexuality,” Kohl: a Journal for Body and Gender Research Vol. 4 No. 1, 2018.

2005년에 이스라엘은 이 시온주의 집단을 지지하는 미국 고위 인사들과 협력해 18세에서 34세 남성을 겨냥한 “브랜드 이스라엘”이라는 마케팅 캠페인을 발족했다. 《주이시 데일리 포워드Jewish Daily Forward》에서는 이 캠페인이 이스라엘이 “현대적relevant and modern”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고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게이 남성을 이용했다.[1] 핑크워싱 캠페인은 이렇게 탄생했다. 2010년에는 이스라엘의 인터넷 언론 사이트 《예디오트 아흐로노트》에서 텔아비브관광위원회가 텔아비브를 “전 세계 동성애자의 휴가 행선지”로 홍보하는 데에 9,000만 달러 가까이를 들였다고 보도했다.[2] 관광부와 합중국 주재 이스라엘 영사관들에서는 이 캠페인을 지원하고 게이 영화제들에서 상영되는 친이스라엘 영화에 자금을 댔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는 중동을 “여성은 석살형, 남성은 교수형, 기독교도는 박해 당하는” 곳으로 칭했다.[3] 이 캠페인을 광고, 매체, 영화제로 제한하지 않고 정치 연설로 힘을 실은 것이다. 사법 체제로 인한 아랍어권 동성애자들의 고통을 이용해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넓게는 시온주의 점령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축소하는 수사였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선 전 지구적 운동에서는 점령 기구들이 인권 담론을 이용하는 현상을 “핑크워싱”이라 부른다. 현대적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어 팔레스타인인 권리 침해와 시온주의적·제국주의적 점령을 은폐하는, 게이의 권리를 이용해 먹는 잘 설계된 전략을 가리키는 말이다. 핑크워싱은 이스라엘을 중동 게이들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동성애를 보호하고 관용하는 유일한 국가로 제시한다. 역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은 게이들이 텔아비브로 피신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폭력적인 동성애혐오자로 묘사한다.[4] 이 시온주의 집단은 텔아비브를 팔레스타인 동성애자들의 집이 되어 줄 곳으로 묘사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국제 사회를 겨냥한 화이트워싱된 이미지에 경종을 울린다. 정작 많은 [유색인] 이스라엘 게이들은 북유럽의 여러 도시로 이주하고 있다.[5]

2017년에 텔아비브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레바논 밴드 마쉬루아 레일라Mashrou’ Laila 콘서트에서 무지개 깃발을 올렸다가 동성애자 33명이 체포된 것을 기회로 삼아 “연대” 파티를 열었다. 레바논 BDS운동에서는 이 파티를 핑크워싱으로 간주했다. 시온주의의 핑크워싱은 아랍어권 국가들의 처벌 제도를 이용해, 동성애에 “공감sympathy”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라 여겨지는 이스라엘과 달리 우리는 “후진적”이라는 담론을 구성한다.

이 글에서 제시되는 증거들은 시온주의 담론이 팔레스타인 사회의 동성애 행위를 이용하는 패턴이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 이래로 변화해 왔음을, 역내 여러 가지 정치적 변화의 영향을 받아 왔음을 보여준다. 이 글은 현재의 핑크워싱이 어떻게 점령 하에 있는 한 민족 전체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데에 쓰이고 있는지에 더해, 이스라엘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에 기여한 변화들, 거기에 동원된 방법론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오프리 일라니는 「초기 시온주의 담론의 소도미 재현: 동방의 악」에서 영국 위임통치 시기(1920-1948), 즉 이스라엘 건국 선언 이전의 팔레스타인 내 동성애에 대한 히브리어 문헌을 살펴본다. 1930년대, 1940년대, 1950년대에 팔레스타인에서 출간된 가장 중요한 히브리어 의학, 범죄학 문헌들이, 어떤 식으로든, 동성애 행위를 하는 동방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예로, 히브리대학교에서 동성애를 면밀히 연구해 1947년에 『청소년 방임Youth Neglect』을 출간한 범죄학자 카를 프랑켄슈타인은 이 책에서 나블루스 남성들이 동성애 행위를 하는 경향을 눈여겨 보았다. 그는 또한 “동성애 범죄가 흔하다”고, “성적 범죄”는 유럽 배경 청년보다 동양 배경 청년들 사이에 더 만연하다고 주장했다.[6]

“게이 클럽” 묘사는 이톤 메유차드가 1934년 1월에 발표한 「텔아이브 지하세계에서」라는 글에 등장한다.[7] 유대 사회에 퍼진 “이상anomaly”을 설명하기 위해 그녀는 “이 이상들은 동양에서 더 흔하다. 젊은 남성들이 공공연히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볼 수 있다. 자파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텔아비브에 가서 즐기기도 한다”고 쓴다.[8] 이 사례 외에도,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럽고 받아들여지는 일이었음을, 그러나 당대 히브리어 문헌에서는 시온주의 사회에 위험을 가하는 “유행병”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주는 히브리어 문헌이 많이 있다. 게이 공동체와 “연대”한다는 오늘날 텔아비브의 주장과는 완전히 반대다. 지금 게이 남성들에의 지지로 그려지는 것들은 팔레스타인 민족과의 대대적인 연대를 막기 위한 것이다.

점령 집단은 그런 견지에서 정책을 수정해 왔다. 신생 이스라엘 점령 국가의 경찰은 “비정상적 성행위”를 범죄화한 1948년 이전 영국 위임통치법을 보완하는 정책들을 활용해 동성애자로 의심되는 이들은 전부 체포했다. 《예디오트 아흐로노트》는 1949년 9월 5일자 기사 〈오늘밤 텔아비브에서 많은 외설 행위가 벌어졌다〉라는 기사에서[9] 그루첸베르크 거리 공중화장실 불시 단속으로 경찰이 “16세 소년을 상대로 남색 행위를 한, 조지5세 거리 주민인 33세 남성”을 적발했다고 보도했다. 이때 경찰은 텔아비브의 공원들에서 “그 늦은 시간에 땅바닥에 누워 있은 이유를 경찰에게 설명하지 못한” 젊은 남성 네 명도 체포했다. 몇 주 후에는 몇 명의 젊은이가 마푸 거리의 한 아파트에 침입해 주인을 경찰에 넘기며 그가 “자신들에게 남색 행위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10] 동성애 신체들을 겨냥해 처벌 제도를 이용한다는 면에서 오늘날 이집트나 다른 아랍어권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공명하는 역사다.

하지만 하임 코헨이 법무장관직[(1950-1960)]에 올라 공개된 장소에서 혹은 미성년자와 동성애 행위를 한 경우에만 기소할 것을 권고하면서 체포는 현저히 감소했다.[11] 이 때는 노르딕 국가들에서 성적 권리 운동이 부상한 시기이기도 한데, 당시 점령국 고위직을 맡은 이들 다수가 노르딕 국가 출신이었으며 그들은 출신국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12]

1987년 제1차 팔레스타인 봉기 당시 이스라엘 정보 기관들에서는 대중 봉기 진압을 위한 정보원이 필요해졌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집안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만한 행위 — 혼전 섹스, 약물 사용, 절도, 동성애 등 — 를 한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점령 당국을 위해 일하도록 협박하는 것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좌파는 이를 크게 문제시 하지 않았고, 이에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동성애는 잠입, 정탐과 연결되어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13] 팔레스타인 동성애 신체들이 또 한 번, 이번에는 시온주의 정보 당국과 통제 장치들이 점령과 그 처벌 제도를 공고히 하고 점령을 무너뜨리려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투쟁을 진압하는 데에 쓰이게 된 것이다.

관련 담론은 제2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가 시작되기 전에 크게 달라졌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반대하는 캠페인의 형태를 띠게 되었으며 미국 매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스라엘 및 친이스라엘 “활동가”들은 자국 정부와 국가에 “억압당하는” 동성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는 “민주” 이스라엘이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전의 수사 — 그간 동성애는 이스라엘이 경시하고 두려워 한 동양적 속성이자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를 옹호하는 빌미였다 — 와는 반대였다. 이 “게이 난민”들과의 인터뷰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인사들이 가한 끔찍한 고문을 술회했다.

2002년 8월 20일에 《뉴 리퍼블릭》에는 요시 클라인 할레비가 쓴 〈난민 지위〉라는 기사를 실렸다. 아랍 땅과 달리 동성애자로 살 “자유”를 주는 이스라엘로 도망한 몇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글이었다. 이 기사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 게이들에게 가했다는 그로테스크한 고문이 묘사되어 있다. 한 달 후, 9월 13일에는 미국의 《예일 해럴드》에서 유대인인 다비 J. 번스타인이 쓴 〈팔레스타인인들은 아라파트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같은 취지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악랄한” 가혹 행위를 묘사한 글이다. 이스라엘을 “동성애자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중동 유일의 국가”로 칭송하기도 했다.[14] 사실, 팔레스타인 민족의 투쟁에 적대적인 이스라엘 담론에서 아무 의심 없이 동성애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런 글들 뿐만 아니라 일라니가 분석한 문헌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팔레스타인인을 “동성애 행위자”로 제시했던 담론이 방향을 틀어 현대에는 “동성애 자유의 적”으로 비난하는 것 뿐이다. 이 담론은 감옥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이용한다. 역사적으로는 동성 간의 행위에 참여한 이들을 이스라엘 감옥에 감금했고, 최근에는 팔레스타인 감옥에 갇혀 있는 게이 남성들을 들먹이며 “보호”를 가장해 그들을 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이스라엘 당국은 이 게이 “난민”들을 추방해 팔레스타인으로 돌려 보내려 했다. 이스라엘 게이 단체들은 해당 결정에 분노를 표하고 당국이 죽음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2003년 3월 6일, 《BBC》에서는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땅은 게이들에게 위험한 곳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을 “피난처”로 묘사한 〈게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다가온 생명의 위협〉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점령을, 바로 그 점령으로 인해 주변화되고 쫓겨난 이들을 위한 요람으로 그리려 한 것이다.

조셉 마사드가 《아랍 욕망》에서 설명한 대로 미국 게이들이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할까 두려웠던 친이스라엘 미국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동성애자 “박해”를 폭로한다며 시온주의적 공격을 시작했다.[15] 이런 변화들의 결과로, 핑크워싱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팔레스타인의) 동성애를 비난한 과거의 시온주의 담론과 (팔레스타인 및/혹은 아랍의) 동성애혐오에 반대하는 오늘날의 시온주의 담론은 한몸이다. 점령과 아프르트헤이트를 정당화하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한 민족 전체의 권리를 침해하는 시온주의 기획에 복무하는 담론이다. 과거에 이스라엘 감옥들이 동성애를 이용했다. 이윽고 동성애는 정보 당국에서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자유와 민족을 저버리고 스파이 노릇을 하도록 강요하는 데 쓰이는, 점령 당국을 위한 징발의 도구가 되었다. 제2차 인티파다를 앞둔 시기의 급진적인 변화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시온주의의 아파르트헤이트 처우를 정당화하는 데에 팔레스타인 감옥의 동성애자 처우를 들먹였다. 이렇게 볼 때, 처벌 제도는 핑크워싱의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오늘날의 핑크워싱 캠페인은 상술한 것 전부와 교차하면서, 동성애를 이용해 점령을 공고히 하고 동성애자들을 자기 자신의 민족과 자유에 맞서도록 동원한다. 퀴어한 몸들이 겪는 고통을 이용해 점령 치하의 모든 몸들이 겪는 고통을 정당화한다.

1 Schulman, S. 2011. “Israel and ‘Pinkwashing.’” The New York Times, November 22. Available at: https://www.nytimes.com/2011/11/23/opinion/pinkwashing-and-israels-use-of-gays-as-a-messaging-tool.html

2 Sadeh, D. 2010. “Campaign branding Tel Aviv gay destination underway.” Ynetnews, July 21. Available at: https://www.ynetnews.com/articles/0,7340,L-3922524,00.html

3 https://www.nytimes.com/2011/11/23/opinion/pinkwashing-and-israels-use-of-gays-as-a-messaging-tool.html

4 핑크워싱의 용례는 시온주의 집단이 저지르는 것 외에도 물타기 — 정치인이나 단체를 포장해 그들이 억압적 제도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나 그에의 공모를 축소, 은폐하기 위한 국지적 핑크워싱 — 를 포괄하는 쪽으로 확장되었다. 이 글은 시온주의 집단만 핑크워싱을 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논의의 폭은 시온주의 집단으로 제한한다.

5 Abu-Assab, N. 2014. “‘Decolonising’ Queer Migration.” Queer Migration and Mobilities Workshop. The Department of Sociology, Lund University, Sweden.

6 Frankenstein, C. 1947. Youth Neglect: What is It, How it Came About and its Signs [Azuvat Hano’ar: Mahuta, hithavuta usimaneiha]. Jerusalem: Szald Children and Youth Institute, p 140.

7 Meyuchad, I. 1934. “In the Tel Aviv Underworld.” Iton Meyuchad, January 31.

8 Ibid.

9 1949a. “Many Indecent Acts Were Performed in Tel Aviv Tonight.” Yediot Ahronoth, September 5.

10 1949b. “Youngsters Take Revenge on a Sodomy Perpetrator.” Yediot Ahronoth, September 26.

11 Yonai, Y. 1998. “The Law Regarding Homosexuality – Between History and Sociology [Hebrew].” Mishpat u- Mimshal 4: 531-586.

12 이 글이 체포 수가 감소한 원인을 빠짐 없이 살펴본 것은 아니다.

13نشطاء من القوس للتعددية الجنسية والجندرية في المجتمع الفلسطيني. “الأفراد والاجساد والجنسانية: عبر نقدية مستقبلية من ماضي الحركات اليسارية الفلسطينية.” مجلة جدل، العدد 24، 2015. متوفر على الرابط التالي
http://mada-research.org/wp-content/uploads/2015/11/JDL24-4-Qaws.pdf

14 http://archive.li/0ue4t#selection-329.362-329.435

15 Massad, J. 2007. Desiring Arab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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