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크바에서 생존한 가자의 노인들, 78년만에 또 한 번 이스라엘에 쫓겨나다 (모하메드 술라이만, 2026)

원문: Mohamed Solaimane, “Gaza elders who survived the Nakba reflect on being displaced by Israel again, 78 years later,” Mondoweiss, 2026.05.15.

지팡이를 든 노인 남성이 폐허 잔해에 걸터 잖아 휴대전화기를 들여다 보고 있다.
가자 주민 아흔한 살 이스마일 아티야 나시르 알-딘Ismail Atiya Nasir al-Din이 무너진 자신의 집 잔해에 앉아 있다. 1948년 나크바에서 생존한 그는 또 한 번 쫓겨나게 되었다. (필자 제공 사진)

칸 유니스 서쪽에 위치한 아말Amal, 앙상하고 주름진 손으로 나무 지팡이를 짚은 이스마일 아티야 나시르 알-딘이 세 층짜리 제 집의 잔해 사이를 조심스레 걷는다. 천천히, 2025년 겨울에 이스라엘에 폭격 당해 형체도 남지 않다시피 한 집터 한쪽에 쓰러진 콘크리트 벽체에 다가간다. 숨이 차올라 자리에 앉은 그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며 코란 구절을 왼다. 슬픔이 잦아들어 말문이 열릴 때까지.

아흔한 살인 그는 열두 명의 아들딸에게서 150명 가까이 되는 손주를 보았지만 그의 삶은 여전히 1948년 이전의 어린 시절에 매여 있다. 시온주의 군사조직들이 그와 가족을 고향에서 내쫓은 때다. 지금은 아들 하나, 손주 넷과 함께 다 무너지고 하나 남은 방에서 지낸다. 뛰어난 기억력과 유려한 언변, 일상의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면 시구나 코란 구절을 읊는 습관으로 이름난 나시르 알-딘은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이런저런 구절을 읊는다. 나크바 후로 일흔여덟 해를 보내고는 다시금 집을 잃은 신세를 말로는 다할 수 없어서다.

“집을 잃고 쫓겨나는 고통은 그때로 끝났다고, 그런 일이 또 있지는 않을 거라 믿었죠”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떨린다. “하지만 이스라엘이란 걸 세우기 전부터 점령 세력은 이럴 계획이었던 거예요. 우리를 죽이고, 내쫓고, 우리 고향 땅을 빼앗는 것 말입니다. 78년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목표도 그래서 벌어지는 비극도 그대로예요.”

1948년에 생존해 이후 평생을 가자에서 보낸 세대가 느끼는 이번 전쟁의 무게는 젊은 팔레스타인인들은 미처 다 알 수 없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 이스라엘 수립기에 75만에서 백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이 시온주의 군사 조직들과 신생 이스라엘군에 의해 고향땅에서 쫓겨났다. 많은 이들이 가자로 피신했고, 야파Jaffa, 베르셰바Beersheba 등지에서 쏟아져 들어온 난민으로 가자 인구는 거의 세 배로 들었다. 나시르 알-딘도 그렇게 가자로 와서 이후 쭉 ― 점령과 반복되는 전쟁들을, 18년째 이어지고 있는 봉쇄를 거치며 — 가자에 살고 있다. 국제연합 위성센터UNOSAT의 위성 사진을 보면 2025년 10월 기준으로 가자지구의 건출물 81%가 손상을 입었으며, 123,000채 이상이 완전히 파괴되었다. 거의 전 인구가 살 곳을 잃었고 반복해서 쫓겨난 이들도 많다. 그는 이스라엘 수립의 재앙이 그대로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역사적 팔레스타인 야파시의 마흐자르 바르칼Mahjar Barqal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940년에 가족과 함께 라믈라Ramla의 베시트Beshit 마을로 이사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을 그는 풍요의 땅으로 기억한다. “오 알라시여, 나크바 이전의 그 시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집에서는 어머니께서 우리를 씻기고 야채를 먹인 후에 재우시곤 했죠. 건포도나 대추, 말린 무화과를 주며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생기와 희망이 넘치는 집이었죠.”

그는 평생을 그때와 같이 따스한 가정을 만들려 애쓰며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점령은 내내 그를 가로막았다.

베시트에 처음 공격 당한 것은 1948년 3월 30일 자정께였다. 주민들은 낡은 소총을 들고 맞서 민병대를 몰아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인 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3월 11일 밤의 두 번째 공격은 더 맹렬했다. 이번에는 투사들의 탄약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민병대가 들어왔고, 주민들은 피신했다.

“사흘 동안 이웃마을 이브나Yibna로 피해 있다가 베시트로 돌아가 먹을 것과 입을 것, 나귀와 수레를 챙겼어요. 그리고는 11월 2일에 가자 지구에 도착하기까지 이곳저곳을 옮겨다녔죠”. 그렇게 지난 마을들을 늘어 놓는 그. 야수르Yasour, 알-잘디야al-Jaldiyya, 지스르Jisr, 사무엘Samuel, 바르코시야Barqousiya, 두르킨Dukrin, 제이타 알-칼릴Zeita al-Khalil, 이라크 알-만시야Iraq al-Manshiyya, 알-팔루자al-Faluja, 알-마즈달al-Majdal, 알-카사스al-Khassas, 히르비야Hirbiya. 몇 달이나 걸린 여정이었다. 며칠씩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도 했다. 몇 달을 한뎃잠을 잤다. 빨래할 물이 없어서 어머니는 옷가지를 화덕에 집어 넣어 벌레를 잡았다. 그는 “땅에서 풀을 뜯어 먹었다”며 두 손을 마주 쳐[역주1] 보인다.

그가 시선을 옮기며 그때와 닮은 지금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들 굶고 있어요. 허기와 추위로 아이들이 죽습니다. 쥐가 들끓고 전염병이 번지죠. 부모들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떠납니다.” 공습으로 아들과 손주를 잃은 이야기를 꺼내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멈춘다.

카메라를 향해 걸어오는 지팡이 짚은 노년 남성을 찍은 사진. 노인 바로 뒤의 건물은 반파된 상태다. 그 양쪽의 건물 역시 상당한 해를 입었다.
가자 주민 아흔한 살 이스마일 아티야 나시르 알-딘이 무너진 자신의 집 잔해에 앉아 있다. 1948년 나크바에서 생존한 그는 또 한 번 쫓겨나게 되었다. (필자 제공 사진)

‘동시다발적 나크바’

나시르 알-딘은 18개월 전에 천막 생활 신세가 되었다. 칸 유니스에서 라파로, 알-마와시al-Mawasi로 내몰렸다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면서 1948년과 현재 사이의 거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2025년 10월 휴전 후 8개월이 지나도록 가자의 인도적 상황은 여전히 끔찍하다. 국제연합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서는 극심한 구호 및 재건 물자 반입 제한과 봉쇄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식료품, 의약품, 시멘트 — 모든 것이 여전히 국경에서 이스라엘의 통제 하에 있다.

“충격을 받았죠. 머리에서도 가슴에서도 잊은 적 없는 충격입니다. 1950년, 1951년에 살았던 천막이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똑같은 천막이에요. 똑같은 적이 우리를 내쫓았고요. 하지만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통은 몇 배나 더 커요.”

이스라엘 농산부 장관 아비 디히터는 2023년 11월에 전쟁의 끝은 “2023년 가자 나크바”가 될 거라고 말했다. 나시르 알-딘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명명하는 데에 공식적인 발언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우리는 1948년에 일어난 일을 나크바라고 불렀죠. 하지만 이번 전쟁으로 겪고 있는 일은 어떤 말로도 다 담을 수 없어요. 아마도 나크바들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복수로요. 나크바의 해에 일어난 그 어떤 일보다 더 심하고 끔찍해요.”

그는 칸 유니스에서 1955년에 학업을 마치고 교사가 되었다. 학생 시절에는 교과서 한 권을 학생 수십 명이 함께 썼고, 급우에게 교과서를 빌리려 15킬로미터씩 걸어가곤 했다. “모두가 악착 같이 살아 남고 교육을 받았어요. 생필품조차 없었지만 공부를 했죠. 같은 광경이 지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가요. 고등학생들은 천막이나 무너진 교실에서 시험을 치고 합격해서 대학에 가고요.”

“내 평생 베시트 마을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내 자식들, 손주들에게 전부 들려줬어요. 우리는 그때도 피란했고 지금도 피란합니다 — 고향땅을 버리는 게 아니라 죽음을 피하는 거예요.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더 끔찍한, 더 지독한’

몇 블럭 떨어진 곳, 칸 유니스 중심부의 카티바Katiba. 여든다섯 살 파티마 이브라임 칼팔라Fatima Ibrahim Khalfallah가 무너진 집터에 얇은 강판과 천으로 지은 임시 가옥 앞에서 차게 식은 화롯가에 앉아 있다. 그녀는 며칠 째 불을 때지 않았다. 장작도, 채소도, 고기도 없다. 언제가 됐든 자선 식당에서 무어라도 주는 때가 식사 시간이다. 작은 막대로 재를 휘젓는다.

무장한 시온주의 민병대가 칼팔라의 가족을 베르셰바에서 쫓아 낸 1948년에 그녀는 여덟 살이었다. “그들이 와서는 우리를 몰아냈죠”, 그녀는 꾸밈 없이 천천히 베두인 방언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파루크 왕에게 가라고 했어요. 우리는 죽음의 공포에 밀려 집에서 쫓겨났죠.” 그녀는 당시 시온주의 군사 조직들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이집트의 국왕을 언급하며 이렇게 회상했다. 그녀의 가족은 소박하게 살았다. 염소털로 만든 천막 한 동, 양 두 마리, 낙타 한 마리, 나귀 한 마리, 밭에는 밀과 보리와 양파.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떠났다.

천막 두 동 사이에 지팡이를 짚은 노년 여성이 서 있다.
또 한 번 쫓겨난 나크바 생존자 여든다섯 파티마 이브라힘 칼팔라는 현재 천막에서 생활한다. 2026년 5월. (저자 제공 사진)

그녀는 가자에서 난민으로 자랐다. 누더기 천막에서 시작해 마침내 칸 유니스에 방 다섯 개, 170평방미터짜리 집을 마련했다. 학교는 다니지 못했고, 지난 시간을 연도가 아니라 사건으로 기억한다. 나크바 때는 여덟 살이었다. 이스라엘이 가자를 점령하기 한 해 전에 큰아들을 낳았다. 지금은 결혼하지 않은 아들 둘, 마흔일곱 아말Amal, 중증 신경 질환이 있는 자말Jamal과 함께 임시 가옥에서 지낸다. 나머지 넷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인생이 천막에서 시작해 천막에서 끝나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가요? 우리의 나크바는 지상의 다른 어떤 민족에게도 벌어지지 않았어요. 팔레스타인인인 대가를 — 1948년부터 지금까지 — 두 번이나 치러야만 하나요?”

천막들 사이 흙바닥에 노년 여성이 앉아 있다.
또 한 번 쫓겨난 나크바 생존자 여든다섯 파티마 이브라힘 칼팔라는 현재 천막에서 생활한다. 2026년 5월. (저자 제공 사진)

그녀가 그때와 지금이 같다고 말하는 건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지금 생활의 매 순간이 나크바 후의 그때와 이어져요 — 밖에서 자고, 먹을 건 생기면 먹고, 대부분은 배를 곯고 하다가 끝내 천막을 쳤죠. 같은 일이 이번 전쟁에도 반복되고 있어요.”

베르셰바로 돌아가는 꿈은 내려 놓은지 오래다. 지금은 더 작고 더 절박한 꿈을 꾼다, 제 집의 잔해 위에 친 천막에서 지내는 것, 또 다시 내몰려 떠돌지 않는 것. 그녀는 2023년 10월 후로 네 번을 옮겨 다녔다.

그녀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덧붙인다. “이번 나크바가 더 끔찍하고 더 지독하고 더 파괴적이에요. 똑같은 형태로 쫓겨나고, 똑같이 굼주리고 목마르고 무시무시해요 — 하지만 몇 배나 더 심하죠.”


역주1 두 손을 마주치며 털어 보임으로써 ‘가진 것이 전혀 없음’을 표현하는 손동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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