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별기억추모

떠난 이를 기리는 방법을 생각하던 중에 아래의 편지를 읽었다. 계정을 팔로하고 있으니 아주 우연은 아니지만, 올라오는 게시물은 모두가 추모와 기억에 관한 것이므로 더더욱 그렇지만, 평소처럼 대강 넘기던 중에 하필 하나 골라 읽은 것이 이것이었다.

편집국 여러분께

제가 회원으로 있는 마이애미 아미고스 대표 릭 로드리게스 씨의 제안으로 여러분께 이 편지를 씁니다. 세상을 떠난 제 동생, 엘리어 대컬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엘리어는 지난 봄에 아미가 500 컴퓨터를 샀습니다. 에이즈로 죽음을 맞기 겨우 넉 달 전이었죠.

아프기 전엔 보스턴에서 몇 년을 지내며 보스턴시민심포니, 북부연안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유망한 신예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패션디자인을 전공했고 그림 실력을 키웠죠.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작업에 사진을 넣기도 했습니다. 과학소설을 많이 좋아해서, 그런 데서 가져온 소재를 활용하곤 했어요.

병이 깊어지면서 저와 어머니가 돌보아줄 수 있는 마이애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병 때문에 창작은 거의 포기해야 했습니다. 두 해 동안이나 병에 시달리면서 컴퓨터를 갖고 싶어하게 되었어요. 집에 갇힌 채로라도, 침대에서 내려올 수조차 없게 되더라도 창의력을 펼칠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거죠.

엘리어는 금세 복잡한 컴퓨터를 다 익혔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아프고 마비도 급격히 심해지는 와중에도 너무도 아름다운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고 곡을 썼어요. 과학소설과 미래에 대한 엘리어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많아요.

동생은 삶을 앗아가려 드는 병마의 공격에 굴하지 않고 늘 미래를 생각했어요. 앞으로 할 작업 계획을 잔뜩 세웠죠. 더 이상 글자를 쓰지 못하게 된 뒤에도 누운 채로 마우스를 움직이며 밤늦게까지 작업을 계속 했어요. 아프다는 것도 잊어버린 듯 말이에요. 한여름 무렵에는 입원을 했고, 1988년 8월 18일에 죽음을 맞았습니다.

아픈 동생을 돌보는 일은 주로 제가 맡았습니다. 그는 제게 동생이기도 했지만 더없이 아끼는 친구이기도 했어요. 저도 음악과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동생의 작품이 얼마나 빼어난지를 잘 알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어가 세상을 떠난 후 그것들은 내내 컴퓨터 속에 갇혀 있습니다. 제겐 컴퓨터를 배울 시간이 없었거든요.

엘리어를 돌보는 데에 제 모든 시간을 들여야 했었습니다. 어디에 도움을 구해야 할지를 몰랐던 저는 그의 책에서 소프트웨어 제작자의 이름과 주소를 찾아 어디라도 좋으니 마이애미에서 사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알려달라는 편지를 썼어요. 마이애미 아미고스라는 곳을 알려주며 로드리게스 씨에게 연락해 보라는 답장을 받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 분의 초대로 모임에 참하고 회원가입도 했고요. 모임에서 많은 분들이 다가와 도움을 주신 덕에 이제 동생의 작업물을 열 수 있습니다. 다음 모임에 동생의 그림을 몇 점 가져가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엘리어의 작업을 보존하고 에이즈 연구 자금 모금에도 활용하는 것이 제 최종 목표입니다. 동생이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를 아는 몇몇 친구들이 기금 설립에 힘을 보태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동생의 작품으로 보답할 거고요. 마이애미 아미고스 덕분에, 이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1998년 12월 12일,
마음을 담아
사라이 대컬 드림.

《아미가 월드Amiga World》 1989년 3월호. 인스타그램 The AIDS Memorial 게시물(1/2, 2/2)에서 재인용.

딱히 대단한 생각을 한 건 물론 아니고. 죽은 이의 유산에 관해 생각하던 중이었다. 고인이 아주 사적인 삶을 살았다면, 그래서 남은 자가 그의 삶을 나누고 싶을 때 아주 내밀한 기억을 말하는 수밖에는 없다면 그 추모는 어떤 기분일까. 남은 자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그 소중함과 다정함이 남들에게 전해지기에는 어려운 것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른 이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참을 수 없다면.

반대로 저 편지를 쓴 이가 그리는 그의 동생처럼, 고인이 타인과 나누기 위해 남겨둔 것이 있다면 또 어떠할까. 나눌 길을 덜 고민해도 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축복이겠지만 나누어야만 한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짐일 것이다.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해 만든 것들을 보여주고 들려 주었는데도 다른 이들의 마음에 자리 잡지 못하고 또 잊혀진다면. 작가 자신이 겪었을 좌절보다 더 큰 좌절을, 대신 나눈 남은 이가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 모든 것이, 누구를 위한 일일까. 잡다한 생각들의 틈사구니에 그런 생각이 끼어 있다.

2022.11.01-02.(화-수) 격리 해제

2022.11.01.(화)

전날 벌어진 이태원 참사 소식에 침통했던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일 없이 보냈다. 맹물에서 쓴맛이 느껴진단 걸 깨달아버린 후로, 증상이 심화된 것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인지, 혹은 그저 기분탓인지, 꽤 맛이 강한 탄산음료에서는 물론이고 침에서도 쓴맛이 느껴져서 아주 약간의 고생을 했다.

오후에는 책꽂이에서 세월호 기억 팔찌를 꺼내 손목에 찼다.

2022.11.02.(수)

하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증상이 가라앉은 것인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서인지 (약은 5일치를 처방 받았다) 곧 쓴맛이 사라졌다. 맹물에서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 누워 있었고 저녁에는 책을 조금 읽었다. 오후에는 책상 한켠에서 찐득해진 세월호 기억 팔찌 하나를 발견해 비누로 씻어 말렸다. 여전히 약간은 찐득하지만, 그걸로 바꿔 찼다.

20분쯤 전 자정을 기해 드디어 격리 해제. 처음으로 한 것은 편의점에 가서 주전부리 ― 크림빵 ― 사먹기. 집에도 편의점에서 손소독제가 없어서, 내 손에서 점원의 손으로 바이러스가 넘어가지 않게 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다. 빵은 점원이 손 댈 일 없는 귀퉁이를 손가락 마디 부분으로 집었고 카드를 넘겨주는 대신 휴대전화 앱 바코드로 결제했다. WHO 실험 결과 “발병 8일 후 검출된 바이러스에서는 배양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해당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격리해제 후 받은 PCR 검사 결과가 양성이더라도 전파력은 극히 낮거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1]질병관리청, 코로나19 감염확진 FAQ, https://ncv.kdca.go.kr/menu.es?mid=a30408000000. 그래도 주말에는 수십 명 앞에서 마스크를 벗을 일이 있어, 내일은 체온도 재고 자가키트 검사도 해 볼 생각이다. 자가키트는 오늘 빵과 함께 사려 했으나 손소독제가 없어 조금이라도 체류 시간을 줄이려고 내일로 미루었다.

확진 및 격리 후기

증상 처음에는 미열과 근육통, 두통도 있었지만 이후의 증상은 대개 콧물과 기침, 가래, 인후통 정도였다. (뒤의 것 중) 앞의 셋은 약간이지만 아직도 남아는 있다.

격리 증상이 약했으므로, 원래 혼자서 하는 것 없이 지내는 편이므로, 장보기 ― 특히 규모가 크지도 절실하지도 않은 간식거리 구매 ― 가 괴로움의 거의 다였다. 물론 주변에 사는 지인 없이도 인터넷으로 문제 없이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던 덕이다. 대형 유통 체인의 당일 배송이 쉽지 않은 곳이지만 마침 다행히도 당일 배송을 해 주는 지역 협동조합이 있는 곳에 사는 덕이다. 불가피한 경우 지자체에 요청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긴 했지만 나는 그 ‘불가피한 경우’, 그러니까 노인이거나 하는 등의 조건에 맞지 않는다. 운이 나빴다면 배달음식만으로 일주일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운이 더 나빴다면 ― 배달 음식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병이나 알레르기 따위가 있었다면 ― 상당한 곤란에 처했을 것이다.

수면 코로나 때문인지 그저 수면제가 다 떨어졌기 때문인지, 아주 많이, 아주 얕게 잤다. 안면마비가 와서 발음이 제대로 안 되는데 그 모습을 놀리는 이들 ― 꽤 알려진 연예인들이었다 ― 에게 화내는 꿈, 농활 가서 덤프트럭 타다 미지의 선배랑 썸타는 꿈, 어디 웅덩이 정리하다 거북이 세 마리와 낯선 갑각류를 발견하는 꿈 등등 아주 많은 꿈을 꾸었다.

1 질병관리청, 코로나19 감염확진 FAQ, https://ncv.kdca.go.kr/menu.es?mid=a30408000000.

2022.10.26-31.(수-월) 코로나19 확진

2022.10.26.(수)

콧물 약간과 근육통 약간. 저녁부터는 두통도 조금. 설마, 싶기도 했지만 ‘코로난가 싶으면 코로나가 아니다, 코로나면 코로나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든다’는 경험담들을 믿고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2022.10.27.()

새벽에는 무려 추워서 한 번 깼다. 그렇다고는 해도 긴팔 티셔츠를 입는 걸로 해결될 수준이었다. 마사지를 좀 하고 잤더니 근육통과 두통도 덜했다. 하지만 오전에, 그제 같이 있었던 B에게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처 내과에 가서 접수를 하고 기다렸다. 어디 깊숙한 곳에 앉히길래 검사실이 따로 있나 했지만 그냥 다른 환자들과의 접촉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평범하게 진료실에서 의사를 만났다. 지금껏 몇 차례 해 본 가운데 가장 아프게 코를 찔리고 나왔다.

5분 후쯤 다시 호명되어 들어가자 의사가 어딘가 허하게 웃으며 양성이라고 했다. 처방전을 주겠다고 했다. 주사도 놔 드릴까요?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소견서 써드릴게요. 네? 소견서요? 양성 확인서요. 아, 필요 없어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왔다. 그래, 직장에 그런 걸 내야 하는 사람이 많겠지. 진료비를 치르며 보니 다른 사람도 한 명 확진을 받은 듯했다. 노인이었다. 바로 옆 약국에서 약을 타서 귀가했다.

일주일간 먹을 것을 구해보려 대형마트 웹사이트 몇 개를 기웃거렸지만 당일 배송은커녕 익일 배송도 불가능했다. 몇 가지 주문한 것들의 예상 배송일이 격리 해제 바로 전날인 11월 1일로 떴다. 그리곤 저녁 식사를 배달시키려 지자체 배달앱을 깔았는데 어째선지 본인인증에 계속 실패했다. 플랫폼업체 앱을 깔까 하다 조금만 더 버텨 보기로 했다. 서울에 있는 B에게 부탁해 피자를 주문했다. 혹시 몰라서 전기요도 하나 주문했다.

2022.10.28.()

아침에 눈을 뜨니 문자 메시지가 와 있었다.

1. 귀하는 코로나19 검사 확진(양성, positive(+))으로 감염병예방법 제41조 및 제43조 등에 따라 격리됨을 통지합니다(45일 이내 이미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에는 해당 없음). 코로나19 확진자는 감염병예방법 제18조에 따른 역학조사 대상이므로 다음 URL을 접속하여 확진자 자기기입식 조사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https://covid19m.kdca.go.kr/selfreport/ (※ 제출 후 수정 불가)

– 격리대상자: 박종주

– 격리기간: 2022-10-27 ~ 2022-11-02 24:00 (단, 의료기관에서 PCR검사로 확진된 격리자의 격리해제일은 검체채취일을 기준으로 7일이 되는 날임)

– 격리장소: 자가(입원환자는 병원)

2. 통지기관: 충청북도제천시보건소 보건소장 (담당자 043-641-3820)

* 격리명령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며, 동 조치에 대해 이의가 있으면 본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3. 격리대상자가 중증장애인, 영유아·아동(만11세 이하 또는 초등학생 이하) 등 돌봄이 필요한 경우 가족 등이 공동격리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돌봄대상자의 격리기간 내에 관할보건소에 신청)

4. 확진자와 동거인 안내문은 아래 URL에서 확인해 주세요.

※ (동거인 권고사항) 3일 이내 PCR 검사, PCR검사 후 자택 대기 권고, 6-7일차에 신속항원검사, 음성이더라도 10일 간 가급적 외출 자제

* 확진자 및 동거인 안내문 https://c11.kr/wpv5

* 소아 재택치료 증상별 대응요령 https://c11.kr/xl4y

5. 격리기간 중 발열 등 증상이 있는 경우 원스톱진료기관에서 대면진료 및 먹는치료제 처방을 받을수 있습니다.(포털사이트나 생활안전지도 앱에서 “원스톱진료기관” 검색)

6. 격리종료 다음날부터 90일 이내에 정부24 홈페이지 및 앱에서 생활지원비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생활지원비는 가구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유급휴가비는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지원)

*생활지원비 및 유급휴가비용 지원 상세 안내 https://url.kr/soeajz

7. 정부24에서 격리통지서 발급이 가능합니다.

8. 확진자 호흡기환자 진료센터 안내

– 의료기관 리스트를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보건소 홈페이지 알림마당 공지사항 게시물, 혹은 팝업창 확인)

https://www.jecheon.go.kr/health/selectBbsNttView.do?key=944&id=&&bbsNo=170&nttNo=326483&searchCtgry=&searchCnd=&searchKrwd=&pageIndex=1&integrDeptCode=

9. 재택치료 관련 문의(043-641-3823~25)

코로나19 확진자 격리 통지 및 확진자조사 안내 (09:08)

오후에도 두 통이 왔다.

<코로나 19 재택치료 일반관리군 안내>

박종주님은 코로나19 ‘양성’으로, 일반관리군입니다.

▣검체일로부터 접종력 관계없이 7일간 재택치료 시행

예시) 월요일 검체 채취 → 다음주 월요일부터 일상생활 가능/ 별도 안내없이 격리해제확진자는 추가 검사 불필요

▣격리기간 중 자택에서 건강상태를 잘 관찰하시면서 발열 등 증상으로 진료 및 처방이 필요한 경우, 호흡기환자진료센터 또는 재택치료 의료상담센터에서 대면?비대면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7.11 검체 채취자부터 비대면or대면 진료비 및 약제비 법정 본인부담금 발생★

▣진료가 필요하신 분들은 “호흡기환자 진료센터” 리스트를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해 주세요.

(보건소 홈페이지 알림마당 공지사항 894번 게시물, 혹은 팝업창 확인)

약 수령은 가족/지인/본인 수령이 가능 합니다.

https://www.jecheon.go.kr/health/selectBbsNttView.do?key=944&id=&&bbsNo=170&nttNo=326483&searchCtgry=&searchCnd=&searchKrwd=&pageIndex=1&integrDeptCode=

▣대면 진료를 위해 호흡기환자진료센터를 방문하려는 경우, 미리 센터에 예약(본인예약) 후, 도보, 개인차량 또는 방역택시 등으로 이동하여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불안이나 우울 등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경우에는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1577-0199, 24시간 운영)를 통해 심리상담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의료적 상담 이외에 격리 시 준수사항과 같은 행정적인 사항에 대한 문의는 지자체 ‘재택치료 행정안내센터(043-641-3823~5)’로 연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택치료에 대한 상세사항은 「확진자 및 동거인 안내문」 https://c11.kr/wpv5(클릭) 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재택치료 관련 문의>

● 24시간 전문의료상담 : 충주의료원(043-871-0140)

● 재택치료 관련 일반민원 : 코로나19통합상담지원센터(043-641-3823~5)

● 18시 이후 응급상황 시 : 소방서 (119), 코로나19통합상담지원센터(043-641-3823~5)

일반관리군 문자 (16:46)

제천시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스트레스를 겪고 있거나 자가격리 중이신 제천시민분들께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감염병 스트레스로 인해 어려움이 있으신 분은 제천시정신건강복지센터의 심리지원 서비스를 통해 마음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주간) 제천시정신건강복지센터: 043-646-3074~5

(야간) 핫라인 24시간 운영: 1577-0199

코로나19 심리지원 안내 (17:47)

두어 달 전에 친구가 이제 확진자도 생필품 구매를 위한 외출은 가능하다고 했었어서 여차하면 뭐라도 사러 나갈 차였는데 안내문을 받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차 시도한 끝에 배달앱 가입에 성공했다. 다행히 근처에 지역 농산물을 배달해주는 업체가 있어서 계란 한 판, 두부 한 모, 채소 약간을 주문했다.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쌀도 주문했다. 마침 확진 판정과 함께 쌀이 똑 떨어졌다. 전날 대형마트에서 주문한, 아직 발송준비조차 되지 않은 것을 취소했다. 낮에는 남은 파스타면을 삶아 먹었고 저녁에는 또 피자를 시켜 먹었다. 증상은 여전히 고만고만.

2022.10.28-30.(목-일)

뭘 했더라. 주로 명탐정 코난을 틀어 놓고 있었을까. 책도 조금은 읽었다. 배달음식을 두 번 주문해 대여섯 끼를 해결했고 나머지는 직접 해 먹었다. 한동안 냄비 밥을 해먹다가 마침 지난주에 동생이 직장 복지 포인트가 남았다며 소형 전기밥솥을 하나 보내주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면 아주 고역을 치를 뻔했다. 집밖에 못 나가는 것 자체는 별 일 아니지만 배달시키기 애매하게 소량이 필요한 것 ― 식용유 한 병이라든가 커피 한 잔이라든가 ― 이 있을 땐 좀 곤란했다.

2022.10.31.(월)

첫날 대형마트에서 주문한 감자가 이제야 도착했다.

생전 처음으로 커피 배달을 주문해 보았다. 아이스라테 한 잔과 쿠키 하나, 그리고 원두 한 봉. 맛은 별로였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맹물을 자주 마시진 않는 편이라 그간도 약을 먹을 때만 물을 마셨다. 매번 쓴맛이 났는데도 그저 이 약이 특별히 쓴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라 물에서 쓴맛이 난 거였단 걸 이날에야 깨달았다. 녹차에서, 단감에서 평소보다 강한 쓴맛이 났고 커피맛도 어딘가 이상했던 이유가 다 그거였다니. 이래저래 실험을 해 보니 정수기 물이 특히 쓰게 느껴진다. 수돗물은 덜하다. 하지만 다른 정수기 물을 마셔볼 수 없는 탓에 정수기가 문제인지 입이 문제인지 아직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입이 문제라면, 이건 코로나19 증상일까 약 부작용일까. 찾아봤지만 이거다 싶은 답은 건지지 못했다.

2022.10.16-17.(일-월)

2022.10.17.(일)

저녁에 장을 보러 가면서 마트와는 반대 방향을 향했다. 낮에 일하러 카페에 가는 길에 보고 지나친 카세트 플레이어를 줍기 위해서였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 주워다 집에 두고 다시 나설 요량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대로 있었다. 집에 들렀다 마트로 가서 시리얼과 우유, 두부와 감자와 버섯,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 소스를 샀다.

집에 돌아와 시리얼을 먹은 후 카세트 플레이어를 닦고 분해했다. 스피커 유닛이 양쪽으로 하나씩 두 개가 들었지만 모노 출력만 되는 모델이었다. 인두로 납을 녹여 기판과 왼쪽 스피커를 잇는 두 개의 선과 양쪽 스피커를 잇는 두 개의 선을 떼었다. 총 네 곳. 그리고는 스피커마다 두 가닥씩 다른 선을 땜질해 붙였다. 다시 네 곳. 이 선은 지난번에 선풍기를 분해해 버리면서 떼어 둔 것이다.

카세트 플레이어 겸 라디오 수신기 기판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전선 네 가닥의 다른 쪽 끝을 밖으로 뽑고 다시 조립했다. 뽑은 선은 한 동안 안 쓰고 있던 앰프에 연결했다. 언젠가 선을 다시 이으면 작동할지도 모를 카세트 플레이어를, 당분간은 스피커로 쓰기로 했다. 음질이 좋지 않지만 고음과 저음의 볼륨을 각각 조절하니 귀에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 소리가 난다. 스피커의 질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2022.10.18.(월)

역시 낮에는 카페에 가서 일했다. 아닌가. 일은 십 분 정도 했다. 나머지 시간은 책을 조금 읽었다. 내가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손님들이 다 일어서서 카페는 조용했지만 할로윈을 맞아 해둔 온갖 장식에 정신이 사나웠다. 그리 오래 읽지 않고 돌아왔다. 한동안 누워 있다가 어제 사 온 재료들을 썰어 된장찌개를 끓였다.

찌개가 끓는 동안 ― 저가 잡화점에서 사온 냄비는 광고와는 달리 열전도율이 떨어지는지 끓는 데 한참이 걸린다 ― 중고로 사온[1]2022.03.10-11.(목-금) 카오디오를 정비했다. 대충 테이프로 감아 뒀던 전원 입력부를 납땜과 수축튜브로 정리하고 스피커도 바꾸어 연결했다. 김사월의 《Heaven》 CD를 재생시키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빈둥거리다가 앰프를 거실에서 침실로 옮기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재생했다. 누가 연주한 것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간밤에는, 정확히 말하자면 아마도 아침에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어느 단체에서 나를 정책상무로 초빙하고 싶다고 했다. 상무라니 직함이 이상하네, 생각하면서도 일단은 사무실을 방문하기로 했다. 엉뚱하게도 문재인이 나와 면접을 진행했다. 좋아하는 단체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하다가 역시 책임질 수 없는 무게를 지지 않기로 하고 고사했다.

10m쯤 되는 거대한 전갈을 만난 게 면접에 가는 길이었을까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을까. 가는 길에는 누군지 모를 친구와 동행했는데 중간에 그가 어느 카페를 소개해 주었다. 대마 땅콩을 파는 곳이라고 했다. 먹어보지는 못했다.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디선가 전갈의 일행과 싸워 길을 뚫어야 했다. 카페에서 전자광선이 나가는 창 같은 무기를 얻어다 (전갈은 나를 위협했지만 나머지는 그러지 않았음에도) 이족보행을 하는 괴물들 중 하나를 겨누었다.

광선을 발사하는 버튼을 누르자 평범한 물총 정도의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괴물은 잠시만 멈춰 보라며 내게 다가와 하소연을 했다. 자신은 아키타 우라는 작가가 보내서 온 것일 뿐 공격하거나 싸울 생각은 없다고 했다. 잠에서 깨어서는 아키타 우라는 작가가 정말로 있는지를 찾아 보았다. 지지난 세기에 태어나 지난 세기에 세상을 떠난 아키타 우자쿠秋田 雨雀라는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수리와 파란꼬리도마뱀

원문: David Starr Jordan, The Book of Knight and Barbara: Being a Series of Stories Told to Children Corrected and Illustrated by the Children,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1899, pp. 138-40. (데이비드 스타 조던, 『(아이들이 직접 정리하고 그림을 그린) 나이트와 바버라의 책: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들』)

수리와 파란꼬리도마뱀The Eagle and the Blue-Tailed Skink

옛날에 파란꼬리도마뱀 한 마리가 살았어. 한날은 나무토막에 걸터 앉아 햇빛을 즐기고 있었지. 그런데 저기 나무 위에 커다란 흰머리수리 한 마리가 나타났어. 수리는 나무토막에 걸터 앉아 햇빛을 쬐는 파란꼬리도마뱀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잡아먹기로 하고는 날쌔게 내리덮쳤지. 수리가 날아 오는 걸 본 파란꼬리도마뱀은 얼른 몸을 날렸지만 꼬리를 붙잡히고 말았어. 파란꼬리도마뱀은 잡으려고 하면 꼬리가 떨어져 버린단다. 타고나길 그렇게 되어 있어. 그렇게 파란꼬리도마뱀은 수리 발톱 사이에 꼬리만 넘겨주었지. 수리가 꼬리를 먹는 동안 도마뱀은 나무 옆쪽으로 무사히 도망쳤어.

파란꼬리도마뱀이 나무 위를 올려다 보니 저 높이 가지 사이에 수리 둥지가 있었어. 둥지에는 알이 네 개 있었고. 파란꼬리도마뱀은 재빨리 나무를 타고 올라 둥지로 갔지. 수리는 아직도 나무토막에 앉아 꼬리를 먹고 있었어. 도마뱀은 수리가 낳아 둔 알 네 개를 다 먹어버리곤 이렇게 말했지. “이 알에 든 고기면 꼬리를 새로 만들기에 충분하겠어.”

나무 위 둥지에 앉아 있는 파란꼬리도마뱀을 본 수리는 날아올라 잡으러 왔어. 하지만 파란꼬리도마뱀은 반대편으로 도망쳐 버렸지. 둥지로 돌아와 알이 전부 사라진 걸 본 수리는 이렇게 말했어. “방금 먹어치운 그 도마뱀 놈 꼬리 고기면 알 네 개를 새로 낳기에 충분해.”

도마뱀은 파란 꼬리가 새로 돋을 때까지 나무토막 아래 그늘에 숨어 있었어. 꼬리가 다 자라자 나무토막 위로 올라가 햇빛을 쬐었지. 둥지에 알 네 개를 낳은 수리가 파란꼬리도마뱀을 발견하고는 얼른 잡으러 갔어. 꼬리 끄트머리를 붙잡자 꼬리가 떨어졌지. 파란꼬리도마뱀은 도망을 쳤어. 수리가 아그작아그작 씹을 때마다 꼬리가 꿈틀대는 모습이 보였어. 도마뱀이 나무 위 수리 둥지로 가보니 알 네 개가 있었어. 그래서 알들을 먹어치웠지. 수리는 꼬리를 먹고 파란꼬리도마뱀은 알을 먹고, 둘은 끝없이 먹고 먹혔단다. 꼬리에는 알 네 개를 낳기에 충분한 고기가, 알 네 개에는 파란 꼬리가 돋아나기에 충분한 고기가 있었으니 말이야.*

* “파란꼬리도마뱀이 꼬리를 영영 잃는 일은 없었겠네.” ― 바버라.


아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전략) 나는 먼저 그가 쓴 동화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동화가 도덕적 가르침을 가장 노골적으로 펼쳐놓는 형식일 테니까. 〈독수리와 파란 꼬리 스킹크〉라는 단편동화(스컹크를 생각하지 마시라. 스킹크는 도마뱀이다)에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쌔게 날아 내려와 파란 꼬리 스킹크의 꼬리를 잘라 먹는다. 상처 입은 스킹크는 복수를 위해 독수리의 둥지로 종종걸음으로 올라가 독수리 알을 여러 개 집어 삼키고는 ‘이 알들에는 새 꼬리를 만들기에 딱 충분한 만큼의 고기가 들어 있어’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둘의 행동은 계속된다. 독수리는 내려와 새로 난 꼬리를 잘라 먹고 도마뱀은 둥지로 돌라가 알들을 먹어치우는 일이 계속된다. 하지만 둘 중 어느 쪽도 완전히 패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꼬리에는 더 많은 알을 만들 고기가 충분하고, 알에는 또 하나의 파란 꼬리를 만들 고기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게 이 이야기는 복수의 헛됨에 대한 명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물리학에서 가장 빼도 박도 못할 법칙인 질량보존의 법칙―질량은 결코 창조될 수도 파괴될 수도 없다―을 가장 잔인하게 묘사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그가 쓴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등장인물들이 우주의 차가운 법칙을 피해갈 수 없는 폐쇄공포증적 세계를 그린다. (후략)

룰루 밀러, 정지인 역,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곰출판, 2021, 1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