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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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밤을 샜다. 새벽에 학교에서 내려가, 아침으로 순대국밥을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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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으로는 조기구이를 해 먹기로 했다.  냉동되어 있는 조기를 녹여 두려, 부엌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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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부엌에서 악취가 났다.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냄새려니 하고,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내다 버리고 창문을 열어 두었다. 그런데 오늘, 여전히 같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창문이 작아서 역부족인가보다 싶어 뒷문도 열어두기로 하고, 일단 조기를 꺼내려 냉장고 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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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짙은 액채가 있었다. 그 속에는 조기의 꼬리도 있었다. 나흘 전쯤일까, 조기 매운탕을 해 먹었던 것이 떠올랐다. 봉지 속에 든 두세 마리 조기 중 하나를 꺼내 매운탕을 끓이면서, 남은 조기를 냉동실에 다시 넣지 않았던 것이다. 액체가 있는 자리에서 시선을 위로 옮기니, 같은 색의 액체가 든 봉지가 보였다. 가스렌지 대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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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도, 봉지 속에도, 수십 마리 구더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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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에 들어온 벌레는 잡아서 밖에다 풀어준다. 아침에 순대국밥을 먹은 참이라, 그것이 수십 마리 구더기라 해도 가능하면 풀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녹아버린 조기, 그 악취가 나는 물질까지를 밖에다 풀어줄 수는 없었다. 결국, 구더기와 함께 액체를 버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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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장갑이라도 쓰지 않으려고, 고무장갑을 손에 꼈다. 그래놓고는 결국 많은 양의 휴지를 사용했다. 비위가 약한 탓에, 녹은 조기와 꿈틀거리는 구더기의 촉감을 손끝으로 느낄 자신도 없었고 그것들을 만진 고무장갑을 설거지에 다시 사용할 자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짙은 색의 액체 위에 겹겹이 휴지를 깔고, 그것을 잡아 변기에 던져 넣었다. 물에 빠지지 않고 변기 여기저기에 붙은 구더기 몇 마리는 샤워기의 물살로 흘려 보냈다. 그리곤 물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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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두고 싶었지만 참았다. 치우는 것만으로 토하기 직전까지 갔으니, 사진을 찍은 후에 치웠더라면 분명히 토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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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고 나면 치울 용기가 다시 들지 않을 것 같아, 결국 자지 못했다. 그 상태로도 치울 마음을 먹기까지에 오랜 시간이 든 탓에, 발견 후 몇 시간을 전전긍긍 해버린 탓에, 치우고 나서는 이제 잘 시간이 없었다.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와서, 점심으로 꽁치구이를 먹었다. 학교 식당에는 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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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연구실에 오는 중에, 시멘트 길에 떨어져 있는 작은 새의 시신을 주워 푸석거리는 흙에다 묻어 주었다. 시신이 녹은 액체가 흙에 스밀 것이다. 흙 속에서 몇 가지 벌레들이 살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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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하다. 

끌려 나오고 끌려 들어가고

쿠키를 굽고 있다던 친구네에 가려던 참이었다. 같이 가기로 한 다른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각이 다가올 즈음 한일병원의 소식을 들었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해고된―그들의 형식 내에서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은―식당 노동자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구사대와 경찰의 탄압으로 위험한 지경이라고 했다. 오래 전에 잡은 약속인데다 친구가 손님 맞을 준비까지 하고 있대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약속을 미루고 한일병원으로 향했다.
쌍문역에 내려 개찰구를 나오자마자 보인 것은 “여러분 곁에는 믿을 수 있는 한일병원이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광고판이었다. 의료 서비스를, 환자들이 믿을만한 병원일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무리하게 새로 인력을 고용해 운영 중인 병원 식당은, 새로운 노동자들의 미숙함으로 인해 이삼십 분씩 배식이 늦어지는 일도 일쑤라고 했다.
해고된 이들은 짧게는 이삼 년에서 길게는 삼십 년을 일했다고 했다. 원래는 병원에 직접 고용되어 자녀 등록금 지원 같은 복지 혜택까지도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누리다가, 외부 용역 업체로 적을 옮기게 된 것이 IMF 때의 일이라고 했다. 다들 그렇듯, 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 승계를 받으며 지난해까지 일했지만 갈수록 나빠지는 근로조건을 견디다 못해 노조에 가입하자 올해 새로 선정된 업체로는 고용 승계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해 마지막 날, 그러니까 그들이 저번 업체의 직원이었던, 그리고 한일병원에서 일했던 마지막 날, 그들은 잔업을 했다고 했다. 자정이 지나고, 자신들이 직장을 잃은 첫날이 된 것도 모른 채 늘 하던 대로 열심히 일하고 퇴근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투쟁을 시작하면서도 그게 백 일이나 이어질 줄은 몰랐다고 했다.
병원 로비를 점거했다가 다른 연대 인원들은 다 끌려 나오고, 해고 노동자 여섯 명이 겨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온 이들은 아직 바람이 찬 환절기의 밤, 야외에서 침낭을 덮고 잠을 청했다. 농성장에 남은 해고 노동자는 원래 일곱이었지만, 끌려 나가지 않겠다고 서로의 목을 밧줄로 엮은 그들을 구사대가 무리하게 끌어내려다 다친 한 명은 119 구조대를 불러 병원으로 실려 갔다. 병원 정문에서 응급차에 실린 그는, 다른 어느 병원으로론가 이송되었다.
밤이 가고 첫 차가 다닐 무렵, 로비 한가운데 앉아 있던 노동자들은 복도 구석 화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로비만 비워주면 더 이상 끌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였다. 그들이 보이는 곳으로, 연대 온 이들도 자리를 옮겼다. 잠긴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연애 인원이 앉은 복도는 병원에 입점한 편의점을 거쳐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돈 안 될 것도 뻔하고, 한데서 밤을 새어 이미 꾀죄죄해 진 이들이 편의점을 끊임없이 드나들고 한쪽 구석을 메우는 모습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난색을 표했다.
농성 중이던 이들이 끌려 나온 다음 날, 오전 열 시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병역거부자 K에 대한 선고 공판이 있었다. 평화적 신념과 더불어 잘못 사용되고 있는 공권력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병역을 거부하고자 한다는 그에게 판사는 계속 말을 붙였다. 심리 때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에 와서 설득을 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자신도 고민을 많이 했다는 티를 내고 싶은 것인지 하여간 그는 말이 길었다. 재판을 방청한, 이미 형을 마친 병역거부자 Y는 자기 때는 선고에 1분도 안 걸렸다며 우스워했다.
판사의 말에 어떻게든 K는 대답을 했지만, 판사는 결국 미리 써 온 판결문을 읽었다. 늘 그랬던대로 1년 6개월 형이 언도되었고, 판사는 K를 구속하며 또 한 번, 다른 수형자들과의 형평성이 어쩌고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누구 하나 자신의 정당함을 인정받은 이 없는 그 법정에서, K는 방청 온 친우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뒤로 끌려 들어갔다.
속칭 까치방이라 불리는, 검찰청 내의 간이 유치장에 잠시 머물렀다가 구치소로 이송될 인원이 한 차 분량만큼 차면 과천의 구치소로 이송된다고 했다. 그곳에서 달포 가량을 지낸 후 기결수가 된 K는 어딘가의 교도소로 또 한 번 이송될 것이다. 면회 오는 벗들과 그들이 보낸 편지 외에는 아마도 이렇다 할 즐거움이 없을 생활을, 한 해 반 동안, 회색 공간에서 하게 될 것이다.
안에 있어야 할 이들은 끌려 나오고, 밖에 있어야 할 이는 끌려 들어가는 이상한 세상을, 겨우 만 하루만에 겪었다.

학교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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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자하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그 앞에는 자하연 식당이 있다. 외부 업체에서 20년, 혹은 30년 쯤 운영해 온 곳이다. 아니, 그런 곳이 있었다. 실장이라는 사람은 그곳에서 청춘을 보냈다고 했다. 옆에 딸려 있던 이름 없는 작은 카페―학생들은 장난 삼아 자하벅스라고 불렀던―도 함께 사라졌다.
식당이 있던 자리에는 식당이,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카페가 새로 생긴다. 공모로 정한 새 카페의 이름은 느티나무라고 한다. 학교 생활협동조합에서 운영하게 되었으니 가격이나 질이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일하던 사람들도 일부는 계속 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외부 업체 대신 생협 직영 매장이 들어오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하필 이곳이어야 했을까. 생협 직영 식당들에 비해 맛도 없고 가격도 조금 비싼 편이었지만, 오래 그 자리를 지킨 곳, 많은 이들이 거쳐간 그 곳을 먼저 없애야 했을까.
학교에는 지금 파파이스도 있고 비비고도 있다. 투섬 플레이스도, 도스 타코스도, 포베이도 있다. 그냥 외부 업체도 아니고, 대형 프랜차이즈의 분점인 음식점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그곳이 없어져도, 일하던 사람들의 고용 승계만 된다면, 아쉬울 사람은 많지 않을 텐데.
여하튼 자하연 식당과 그 옆 카페는 지난 해 말쯤이었던가 문을 닫았고, 새로 들어올 곳의 인테리어가 한창이다. 새로운 곳은 얼마나 오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몇 년 지나지 않아 아예 건물을 헐고 또 화려한 새 업체가 입점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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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선거, 재선거가 열린다. 사상 최초의 단독 선거라 관련 선거 세칙조차 없는 탓에 선관위에서는 단과대 선거의 전례를 살펴 가며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있다고. <Ready Action>이라는 무난한 이름으로 출마한 선거운동본부, 지금 학내에서 운동하는 이들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정후보는 이름도 알고 면식도 있는 사람이다.
가까이서 활동하는 모습을 본 적이야 딱히 없지만, 학교 밖에서는 거리에서는 물론이고 디씨인사이드에서까지 활발히 움직이며 이름을 알린 사람이고, 학내에서는 평소에도 꾸준히 자보 등으로 활동하는 한편 지난 겨울 정문 고공 농성을 한 사람이다.
어차피 선거권도 없는 대학원생인데다, 학부에 있을 때도 학생회에는 큰 관심도 없었던 나로서는 어찌 되든 모를 일이지만, 그 정후보의 꿈이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지만, 그토록 열심히 했던 그가 또 한 번의 선거 무산으로 약간이나마 희망에 생채기를 입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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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생 등록을 했다. 한 학기 15만 원.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은 도서관 이용 정도인데, 졸업생의 출입증 발급에는연 10만 원이 든다. 물론 연구생의 대출 가능 책 수와 대출 기간이 더 길긴 하지만, 왠지 아쉬운 돈이다. 이 신분이 오래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 일처럼 말하는 게 우습지만, 어쩌면 남 일이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거 기간의 어느 저녁

살던 하숙집 주인이 집을 팔고, 새 집주인은 건물을 헐기로 했다는 통에 엉뚱하게도 쫓겨나게 생긴 친구가 방을 구하러 다니고 있다. 혼자 다니기 심심하다길래 산책 삼아 같이 전단지 붙은 전봇대를 돌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방을 구하냐고 물었다. 부동산 중개업자였다. 원하는 월세를 대니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건물들 사이에서 자신이 보여주려던 방을 못 찾았다. 건물 세 곳을 찔러보고도 실패한 그는 결국 외진 골목에 우리를 두고 가 버렸다.

건물을 찾아 가던 중에 지나친 어느 모퉁이에는 서울 시장 선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던 그는 포스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박원순이는 구의원 한 번 안 해 본 사람이 서울 시장에 나오다니 저게 말이 돼, 라며 열을 냈다. 서울시장은 대한민국 소통령이라며, 오천만 인구 중 이천오백만이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유동인구라고, 이 살림이 보통이 아닌 거라 국회의원이든 뭐든 해 보고 와야 한다고, 한참을 말했다.

입법부에서 의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쩌다 행정부 수장의 필요 경력이 되었을까, 서울시 살림이 큰데 연습 삼아 한국 살림을 하는 국회의원이라도 하라는 건 대체 무슨 말일까, ‘살림’이 그렇게 중요하면 어디 종가 며느리를 시장으로 뽑지, 경력이 중요하면 투표 말고 공채로 하자고 그러지 왜, 하는 온갖 생각을 하며 그를 좇아 갔다.

그냥 이런저런 생각들을 흘려 보냈다.

의회가 정한 것을 행정부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집행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는, 예전에 잠깐 했던 생각도 언뜻 스쳐 보냈고, 살림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는 남성들이 이런 데엔 또 그 말을 가져다 쓴다는 생각과 여성을 그렇게 만만하게 보는 남성들이 보수 정당의 여성 후보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궁금증도 흘려 보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배일도 후보 생각도 잠시 했다.

그가 첫 번째 건물에서 허탕을 칠 즈음, 투표 제대로 해, 학생들, 하는 말을 던졌는데, 거기다 대고 웃으며 저 서울시민 아니에요, 하는 답을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

오늘 아침

알람 소리에 잠을 깬 것은 다섯 시 쯤, 30 분가량을 뭉그적거리다 일어나 씻었다. 아침으로는 배 하나를 깎아 먹었다. 껍질이며 씨며를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꼬일까 걱정스럽긴 했지만 귀찮아서 그냥 바닥에 두고 책을 폈다. 여섯 시쯤이었나, 그때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바닥에 엎드려 읽은 탓이었을까, 두어 번을 잠들어 가며 다섯 시간 가량을 보냈다.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는 시계 바늘이 움직이는 속도보다는 영 느렸다.
한 시간이면 갈 약속, 시각을 두 시간쯤 남기고 방을 나섰다. 힘주어 밀면 바스라질 것 같은, 나무로 된 현관문은 잠그고 유리에 샤시로 된 뒷문도 잠갔다. 유리조차도, 힘 주면 깨어질 것이었지만. 열어둔 것은 세탁실, 샌드위치 패널로 덧댄 공간의 문이다. 그제 세탁기를 들였는데, 그간 확인해보지 않았던 수도를 연결하려고 보니 수도관과 이어지지 않은 꼭지만 덩그러니 서 있었던 탓이다.
한 층을 내려 와서 주인집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잠시 후 똑똑똑똑. 기척이 나더니 주인 할머니가 나왔다. 수도를 이어 달라 말하자 남편이 들어오면 이야기해 두겠다며,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아마 안 될 거라 답했다. 남편은 걷는 것조차 힘차지 않은 노인이니 직접 하지는 않은 터인데, 아마 업체 연락처조차 모르는 모양이었다.
비탈길을 걸어 내려와 분식집을 들렀다. 테이블 위에 쌓인, 호일에 싸인 주먹밥 하나를 집어 들고 천 원짜리를 내려놓으며 주인에게 가져가마고 말을 하고 돌아섰다. 둥글게 뭉친 주먹밥을 호일째 눌러 길쭉한 꼴로 만들고는 호일을 벗겼다. 주먹밥 겉에 묻은 붉은 양념이 입가에 옮아 묻지 않도록 조심하느라 조금씩을 흘리며 거리에서 주먹밥을 베어 먹었다. 묻은 양념만 남은 호일을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쯤은, 부러 느리게 걸었음에도 약속 시간이 한 시간 반나마 남은 때였다.
정류장 옆의 서점에 들어갔다. 비어 있는 카운터 대신 안쪽에 있는 테이블이 아르바이트생이 앉아있다. 아르바이트와 생, 두 단어를 거리낌 없이 쓸 수 있는 것은 그가 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는 학생임을, 그러니까 그나 누군지를 알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던 내내 함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선배, 졸업과 입대가 얼마 남지 않은 선배다. 그는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편히 먹게 두자 싶어 기척은 따로 하지 않았다.
내가 아는 체는 안 했어도 발소리는 들렸을 것이다. 손님의 기척이 있어도 치어다 보지조차 않는 것이 그의 원래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지금 도시락을 먹고 있는 탓이 클 것이다. 그는 늘 무엇을 먹든 게걸스레 먹는다. 배가 불러 남은 것을 억지로 먹고 있을 때도 항상 게걸스런 모습이다. 손을 빠르게 움직이고, 그러다보니 속에 음식이 있는 채로 입을 열고 새 반찬을 밀어 넣는다. 종종 흘러나오기도 한다. 입가에 뭐가 묻어도, 아는지 모르는지, 밥을 먹던 중에 닦아내는 일은 좀처럼 없다,
테이블과는 반대쪽, 책꽂이 뒤에 있는 의자 위에 짐을 올려 두고 그 옆 의자에 앉아 앞에 꽂힌 책을 아무 거나 한 권 집어 들었다. 몇 년 전의 문학상 수상작이 실린 단편집, 같이 실린 소설들은 분명 읽은 것인데 정작 수상작은 기억에 없는 제목이다. 쓸 데 없이 시적으로, 문단을 많이 나누어 놓은 짧은 소설을 그 자리에 다 읽었다. 다 읽고 보니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내용인 듯도 싶지만 그 때도 그리 강한 기억을 남기지는 못했었나 보다, 싱거운 소설이었다.
한 시간 이십 분쯤이 남았다. 그러니까 비는 시간은 이십 분 정도다. 서점을 나와 바깥에 놓인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밥을 먹고 있었다. 분명 빠르게 먹는데도 도시락이 아직 바닥을 드러내지 않은 모양, 이라 생각했었지만 돌이켜보면 두어 해 전부터 그가 위장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어쩌면 여전히 쩝쩝 소리는 내지만 그리 수이 삼키지는 못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바깥의 테이블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몇 모금 빨아들이는 동안 버스 기사 두 명이 와 앉았다. 한 명은 화장실에를 가고, 한 명은 내 맞은편에 앉아 주위는 살피는 듯 하더니 내게 말을 붙였다. 이쪽으로 와 앉으라며 그는 자기 자리를 내어 주더니, 짐을 옮기는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고는 가격을 묻고 자신이 얼마 전에 산 캠코더의 스틸 사진 화질에 대해 말했다. 이윽고 화장실에 갔던 그의 일행이 돌아왔다.
테이블 아래에 깔린 마룻바닥의 틈에 식권이 빠진 모양이었다. 이미 시도해 본 적이 있는 듯, 그는 화분에 자란 잎들을 헤쳐 기역 자 모양의 쇠꼬챙이 하나를 꺼냈다. 틈새에 밀어 넣어 이리 저리 움직이더니 식권이 알맞은 자리까지 왔는지 꼬챙이를 내려놓은 그는 가방을 열어 테이프를 꺼냈다. 길게 푼 테이프를 입으로 뜯은 그는 꼬챙이의 꺾인 부분에 테이프 뒤쪽을 대고 반으로 접더니 틈으로 밀어 넣었다. 식권에 테이프를 붙여 꺼낼 요량이었지만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동료의 놀림에 굴하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그를 보느라, 담배만 피우고 바로 타 넉넉히 도착할 계획이었던 버스 두 대를 그냥 보냈다. 시계를 보니 약속 시각이 딱 한 시간 남았다. 지금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하면 아마 약속 시간이 얼추 다 되어, 끽해야 십 분 정도를 남기고 도착할 것이었다. 가방을 매고 카메라를 들고 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겨 줄을 서는 동안 동료는 이미 자리를 떴고, 혼자 남은 그는 마루 틈을 몇 번 더 찔러보더니 포기한 듯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언제 밥을 다 먹고 나왔는지, 선배는 이미 사람이 앉아 있었던 서점 테이블 대신 옆의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고 있었다. 서점은 아마 비어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