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6.(월)

종일 벽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난다. 적어도 — 잠에서 깬 — 점심께부터는 줄곧. 옆집과 맞닿은 벽이지만 옆집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업소용 환풍기를 돌리는 게 아니라면 이만한 소리가 나기는 힘들다. 처음엔 냉장고가 유독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벽 속을 지나는 수도관 — 혹은 다른 관 — 에서 나는 소리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종일 소리가 난 적이 있지도, 이런 소리가 — 물이 새는 소리가 아니라 관 속을 흐르는 소리가, 그리고 중간중간에 수도를 연 듯한 소리가 섞여 — 종일 날 만한 일이 떠오르지도 않지만. 혹시나 싶어 보일러를 끄거나 켜 보고 수도도 틀었다 잠갔다 해 보았지만 소리에는 변화가 없다.

늦은 저녁무렵부터 주방 온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별 기대없이 틀어보았는데 조금씩 물이 흘렀다. 온수 온도를 올리고 몇 분간 물을 틀어 놓았더니 평소 유량이 돌아왔다. 화장실 온수 수도가 녹은 것은 그보다 두어 시간 전이다. 당연히 아직 얼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수도꼭지 바로 앞까지도 얼어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수도 꼭지를 뽑았다가 잠시 난리를 겪었다. 예상치 못하게 물이 콸콸 나왔기 때문이다. 집으로 들어오는 수도를 전부 잠가 버리면 되지만 밸브가 어디 있는지 아직 정확히 모른다. 위층쪽에 하나, 아래층쪽에 하나가 있고 어느쪽도 딱 이거다 싶은 위치는 아니다. 결국 뿜어져 나오는 물과 싸우며 겨우 수도 꼭지를 다시 달았다.

그런 후에는 장을 보고 왔다. 30분쯤 온 집을 뒤지며 지갑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카드를 발견했다. 채소 서너 가지와 마라훠궈 소스를 샀다. 아이스크림도 하나 사서 오는 길에 먹었다. 왕복 사십 분쯤, 장을 본 시간을 포함해도 한 시간이 좀 못 되게 걸었는데 살짝이지만 땀이 배어 나왔다. 실내에 들어서니 피부가 따끔거렸다. 밥을 안치고 설거지를 하고 재료를 썰고 볶고 끓였다. 이때까지는 주방에 온수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모두 찬물로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잠시 빈둥대다 책을 몇 쪽 읽었다. 두어 해 전에 친구 R이 짐을 정리한다길래 얻어 온 책이다. 요 며칠, 하루에 한 장 정도씩 읽고 있다. 그 사이에는 역시 두어 해 전에 샀지만 펼쳐 본 적 없는 책 한 권을 가볍게 훑었다.

며칠을 책을 읽다가 티비를 보다가 누웠다가 집안일을 하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자연히 시간 감각이 흐트러진 상태다. 온수가 나오는 게 며칠 만일까. 며칠 전에 한 번 녹았던 수도는 이틀날이 되자 맥없이 다시 얼어버렸다. 보온재를 덮은 건 효과가 없었다. 워낙 부실하기도 했지만 수도관이 노출된 구간이 생각보다 — 정확힌 멋대로 왜곡해 기억했던 것보다 — 꽤 길기도 했다. 손난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불량인가 싶을 정도로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서너 개가 모두 불량일 가능성은 높지 않으니, 그저 너무 추워서였을 것이다. 결국 단열재를 사 왔고, 녹으면 감으려다가 하루이틀을 기다려도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냥 감았다. 아마 어제나 그제의 일일 것이다.

단열재를 사러 가면서는 마스크를 깜빡했다. 그걸 이십 분쯤 걸어서 잡화점 앞에 도착하고서야 깨달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들어올 수 없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다행히 쫓겨 나지는 않았다. 우선 마스크를 집어다 쓰고 나가면서 같이 계산하라고 했다. 고무장갑을 샀다. 고무장갑은 순전히 손이 시려서. 안에 천이 덧대어져 있는 걸 사는 게 좋았겠지만 관리가 성가실 것 같아 평범한 걸 샀다. 지난 해에 이 매 장에서 산, 솔을 바꿔 쓰는 손잡이 달린 수세미의 교체용 솔도 사려고 했는데 없었다. 이 매장에만 안 들어오는 걸지 단종된 걸지 모르겠다. 손잡이는 이렇게 쓰레기가 되는 걸까. 같이 산 쇠수세미가 마침 두 개들이라 하나를 얼기설기라도 달아 볼 생각이다.

고무장갑을 껴도 손은 꽤 시렸다. 손이 떨어질 것 같은 정도는 피하게 되었지만 딱히 보호 받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서울 살 땐 물이 아무리 차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여기도 한창 추운 — 작년 이맘 때보다도 더 추운 — 지금을 빼면 이 정도는 아니다. 덜 추워지면 찬물로 설거지를 할 때도 아마 장갑은 쓰지 않을 것이다. 손이 덜 시린 건 좋지만 촉감으로 그릇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영 답답하고 찝찝하다.

다시 책을 펼까. 책을 덮은 건 순전히 벽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커서다. 책상은 벽에 맞닿아 있다. 같은 이유로 오후에는 잠시 카페에 앉아 잡무를 하다 들어왔다. 침실은 조용하지만 바닥에 앉아서 읽는 것도 눕거나 엎드려서 읽는 것도 몸이 잘 못 견딘다.

2022.12.20.(화)

바깥 수도가 얼어터졌다
참았던 말,
들어주지 않으니 손목을 그었다
혹한을 흘러내린 흰 피, 빙판이 되었으니
너무 오래 혼자 두었구나
울다 끈을 놓았구나
발목을 덮는 두께
차디찬 통곡이었을 것이다
그 위에 누워본다
등딱지가 얼음을 알 때까지 너는
용서하지 마라
차고 투명한 부적(符籍)

효험은 몸의 고난을 지나신다

「동파」 (이규리,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문학동네, 2017.)

생각 나서 괜히 한 번 꺼내 읽었다. 딱히 ― 저런 의미에서도 평범한 의미에서도 ― 동파를 겪은 것은 아니다. 조금 얼었을 뿐이다. 그제는 최저기온이 영하 18도였다. 아파트 관리실에서는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은 수도를 틀어두고 자기를 권한다. 영하 13도까지는 안 틀고 두었지만 이쯤 되면 나도 불안하므로 물을 흘리며 잤다. 관리실에서는 그렇게 받은 물을 사용하기를 권하지만, 그걸 차치해도 하수도도 얼 위험이 있으므로 흘려 보내지 않는 게 낫긴 하겠지만, 대야도 욕조도 없으므로 그냥 흘렸다. 아침에 확인해 보니 냉온수 할 것 없이 모두 잘 나왔다. 세면대는 그랬다. 세면대 옆에는 아마도 리모델링 전의 수도관을 살려둔 것일 성 싶은 수도꼭지 한 쌍이 더 있다. 그건 냉수만 나왔다. (그저 가열하지 않았을 뿐인 물을 냉수라고 부르는 게 마뜩진 않지만 적어도 지금 날씨에는 차디 찬 물이므로 그냥 두기로 한다.) 주방도 그랬다. 저 여분의 수도 꼭지와 주방 수도 꼭지를 잇는 수도관은 바깥 공기와 얇은 유리창 하나만을 사이에 두고 있다. 단열재로 감싸 두지도, 콘트리트로든 뭘로든 덮어 두지도 않았다. 하루를 그렇게, 찬물 설거지를 하며 보냈다.

질질 끌던 일을 점심께에 마치고 한동안 뭉그적 대다가 집을 나섰다. 문제의 수도관은 아파트 서쪽 벽에 붙어 있다. 곧 해가 기울어 그 벽에 볕이 들면 조금은 녹을 터였다. 헤어드라이어 같은 걸 쓰기엔 공간이 애매해서 핫팩을 덮어 열을 보태기로 했다. 나가기 전에 수도를 틀어 보았다. 역시 나오지 않았다. 읍내 잡화점에서 핫팩을 샀다. 사는 김에 락스도 하나, 걸레도 하나. 오는 길에는 집 앞 마트에서 이런저런 찬거리. 한 시간 정도 걸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볕만으로도 언 수도가 녹아 온수가 콸콸 나오고 있었다. 욕실을 채운 김과 사방에 맺힌 물방울의 양으로 보건대 샤워에 쓰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그런 모양이었다. 얼른 물을 잠그고 허술하게나마 단열재를 덮었다. 작년 이맘때부터 생각만 하고는 한 번도 얼지 않아서 그냥 방치했는데 결국 일이 이렇게 되었다.

집을 나서기 직전에는 세탁기를 돌렸다. 베란다도 꽤 춥지만 이쪽 수도관에는 단열재가 둘러져 있다. 창을 열고 잤던 한 번, 수도 꼭지와 세탁기를 잇는 호스에 차 있던 물이 언 적이 있을 뿐이다. 이번에도 물은 무사히 흘러 나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세탁기가 멈춰 있었다. 에러 코드를 제대로 보지 않고 전원을 껐다가 다시 돌렸다. 문제 없이 작동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조금 전, 세탁기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물이 가득 찬 해 멈춰 있었다. 에러코드는 OE. Out Error쯤 되는 말일까, 확인해 보니 배수 불능 상태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탁기 아래쪽 배수구 근처에 고여 있던 물이 언 모양이다. 세탁기가 비어 있다면 끄집어 내서 녹여 보겠지만 물이 가득 찬 지금으로서는 그저 녹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 옷들은 며칠을 물에 젖어 있게 될까. 얼음이 녹는 게 빠를까, 내가 정신 차리고 건져서 세탁방에 가는 게 빠를까.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집은 건물도 허술한 샌드위치 패널인데다 마당에도 수도 꼭지가 있어 겨울이면 늘 얼어 붙었다. 서울에서 여기저기 ― 고향집만큼 낡았지만 그래도 철근콘크리트로 지은 건물의 셋방들을 ― 옮겨 다니며 살게 된 후로는 어느 옥탑에서 변기 배수관이 얼었던 것을 빼면 딱히 그런 일이 없었던 것 같고. 그러니 꽤 오랜만이다. 이번에 언 수도관은 지난해에 녹이 가득 차서 물이 잘 안 나왔던 그 관이다. 설거지쯤 겨울에도 찬물로 하지, 생각하며 한동안 방치하다 겨울이 되자마자 고친 후로는 줄곧 따뜻한 물로 설거지를 했다. 그걸 빼도 찬물 설거지는 그렇게까지 오랜만은 아니다. 언젠가까진 겨울에도 대개 찬물을 썼다. 언제부턴가는 여름에도 늘 더운 물을 쓴다.

2022.12.07.(수)

시답잖은 꿈을 꾸다 깼다. 주웠는지 샀는지 아무튼 오디오 하나가 생겨서 살펴 보고 있었다. 꽤 커다란 것이었는데 대부분 빈공간이고 카오디오 ― 카오디오일 리 없는 하얗고 미니멀한 디자인이었지만 ― 를 꽂아두었을 뿐인 것이었다. 케이스를 열자 빈공간 가득 과자 봉지가 차 있었다. 뜯지도 않은 과자가 열 봉지쯤 나왔다. 과자 말고도 무언가 있었고 그것이 더 신기하면서도 맘에 드는 물건이었는데 뭐였는지는 잊었다.

이걸 어떡하나 생각하다 깼고 한동안 누워서 뒹굴거렸다. 주섬주섬 일어나 커피를 내려 반 잔쯤 마시고 샤워를 한 후 나머지 반을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서는 내일 마실 원두를 갈았다. 내일 마실 원두, 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게 쓰면 문장이 너무 길어진다. 원두는 핸드 그라인더와 전동 드릴로 갈았다. 그저께부턴가 이렇게 하고 있다. 핸드 그라인더 손잡이를 떼고 나사를 드릴에 물려 돌린다. 그제와 어제는 다 마친 후에 손잡이를 다시 달았는데 이번엔 그냥 두었다. 내일도 이렇게 갈겠지.

집을 나섰다. 오늘 신은 운동화는 오른발목쪽 안감이 닳아 내장재가 튀어나와 있다. 양말 목이 짧으면 발목을 긁힌다. 그래서 발목을 다 덮는 걸 신고 나갔는데 하필 늘어난 것이었다. 양말이 계속 아래로 말려 발목이 드러났다. 길가에 놓인 박스 더미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들어 종이를 찢었다. 발목에 댔다. 더는 긁히지 않았다. 곧 영월군 주천면행 버스를 탔다. 원래는 자전거를 탈 생각이었지만 추운 날 쓰는 머플러형 방한대를 찾지 못했고 자전거 정비도 미루고 미루다 끝내 하지 못했다. 며칠 전에 산 프레임 거치형 주머니만 뻘쭘하게 달려 있다.

주천까지는 한 사십 분 걸렸을까. 포털사이트 지도에 뜨는 시간보다는 짧았다. 면소재지에 내려 꼴두국수로 요기했다. 김치말이메밀칼국수쯤 되는 음식이다. 70년대부터 영업했다는 가게 벽면에 붙은 설명에 따르면,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제일 흔했던 메밀로 만들어 종종 먹던 것이라 꼴도 보기 싫다 하여 꼴두국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꼴뚜국쑤 하나 주세요, 하고 나서야 그걸 보고는 꼴두국쑤라고 해야 했나 생각했는데 주문을 받은 사람도 ―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엄마라 부르던 ― 꼴뚜국쑤라고 발음했다. 강원도에서 꼴도를 과연 꼴두로 발음할까 궁금했는데 골뚜로 발음한다면 더더욱 의아하다. 강원도 말은 모르지만.

그리고는 무릉도원면을 향해 걸었다. 영월에서 지낼 때 하루 걸러 하루씩은 걸었던 두 시간 반 정도 되는 코스를 돌기로 했다. 지난번에 갔던 곳 ― 요선암 돌개바위 ― 은 들르지 않고 그냥 큰길을 따라 걸었다. 사진을 여남은 장 찍었다. 중간이 필름이 다 돼서 새 걸 끼웠는데, 끼우고 보니 이 ― 셔터스피드가 최고 1/500초인 ― 카메라에 쓰기에는 감도가 너무 높은 것이었다. 필름을 빼고 렌즈 커버를 닫았다. 늘 하는 대로, 생각 없이 걷다 엉뚱한 길을 드는 바람에 네 시간을 걸었다. 나머지 하루 걸러 하루 중에서도 며칠에 한 번만 갔던 긴 코스. 조금 피곤하지만 실은 더 좋아하는 코스다. 덕분에 저번엔 못 봤던 숙소 앞도 지났다. 아직 영업 중인 듯했다.

다시 면소재지에 도착해 카페에 들렀다. 그래놀라를 사려고 했는데 잠시 생산이 중단된 상태라고 했다. 그냥 거기 앉아서 커피를 마셔도 되었을 것을 굳이 지난번에 갔던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정기휴무일이었다. 결국 영월에서 지낼 때 종종 갔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러고는 제천시 버스 앱으로 버스 정보를 확인했는데 20분 뒤면 도착한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 지도는 50분 뒤라고 했지만, 당연하게도 이쪽이 옳다. 애초에 포털 사이트에는 실시간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시에서 API를 공개하지 않는 것인지 포털사이트에서 군소도시 정보는 굳이 받아가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 앱에서는 실시간 정보는 볼 수 있지만 발차 시각은 볼 수 없다. 하루에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있는 노선이므로 대개는 “운행 중인 버스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를 마주하게 된다. 포털 사이트에는 첫차, 막차 시각이 뜬다. 최종적으로는 시 교통정보 웹사이트에서 PDF로 제공하는 시간표를 확인해야 한다. 아주 어렵지야 않지만 처음 보면 당황할 법한, 세 개의 축을 따져 찾아야 기종점과 주요 경유지 한 두 곳의 발차 시간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표다. 커피를 반은 남기고, 가져간 책은 한 번 꺼내보지도 못한 채, 얼른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돌아오는 데 다시 오십 분. 딴짓을 하다 내릴 곳을 지나쳐 몇 정거장 더 걸었다. 딴짓이란 팟캐스트 《흉폭한채식주의자들》의 42화 〈코미디의 무늬〉 듣기. 그 전까진 얼마 전에 녹음한 B의 노래를 들었다. 네 시간을 걷는 동안에도, 낮에 제천에서 영월로 가면서도 그걸 들었다. 총 30분 남짓 되는 몇 곡의 노래를 다섯 시간 좀 넘게 돌려 들었다. 〈코미디의 무늬〉를 마저 들으며 집으로 걷는데 식당마다 냄새가 어찌 그리 진하던지. 하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귀가해 밥을 안치고 냉장고에 넣어둔 ― 시판 양념에 채소와 두부만 썰어 넣은 ― 강된장을 꺼내 데웠다. 조금 많다 싶었지만 두 번에 나눠 먹기만 애매한 양이어서 전부 비벼 조금 짜게 먹었다.

종이가 충분치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종이를 댔기 때문이었는지, 발목 아래, 뒤꿈치 바로 위에 물집이 잡혔다.


주천면 도원리 구석을 걷다가 흙에 파묻힌 채 녹이 슬어 있는 LED 헤드 랜턴 하나를 주웠다. LED만 떼어 쓰려고 했는데 방금 보니 몸통만 남아 있다. 버스를 타기 전에 한 번 떨어뜨렸는데 그때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몸통을 분해해 플라스틱과 금속과 전지를 나누어 분리수거함에 담았다. 제천 시내를 걸으면서는 압축 스펀지 조각 하나를 주웠다. 며칠 전에 필요한 일이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주웠는데 그게 뭐였는지 도통 생각이 안 나네.

2022.12.04-05.(일-월)

2022.12.04.(일)

(이틀 전이나 사흘 전과 마찬가지로) 점심 녘에 눈을 떴다.[1]점심녘, 이라고 붙여 썼다가 뒤늦게 띄었다. 아침녘이나 점심녘은 자연스러운데 저녁녘은 왠지 좀 어색하네, 저녁의 녁이 원래 녘이어서일까. 이런 … (계속) 밥 하기 귀찮아서 한참 누워 있다가 주섬주섬 채비를 해 결국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했다. 카페에 가서 일을 하려 했는데 휴무일이었다.

결국 집에서 일했다. 아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일을 하던 중에 한참 딴짓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늘어져 일을 마치지 못했으므로 일한 후, 라는 때는 오지 않았다. 자기 전에는 양말을 꿰맸다. 갖고 있는 양말의 아마 반절 정도에는 구멍이 있다. 신발을 벗어야 할 일이 있는 날이 아니면 개의치 않고 그냥 신는다. 그래 왔다. 최근에는 왠지 부지런히 꿰매기 시작했다. 그래도 발가락 쪽 구멍만 막고 ― 때로 뒤꿈치를 지나 발목 바로 아래까지 이어지는 ― 발바닥의 구멍은 방치해 왔는데 며칠 전에 한 번 꿰맸고 이번에 또 한 번 꿰맸다. 그러다 지쳐서, 한 짝은 그냥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2.12.05.(월)

어째선지 아침에 깼다. 하지만 점심께까지 누워 있었다. 밥을 안치고 남은 양말 한 짝을 꿰매고 어제 해 먹고 남은 된장국과 애매하게 남아서 냉동실에 얼려 뒀던 된장국을 한데 끓였다. 식사 후에는 남은 일을 마저 했다. 하다 말고, 순전히 일의 타이밍을 맞추기 ― 미루되 너무 미루지는 않기 ― 위해 이른 저녁으로 알리오 올리오를 해 먹었다.

일을 계획대로 마치고 남은 저녁을 허위허위 보낸다. 남은 일은 내일.

1 점심녘, 이라고 붙여 썼다가 뒤늦게 띄었다. 아침녘이나 점심녘은 자연스러운데 저녁녘은 왠지 좀 어색하네, 저녁의 녁이 원래 녘이어서일까. 이런 생각을 하다 “‘저녁’의 어원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녁’이 방향을 뜻하는 명사인 것은 분명한데, 이것에 선행하는 ‘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어떤 사람은 ‘져녁’을 동사 어간 ‘져믈-’ 또는 ‘졈글-’에 ‘녁’이 결합된 ‘졈글녁’이나 ‘져믈녁’이 줄어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ㅁ글-’과 ‘-믈-’이 생략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이들 해석은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한편, ‘져녁’이 ‘뎌녁’으로부터 변했다고 보기도 한다. ‘뎌녁’은 15세기 문헌에서 ‘彼坊’ 즉, ‘저쪽’이라는 ‘공간 개념’으로 쓰였다. ‘공간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져녁’이 ‘뎌녁’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도 있으나 ‘뎌녁’에서 ‘夕’의 의미가 확인되지 않고 ‘져녁’의 이른 시기의 어형이 발견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두 단어 사이의 관계를 섣불리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는 20년 전의 을 찾았다.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단어 중 ‘아침’이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불교 용어에서 전용된 ‘점심’이 그 다음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17세기 이후에 등장한 ‘저녁’이 가장 일천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말로 끝나는 글이다. 그러던 중에 아침 녘, 점심 녘보다 저녁녘이 더 흔히 쓰이는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저녁녘만 등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아침녘도 실려 있다. 점심녘은 두 곳 다 없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저녁이란 단어의 생김새가 낯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