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3.(토)

아홉 시쯤 일어났다. 주말 아침부터 이런 소식을 전해도 좋을까,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조금 하다 담당자에게 멋대로 마감을 미루게 되었다는 연락을 했다. 밤까지 보내겠다고 말했더니 주말까지는 달라고 했다. ‘늦어도’가 생략된 문장인 게 당연했지만 냉큼 그럼 내일까지 드리마고 말을 고쳤다.

점심은 전날 먹고 남은 식빵, 이었지만 그것으로 끝나지가 않았다. 배가 잔뜩 부르면서도 허기가 잔뜩 졌다. 고민하다 옹심이칼국수집에서 갔다. 옹심이칼국수는 2인분부터만 주문할 수 있으므로, 막국수를 먹었다. 빠르게 먹고 돌아왔다.

빠르게 먹은 것은 한 시부터 스터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사정으로 스터디는 30분 늦게 시작했다. 졸려서 중간에 커피를 마셨지만 졸음은 가시지 않았다. 꽤 느리게 진행했다. 다섯 시까지. 지난 번에 일부를 읽은 글의 나머지를 다 읽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번에도 조금 남았다. 다음 주는 바빠서 새 글을 번역해 갈 여유가 없을 것 같아 한 주 쉬기로 했다. 다다음주에, 이번에 남은 약간과 새 글의 도입부 약간을 읽는다.

컨디션이 여전히 별로라 저녁에는 죽집에 갔다. 몇 번인가 가서 야채죽을 먹었고 주인과 알은체를 하게 된 곳이다. 이번에도 야채죽을 먹을 생각이었지만 물잔을 가져다 주길 기다리며 괜히 메뉴판을 보고 있었는데 메뉴를 정하면 알려달라고 했다. 괜히 머쓱해 참치야채죽을 시켰다. 죽과 함께 나온 장조림을 가리키며 이건 안 주셔도 된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나를 알아보았다. 두 번째로 방문했을 때부터 장조림은 미리 빼고 주셨더랬는데.

다 먹고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누가 마스크를 건넸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다 듣지는 못했지만 교회에 오시라는 말이 들렸고 역시 자세히 보지 않았지만 마스크에는 십자가가 그려진 전단이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받아서 가방에 넣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꺼내다 보니 마스크에 국민혁명당 입당원서가 붙어 있었다. 아까 그건 다 멋대로 지어낸 생각이었나, 했는데 앞에는 교회 전단 뒤에는 국민혁명당 전단을 붙인 것이었다.

열 시 정도까지 느릿느릿 일했다. 집까지는 걸었다. 언제 잤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2021.10.21-22.(목-금)

2021.10.21.(목)

언제 일어났을까, 점심은 시내의 ― 언제나 보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 보리밥집에서 먹었다. 아슬아슬할 줄 알았으나 생각보다 여유롭게 터미널에 도착해 서울행 버스를 탔다. 원래는 일찍 출발해 밤에 돌아올 생각으로 아침 버스를 예매했다가 이튿날 돌아오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고 오후로 변경한, 결국 당일 저녁에 돌아오는 것으로 다시 계획을 바꾸었지만 그대로 둔 차편이었다.

서울에 도착해서는 카페에 앉아 글을 읽었다. 독서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는, 책 읽기 좋다고 소문난 카페였는데 조명은 어둡고 의자는 불편하고 음악은 시끄러웠다. 맞은편에서는 어느 신문 제호 스티커를 붙인 노트북을 펼치고 앉은 이가 신발을 벗은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얹어 놓고 까딱거리고 있었다. 양말은 원래부터 신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녁에는 친구의 일을 ― 또 마음으로만 ― 잠깐 도왔다. 저녁은 들깨칼국수를 먹었다. 제천서 늘 먹는 옹심이메밀칼국수에 비해 영 부실한 꼴을 하고 있어서 속으로 역시 서울이란, 했는데 생각해 보니 적으나마 보리밥도 같이 나오는 메뉴였고 먹기에 딱히 부족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또 한 번 계획을 바꾸어 밤새 일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버스의 예매를 취소하고 잠시 일을 하다가 또 마음을 바꾸어 숙소를 잡았다. 언젠가 한 번 잔 적이 있는 곳이었으나 저번과는 다른 ― 방 안에, 그러니까 화장실 밖에, 욕조가 있는 ― 구조의 방이었다. 숙소에서 욕조를 볼 때마다 잠시 고민하지면 결국은 사용하지 않는다. 이곳의 것도 썩 깨끗하지는 않아 보였다. 화장실 휴지걸이 위에는 앞선 객이 쓰고 간 일회용 치약이 남아 있었다. 슬리퍼가 없어 기이하게 여겼는데 알고 보니 현관 벽에 걸려 있는데 그냥 지나친 것이었다.

잠은 쉽게 들지 않았다. 누워 있다가 시트콤을 보다가 편의점에 가서 배를 채웠다가 하다 보니 어느새 네 시였나 다섯 시였나. 그러고도 조금 더 있다가 잠이 들었다.

2021.10.22.(금)

아홉 시가 좀 안 돼서 깼다. 일을 해야 하므로 여덟 시부터 띄엄띄엄 열 번 가량 알람이 울리게 해두었는데 한 번도 깨지 못했고 알람이 울리지 않는 언젠가 돌연 깼다. 힘차게, 는 아니었다. 열 시를 조금 넘기고서야 꾸역꾸역 몸을 움직여 씻고 길을 나섰다.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서울에 살 때 종종 다니던 곳이다. 거의 매번 밥 두 그릇에 반찬 두 벌을 먹었는데, 그간 양이 줄었는지 밥 한 공기 반을 겨우 먹었고 반찬도 남았다. 굳이 반 공기를 더 먹은 것은 실수로 내어주신 한 공기에 손을 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공기만으로 배를 채웠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는 카페로 옮겨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 시 이십 분 버스로 제천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남는 시간이 딱히 없을 만한 타이밍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밍기적거리느라 지하철을 한 대 보냈고 다음으로 들어온 차량은 신호 대기로 조금 늦게 출발했다. 환승할 차량이 한 대 밀렸다. 배차 간격이 긴 노선이었고 달려도 고속버스 시간에 맞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며 두어 정거장을 가고 보니 반대로 가고 있었다. 내려서 또 조금 기다려 제대로 된 차를 탔고, 달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다음 버스를 타게 되었다.

휴대전화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 가는 길에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할 일이 있었다. 터미널에서 삼십 분 가량을 보내게 되었으므로 충전기를 사기로 했다. 잡화점 위치를 헷갈려 시간을 날렸고 콘센트를 찾느라 ― 콘센트가 있었을 자리가 거의 다 막혀 있었다 ― 또 한참 시간을 썼다. 10분 정도를 겨우 충전하고 버스에 올랐다. 휴대전화를 초절전 모드로 설정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쯤까지 버텨주었다.

제천에는 소나기 예보가 있어 조금 걱정했는데 가는 내내 하늘이 맑았다. 버스를 내리고 보니 땅이 젖어 있었다. 라면을 먹기로 하고 터미널 앞의 분식집에 들어갔다. 주인과 친구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할 때까지도 주인은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난로 위 주전자에서 물을 퍼다 가스렌지 위의 냄비에 붓고서야 마스크를 챙겼는데, 목에 걸었을 뿐 역시 쓰지는 않았다. 라면이 다 익자 마스크를 쓰고서 내게 가져다 주었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다시 벗었다.

친구가 떠나고 그와 나만 남았다. 그는 내게 몇 마디를 붙이다가 이내 라디오 소리에 빠져들었다. 짧은 대화로 제천에는 그냥 소나기 정도가 아니라 우박이 쏟아지고 눈씨래기가 날리고 천둥번개가 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며 그는 종말인지 말세인지 하는 말을 썼다. 날씨가 안 맞아서 배추 가격이 너무 오르는데 그나마도 없어서 살 수가 없다고, 이제 라면에 김치는 못 주고 단무지나 줘야 할 판이라고 했다. 내게는 김치가 수북이 담긴 접시를 준 후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잠시 짐을 정리한 후 언젠가 신청해 둔 온라인 화상 강의를 들었다. 두 시간짜리였으나 두 시간 반이 다 되도록 끝나지 않았고 결국 몇 분 남기고 먼저 나와버렸다. 배가 고파져, 빵집이 문을 닫기 전에 다녀와야 했다. 식빵을 사다 먹으며 일을 조금 했다. 강의를 듣던 중에 조금씩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는데 그저 기분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찍 이렇게 판단했다면 좋았을 테다. 더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밤이 깊어버린 시점이었다. 담당자에게 미리 말하지도 못하고서 멋대로 마감을 미루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2021.10.20.(수)

일찍 깼다, 가 다시 잤다. 열 시 반엔가 일어났다. 점심은 집앞 중국집에서. 새우인가를 뺀 볶음밥에 짬뽕 국물 대신 계란국, 짜장 소스는 없이. 갔더니 빈 자리가 없었고 ― 사람 없는 테이블엔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 한동안 출입 명부가 놓인 테이블에 앉아 대기했다. 기다리는 사이 “볶음밥으로 드리면 되죠?” 하고 주문을 받아가셨다. 단무지는 빼고 주세요, 하는 말을 이번에도 잊었다.

집앞 카페로 가려다 며칠 전에 양과자점에 “본 상가 임대”라는 팻말이 붙은 걸 본 기억이 나서 옆 동네까지 걸어 양과자점에 갔다. 팻말이 여전히 붙어 있었다. 폐업인지 이전인지 같은 게 궁금했던 건데 그런 안내문은 붙어있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양과자 네 개를 샀고, 영문은 묻지 않고 나왔다.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앉았다.

어제 빌린 황정은의 소설을 읽었다. 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황정은은 좋아하므로, 나쁘지 않다. 연초에 후루룩 읽은 적이 있는 소설인데 이번에도 후루룩 읽었다. 그리고는 지난주에 읽던 다른 글을 조금 더 읽었다. 도움이 될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을 만한 분량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다. 마감은 며칠 후다. 그 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베트남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으나 하필 수요일이 정기 휴일. 일전의 국수집에 가서 일전의 메뉴대로 먹었다. 이번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아니었다.

집에 와서는 《몸이 선언이 될 때》 전의 첫 번째 퍼블릭 토크 〈지금 여기〉를 방청했다. 셰어의 동료들이 출연했다. 기획하던 시기에 “저는 할 말이 없는데…”라고 했더니 기획자님께서 나는 빼주셨다. 셰어 동료들은 도통 안 들어주는 말이다. 두 시간 가량의 토크가 끝나고는 샐러드를 하고 단호박을 익혔다. 한 시간쯤 후에는 아이스크림도 사다 먹었다.

누울 것이다.

2021.10.19.(화)

또 점심께에 일어났던가… 점심은 옹심이 칼국수 먹었다. 버스 타고 도서관 갔다. 써야 할 글에 참고가 될까 하고 황정은의 소설을 빌렸다. 대출카드를 만드는데 주민등록증에 서울 주소만 있어서 잠시 곤란을 겪었다. 이삿날 주민센터에 들러 전입신고를 했는데, 서울에서는 뒷면에 붙여 주던 전입지 주소 스티커를 이곳에서는 붙여주지 않았다. 별일 없겠지 하고 넘겼는데 이런 데서 문제가 될 줄이야. 휴대전화 앱으로 등본을 발급받아서 해결했다. 다행히 담당자 확인만 거치면 되고 사본을 제출할 필요는 없었다. (앱에서는 출력은 물론 PDF 저장도 안 되고 법적 효력은 없다는 문구가 추가된 “미리보기”만 제공된다).

시내를 지나 삼십 분 좀 넘게 걸었다. 볼일을 잠깐 보고 마트에 들러 샐러드거리와 단호박, 버섯, 방울토마토, 양파를 샀다. 양파는 깐양파 두 알을 집었다가 안 깐 양파 네 알로 바꿨다. 열 알 스무 알 단위 포장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안 봤는데 깐양파를 들고 계산대로 가다 괜히 한 번 봤다가 네 알짜리를 발견했다. 가격은 이게 삼백 원쯤 쌌다. 혹시나 하고 메고 간 빈 배낭에 차곡차곡 담아 귀가했다.

사둔지 꽤 된, 싹이 꽤 난 감자 두 알과 양파 반 알과 두부 반 모를 썰고 마늘 두 알을 다져 감자국을 끓였다. 감자국은 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가, 이것은 나의 오랜 궁금증 중 하나다. 그런 걸 끊인 것은 이틀 전에 끓인 김치찌개가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전날 라면을 끓이며 한 밥도 조금 남아 있었다. 평소보다 밥을 많이 먹었는데도, 감자국이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김치찌개가 또 남았다.

저녁 먹고는 뭘 했을까. 별것 하지 않은 것 같다. 황정은의 소설은 가방에서 꺼내지 않았다.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를 하나 보았다. 두어 시쯤 잠들었다.


이날 도서관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정류장에 붙어 있는 광고 전단을 발견했다. A4 용지에 글자만 인쇄한 형태였다. 아래에 내용을 옮겨둔다. 철자법 뿐 아니라 마침표와 띄어쓰기도 원문의 것을 따랐다. (띄어쓰기는 철자법에 포함되는 걸까?)

자신감 코칭

저는 장난으로 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바뀌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분을 모집합니다.

아래 사항을 읽어주시고 본인에게 해당되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못생긴 외모와 작은 키로 극심한 열등감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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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코칭을 수강하므로 얻을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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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거에 굉장히 소심했고 여자에게 말도 못걸었습니다. 그러나 자신감 있는 행동을 함으로 자신감을 얻을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자신감을 키워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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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월)

놀랍도록 아무것도 안 했다. 열 시쯤 깼다가 다시 잠들어서 일어난 것이 아마도 한 시 무렵. 대강만 씻고 집앞 분식집에서 요기를 하고 시내에 얼른 다녀와서는 컴퓨터 앞에 잠시 앉아 있다가 또 누웠다. 잠들었다. 몇 번인가 자다 깨다 하고 보니 어느덧 아홉 시. 싱크대에서 프라이팬을 꺼내 씻고 밥을 안치고 나와서 라면을 사다 끓였다. 라면이 끓는 동안 수저와 밥그릇과 접시를 씻었다. (싱크대에 여전히 그릇 몇 개를 남겨 두고서.) 김치를 썰어 라면과 밥과 먹었다. 한동안 빈둥대다가 또 나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먹었다. 또 한동안 빈둥대다가 일기를 쓴다. 씻고 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