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로드, 여성작가회의 《차이의 언어》 기조연설(호주, 1985)

원문: Audre Lorde, A Keynote Address on “The Language of Difference” at a Women’s Writing Conference held at Melbourne, Austrailia in 1985.
Audre Lorde, “August 10, 1985,” A Burst of Light: Living with Cancer in A BURST OF LIGHT and Other Essays, New York: Ixia Press, 2017에서 재인용.

여러분의 초대로, 흑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차이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러 여기에 왔습니다. 우리는 빅토리아 주 ― 인종주의, 파괴, 빌려온 동일성 위에 지어진 주 ― 의 150주년을 기념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말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몇 주동안이나 제게서 여러분을 찾으려,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을 우리가 공유하는 바를 알아보려 애썼습니다. 언어가 더없이 비슷해지면, 언어는 더없이 위험해집니다. 차이가 눈에 띄지 않고 지나쳐져 버리게 되니까요. 선의를 품은 여성들로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낭만도 죄책감도 없이 차이의 언어를 쓰는 단호한 투신을 통해서만 차이의 언어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도, 여성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깊은 지식을 반영한 것도 아닌 공통의 언어를 갖고 있기에 우리의 말은 종종 똑같이 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서로의 말 너머에 있는 역사와 특수한 정념들을 검토하기로 뜻을 모으지 않고서 우리가 같은 경험, 같은 책무, 같은 미래를 말한다고 믿는 것은 오산입니다.

제가 흑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제가 아프리카계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유색인 여성이라고 말하는 것은 북미의 아메리카 인디언, 치카나, 라티나, 아시아계 미국인 자매들과 공동의 대의를 진다는 뜻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들이 충분히 쓸 물을 찾는 데 보내는 에리트레아Eritrea 여성들과, 또한 다섯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아이들의 반수를 땅에 묻는 남아프리카 흑인 여성들과 공동의 대의를 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흑인 자매들, 오늘 우리를 이 자리에 모이게 해 준, 인종말살적 정복에 역사와 아이들과 문화를 유린당한 이 땅의 원주민Aboriginal 여성들과도 공동의 대의를 집니다.

우리가 나눌 수 있을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제 깊숙한 곳까지를 파고 들었습니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 땅에 뿌려진 제 원주민 자매들의 피에 혀가 짓눌리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진정한 차이의 언어가 말해지기는 아직 이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언어를 말하는 것은 저의 원주민 자매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운명을 공유하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그 목소리나 언어를 들어 본 적 없는 오스트레일리아 선주민의 딸들의 몫입니다.

백오십 년 전, 빅토리아 주가 백인 정착자들의 재산으로 선언되었을 때, 지금 빅토리아라 불리는 이 땅에는 아직 만오천 명의 흑인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곳에서는 한때 부룬졔리Wurundjeri 여성들이 꿈을 꾸고 웃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 땅을, 고무나무와 아카시아를 돌보았고 그로부터 돌봄 받았습니다. 여러분 중에 그 딸들은 보이지 않는군요. 이 여성들은 어디에 있나요?

그 어머니들의 피가 제게 비명을 지릅니다. 여러분의 의사당 건너에 있는 윈저 호텔에 머무는 저의 꿈에, 그 딸들이 밤마다 찾아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마음을 파고들고 용감하고 슬픕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가슴을 열고 주의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들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 여러분이 가장 듣고 싶다고 했던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역사가 저의 역사입니다. 백인 이주민 정착자들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부룬졔리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비소와 밀가루로 만든 빵을 먹일 때 북미에서는 백인 이주민 정착자들이 일곱 살 난 아프리카인 소녀들을 한 사람 당 35불에 팔았습니다. 바로 그 이주민 정착자들이 북미 선주민,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천연두균을 묻힌 죽음의 담요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자신의 힘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갖고서 오늘 여기에 왔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아주 집중해서, 시급히, 그 일에 임하기를 촉구합니다. 여러분이 여기 앉아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데에, 너무도 많은 부룬졔리 여성들의 피가 흘렀기 때문입니다.

죄책감의 향연을 일으키려는 게 아닙니다. 진정한 차이의 언어를 발굴하고 쓴다는 것이 여러분의 삶에서 어떤 의미일 수 있을지를 따져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차이의 언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고 그저 안전한 토론으로 남을 것입니다. 여기는 제 자리가 아니니까요. 저는 떠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 나라의 흑인 원주민 여성들의 언어를 듣고 느끼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글과 여러분의 삶은 그 언어와 교차하기에, 여러분은 여러분의 작품이 어느 여성mistress에게 복무해야 할지를 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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