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한 것들(11.17. / 11.27.)

원래는 뒤늦게 생각난 걸 해당 날짜 일기의 아래에 덧붙여 왔지만 미룬 탓에 모양이 애매해져서 여기 따로.

21.11.17.(수)

층고는 두 층짜리에 면적도 상당한 편인 공간에서 영업하던 어느 카페 겸 바 앞을 지나는데 폐업 공고가 붙어 있었다. 11월 16일자로 쓴 공고였다. 오늘까지만 영업합니다. 갑작스럽게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는 죄송하지만, 다른 꿈이 생겨 내린 결정이니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확한 문장이나 단어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21.11.27.(토)

해변을 걷는데 어디선가 기이한 노래가 들려 왔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였는데 음량이 상당했다. 음량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음반을 재생 중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업적인 음반 치고는 노래하는 이의 발성이나 기교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식이었다. 스피커 바로 앞까지 가서야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하고 있었다. 거리 공연 같은 게 아니라, 친구 둘이서 나들이를 나와서는 노래방 음원을 틀어 놓고 노는 중인 듯했다.

그럼에도 휴대전화에 연결된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라든가 하는 간단한 도구가 아니라 유선 마이크와 붐박스. 발성에만 신경 쓰느라 전혀 몰랐는데 한국어나 영어가 아닌, 나는 모르는 언어였다. 두 사람의 외모 역시 흔한 한국계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출신지에서는 자연스런 일일지, 어쩌다 보니 붐박스는 갖고 있지만 블루투스 마이크 같은 걸 따로 갖추기는 어려웠던 것일지, 노래방 만큼의 음량이 반드시 필요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아 장만한 일습일지를 궁금해 하며 지나쳤다.

2021.12.01.(수)

다섯 시에 일어났다. 다섯 시 반쯤 일어날 요량으로 다섯 시부터 알람을 울리게 맞춰뒀는데 첫 알람에 곧장 깼고 곧장 일어났다. 여섯 시 사십 분 버스를 타려던 계획을 수정해 여섯 시 버스로 서울로 향했다. 터미널에 가는 길에도 간식을 먹었고 서울에 내려서도 우동을 먹었다. 서울에서는 카페에 앉아 사오십 분 정도 일을 했다. 성과는 적었다.

아홉 시 반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를, 아홉 시 십오 분쯤 만났다. 목적지 ― 전시장 ― 근처의 카페로 갔으나 문이 닫혀 있었다. 오픈 시각이 5분쯤 남은 때여서 잠시 배회한 후 돌아왔는데 여전히 닫혀 있고 인기척도 없었다. 오픈 시각이 바뀐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다른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어제 하다 만 스터디를 마저 했다. 남은 부분 역시 번역이 제멋대로였다.

예전에 꽤 자주 갔던 곤드레밥집에서 식사를 하고는 화방에 잠시 들렀다. 화방에서 뭔가 살 게 있었는데, 까지만 기억나서 일단 들어가 보았으나 결국 떠오르지 않아 그냥 나왔다.버스로 몇 정거장을 이동해 윤결과 조희진의 전시 《낯선 환호들》을 보았다. 재작년쯤이었을까, 우연한 자리에서 윤결 작가와 마주 앉게 되어 이 작업 이야기를 들었더랬다. 전시 소식에 시간을 내어 볼까 하던 차에 어느 동료의 후기를 읽고는 일정을 잡았다. 각설이와 품바, 그들의 공연, 기술, 관계맺음 따위에 관한 전시다. 글이 많았다. 보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나와서는 오전에 못 들어간 카페에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녁은 근처 중식당에서 먹었다. 채식 메뉴판이 있는 곳이다. 입소문이 나 채식주의자들이 많이 오는지, 들어가 앉자마자 채식하시냐고 묻고는 그렇다고 답했더니 메뉴를 소개했다. 인터넷에 많이 알려달라고도 했다. 버섯 꿔바로우와 채식 간짜장을 시켜 먹었고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옥수수 온면을 추가로 주문했다. 온면에는 김치가 들어 있었다. 젓갈을 쓰지 않은 김치였을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다음 일정이 있는 친구를 배웅하고 터미널로 향했다. 차 시간이 20분 조금 안 되게 남은 때에 도착했는데 원래라면 담배를 피웠을 시간을 무료하게 보내고 차에 올랐다. 오는 길에는, 가는 길과 마찬가지로, 시트콤을 봤다. 90년대 중반부터 10년을 방영한 열 시즌짜리를 이로써 마쳤다. 2000년대 중반 에피소드에는 2010년쯤에 본 시트콤에 나온 인물들이 조연으로 나오곤 했다. 초반 시즌에 비하면 나았지만 흑인이나 동북아시아인은 후반까지도 스쳐가는 인물들로만 나왔다. 남미계는 더했다. 남아시아인도 나왔던가. 여러 시즌을 거의 매 화에 꾸준히 출연한, 그러나 비중은 아주 낮은 어떤 인물을 종종 생각했다.

집에 와서는 설거지를 했다. 쾌거를 올렸다. 설거지를 기깔나게 했다, 같은 건 물론 아니고. 수도를 고쳤다. 이 집의 문제는 적어도 (추위를 타지 않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남들보다 필요한 것이 적은) 내 기준에선 대부분 미관에 관한 것이고 일부는 약간의 성가심에 관한[1]예컨대 어지간히 주의하지 않으면 샤워를 할 때 화장실 문에 물이 튀고 이 물은 문턱에 고인 후 거실로 흘러 나오므로 우선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야, … (계속) 것이다. 딱 한 가지, 절대적으로 기능적인 문제인 것이 바로 싱크대의 온수였다.

물이 졸졸, 그야말로 졸졸 흘렀다. 여름에 이사했으므로 당장은 급하지 않은 데다 겨울에도 찬물로 설거지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유량이 너무 적어서 보일러가 반응하지 않아 반드시 필요한 때에도 ― 한참을 틀어두어 물을 받는다든가 하는 식으로조차 ― 따뜻한 물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부랴부랴 유량 조절 레버를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대충 눈에 띄는 곳에는 레버가 없다, 는 건 이사 초기에 확인했다. 이번에는 싱크대 뒤나 가벽 사이 같은 곳까지 모두 확인했다.)

오래 전에, 그러니까 세면대가 당연하지 않던 시절에 지어진 아파트다. 원래는 화장실이 지금보다 작은 구조다. 이 집은 화장실을 확장하면서 싱크대를 원래 위치에서 조금 옆으로 옮겼다. 원래 싱크대로 들어가던 수도관은 각각 꼭지를 달고서 화장실에 솟아 있고 거기서 가지를 친 관이 가벽 뒤를 지나 지금 싱크대 수전에 연결되어 있다. 며칠 전에는 화장실에 있는 원래 수도를 한참 틀어 두었다. 그랬더니 싱크대쪽 유량이 조금 늘었고 보일러가 겨우겨우 반응을 할 정도는 되게 되었다. 수도관에 공기가 차서 물이 제대로 안 나올 수도 있나, 이걸로 공기가 조금 빠졌나 생각했다.

그나마도 다시 조금씩 유량이 줄었다. 아직은 보일러가 반응을 하긴 했지만 곧 다시 먹통이 될 것 같았다. 오늘 설거지를 하던 중에, 유량은 원래보다도 더 줄어 버렸다. 쿨럭, 수도가 기침을 한 후의 일이었다. 그야말로 쿨럭 소리와 함께 물과 녹가루를 한 번 뿜더니 유량이 턱없이 줄어버렸다. 녹가루가 어딘가 뭉쳤을까, 망치를 들어 수도관을 몇 번 두드렸더니 더더욱 줄었다. 낭패다. 수도관 청소 비용을 검색했다. 적어도 10만 원, 아니면 20만 원. 그나마도 업체가 많을 수도권 기준이니 이곳에선 더 비쌀지도 몰랐다. 집주인이 기꺼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지만 의사를 묻는 과정부터가 피곤하다.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수도관에 밀어넣을 공구는 없다. 수도관에 공기나 물을 불어 넣은 기계도 없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지. 화장실의 온수를 틀었다. 주방 수도는 (콸콸 나오는) 찬물과 (영 안 나오는) 따뜻한 물의 중간으로 틀었다. 그리고 그 전에, 수전 헤드를 빼고 구멍을 손으로 막았다. 그냥도 수압차가 큰데다 화장실 수도를 틀면 빠져나갈 구멍까지 생기는 셈이므로 그 정도만으로도 찬물을 온수 관으로 역류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통찮았다. 잠시 공구함을 뒤져 수전 구멍에 맞는 굵기의 나사를 하나 꺼냈다. 나사를 끼우고 그 위에 헤드를 채워 구멍을 완전히 막고는 손잡이를 좀 더 찬물 쪽으로 옮겼다. (찬물 쪽은 수압이 세므로 손가락만으로는 온전히 물을 막을 수 없어 충분히 세게 틀지 못했다.) 잠시 후 화장실에 가 보니 녹가루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역류 시키는 데에 성공한 것이다. 이제 주방에서도 따뜻한 물이 잘 나온다. 10만 원이나 20만 원을, 혹은 집주인과 연락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아꼈다.

다음주까지는 기필코 침실 도배를 마칠 것이다. 그러면, 일단 현재까지 맘 먹는 범위의, 집 수리가 끝난다.

1년짜리 적금 통장을 하나 만들었다. 담뱃값으로 써 온 만큼의 돈이 들어가도록. 큰돈은 아니다.

1 예컨대 어지간히 주의하지 않으면 샤워를 할 때 화장실 문에 물이 튀고 이 물은 문턱에 고인 후 거실로 흘러 나오므로 우선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야, 필요하다면 고인 물을 제때 닦아야 한다.

2021.11.30.(화)

일찍 깼으나 뭉그적댔다. 아침 겸 점심으로 미역국과 레토르트 생선구이를 먹고 집 앞 카페에 가서 앉았다. 이 카페에서는 왜인지 종종 인터넷이 잘 안 되는지라 전보다 덜 가는데, 이번에도 다른 곳에 갈까 하다 비가 와서 그냥 그리로 갔다. 인터넷은 먹통이었다. 노트북을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했다. 그래봐야 밀린 일기를 썼을 뿐이다. 일은 하지 않았다.

금연 6일차. 일을 하지 않으면 대체로 괜찮지만 일 비슷한 것만 해도 꽤 안 괜찮아지는 모양이다. 일기를 썼을 뿐인데도 담배가 꽤 간절했다. 피우지는 않았다. 대신 쿠키를 추가로 주문했다. 보통은 아메리카노를 마시지만 커피도 이미 단 것으로 시켜 둔 터였다. 일기만 겨우 쓰고 귀가했다.

오후에는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의 공연 《연극연습4. 관객 연습-사람이 하는 일》을 예매했고 개정증보판이 나온 최승자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와 일다에서 엮은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를 주문했다. 책 그만 사야 하는데… 이른 저녁으로는 씨리얼과 우유를 먹었다. 써야 하는, 정확히는 지난 달부터 써야 했던, 글을 조금 썼다.

일곱 시부터였나, 온라인 화상회의로 친구와 스터디. 서너 달 전에 내가 번역한, 이전 스터디에서 일부만 읽은 글을 새로 읽었는데 번역이 아주 제멋대로였다. 논증이 빡빡하거나 한 글은 아니어서 아주 늘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배가 고파져서는 급히 라면을 끓여 먹었다. 밥도 말아 먹었다. 친구에겐 잠시 쉬고 오라고 했다. 그러고 마저 좀 더 읽었던가 그대로 멈췄던가, 약간 남긴 채 끝내고 말았다.

스터디 중이었나 그 전이었나,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관리실 직원이라고 했다. 용건은 동대표 선출. 투표를 해달라길래 후보가 누가 나왔는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어차피 다들 안 하려고 해서 한 명이에요, 하는 답이 왔다. 어떤 사람인지는커녕 이름조차도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가 내민 것은 찬반 투표 용지도 아니었다. 투표 확인서, 같은 이름이었고 호별로 한 명씩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쓰고 서명을 한 명단이었다. 여기에 서명하면 찬성한 걸로 치는 건가, 반대한다면 어디에 무엇을 쓰게 되는 걸까, 그래서 후보는 누구인 걸까, 여러 생각을 했지만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냥 서명했다.

종일 드문드문, 거실을 조금 정리했다. 바닥에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약간 확보해 보려 애쓰는 중이다. 시트콤을 보다가 두 시쯤 잠들었다.

2021.11.18-29.(목-월)

한도 끝도 없이 미루는구나…

2021.11.18.(목)

낮엔 뭐 했을까, 저녁엔 회의했다. 밤까지.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 활동을 구상하는 회의여서 한 명씩 돌아가며 소회와 포부를 밝히는 시간이 있었는데 평소처럼 의연하게 했다. 전 한 게 없어서 딱히 소회랄 건 없고요,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은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2021.11.19.(금)

서울행. 원래 스터디가 있는 날이지만 친구네 집들이로 대체했다. 이 스터디에는 함께 하지 않는, 이전 스터디를 함께 했던 친구다. 이러나저러나 스터디를 쉬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달리 날을 맞추기가 애매하여 스터디를 한 주 쉬기로 했다. 인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따는 일의 지난함과 대책 없음과 기약 없음 같은 것들을 종종 이야기했다. 하나는 박사, 하나는 곧 박사. 나는 또 평소처럼 의연하게, 힘내세요, 했다.

집주인인 A가 잠시 먹을 걸 준비하러 주방으로 간 사이 B와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A가 왜 그렇게 조용하냐고 했던가 왜 그렇게 침울하냐고 했던가. B는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나는 말을 않는데 자신이 좀 피곤해서 그렇다고 했다. 관점을 바꿔 보라고, 나는 조용히 있는 사람인데 늘 열심히 반응하고 있는 거라고 했다가 욕 먹었다.

저녁을 먹고 일어섰다. 식기건조대와 해초국수를 얻어 나왔다.

2021.11.20.(토)

계속 서울. 18일에 함께 회의한 이들 몇과 그 자리엔 없었던 이들 몇이서, 18일에 회의한 모임에 속한 모임의 회의를 했다. 나 외에도 서울 밖에서 오는 이가 있어서 장소는 고속터미널. 백화점에 입접해 있는 브런치 카페라는 곳에를 처음으로 가 보았다. 회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이용 시간이 끝났다고 하여 (다른 이들이) 터미널을 뒤져 도시락을 파는 카페에서 겨우 빈자리를 찾아 마저 회의.

바쁜 몇은 가고 안 바쁜 몇은 남아 서울대입구역으로 이동해 이른 저녁을 먹었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여전히 이른 저녁이라 술도 마셨다. 고급 수제 맥주 전문점, 같은 슬로건을 달고 있었는데 추천메뉴는 오뎅꼬치였다. 고급인진 모르겠지만, 소규모 양조장의 생맥주들을 팔았고 오랜만에 술을 마셨다. 근처에 사는 친구도 불러 합석했다.

2021.11.21.(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책을 읽었다. 카페에서도 읽고 어느 건물 로비에서도 읽고 걸으면서도 읽고 길가 벤치에서도 읽고 공원에서도 읽고 다른 공원에서도 읽었다. 그래봐야 읽은 분량은 아주 적다. 영어로 쓴 철학책. 업무차 읽는다. 재밌지만 더디고 더뎌서 가물가물하고.

공원에 앉은 것은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쯤이었다. 텅 빈 작은 공원 구석에서 책을 몇 쪽 읽고 있는데 두 사람이 나타났다.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 두 사람이 고양이에게 말을 붙였다. 고양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물론 내게도 다가왔다. 그들은 물론 나도 쓰다듬었다.

또 조금 지나자 사람 하나가 더 등장했다. 노년의 남성이었다. 나를 비롯한 세 사람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울타리 너머에서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느냐, 한참 찾았지 않느냐, 하는 식이었다. 두 사람은 저 분이 기르시는 건가봐, 놀러 나온 건가봐 같은 말들을 했다. 한 사람은 이윽고 밥을 먹자며 공원으로 들어 왔다. 넌 고기 싫어하지, 사료 먹자.

그밖에도 이런저런 말들을 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고양이 이름을 부른 것인지도 모른다. 벤치 밑에 있던 그릇에 사료를 부어준 그는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지도 않고 떠났다. 작별인사는 말로만 했다. 고양이는 사료를 냄새만 한 번 맡고는 다시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밥보다 사람이 좋았을까.

문득 배도 고프고 목도 말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의점에 다녀 왔다. 두 사람은 가고 없었다, 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다시 나타났다. 다른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 간식을 사 온 모양이었다. 고양이는 그새 사료 그릇을 비운 뒤였다. 그들은 캔을 따서 그릇에 부어 주었다. 그러고는 마저 배드민턴을 쳤던가, 아니면 고양이를 보고 있었던가, 그것도 아니면 그대로 떠났던가. 모르겠다. 나는 책을 좀 더 읽고 다른 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조금 더 읽었다.

2021.11.22.(월)

뭘 했을까. 저녁은 곤드레밥을 먹었다.

2021.11.23.(화)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전두환이 죽었다.

전두환이 죽어서 책을 안 읽은 것은 아니다.

2021.11.24.(수)

역시나 책을 읽었어야 했지만, 굳이 카페에 가 앉아서는 아마도 시트콤만 봤을 것이다. 낮에는 화상회의로 강연을 하나 들을 생각이었다. 들으려면 들을 수도 있었지. 듣지 않았다.

2021.11.25.(목)

일어나 기차역 앞으로 갔다. 이른 점심으로 라면을 먹었다. 카페에 앉아 글을 읽다가 시트콤을 보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했다. 마지막 담배는 세 시쯤 피웠다. 세 시 십육 분에 출발하는 동해행 무궁화호를 탔다. 동해역까진 세 시간쯤 걸린다. 동해역 앞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재떨이 옆에, 몇 개비 남은 담뱃갑을 두었다. 저녁은 칼국수를 먹었다. 1급 조리사 자격증을 걸어둔 백발의 주인은 마스크를 챙겨 쓰고 있었다. 주문을 받아 부엌에 들어가더니 마스크를 벗고 조리했다. 그리고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서빙했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 앞 마트에서 생수를 샀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와 본 적이 있는 숙소다. 낡고 낮은 아파트.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LP판 백 장 정도가 비치되어 있다. 대체로 맘에 들었던 곳이긴 하지만 맘에 들어서 다시 온 것은 아니다. 원랜 강릉에 갈 생각이었는데 한 번에 가는 차편이 없어 동해로 틀었다. 숙소를 찾기 귀찮아서 유일하게 아는 곳을 택했다. 물론 맘에 안 들었더라면 귀찮아도 다른 곳을 찾았을 것이다. 이사를 준비하던 시기에 이 아파트에 빈집이 있는지 확인했던 것이 떠올랐다. 없었다.

이용안내문에는 입실 직후 청소 상태를 확인해 알려주면 “다음 손님을 위해” 관리에 반영하겠다는 말이 있었다. 화장실이나 싱크대의 물때, 침구, 문들 먼지 같은 것들이 예로 적혀 있었다. 모두 문제가 있었고 알려주진 않았다. 타지에 사는 주인이 관리인을 통해 운영하는 곳이다.

밤에 문득 창밖을 봤는데 커다란 반달이 수면 가까이 떠 있었다.

2021.11.26.(금)

열한 시쯤 일어났을까. 근처 해안으로 갔다. 바닷가를 좀 걷다가 밥을 먹기로 했다. 저번에 갔던 식당은 폐업한 것 같았다. 그 옆에 있는 식당은 단체 손님 예약이 있어 식사가 안 된다고 했다. 그 식당 주인이 일러준 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마주친 짬뽕집에 들어갔다.

다시 원래 방향으로 돌아와 프랜차이즈 카페의 2층에 앉았다. 저번에 갔던 곳이다. 책을 읽을 생각이었지만, 일로 읽는 것도 영어로 쓰인 것도 철학책도 아닌 것을 챙겨 갔지만, 겨우 두어 페이지 읽고는 덮었다. 지난 여름에 선물 받은 책인데 아직 못 읽었네. 시트콤을 보다가 옥상에 올라가 바람을 쐬다가 했다.

바다를 따라 항구까지 걸었다. 좌판에서 회를 샀다. 숙소의 안내문에 추천 좌판으로 적혀 있는 곳. 회를 살 거라고 하자 물고기 몇 마리를 건져 보여주며 가격을 불렀다. 그대로 샀다. 어종은 듣지 못했다. 묻지도 않았다. 먹고 갈 거라고 하자 역시 아무 설명 없이 근처 어딘가로 이끌었다. 양념집 ― 고향에서는 초장집이라 불렀다 ― 앞에 이르러서야 어디로 가는 것인지 가격은 어떤지를 알려주었다. 역시 그대로 들어가 먹었다. 뭔가 인상적인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 배불리 먹었다.

항구에 도착한 것은 저녁을 먹기엔 아주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항구를 조금 지난 곳에 있다는 작은 서점을 찾아갔다. 여행을 주제로 한 곳이었다. 주인은 친절하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다. 주제가 여행이 아니었다면 뭐라도 한 권쯤 샀을지도 모르는데. 빈손으로 나왔다. 근처에 연필 박물관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가보지는 않았다.

달동네랄까, 산비탈에 자리잡은 동네의 좁은 골목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굳이 관광지를 만들어 놓고는 사람이 사는 곳이니 조용히 해달라는 팻말을 걸어둔 곳. 두 행위의 주체가 같은지 어떤지는 모른다. 동네 구경을 하지는 않았다. 가까운 길을 택했다. 조금 헤맸지만.

2021.11.27.(토)

전날과는 다른 경로 ― 일부 구간은 전날의 귀갓길과 겹치는 ― 를 지나 전날과 같은 해안으로 나왔다. 점심은 곰치국. 아귀나 곰치는 너무 못 생겨서 잡히는 족족 물에 던져 넣곤 했었고 그래서 흔히 물텀벙 같은 식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예전에는 쭈꾸미를 먹지 않았기에 잡히면 물에 던져 넣었다는, 그런 쭈꾸미는 서민의 애환을 안다는 말 ― 어느 식당에 붙어 있었다 ― 도 생각했다. 표준표기법으론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라고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아직도 받아들일 수가 없네.

전날과는 다른 카페에 앉았다. 역시 바다가 보이는 2층. 역시 책은 읽지 않고 시트콤을 보다가 옥상에 나가 바람을 쐬다가 했다. 나와서는 항구를 지나 한참을 걸었다. 고속터미널에서 친구를 보내고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역 앞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담뱃갑은 사라지고 없었다. 식사 전에는 노을을 몇 장 찍었다.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제천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2021.11.28.(일)

시트콤만 봤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크게 괴롭지 않다.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담배를 피우지 않느라 일을 전혀 못하고 있다.

낮에는 버스 회사에 다녀왔다. 동해 가던 날 버스에 두고 내린 것을 찾아 왔다. 차고지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부엌에 있던 이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다. 음식을 내면서는 마스크를 썼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긴팔을 입고 들어가서는 반팔만 입고 나왔다.

2021.11.29.(월)

예의 식당에 다시 갔다. 옷을 찾으러. 겸사겸사 밥도 먹으러. 옷은 내가 앉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의자를 닦거나 의자를 치우고 바닥을 닦거나 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조용히 챙겨 입고 가려다 혹시나 당황할까 싶어 가져가노라 말했다. 그리고는 카페에 앉았는데 일은 하지 못했다. 며칠의 금연으로 담뱃갑 몇천 원을 아꼈고. 간식값은 몇만 원을 썼다. 조각케익을 시켜 먹었는데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소득없이 일어나 길을 나섰다. 도보 삼십 분쯤 되는 곳에 있다는 모전석탑을 향했다. 아파트니 상가니 하는 것들이 있는 구역이 끝나고 천 하나를 건너 농가가 있는 구역이 시작되는 위치에 있었다. 절도 있었지만 자세히는 보지 않았다. 잔디밭이나 화강암 벤치나 나무 정자에 앉아 책을 조금 읽었다. 오래 읽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을 조금 봤다. 집 근처까지 와서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다시 시내로 나가 잡화점에 들렀다. 세탁조 청소제와 구연산을 샀다. 구연산은 스테인리스 냄비와 주전자를 씻는 데 쓸 것이다. 시내 가는 길에는 LED 전구를 하나 주웠다. 고장났으니 버려진 것이었겠지만 일단 주웠다.

집에 와서 분해해 보니 LED 기판과 변압기 기판을 잇는 선이 끊어져 있었다. 언제부턴가 납땜인두는 제대로 작동을 않는다. 겨우겨우 땜을 마쳐 전원을 넣었더니 한순간 불이 들어 왔다가 꺼졌다. 아무데서도 연기가 나거나 하지 않았으므로 이유는 알 수 없고 두 기판 중 하나쯤은 멀쩡할 수도 있지만 달리 테스트에 쓸 도구나 기판을 활용할 데도 없으므로 그쯤에서 포기했다.

LED 전구를 쓸 때마다 늘 궁금하다. 전기가 절약되는 것도, 전구 수명이 긴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래서 최종적으로도 LED가 환경에 덜 나쁜 걸까? 전통적인 전구는 구성이 단순하므로 (의지가 있다면)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재활용할 수 있지만 종종 여나믄 개의 전자 부품으로 구성된 LED 전구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까지 다 계산해도 여전히 친환경적, 인 걸까.

밤에는 의림지에 다녀왔다. 급히 잡힌 화상회의가 하나 있었지만 나는 안 가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들어오라는 전화가 와서 길을 걸으며 접속했다. 늦지 않게 잠들었다.

2021.11.10-17.(수-수)

또 밀렸네. 대체로 기억나지 않는다.

2021.11.10.(수)

낮엔 아마 일을 좀 했을 것이다. 오후엔 밀린 열흘치 일기도 썼다. 밤엔 일을 좀 더 한 후에 새벽부터는 스터디 발제용 번역을 했다. 철야했다.

2021.11.11.(목)

아침 차로 서울행. 노는 약속이 있었다. 목적지는 서울식물원. 정식 오픈 전에 친구들과 한 번 갔었고 이번이 두 번째였는데, 저번엔 오픈 전이라서, 이번엔 이미 추운 계절이라서, 두 번 다 빈 화단이 많았다.

지하철을 내려 식물원으로 가다가 밥을 먹어야 함을 깨닫고 휴대전화로 식당을 찾았다. 바로 앞에 있는 대기업 빌딩 지하에 무언가 있대서 들어가 보았는데 식당가로 가는 길을 적은 안내판 같은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거동이 수상했는지 안내원이 용건을 물었다. 식당가를 찾는다고 했더니 직원이시냐고,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역쪽으로 돌아와 어느 상가에서 칼국수집에 들어갔다. 《생활의 달인》을 비롯해 여러 방송에 출연한 30년 경력자가 운영한다는 곳이었다. 칼국수집 간판과 닭발집이었나 닭갈비집이었나의 간판을 함께 달고 있었다. 우리가 먹은 칼국수를 반죽한 것은 그 ‘달인’은 아니었다.

야외 정원을 잠깐 돌고 온실을 천천히 돌았다.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런 다음엔 친구가 일정이 있어 대학로로 이동했다. 저녁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라 낙산공원에 올라 노을을 보다 내려왔다. 몇 번 간 적이 있는 시래기국밥집을 향했는데 폐업. 간판은 글자가 삭았고 매장은 비어 있었다. 근처를 돌다 솥밥집을 발견해 추어탕을 주문했다.

무인주문 키오스크를 운영하는 곳이었다. 내 바로 앞에는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주방에서 나온 사람이 주문을 도왔다. 그는 노인이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계속 말을 붙였다. 노인은 친구의 장례식에 가느라 멀리 다녀 온 참이라고 했다. 또 무슨 이야길 했더라. 주방의 그는 사근사근하지 않은 말투로 한참 다정한 말을 했다. 노인은 술도 한 병 시켰던가.

원래는 저녁을 먹고 제천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다음날 일정을 취소한 터라 하루 묵고 왔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 잤다. 금세 잠들었다.

2021.11.12.(금)

원래는 화상회의로 친구와 스터디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약속한 분량은 미리 다 번역해 두었고, 전전날 밤을 새면서 몇 쪽을 더 했다. 세 페이지쯤 남았는데 어렵지 않은 글이라 한 번에 다 읽고 끝내면 될 것 같아 하루를 미루었다.

그래서 이날은 그 세 쪽을 번역했다. 합정역 근처에 있는, 여러 해 전에 자주 갔던 카페에 앉아서 했다. 마지막까지 실내 흡연 정책을 고수했던 카페다. 오랜만에 갔더니 규모가 줄고 ― 테이블이 있던 자리 일부가 주방인지 뭔지가 되어 있었다 ― 화장실 문도 바뀌어 있었다. 개도 한 마리 있었다. 여전히 담배를 팔고 있었지만, 유기농 과일청 같은 것이 주력 상품으로 올라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스탠드가 설치된 자리에 앉아 번역을 마쳤다.

이른 저녁으로는 태국음식을 먹기로 했다. 역시 여러 해 전에 자주 갔던, 그 후로도 이따금 갔던 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향했다. 여기도 폐업.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었다. 여러 해 전에 가 본 적이 있는 식당에서 보리밥을 먹었다. 한옥을 식당으로 쓰는 곳이다. 원랜 마당이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도 모두 마루가 설치돼 있었다. 한옥의 대청마루가 아니라, 장판 깔린 바닥.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방문과 방바닥이 나온다는 뜻이다. 기억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저녁 버스를 타고 제천으로 돌아왔다. 일찍 잠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21.11.13.(토)

오전엔 잤으려나. 점심은 중국집에서 먹었다. 평소대로 ― 햄과 짜장 소스를 뺀 ― 볶음밥, 이 나왔어야 했는데 햄과 짜장 소스가 들어 있었다. 국물도 계란국이 아니라 평범하게 짬뽕 국물. 잠깐 생각하다 먹기 시작했는데 주방에서 무어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요리를 맡은 이가 서빙을 맡은 이에게 방금 거 잘못 나갔다고 말하는 듯했다. 서빙을 맡은 이가 와서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며 그릇을 거두어 가려 했다. 괜찮다고, 그냥 먹겠다고 하고 마저 먹었다. 다른 것은 남기지 않았고 햄만 골라 냈다. 채식의 신념, 같은 문제는 아니다. 햄은 냄새가 역하다.

오후에는 집 앞 카페에서 일. 저녁에는 미룬 스터디를 했다. 친구가 맡은 글에서 지난번에 하고 남은 약간, 내가 새로 번역한 글 전부를 읽었다. 평소보다 많이 읽었지만 평소보다 짧게 끝났다. 스터디 전에는 된장국을 끓여 밥을 먹었다. 국을 끓이고 남은 감자와 버섯과 양파로 감자조림을 했다. 감자가 제일 적게 들어갔지만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스터디 도중에 잠시 일어나 렌지 불을 껐다.

2021.11.14.(일)

점심은 분식집에서 라면. 무엇을 먹을지 정하지 못한 채로 시내를 향해 걷다가 마주친 낯선 분식집에서 먹었다. 메뉴에 공깃밥은 없었고 따로 묻지도 않았다. 주문을 하고 보니 카드가 없어 계좌번호를 받아 값을 치렀다. 아주 작은 가게였는데 네 명이 일하고 있었다. 통유리 벽에 붙은 바에 앉아 먹었다. 밖이 훤히 보였다. 밖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새까만 필름이 붙은 유리다.

네 명 중 한 명은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아이는 다른 자리에 앉아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며 식사를 했다. 김밥과 컵라면. 분식집에서 왜 컵라면을 먹이고 있을까 의아했는데 나가며 보니 짜장라면이었다. 이 분식집에서는 팔지 않는 메뉴다.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저녁까지 일했다. 저녁은 처음 가는 식당에서 먹었다. 황태국. 날계란이 같이 나왔는데 그걸 다 익히기엔 솥이 충분히 뜨겁지 않았다.

2021.11.15.(월)

모르긴 몰라도 종일 일했을 것이다. 원래라면 전날 끝날 예정이었다. 게르만 어파에 속한 유럽 어느 언어로 된 원문의 기계번역 영어본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이다. 원문은 전혀 읽을 수 없지만 영어 문장만 놓고 보면 아무 문제 없을 수준이었다. 다만 행갈이나 표 같은 것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아 오류가 생긴 곳이 종종 있었고 해당 부분을 긁어다 번역기를 돌리는 과정이 필요했다. 원어에선 별개의 어휘가 영어에선 하나의 어휘로 표현되는 경우도 몇 있었는데, 다른 문장에 하나씩 쓰인 것은 알 도리가 없지만 같은 문장에 둘이 함께 나오면 ― ‘A와 a를’이 ‘B와 B를’ 같은 식으로 번역돼 있으면 ― 티가 나므로 역시 원문을 확인하고 사전을 뒤져 뜻을 구분해 내야 했다. 단순노동이지만 모이면 시간이 꽤 드는 데다 종종 맥이 풀리곤 해서 예상보다 길어졌다.

2021.11.16.(화)

일찍 일어나 아침을 해먹고 버스를 탔다. 십여 분을 간 곳에서 내렸다. 소나무가 많은 어느 공원 앞이다. 공원 끝에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저수지가 나온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아주 맑은 개울이 흘러드는 저수지다. 초가을에 왔을 때보단 물이 줄어, 개울은 여전히 맑았지만 저수지는 조금 흐려져 있었다. 초가을에라고 저수지도 마냥 투명했던 건 아니지만. 카메라를 가져 갔는데 가방에서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사진은 휴대전화로 두어 장 찍었을 뿐이다. 개울에서는 소금쟁이처럼 수면을 밟고 선, 그러나 소금쟁이는 아닌 곤충 한 무리를 보았다. 무엇이었을까.

언덕을 내려와 공원을 지나 어느 카페에 앉았다. 프랑스 자수 공방과 로스터리를 겸한 곳이었다. 앉아서는 친구와 스터디. 역시 장애가 언급되는 글을 읽었지만, 지난 금요일의 것과는 다른 스터디다. 늦여름에 하고는 한참 멈췄던 것을 오랜만에 이었다. 꽤 길게 했다. 중간에 배가 고파져 케익도 한 조각 먹었다. 카운터에는 도서관 같은 분위기의 이용을 자제해 주세요, 모두가 편히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옆에서 말소리가 나도 눈치를 주지 말란 말인 걸까,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옆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말란 말인걸까 생각했다.

공원에서는 월남참전기념탑을 보았다. 사진을 찍어두지 않아 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지난번에 그 공원에 간 것은 9월 15일이었다. 그때까지는 “월남참전기녑탐 건립부지예정지역”이라는 팻말만 서 있었다. (이건 사진을 찍어두었다.) 제천시월남참전기념탑건립추진위원회 명의의 팻말로, 2014년 11월에 세운 것이거나 2014년 11월에 확정된 사항을 적어둔 것이었다. 이날은 마침 이런 기사를 읽었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 당시 전쟁에서 한국군이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증언했다. 해병대 소속으로 베트남에 파병됐던 류진성 씨는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조상민 판사 심리로 열린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이날 재판은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가족이 살해당했다며 60대 베트남인 응우옌 티탄(61·여) 씨가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의 4회 변론기일이다. […] 응우옌 씨는 8살이던 1968년 2월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마을에서 한국군에 의해 복부에 총상을 입고 1년 동안 병원에 입원했으며 함께 총격을 입은 가족들 모두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하며 작년 4월 소송을 냈다.

황재하, 「베트남 파병 군인 “한국군, 민간인 대량 학살” 법정 증언」(연합뉴스)

2021.11.17.(수)

일찍 일어나 밥을 해먹고 카페에 앉았다. 며칠 밀린 일을 드디어 마쳤다. 번역문 첫머리에 몇 가지 안내사항을 적어 송고했다. 얼마 전 송고한 원고에 소소한 수청을 요청해 온 메일 한 통, 얼마 전 마친 일의 임금 지급에 필요한 서류를 요청해 온 메일 한 통에 답장을 썼다. 이런 식의 메일을 몇 통 더 받겠지만, 당분간은 그래도 꽤 여유롭다. 저녁은 국수를 사먹었다. 집에 가서는 요 며칠 일하는 틈틈이 괜히 해 온 번역을 마무리했다. 정리하고 씻고 누운 게 두 시쯤이었을까. 세 시쯤 배가 고파 편의점에 다녀왔다. 한 시에 누웠다가 두 시에 다녀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고는 오래지 않아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