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와 장애
크리스틴 사전트Christine Sargent, 미셸 프리드너Michele Friedner
초록
이 글에서 우리는 가자에서 인종학살을 기록하고 있는 ― 그리고 살아남고자 고투하고 있는 ―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한 사진, 릴스, 동영상의 목격자가 된다. 주로 우리가 제보자, 동료,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구축한 아카이브들을 토대로, 가자의 장애인들과 그 친지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은 국제 장애 운동계와 장애 공동체들에 정전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함께 외쳐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 계속되는 나크바를 장기적으로 집단적 장애화를 가하는 일로서 이해하고 논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자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장애화되어 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어떻게 계속 붙들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이 글에서 우리는 가자에서 인종학살을 기록하고 있는 ― 그리고 살아남고자 애쓰고 있는 ― 팔레스타인인들이 생산한 사진, 릴스, 동영상의 목격자가 되는bear witness 일의 의미를 고찰한다 (Alyan, 2024; Aziza, 2024; Ihmoud, 2023). 특히, 가자의 장애인들과 그 친지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국제 장애 운동계와 장애 공동체들에 정전을 지지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을 함께 외쳐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아홉 달 동안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장애 아카이브를 구축해 왔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남아프리카를 변론한 아일랜드 법정 변호사 블러네 니 흐랄리Blinne Ní Ghrálaigh는 이런 움직임을 두고 “피해자들이 세계가 무언가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아직까지는 헛된, 소망을 품고서 자신들이 파괴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있는 역사상 최초의 인종학살”이라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재스비어 푸아가 “불구로 만들 권리”(2017)라 정리했던 것이 변명의 여지 없는 인종학살에서의 의지로 변해가는, 어쩌면 확대 되어 가는, 끔찍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한편으로 가지의 전 인구는 현재 영양실조, 탈수, 기아, 화상, 총이나 유탄 파편에 의한 부상, 건물 잔해에 깔리는 질식 등에 따른, 장애에 준하는 부상을 입거나[1]역주 ‘장애에 준하는 부상을 입히다’로 옮긴 말의 원어는 debilitate이며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쇠약화하다’, ‘쇠약하게 만들다’ 정도가 된다. … (계속) 죽음에 이르는 상황을 직면하고 있다. 이런 잔혹한 상황에 비추어 말하자면, “팔레스타인에 있는 모든 사람은 지금 장애인이다” (Piepzna-Samarasinha, 2024).[2]장애 가시화 프로젝트Disability Visibility Project 블로그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몇 편의 기고문이 실렸는데, 그 중에는 장애 정의의 관점에서 … (계속) 심신이 무너지고 있기에, 애초부터 절대적이지 않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무의미할 지경으로 흐려진다. 무력으로 만들어진 의약 및 보조 기기(이동 기기, 안경, 보청기 등)의 희소 상태는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을 통제불능으로 만들어 장애가 늘어날 뿐 아니라 치사율도 높아진다. 그런데, 비장애와 장애의 경계가 갈수록 해체되고 있는 와중에도, 그 이름을 놓지 않고서 끈질기게 장애 서사, 장애 이야기를 보존하는 ― 또한 강조하는 ― 팔레스타인인들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이 짧은 글에서 우리는 장애 경험의 특수성을 보존하면서도 집단적 장애화라는 무자비한 폭력을 되짚어 볼 것이다. 어느 한 쪽을 위해 다른 한 쪽이 지워져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속성 있는 휴전이나 항구적이고 정의로운 평화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이 실시간 아카이브는 계속해서 커져 가고 있다. 그리고 그로써 팔레스타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개인, 조직은 우리에게 장애의 유의미한 특수성을 인식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장애인이나 의료적으로 취약한 이들은 점령, 아파르트헤이트, 17년째인 봉쇄 ― 권리 단체들은 10월 7일 한참 전부터도 이를 “무시무시한 인도주의적 재난”으로 간주했다 (Amnesty International, 2017) ― 는 물론 스펙터클한 인종학살 폭력에 스러질, 한층 커진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 예컨대, 2024년에는 열 살 먹은 뇌병변 장애 아동 야잔 알 카파르네Yazan al-Kafarneh가 애석하게도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 북가자에서 피란한 그의 가족은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음식과 약품을 구하지 못했다. 어느 39세 지적 장애 남성이 칸 유니스의 알 카이르 병원에서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한 것 역시 2024년의 일이다. 이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다.[3]가자 너머에서도, 점령 당한 팔레스타인에서는 비슷한 역동이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에는 이야드 알 할라크Iyad Al-Hallaq라는 32세 자폐인이 … (계속)
모든 가자인이 이 악몽이 끝나기를 염원하는 가운데, 여러 언론인, 활동가,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장애인이 겪는 막대한 고통을 계속해서 지적해 오기도 했다. 우리는 장애 경험을 조명하는 언론인, 장애 콘텐츠를 만드는 장애인 또한 살펴 볼 것이다. 이를 장애인을 예외화하거나 아니면 연민의 대상으로 도구화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그러한 강조는 보다 큰 국제 장애 연대를 긍정하고 또 요청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23년 12월 12일, 피보디Peabody 상을 받은 25세 언론인이자 하카와티야hakawatiyya(이야기꾼)인 비산 오우다Bisan Owda(@wizard_bisan1)는 폭격이 계속되는 삶에 대한 장애인의 경험에 관한 틱톡 영상을 게시했다. 해당 영상은 틱톡에서 63,000 개의 좋아요를 받았으며 연결되어 있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은 182,0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선수 전원이 2018년 귀환 대행진 중에 다리를 잃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Muk, 2023) 패러사이클링팀 가자 선버즈Gaza Sunbirds는 10월 7일 이후 구호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계 사이클링, 패러사이클링 계에 지원을 호소하면서 자신들의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기록한다. 이 둘은 가자인들이 장애 경험과 장애 전문성을 활용하는 사례다 (Hartblay, 2020).
이 인종학살의 맥락에서 장애 정치를 사유하면서 개인적인 소회를 간단히 나누어 보려 한다. 어느 정도는, 가까운 맥락에서 수행한 현장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인정컨대 우리는 특정한 정체성들, 위치들에서 사유하고 있다. 결론에서 보다 자세히 논하겠지만, 합중국 대학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로서 지적 장애(크리스틴), 청각 장애(미셸)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나(크리스틴)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인스타그램 영상 두 편이 있다.[4]아랍어와 영어로 검색해 보고 내 팔로어들에게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이 영상들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온라인이든 아니든 우리 아카이브가 … (계속) 첫 번째 영상에서는 건물 잔해의 흙먼지를 덮어쓴 다운 증후군 장애 소녀가 고통에 울고 있다. 옆에서는 부상 당한 남동생이 울고 있다. 소녀는 자신의 공포를 가라 앉히려다가 좋은 누나로서 동생을 달래려다가를 반복한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역시 다운 증후군이 있는 한 여성이 난민촌에서 카메라를 향해 말하고 있다. 그녀는 집이, 전쟁과 피란의 스트레스로 다 빠져버린 머리카락이 얼마나 그리운지를 이야기한다. 뒤로는 다운 증후군이 있는 청년 남성이 지나가고,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어떤 상황에서는 웃음 지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한다며 그녀가 자신에게 힘을 준다고 말한다.
격심한 위기와 극단적인 박탈의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상들이지만, 요르단에서 진행한 다운 증후군과 친족 관계에 관한 연구가 떠오른다. 돌봄 양식으로서의 형제자매 관계, 미래를 일구는 방법, 다운 증후군을 사회 세계에 통합하는 책임성accountability과 관계성이라는 종교적 틀에 관한 연구였다. 어린 소녀를 생각한다. 그녀의 부모는 살아남았을까. 고아가 된 거라면 그 소녀와 남동생은 누가 돌볼까? “장애 세계”를 만드는 데에 상당히 다른 조건을 제공하는 비교적 약간은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음에도(Ginsburg & Rapp, 2013) 요르단에서 만난 부모들은 보다 취약한 가족 성원들에 대한 돌봄의 지속성에 관한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 두 번째 영상에서 뒤로 지나간 다운 증후군 청년 남성도 궁금하다. 그는 형제였을까? 친구였을까? 다른 관계였을까? 요르단이나 세계 각국의 가족들이 만드는 것과 같은 가자 다운 증후군 공동체를 통해 만났을까?
내가 만난 많은 이들 ― 다운 증후군이 있는 아동, 성인의 부모들, 장애 활동가들, 특수교사들 ― 이 팔레스타인계였다.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는 알 나크바Al-Nakba, 즉 “재앙The Catastrophe”이라 불리는 1948년 추방으로 쫓겨나 요르단에 정착한 이들이었다.[5]요르단은 세 번에 걸쳐 대규모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였다. 1948년에 쫗겨난 이들,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쫓겨난 이들, 그리고 걸프전으로 … (계속) 시월 이래로 요르단의 수도에서 매주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도 정부는 (성명 발표, 애도 표명, 구호품 공중 투하 등) 대개 상징적인 조치 이상으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요르단국은 굳건히 합중국 정책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페이스북에서 팔로하는 요르단의 장애 단체들은 계속해서 팔레스타인 관련 게시물을 올리고 있으며 올해의 라마단 인사는 애통하고 침울했다. 내가 만난 이들은 자기네 민족과 친족이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글을 통해 나와 연락을 나눈다. 그들은 여기의 “상황”을 묻는다. 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내게 합중국은 어떻게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이 야만을 지원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답할 말을 찾아보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음을 알고 있다.
2023년 12월, 나(미셸)는 암만에서 열린 아랍탐사보도협회 회의에 참석해 그 지역에서 장애 관련 주제들을 탐사하는 언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6]아랍탐사보도협회는 요르단 아동들의 인공와우 이식 이후 경과에 대한 탐사(https://arij.net/projects/100-watt-podcast/en/data-stories/story-7/index.html)를 비롯해 … (계속) 우리는 가자와 서안에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장애화되고 있는 시점에 청각 장애 아동을 위한 전문 생체기술 장치인 인공와우 이식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논의했다. 한편으로는 인종학살 와중에 값비싼 장치들을 구하고 유지보수하는 일이 얼마나 불편하고 성가신지를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자에 인공와우를 이식해 인공와우로 소리를 듣고 의사소통을 하는 데 익숙해졌으나 인공와우를 충전하거나 배터리를 비롯해 필수적인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아동, 성인이 있다는 점, 최근에 이식한 아동의 경우에는 발화·언어 치료나 기기 조정, 수술 후 회복 처치를 받지 못한다는 점에 관해 논의했다. 또한 지금 당장 사이렌을 비롯한 경보 신호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 가자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얼마 전에는, 친구 하나가 2016년부터 가자에서 의사, 청각학자, 발화·언어 치료사 양성을 통해 인공와우 이식 및 재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카타르의 한 인도주의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에 인공와우를 이식 받은 팔레스타인 아동의 어머니가 보낸 메시지를 전해 주었다.[7]https://www.qna.org.qa/en/News-Area/News/2022-01/30/0031-hh-sheikh-hamad-hospital-resumes-cochlear-implants-for-children-in-gaza. 그녀는 더 이상 치료를 받으러 다닐 수가 없다고, 아이의 인공와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는 인스타그램 계정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의 인공와우 이식 아동 부모 모임을 통해 다른 부모들에게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페이스북 모임 운영자는 “너무 정치적”이라며 그녀의 게시물을 삭제했다. 인공와우를 이식한 아이를 기르고 있는 내 친구는 그녀에게 인공와우가 작동하지 않아서 아이가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라면 독순술과 수어를 쓸 수 있게 해주라고 권했다.
가자의 아트팔루나농아동협회Atfaluna Society for Deaf Children는 2024년 4월에 아동 85%가 더 이상 보청기, 인공와우, 이동 보조기 등 보조 장치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렸다.[8]아트팔루나는 10월 7일 이후로도 공동체를 위해 위급 시 대처법과 안전 수칙등을 게시하고 자신들와 활동과 필요한 것을 대중적으로 알리면서 활동을 … (계속) 그들의 정신과 삶을 이루는 이런 지원, 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청각장애인과 다운 증후군 아동이 가족과 함께 가자에서 피신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고펀드미Gofundme 모금 캠페인도 지켜보고 있다 (떠나는 데에 따른 양가감정과 고통을 분명히 강조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탄원들이다). 그런 ― 기기 분실·포기·고장, 치료 포기, 취약성 심화에 관한 ―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장애 아동, 성인의 재/활re/habilitate, 사회 통합, 옹호를 위한 기관, 개인, 공동체, 가족 차원의 기획들이 존재한다는 점 또한 지적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보존하고 싶다. 가자인들이 계속해서 그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팔레스타인인의 경험과 생활세계를 단순화하는flatten 데 대한 저항 행위, 재활센터, 농학교, 병원, 대학, 문화센터 등을 마치 다 똑같다는 듯이 무차별 폭격으로 초토화하는flatten 데 대한 저항 행위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9]미셸은 이 문장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시카고대학 비공식 장애 연구 모임 구성원들에게, 특히 상가미트라 다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팔레스타인의 장애인과 그 친족들은 물론 연구자, 활동가들 역시 여러 가지 장애를 세분한다. 점령 당한 영토Occupied Territory에서 “장애”라는 범주는 중요하며, 장애를 특정한 입법(Giacaman et al., 2021), (합중국과는 달리) UNCRPD 비준, 고등교육 접근성 인프라 구축(Snounu, 2019a) 등 여러 가지 투자를 가능케 한다. 국제 공동체, 연대를 가능케 하기도 한다. 2024년 5월 13일에는 빼어난 목수이자 팔레스타인 수어 교사였으며 가자 농 공동체의 주역이었던 하솀 가잘Hashem Ghazal이 이스라엘의 공습에 목숨을 잃었다. 이에 세계 각지의 농인들의 애도와 분노가 터져나왔다. 2024년 6월 4일에는 아트팔루나에서 한 일본인 친구가 그린 아름다운 가잘의 초상화를 게시했다. 그림 속 가잘은 미국 수어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좋건 싫건 그 후로 널리 퍼진) 말을 하고 있다. 그림에는 이런 말이 달려 있다. “하솀 가잘이라는 놀라운 사람의 자취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뜻은 앞으로도 온 세상에 전해질 것입니다. 일본에서, 하솀의 친구들이.”[10]가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미셸에게 처음 전한 것은 한 미국 농인 동료였다. 가잘은 2000년대 초에 아트팔루나협회에서 지낸 그녀의 수어 … (계속)
장애의 가능성과 힘에 주목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연구자, 활동가들은 단언한다. [현재 국제 사회에서] 지배적인 제도적, 개념적 틀들이 점령과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정치적,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는 한 그런 틀들은 팔레스타인 장애계에서 주변부에 놓이거나 제한적인 의미만을 가질 것이다 (Giacaman, 2021, 2023; Snounu, 2019b).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보건의료, 먹고 마실 것, 살 곳에 대한 권리 같은 다른 근본적인 권리들 없이는 장애 권리도 있을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비판적, 교차적 입장은 부정의의 조건들이 ― 팔레스타인에서나 다른 곳에서나 ― 어떻게 해서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장애화 경험들을 만들어 내고 실천가능하고 탈식민적인 장애 정치의 가능성을 제약하는지를 강조한다 (Erevelles, 2011; Jaffee, 2016; Soldatic & Grech, 2014).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런 정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글을 끝맺기에 앞서, “북미에서 가자를 보는 비판적 관점들”이라는 이번 특별호에 단서를 달아두고자 한다. 인종학살이 이어지는 데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나라에서 인종학살의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합중국이 제공하는, 무조건적이어 보이는 군사적, 재정적, 정치적 지원 없이는 이런 계속되는 폭력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관계의 독특성은 우리 자신 또한 우리가 내는 세금과 우리가 뽑은 정치인을 통해 공모하고 있음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타협도 단서도 없이 “팔레스타인 해방은 장애 정의 문제”라고 단언하며 이 인종학살에 맞서 쉼 없이 목소리를 내고 가자 장애인의 경험을 전하는 장애 정의 활동가들에게 감사한다 (Wong, 2023). 중립을 내세우곤 하는 국제 인도주의 조직들이 장애가 작금의 재난을 경험하는 방식이자 그 재난의 여러 결과 중 하나이기도 함을 강조하기로 한 점도 놀랍다. 지금과 미래의 가자 장애인들, 그 공동체들과 연대하며, 우리도 이 글로 그러한 일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했다.
주
↑1 | 역주 ‘장애에 준하는 부상을 입히다’로 옮긴 말의 원어는 debilitate이며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쇠약화하다’, ‘쇠약하게 만들다’ 정도가 된다. debilitate는 (문어에서) 소모성 질환 등을 설명할 때 주로 쓰이지만 어원상 장애화disable와 마찬가지로 ‘능력이나 힘을 잃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에 비추어 ’기능을 저하시키다’ 정도로 옮길 수도 있다. 재스비어 푸아의 논의에서는 현대 권리 담론에서 장애로 인정되는 범위 너머에서 장애와 마찬가지의 제약을 가하는 일들 ― 팔레스타인의 경우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의도적으로 가하는 신체적 부상, 전쟁에 따른 심리적 외상 등은 물론 나아가서는 인프라 파괴를 통한 생활의 제약까지 ― 을 설명하는 말로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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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장애 가시화 프로젝트Disability Visibility Project 블로그에는 지난 일곱 달 동안 몇 편의 기고문이 실렸는데, 그 중에는 장애 정의의 관점에서 팔레스타인을 논한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글도 있다. |
↑3 | 가자 너머에서도, 점령 당한 팔레스타인에서는 비슷한 역동이 작동하고 있다. 예컨대 2020년에는 이야드 알 할라크Iyad Al-Hallaq라는 32세 자폐인이 동예루살렘에서 검문소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이스라엘 경찰에 살해 당했다. |
↑4 | 아랍어와 영어로 검색해 보고 내 팔로어들에게 수소문도 해보았지만 이 영상들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온라인이든 아니든 우리 아카이브가 연약함을, 때로는 한 순간일 뿐임을 말해주는 지점이다. |
↑5 | 요르단은 세 번에 걸쳐 대규모로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였다. 1948년에 쫗겨난 이들, 1967년의 6일 전쟁으로 쫓겨난 이들, 그리고 걸프전으로 쿠웨이트를 비롯한 아랍만 연안 국가들에서 추방된 이들. 가자인들은 여전히 요르단에서 가장 주변화되고 취약한 난민이다. 1948년에 쫓겨나 요르단 시민권을 받은 팔레스타인인들(이들 중 상당수는 후일 쿠웨이트 같은 아랍만 연안 국가에 재정착했다)과 달리 1967년에 쫓겨 난 가자인들은 요르단 정부에서 “아랍계 외국인 거류자Arab foreign residents”로 간주된다. 요르단 시민권이 없는 이들은 요르단의 서비스와 기회들에 대한 평등권을 부정 당한다 (개관으로 Peréz, 2024를 보라). |
↑6 | 아랍탐사보도협회는 요르단 아동들의 인공와우 이식 이후 경과에 대한 탐사(https://arij.net/projects/100-watt-podcast/en/data-stories/story-7/index.html)를 비롯해 장애 관련 주제에 대한 장기 탐사 보도를 지원해 온 이력이 있다. |
↑7 | https://www.qna.org.qa/en/News-Area/News/2022-01/30/0031-hh-sheikh-hamad-hospital-resumes-cochlear-implants-for-children-in-gaza. |
↑8 | 아트팔루나는 10월 7일 이후로도 공동체를 위해 위급 시 대처법과 안전 수칙등을 게시하고 자신들와 활동과 필요한 것을 대중적으로 알리면서 활동을 계속해 왔다. 예를 들어 2024년 6월 2일자 게시물은 불발탄 발견 시 행동 수칙이 팔레스타인 수어와 아랍어로 매우 상세히 담고 있다. 가자시에 있던 본부 건물은 군대에 의해 파괴된 듯하나 (청각장애에 초점을 두고 있는 재난 대응 조직 오프더그리드미션Off-The- Grid Missions에서 2024년 3월 8일에 폐허가 된 건물 사진을 게시했다), 그들은 남부 여러 도시의 위치 표시를 단 현재 활동 소식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
↑9 | 미셸은 이 문장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시카고대학 비공식 장애 연구 모임 구성원들에게, 특히 상가미트라 다스에게 감사를 표한다. |
↑10 | 가잘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미셸에게 처음 전한 것은 한 미국 농인 동료였다. 가잘은 2000년대 초에 아트팔루나협회에서 지낸 그녀의 수어 선생님이었다. 그의 부고는 국제적인 농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