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의 일부는, 피할 수 없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몫만큼의 무게는 진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인품이나 업적, 혹은 형편과는 상관없이 그 무거운 삶을 짊어진 것 하나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소한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나를 포함해 학생들 모두가 싫어했던 학교 주사 아저씨에게 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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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퍼레이드
퀴어 퍼레이드에 다녀왔다. 12시부터라길래 단순무식하게 12시에 맞춰서 갔더니 그때부터 부스를 오픈하고 퍼레이드는 세 시 좀 넘어서 시작하더라. 몸은 좀 축났지만, 즐겁게 잘 보고 왔다. 혼자 간 터라 거진 여섯 시간을 딱히 말도 않고 진짜로 구경만 했다. 아는 사람들을 몇 보았다. 아는 사람이지만 인사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인 것 같긴 한데 긴가민가 하다가 …
길에서 그를 만났다
길에서 그를 만났다 언덕을 따라 내 집보다 한 골목 높이 앉은 집에 그는 살았다 작년 이맘 때 살았던 옥탑방 아래층 문간방에 아들과 같이 살던 그였다 귀치 않게 생긴 얼굴에 까치집 진 머리로 지금도 같이 살지 모를 그 아들과 계단 난간에서 날마다 담배를 피우던 볕이 잘 들어 더운 방에서 늘 문을 열어놓고 큰 대자로 뻗어 …
광주를 다녀왔다
대학에 들어 온 후 해마다 광주에 간다. 엉엉 운 적이야 한 번도 없다지만, 해마다 광주에서는 눈물을 흘렸다.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기꺼이 맞이한 사람들, 기껍지 않은 죽음조차도 피하지 않은 사람들을 떠올리면서는 늘 눈물이 났다. 또한 해마다 광주에서는 분노와 좌절을 함께 느꼈다. 사과하지 않는 사람들, 책임지지 않는 사람들,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며 분노했고 그것을 구경하고 기념하는 …
글
서점에 갔다. 책을 읽으려고, 소설들이 꽂힌 서가를 뒤졌다. 좋아하는, 혹은 몇 편 쯤의 작품이 나쁘지 않았던 작가들의 책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요즘 꽤나 인기를 끌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책부터, 수십 년 째 문단의 중심, 혹은 그 언저리에 서 있는 작가들의 것까지 책은 많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에도 손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작가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