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여성의 날 행사에 갔던 것은 민우회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싫어하던, ‘몸 쓸 거니까 (힐 신지 말고) 운동화 신고 오세요’ 류의 안내(경고) 메시지를 무려 ‘여성 단체’에서 발견하고는, 이런 사람들이 모이면 어떤 분위기인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여성의 날 행사는 참 좋았다. 옷 맞춰 입고, 구회 외치고, 피켓 들고, 행진하고, 이렇게 써 놓으면 여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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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필명 변천사
고등학교 시기 전은 뭘 썼는지 기억나지 않고, 고등학교 다니면서부터는 스틸로. 프랑스어 stylo, 만년필이라는 뜻-이라고만 알고 썼는데 볼펜도 똑같이 부르더라. 글, 이라고 하면 나는 만년필이 생각난다. 그 사이 시기는 또 기억나지 않고, 대학교에 다니던 언제부턴가 懶惰[rata]라고 썼다. 게으를 나, 게으를 타. 괄호 안의 알파벳은 발음 기호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 발음 기호이자 Rage Against The …
당신에게 당신을 팝니다
<메가 마인드>를 봤다. 내용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어쩌다 봤는데, 드림웍스에서 만든 거더라. 악당 메가마인드와 괴물 슈렉이 겹치면서, 이런 게 요즘의 ‘드림’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모두가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되는 디즈니의 꿈을 지나, 공주나 왕자가 될 수는 없음을 깨달았지만 악마나 괴물이라도 행복하고 싶은 꿈을 꾸게 된. 그리고 그 꿈은, 영화를 통해서나 꾸고 있다. 얼마 전에 …
신림역
모니터 너머에서나 보던 일을―영화는 잘 보지 않고 티브이는 없으므로― 실제로 대하는 것은 당혹스러운 경험이다. 모니터 너머에, 그러니까 모니터와 연결된 내 방 바깥의 세상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만 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마음 한 켠에 묻어 두고 넘겨 온 그런 일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신림역을 지나고 있었다. 환락의 거리, 유흥가라 불리는 그곳. 누군가는 돈 몇 …
걸어서 언덕을 넘었다
손가방을 등가방처럼 지고, 단단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학교로 넘어가는 언덕은 높고 가파랐지만, 차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소리 내어 읽은 책들의 활자는 수많은 엔진들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걷다가 몇 번쯤, 주차되어 있는 차나 가로등, 혹은 이런저런 표지판에 가로 막혀 멈춰서야 했다. 인가도 상가도 끝이 난 언덕의 정상쯤에서야 나는 아무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