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언덕을 넘었다

                        손가방을 등가방처럼 지고, 단단한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학교로 넘어가는 언덕은 높고 가파랐지만, 차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소리 내어 읽은 책들의 활자는 수많은 엔진들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걷다가 몇 번쯤, 주차되어 있는 차나 가로등, 혹은 이런저런 표지판에 가로 막혀 멈춰서야 했다. 인가도 상가도 끝이 난 언덕의 정상쯤에서야 나는 아무런 맞닥뜨림 없이 책을 읽으며 걸을 수 있었다.


                        한순간, 흩어지던 활자들이 또렷이 공기중에 새겨졌다. 도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내 앞으로 두 명, 내 뒤로 한 명이 언던을 걸어 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책을 덮고, 빈 도로를 주시했다. 고정된 시선을 거쳐, 내 뒤를 걷던 한 사람마저 내 앞으로 가 버려 내 뒤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다시 차들이 하나 둘 씩 달리기 시작하고, 앞을 향해 걸으며 책을 다시 펼칠 즈음에는 내 앞에도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활자는 다시 흩어졌다. 도로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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