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 회의가 있었다. 외지에서 기차를 타고 온 동료들을 제천역에서 만났다. 충주에서 차를 몰고 온 이가 우리를 태우고 이동했다. 동선이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다. (제천과 충주는, 두 곳의 기차역 사이는 가깝지만) 집에서 충주의 회의장소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는 것은 만만찮다. 꼭 이래야 할 만큼 힘든 여정은 전혀 아니지만 동료들의 친절에 기댔다.
제천에서 점심을 먹고 충주호가 보이는 어느 카페로 이동했다. 원래는 거기서 회의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났고 경치가 좋았으므로… 볕이 가라앉을 무렵(이라곤 해도 여전히 꽤나 뜨거운 시간)에 일어나 호반을 좀 걸었고 저녁을 먹고 동료의 집으로 갔다. (동료들은) 열띤 회의를 했다. 나는 머릿수만 채웠다.
전날 저녁에 휴대전화가 고장났다. 어딘가가 접촉불량이 되었는지 화면이 나오다 말다 했다. 커버를 열어 커넥터를 모두 분해했다가 다시 연결하니 괜찮아졌다, 고 생각했는데 이날 아침에 다시 화면이 검어졌다. 같은 방법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접촉불량인 커넥터를 찾았다.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동안은 화면이 들어 왔다.
종일 뒤판을 열어 둔 채로 그렇게 전화기를 썼는데, 저녁쯤이 되자 그조차도 잘 통하지 않았다. 각자 자료를 찾으며 진행해야 하는 회의였고 나는 랩탑도 챙기지 않았으므로 되다 말다 하는 전화기를 붙들고 일하는 시늉만 했다.
동료의 집에서 잤다. 아침엔 혼자 나가 집앞 강가를 잠깐 걸었다. 바쁜 사람은 먼저 돌아갔고 여유가 있는 이들은 이른 점심쯤 되는 끼니로 올뱅이해장국을 먹고 어느 공원에 들어섰다. 한 사람이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공원은 둘러보지 않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그를 실어갈 사람을 기다렸다.
세 시 버스로 제천으로 올 생각이었지만 한 시 반 기차를 탔다. 열두 시쯤 파했으므로 더 빨라도 좋았지만 그 시간대엔 차가 없었다. 역에서 한 시간 여를 무료하게 보냈다. 꼬마문고였나 하는 서가가 있었지만 그야말로 어린이용 동화책밖에 없다시피 했다. 수학 문제 위주의 추리퀴즈집을 꺼내들었다가 금세 다시 꽂았다. KTX 잡지의 잡다한 기사를 몇 편 읽었고 대개는 멍하니 보냈다. 아침부터 전혀 켜지지 않게 된 전화기를 만지작거려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 기차는 6분을 연착했다. 대전발 제천행. 제천이 종착역이므로 잠을 자려 했지만 겨우 잠들자 도착이었다.
역 앞에서 적당히 버스를 탔다. 이곳의 정류장에는 버스별 상세 노선도가 붙어 있지 않다. 주요 경유지만이 적혀 있을 뿐이다. 다행히 집앞까지 오는 버스였다. 이불 빨래를 돌려 놓고 느긋하게 짐을 풀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스터디를 잡아둔 것을 잊고 있었다. 예정대로 세 시 버스를 탔다면 크게 지각했을 것이다. 시작을 20분 늦추고는 정리인지 채비인지를 서둘렀다. 저녁 먹을 시간쯤까지 스터디를 하고 저녁 먹을 시간을 넘겨 수다를 떨었다.
수다가 끝날 즈음 연락이 온 다른 친구와 또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아홉 시. 근처 분식집에서 대강 먹으려고 집을 나섰는데 한참을 가서야 카드도 현금도 챙기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집에 있던 다른 휴대전화를 들고 나온 것이 다행이었다. 급히 은행 앱을 설치했으나 본인 인증에는 신분증이 필요했다. 메신저 앱을 설치하고 몇 번의 전화 인증을 거쳐 전자지갑을 활성화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고기 반찬 두 가지가 포함된 것으로.
밤에는 짐을 좀 정리할까 했지만 그냥 씻고 누웠다. 새벽에 여러 번 깼다. 늦게까지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