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지만 거의 안 했다. 조금 걸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뒹굴다 카페에 갔다. 카페 옆에 있는 수산물인지 해산물인지 어쩌고 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 했는데 휴무. 카페에는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가 앙버터밖에 없었다. 나는 앙을, 그러니까 단팥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그것과 커피를 시켰다. 빵이 꽤 말라 있었다.
유통기한은 4월까지. 점원에게 말하자 놀라며 바꾸어 주려 했는데 나머지 하나도 같았던 모양이다. 케이크밖에 없다고 했다. 우유케이크를 골랐다. 차액을 묻자 받지 않겠다고 했다. 케이크는 유통기한이 따로 적혀 있지 않았지만 촉촉했다.
일을 조금, 정확히는 거의 안, 한 시점에 전화가 왔다. 달갑지는 않은 대화였다. 기운이 빠져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케이크를 먼저 먹고 일을 시작하며 겨우 두어 모금 마신 커피는 어쩔까 하다 테이크아웃잔에 받아 왔는데 그 후로도 두어 모금만 마셨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집까지 걸으며, 집에서 누운 채로, 통화를 조금 더 했다.
잤다. 너무 길게 잤다. 자면서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실은 한 시간 잤더라. 좀 더 누워 있다가 저녁을 먹었다. 마트 사은품으로 받은 라면과 정체 모를 즉석밥. 라면을 뜯어 싱크대 위에 세워 뒀는데 떨어졌다. 바닥에 닿은 부분을 잘라 내고 2/3 정도만 끓였다. 한 개 기준으로도 물이 많아 밍밍했다.
나가서 걸었다. 날이 저물기 직전, 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가 생각보다 길었다. 서너 시간을 걸을 작정이었는데 논밭 사이를 모르는 길로 이리저리 걷다 ― 오늘도 몇 번인가 막다른 길에 들었지만 아는 길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모르는 길로 나섰다 ― 한 시간쯤 된 시점에 건너편 큰길가에 닿았다. 큰길을 따라 걸으면 집까지 한 시간쯤 걸리는 곳. 그렇게 총 두 시간을 걸었다. 오는 길에는 음료수를 하나 사 마셨다. 복권도 사고 싶었지만 ATM을 찾지 못해 빈손으로 귀가했다.
씻고 나와 누우려던 차에 친구의 연락을 받고 통화를 시작했다. 이번엔 즐거운 대화. 통화를 마치고는 레토르트 임연수구이 ― 이것이 원래 오늘 저녁 메뉴였으나 무언가를 씹어 먹을 기분이 아니어서 라면을 마시다시피 넘기고 산책길에 올랐더랬다 ― 와 정체 모를 즉석밥 또 한 개를 데워 먹었다. 밤이다. 낮에 안 한 일을 좀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