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18.(일)

오늘도 일과가 끝나지 않았지만 쓴다. 실내 온도는 종일 섭씨 30도. 온도계가 고장났나, 덥지는 않다. 땀도 딱히 나지 않는다. 바깥은 더웠고 땀이 꽤 났다.

어제 빼먹은 것부터. 제천 터미널에 내려 들어간 편의점에 곧이어 누가 또 들어왔다. 화장실을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점원은 거긴 화장실이 없다고 했다. 맞은편 편의점으로 가시라고도 했다. 화장실은 정말로 없을까. 단순히 개방하지 않는 걸까. 개방하기엔 너무 열악한 꼴을 하고 있는 걸까. 점원들은 어디를 쓸까. 음료수를 매대에 내밀었지만 점원은 나를 보지 않았다. 시선을 좇아가보니 형광등이 나왔다. 매미 한 마리도 불빛에 부딪고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둔탁한 충돌음과 빠른 날갯짓 소리가 이어졌다.

오늘도 오전은 뒹굴며 보냈나. 아니다. 책꽂이 하나의 위치를 잡고 책을 반쯤 채웠다. 그간 함께 공부한 이들의 학위 논문을 제일 위칸에 꽂았다. 요약문 발표를 듣거나 부분부분의 초고를 읽은 것이 많다. 전문을 읽은 것은 많지 않다는 소리다. 최종본 제출 직전에 전체 원고를 읽은, 내가 읽은 것과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지는 모르는 것이 몇 있다.

아래엔 잘 읽지 않는 전공서와 필요할 때 가끔씩 들추는 자료를 꽂았다. 그 아래엔 니체와 칸트를 한 권씩 꽂고 비워 두었다. 나머지는 어딨는지 아직 모른다. 또 그 아래엔 전시 도록이며 사진집이며를 채웠다. 버려도 될 것이 많지만 이고 지고 와서는 또 꽂았다. 제일 아랫줄은 아직 비어 있다. 그 아래 작은 서랍 두 칸도 비어 있다. 지난 집에 살 때 방이 좁아 책꽂이 바로 앞에도 무언가를 두느라 떼어 두었던 서랍 손잡이를 달았다. 나사가 두 개인데 하나밖에 없었다. 손잡이는 비뚤게 매달려 있다.

책을 꽂기 전에 바나나 두 개를 먹었고 책을 꽂으면서 커피 반 잔을 마셨다. 나머지 반 잔은 잊은 채 내다 버릴 포장재를 정리했다. 빨래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집을 나섰다. 버릴 것은 잊고 가방만 들고서. 단지 입구에서야 깨달았으므로 돌아오지 않고 식당을 향했다. 더우니까 오늘도 콩국수, 로 정했지만 멀리 가기 귀찮아서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때우기로 했다. 길을 잘못 들어 콩국수를 파는 곳 앞에 당도했다. 일요일 휴무. 조금 더 가서 집을 보러 왔을 때 간 적이 있는 생선구이 백반집 앞에 섰다. 일요일 휴무. 또 조금 더 가서 어제 터미널 가는 길에 본 콩나물국밥집을 찾았다. 일요일 휴무. 패스트푸드점에서 새우버거 세트를 먹었다. 배가 불러 감자튀김은 남겼다.

그제 갔던 프랜차이즈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정신이 산만했다. 트위터에다 스트레스니 평정심이니 하는 단어들을 끼적거리며 남은 번역을 마쳤다. 세 페이지 혹은 네 페이지를 옮겼다. 물론 퇴고는 하지 않고 창을 닫았다. 집에 들어 가방을 내려 놓고 카메라를 들었다.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필름 하나를 주워 넣었다. 선물 받은 필름은 책상 위에 두었다. 버릴 것도 챙겼다. 분리수거함에 비닐과 플라스틱을 털어넣었다. 어째선지 종이 함에도 플라스틱이 가득이었다. 종이를 담은 봉투는 앞에 그대로 내려 놓고 단지를 벗어났다.

저수지 가에 앉아 사진 몇 장을 찍었다. 휴대전화로도 찍어 간단히 보정해 친구들에게 보였다. 다섯 시 반쯤이었나, 산책로로 나갔다가 햇살이 여전히 생각보다 뜨거워 걷지는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을 잘못 들어 만난 정자에 누워 시간을 보냈다. 마감으로 괴로워 하는 친구를 놀리는 메시지, 객지에 도착해 자가격리 중인 친구를 응원하는 메시지, 아무튼 몇 개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람 만날 일 없는 곳으로 왔고 아는 사람도 갈 데도 없으므로 딱히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지만 말은 전에 없이 많다.

집에 돌아와서는 또 좀 누워 있었나. 친구와 잠시 통화를 하고 밥을 먹었다. 어제의 정체 모를 즉석밥과 카페에 다녀 오는 길에 산 레토르트 고등어조림. 밥은 고등어살로 한 그릇, 조림 국물로 한 그릇, 총 두 그릇을 먹었다. 즉석밥은 마흔여섯 개가 남았다. 수소문해 보았지만 ― 괜히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보았지만 ― 여전히 누가 보낸 건진 모른다. 친구에게 식사 시작할 때 연락할 테니 혹시 소식이 끊기면 농약햇반 사건으로 신고하라고 말해 두었다. 연락은 하지 않았고 배탈이 나지도 쓰러지지도 않았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언급한 시가 마침 책상 위에 있는 (아직 읽지 않은) 시집에 실려 있어 괜히 한 번 읽어 보았다.

한 시간쯤 전에 밖에 비가 내리기 시작해 베란다 창을 닫았는데 아직 오고 있을까. 어두워서 밖은 보이지 않는다. 실내 기온이 좀 떨어질까. 지금은 가만 앉아 있으니 괜찮지만 움직이면 땀이 나겠지. 괜찮겠다 싶으면 책을 마저 꽂고 땀에 절 것 같으면 써야 할 원고들을 생각할 것이다. 후자를 택한다면 그저 누워 소일하고 말겠지만. 여기까지가 밤의 계획이다. 새벽에도 일을 할까, 정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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