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오고 첫 서울행. 일주일도 채 안 됐는데 서울 갈 일이 생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사 전에 잡아 둔 일정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출장이다.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어떤 일을 맡겨 주셔서 회의를 다녀왔다. 공감에서 불러주시면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마음이 무겁다는둥, 말을 충분하고 친절하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 곤란할 거라는둥, 이건 비밀인데 사실 아무데도 별로 관심이 없다는둥 안 하는 게 나을 말들을 조금 하고는 결국 일을 맡기로 했다. 다들 잘 하실 테니 저만 잘 하면 되고 어떻게든 해 보겠다는 말로 마쳤다.
회의는 저녁이었지만 일찍 서울을 향했다. 곧 떠나는 친구가 있어 몇 명이 모였다. 강남고속터미널 근처에서의 점심 약속. 제천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집에서 터미널까진 매번 걸어다녔고 이번에도 걷는 속도에 맞춰 집을 나섰다가 땀에 젖을 것 같아 시내버스를 탔다. 제천에서 시내버스를 탄 것은 처음이었지만 노선도가 어렵지 않았으므로 ― 경주였을까, 어디에선가 도무지 어느 버스가 어디로 간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노선도를 본 적이 있다 ― 어려움 없이 도착했다. 실은 방송을 잘못 들은 탓에 한 정거장을 지나쳐 내렸지만 버스로는 금세 도착했으므로 시간이 빠듯하진 않았다. 버스요금은 1400원, 최근엔 늘 잘 보지 않고 카드를 댔으므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서울보다 조금 비싼 것 같다.
고속버스도 예정보다 조금 일찍 서울에 도착했다. 터미널에서 맛 없는 간식, 이랄까를 먹고 목적지로 이동. “3, 7, 9호선”이라고 적힌 팻말과 “9호선”이라고 적힌 팻말이 다른 방향을 하고 있었다. 9호선을 탈 것이었는데 전자는 계단을 가리키고 있어 후자를 따라 갔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는 정말 넓구나, 대체 언제쯤 지하철 입구가 나올까 생각하며 한참을 걸었더니 지하상가 출구가 나왔다. 9호선 고속터미널역이 아니라 9호선 신반포역을 가리키는 팻말이었다. 오는 길에 “9호선 신반포역”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신반포역 방면 플랫폼인가보다, 결국 계단을 올라 건너편으로 가야 하겠네, 안일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출구를 나와 땡볕 아래를 조금 걸어 신반포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고속터미널역을 다시 지나 목적지를 향했다. 지하철을 내려 10분쯤 걸었고, 식당에 들어선 즈음엔 땀냄새가 심하게 났다. 축하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했다. 주인공, 떠나는 친구는 일정이 꼬여 일찍 일어섰다. 나머지는 저녁까지 비는 내 일정에 맞추어 또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갔다.
회의에는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일을 맡기로 하면 구체적인 일정이라든가를 정해야 할 터였으므로 두 시간쯤을 예상했는데 공감에서도 아직 확정된 안이 없었고 나는 백수이니 아무 때로나 정해서 알려주십사 하였으므로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제천행 버스를 타면 시간이 조금 덜 걸리지만 뜻하지 않게 또 강남고속터미널에서 버스를 탔다. 아홉 시 차를 탔으므로 제천에 도착한 것은 열한 시 언저리. 시내버스는 끊긴 시각이다. 집까지 걸었다.
짐정리는 시도조차 않고 곧장 씻고 누웠다. 일찍 자지는 않았다. 쓰지 않은 일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