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 달구지, 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억 속에서 떠오른 것은 아니다. 시詩에 대해 생각하던 어느 날, 문득 떠오른 말이었다. 달구지에 시를 모으는 집시, 내 머릿속에는 책이 가득 실린 수레 앞에서 즐거이 웃고 있는 한 사람의 집시가 떠올랐다. 그렇게,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나는 생각했다. 유랑하며, 음악을 즐기며, 자유롭고 즐겁게. 나의 이름이 집시였기를, 나는 바랐다.
하지만 집시 달구지라는 말도,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이미지도, 결국 어디에도 사용하지 못했다. 그것은 내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시처럼 살고 싶어요, 집시는 멋져요, 라는 말을 하기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기에, 쉽기만 한 일이었기에, 나는 결국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집시는 영국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프랑스인들은 같은 사람들을 보헤미안이라고 부른다. 유럽 곳곳에서 그들은 치고이너, 치가니, 히따노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은 롬 또는 돔이다. 하지만 그 이름을 아는 이는 흔치 않다.
보헤미안,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이던가. 집시라는 이름보다 많은 것이 선명해진다. 자유와 낭만, 예술의 상징 보헤미안. 한 세기 전의 많은 프랑스인들이 흠모해 마지 않았던 이름,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선망을 받고 있는 그 이름. 나 역시 너무나도 갖고 싶었던 이름이다.
하지만 흔치 않다. 그들이 자신의 터전인 유럽에서, 소수민족으로서 박해 받으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흔치 않다. 물론 그들은 자유롭게, 낭만적으로, 예술적으로 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부의 일일 뿐이다. 외부와의 경계에서 그들은, 차별 속에서 쉽사리 스러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을 내 것으로 삼지 못했다. 그들의 자유와 낭만, 그리고 예술, 그 모든 것을 그 이름 하나로 다 훔쳐 올 수 있지만,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고난, 그들의 삶을 온전히 훔쳐 올 수는 없기에 나는 그 이름을 포기하고 말았다.
내가 집시로 태어났더라면, 아마 그 이름을 내 길의 가장 앞에 세우고 살았을 것이다. 롬이나 돔, 나의 언어로 된 나의 이름보다도 남들이 붙여 준 집시나 보헤미안 같은 이름을 더 내세웠을 것이다. 그 이름에 박해가 따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견딘 후에 살아 남은 내 삶으로, 나의 진짜 이름을 내어 놓기 위해 나는 집시라는 이름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집시로 태어나지는 않았다. 집시로 살겠어요, 그들의 낭만을, 그들의 자유를, 이 척박한 세상에 관철시키고 말겠어요. 부푼 포부를 밝히기는 쉬운 일이지만, 그것이 쉬운 것은 그 이름에 대해 어떠한 박해나 구속도 따라 오지 않기 때문이다. 집시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름을, 감히 쓰지 못했다.
대신 생각했다. 언젠가, 집시들을 찾아가겠다고. 그들에게 물을 것이다. 얼마동안이 되었든, 함께 다녀도 좋겠느냐고. 그들의 낭만과 자유, 예술을 바로 곁에서 지켜 보면서 나는 또한 그들의 무거운 삶을 지켜 볼 것이다. 그런 다음에 말하고 싶다. 나는 집시를 아노라고, 알기에, 나는 집시가 되고 싶노라고.
그 전까지는 감히, 세상이 당신을 집시라 욕할지라도 나는 그 이름을 사랑합니다, 집시라는 이름으로 살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집시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바꾸어 놓겠습니다, 나는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