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학기로 듣고 있는 <페미니즘 미학과 예술>이라는 수업시간의 일이었다. 지난 며칠 방을 구하면서 떠 올랐던 글들을 정리하려고 펜을 들었다. 앞시간에 친 시험 공부를 위한 요약 정리가 된 종이의 뒷면에였다. 글을 끄적이면서 수업도 듣고, 수업 교재도 읽었다. 수업 교재는 여성 시인들의 시 여러 편이 담긴 프린트물이었다. 그 중 어느 시에 ‘분홍약’이라는 것이 나왔다. 우울증을 다스리는 알약을 가리키는 은어라는 주석이 붙어 있었다.
나는 글을 써내려갔다. 언제 한 번 본적도 없는 분홍약을 갖고서 한 장 가득 글을 써내려갔다. 힘든 연애를 이어가고 있는, 나의 사람을 생각하면서였고, 또한 내게 어쩌면 필요할지 모를 그 약을 생각하면서였다. 어젯밤 서럽게 울던 그를 떠올렸다. 동네 약국에서 우울증 약을 지어다 먹었던 중학교 동창놈을 떠올렸다. 수줍은 높임말로 시작한 시는 어느새 거만한 반말들로 이어졌고, 황급히 어쭙잖은 높임말을 다시 끌어다가 나는 글을 끝맺었다.
한참을 흘러가던 수업 중에 불알이야기가 나왔다. 어쩌다 귀걸이를 달고 나와 사람들이 그걸 가리키면, 불알이 없으니 허전해서 흔들거리는 걸 달고 나왔다고 답한다고 선생은 이야기했다. 남자들은 사각 팬티 입으면 흔들흔들한다기에 자기도 그렇게 말한다 했다. 하지만 틀린 소리였다. 불알은 흔들거리는 게 아니라 덜렁거리는 게다. 경망스럽게 덜렁거리는 시계추를 잡기 위해 딱붙는 삼각팬티를 입은 궤종시계를 떠 올리며 또 한 편의 글을 썼다. 이번에도 미친 듯이.
한 번의 수업시간동안 세 편의 글을 써 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