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지하철에는 약간의 개운함이 있다. 상쾌한 공기, 뿌듯한 성실함 따위의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새벽에 지하철을 탄다는 건 밤새 술을 마셨거나 밤새 뒤척이다 끝내 잠을 포기했거나 둘 뿐이므로, 날씨야 어떻건 새벽은 늘 자욱하다. 새벽 지하철에는, 간밤 퇴근길의 빽빽함이 온데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약간의 개운함이 들어선다.
오늘 새벽에도 지하철은 한산했다. 뒤꽁무니 마지막칸, 넓은 공간에 나를 포함해 네 명이 있었다. 빈 자리는 많았고 비는 흩뿌려 우산은 거의 젖지 않았으므로 옆자리에 우산을 얹고 그 위에 가방을 두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자리가 부족해질 참이라 얼른 가방을 품에 올렸다. 그러는 사이 그 자리 앞에도 한 사람이 섰고, 기껏해야 습기나 좀 찰 줄 알았던 의자에는 물이 고였다. 가방이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자리로 가려던 그는 내가 손으로 물을 훔치는 것을 기다렸다. 마지막 몇 방울을 겨우 다 턴 순간 그는 손수건으로 의자를 닦았다. 죄송합니다, 말하며 치어다보자 뜻모를 미소를 지은 그는 이마가 훤했다.
자리에 앉은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고, 책도 전화기도 꺼내지 않고 가만 앉아 여러 정거장을 지났다. 무릎 위에 올린 큰 가방이 그의 다리에 닿는 것 같아 바닥으로 내렸다. 이윽고 그는 다리를 벌렸다. 그가 잠든 것이기를, 그래서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이기를 바라며 나는 두어 번 곁눈질을 했고 그는 줄곧 큰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