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03.(금)

아침엔 잠시 시내에 다녀왔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려 했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우선 집 쪽으로 오는 버스를 탔다.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었다. 카페에 들러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했는데 아직 오픈 전이라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계산대의 컴퓨터를 켜는 중인 듯 싶었다. 시계를 보니 열 시 오십팔 분. 열한 시에 여는 카페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커피를 주문하고 앉은 자리에서 일했다.

일, 이라고 썼지만 스터디 발제용 번역이다. 스터디는 두 시. 목표한 데까지 하려면 세 시간 반쯤 걸릴 것 같았다. 한 시쯤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 반쯤 걸릴 듯한 분량이 남아 있었다. 스터디를 30분 미루고 번역을 계속했다. 한 시 오십팔 분에 마지막 문장을 마쳤다.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될, 각주에 적힌 출처 몇 개를 마저 번역하고 두 시 조금 지난 시각에 번역문을 친구에게 보냈다. 잠깐 딴소리를 하다 한 시 이십삼 분에 스터디를 시작했다. 온라인 화상 회의.

지지난 주에 하다 남은, 친구가 맡은 글의 마지막 몇 페이지부터 시작했다. 한 시간만 더 해서 끝내자는 걸 내가 배가 너무 고프다며 끊은 글이었다. 그 몇 페이지를 마치니 저녁 시간이 되어 내가 번역한 글은 다음 시간에 하기로 했다. 기운이 없거나 의욕이 없거나 시간이 없거나 재미가 없거나 하다는 이야길 서로 좀 하고 화상 회의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빨래를 걷었다. 쉬는 시간에 돌려 둔 빨래를 널고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스터디를 하며 식빵을 좀 (실은 반 줄을) 먹었더니 배가 덜 고파서 어두운 논밭 사이를 한동안 걷고 돌아왔다.

파스타를 해 먹고 짐정리를 시작했다. 한참을 정리했는데도 집은 더 어지러워졌다. 어제 산 담배를 다 피웠으므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참에 담배를 샀다. 구석에서 나온 무릎담요와 오늘 아침까지도 덮은 홑이불, 서울에서 덮었던 홑이불을 넣고 세탁기를 돌렸다. 한참을 더 정리했는데도 집이 더 어지러워졌다. 기운이 다 꺾였을 즈음,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아무튼 이불 세 채를 봉투에 담아 셀프세탁방을 향했다. 고온으로 32분을 돌려 놓고 수퍼에 가서 우유와 커피를 샀다. 커피를 마시고 휴대전화로 일기를 썼다. 일기를 쓰다 문득 고개를 돌렸는데 그저께 두고 간 담배가 그대로 있었다. 주머니에 넣었다. 두 번째 일기를 마칠 즈음 건조가 끝났다. 다 마른 것 같았지만 500원을 넣고 4분을 더 돌렸다.

4분이 다 지난 즈음 두 번째 일기를 마쳤다. 건조기에서 꺼낸 담요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빨래를 하기 전에도 세탁기에서 꺼낸 후에도 나지 않았던 냄새다. 세탁기에 넣기 전에 창을 열어 밖으로 꺼내 한참을 털었다. 먼지가 엄청 나오긴 했다. 홑이불에서는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으므로 건조기에서 밴 냄새는 아닐 것이다. 다행히 이불에 옮겨 배지도 않은 모양이다.

무릎담요 세 개가 나왔다. 빤 것은 9년 전쯤 학교에서 일할 때 난방에너지 절감을 위해 학교에서 직원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무릎담요라고 적었지만 온 몸을 덮을 수 있는 크기다. 나는 서류 상으론 학교에 소속돼 있지 않았기에 내 앞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다른 직원이 필요 없다고 한 것이 내 것이 되었다. 실은 나도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 서점 업체의 오프라인 중고서점 오픈 행사 때 받은 것이다. 이 때도 딱히 필요하지는 않았는데 그냥 받았다. 라바였나, 무슨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이름 그대로 무릎을 덮기에 적당한 크기다.

나머지 하나는 앞의 것보다는 조금 작지만 역시 몸을 대강 덮을 수 있는 크기다. 셋 중 제일 얇다. 아마도 10년 전쯤, 이사를 하며 친구에게 받은 것이다. 어쩌다 보니 이불도 베개도 없이 이사했다. 급한 대로 이불 대신 쓰라고 준 거였나, 주머니가 딸려 있고 주머니에 넣으면 쿠션 모양이 되는 물건이니 베개 대신 쓰라고 준 것이었을 수도 있다. 커다란 담요도 같이 받았는데 돌려주지 못했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친구다. 담요는 이고지고 다니기 버거워 언젠가 버렸다. 그에게 받은 가방도. 이 무릎담요 말고도 그에게 받은 것이 아직 집에 많이 있다.

집에 돌아와 우유를 냉장고에 넣고 이불을 꺼내 잠자리에 던졌다. 컴퓨터를 켜서 일기 두 편을 업로드했다. (휴대전화로는 여기에 바로 쓰기가 불편해 다른 앱으로 썼다.) 이 일기를 썼다. 정리를 좀 더 하고 잘까, 곧장 씻고 누울까. 끝없이 어지러워만 지니 흥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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