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16.(월)

전날 일기가 번역을 다 마치지 못했단 말로 시작해서는 놀다 잤다는 말로 끝난다. 일을 잊었다는 뜻이다. 새벽에 일어나 누워 있다 불현듯 떠올라 황급히 책상에 앉았다. 평소의 두 배쯤 되는 속도로 번역을 마쳤다. 부랴부랴 채비해 길을 나섰다.

서울행. 달리 일은 없었고, 친구가 몇 번인가 반복해 만나자고 해서 놀러 갔다. 넋두리할 게 많은가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테이블마다 벽과 문이 딸린 일본식 선술집에 둘이 앉아 회와 바지락찜과 오코노미야키와 연어머리구이를 먹었다. 술도 조금 마셨다. 요즘 다니는 카페에서는 외국 노래가 주로 나온다. 오랜만에 한국 대중가요를 여러 시간 들었다.

그 전에는, 역시 오랜만에, 학교엘 갔다. 셔틀버스를 한참 기다렸지만 오지 않아 결국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둘의 정거장은 조금 떨어져 있다. 짧은 거리를 힘껏 달렸다. 한창 번역문을 읽다 보니 한 페이지쯤이 날아가고 없어 잠시 당황했지만 다행히 어렵지 않은 부분이라 기억을 더듬어 메웠다. 늦지 않은 시각에 마치고 친구를 만났다. 약속 장소 앞을 서성이다 다른 친구를 마주쳐 잠시 응원의 말을 건넸다.

아홉 시 반쯤 파했다. 모텔에서 잤다. 이삿날 잤던 깔끔한 모텔보다 조금 싼 곳을 잡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검은 벌레 한 마리 ― 빨라서 잘은 못 봤지만 몸통의 윤곽이 바퀴벌레보단 둥글었다 ― 와 벽지의 얼굴 몇 개, 화장실의 얼룩 몇 개를 보고 말았다. 베개에선 묘한 냄새가 났다. 빨래를 안 한 듯한 냄새는 아니었다. 바디워시며 폼클렌저며는 일회용품을 제공했지만 치약은 화장실에 공용으로만 비치되어 있었다. 편의점에서 여행용 세면도구를 사다 썼다.

객실 열쇠는 전자식 카드키가 아니라 천공카드 형식이었다. “나를 꺽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쇠가 아니라 플라스틱이었다. 객실에서 홍어를 먹지 말라, 파티를 하지 말라, 욕조에서 입욕제를 쓰지 말라는 등 금지사항이 많았다. 욕조를 보곤 들어갈 뻔 하였지만 치약도 못 쓰는데 욕조를 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슬리퍼를 신었고 가운을 입었다. 물론 베개를 벴고 이불을 덮었다.

간만에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을 조금 보았다. 늦게 잠들었다.


열두 시쯤 학교에 올라가면서, 여섯 시쯤 학교에서 내려오면서 같은 사람에게 같은 전단을 두 번 받았다. 매일 학교에 가던 시기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사람에게 매일 받던 전단이다. 아마도 필라테스 학원 광고. 백 장은 훌쩍 넘게 받았을 텐데 단 한 번도 자세히 보지 않았고 여전히 학원 이름은 모른다. 디자인은 새로 한 것 같았다.


친구와 놀다가는 노래패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백자라는 이가 최근에 발표했다는 〈나이스 쥴리〉라는 노래의 존재를 배웠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가수 백자는 노래를 통해 쥴리라는 여성이 성접대를 통해 권력을 탐하고 국모를 꿈꾼다는, 여성을 성녀와 창녀로 가르는 전형적인 이분법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내며 조롱했다”고 지적하며 “민주노총과 민중운동 진영이 가수 백자와 노래패‘우리나라’에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사과와 반성이 없이는 무대에 설 수 없도록 할 것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백자가 누구지, 하며 찾아 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 〈주한미군철거가〉를 만든 인물인 모양이다. “일본놈들이 쫓겨나가고 / 미국놈들 들어와서 / 해방인줄 알았더니 / 그놈이 그놈이더라”라는 가사의 노래다. 이건 1절이고 3절까지 있다는데 나머지 가사는 모른다. 제목의 기이함이 맘에 들어 가끔 흥얼거리곤 하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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