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다녀왔다. 순전히 놀러. 산적한 마감을 생각하면 이럴 때가 아니지만, 다행히 이렇게 되기 전에 잡아 둔 약속이므로 놀기에 그럴듯한 핑계다. 작은 전시를 하나 보고 카페에 갔다가 공원에 갔다가 불 꺼진 낡은 상가에 갔다가 했다. 만난 친구에게는 책 한 권과 필름 두 롤을 선물했다. 수리 맡긴 카메라를 찾을 거래서 필름을 챙겼는데 수리가 끝나지 않아 카메라는 구경하지 못했다.
지난 저녁엔 의림지에 다녀왔다. 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보다 자동차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재미 없는 길이지만 일이 바쁜데 논밭 사이를 기약 없이 걷는 데 시간을 다 써버리면 곤란하므로 샛길로 빠질 일 없는 이쪽이 좋았다. 그간은 낮에만 가 본 곳이다. 늘 한적했지만 밤에는 사람이 많았다. 걷다가 누군가와 손을 꽤 세게 부딪었다. 그는 자기 손만을 한 번 슥 보았을 뿐 뒤돌아 나를 보지는 않았다.
오가는 길에는 음악 대신 오디오북을 들었다. 목소리가 맘에 들었다. 목소리에 정신을 팔지 않아도 워낙에 그렇긴 하지만, 내용은 흘려보냈다. 소설이다. 조만간 일이 좀 줄면 활자로 다시 볼 생각이다. 가는 길에는 산 너머에서 사라지기 직전의 ― 집을 나섰을 땐 이미 어두웠다 ― 노을 빛을, 오는 길에는 구름에 번진 달을 찍었다.
막차를 타고 왔으므로 집에 이른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터미널에서 집까지 걸었으므로 땀에 젖었지만 샤워를 하는 대신 이삿짐을 뒤져 카메라를 꺼냈다. 베란다 창을 열고 몸을 내밀었다. 오른쪽으로 한껏 비틀자 보름달이 보였다. 불안한 자세로 찍느라 썩 좋지 않은 설정으로, 달을 몇 장 찍었다. 씻고 앉았다. 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