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사를 앞두고 있다. 7월 12일에 방을 빼기로 했다. 갈 곳은 아직 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제천 변두리의 낡은 주공아파트쯤이 될 것이다. 6월 첫 주에 보러 갈 예정인데, 큰 문제가 없다면 그냥 그렇게 확정할 요량이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 을 찾아 헤맬 열의는 없고 가격대와 구조는 웹사이트에서 이미 보아 알고 있다. 부동산중개사무소에 가서 물어보니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매물이, 아주 가까이에, 있다면 선택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겠지만 거기까지다. 7월 중순이면 장마일 터이므로 가급적 6월 셋째 주 쯤엔 이사를 하면 좋겠지만 한두 주만에 짐을 다 쌀 가능성은 높지 않다.
침대
그래도 아주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주엔 두 번에 나누어 침대를 ― 우선 매트리스를, 며칠 후엔 프레임을 ― 버렸다. 초등학교 저학년생 땐 동생과 이층침대 한 층씩을 썼다. 아마도 중학생 땐, 이모네서 얻어 온 퀸 사이즈 침대를 혼자 썼다. 그 침대는 한동안은 부모님 방에, 한동안은 내 방에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땐 작은 방으로 옮겼고 아버지가 만든 침대를 매트리스 없이 썼다. 중고등학교에 다닌 6년 중 몇 년이나 침대를 썼는지는 모르겠다.
자취를 시작하고서는 집을 자주 옮겼고 침대도 쓰다 말다 했다.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갖춘 퀸 사이즈와 수퍼싱글 사이즈 침대를 한 번씩, 그리고 간이침대를 한 번 썼다. 셋 다 내 것은 아니었다. 지금 사는 곳 직전에 산 집에서는 침대 없이 3년을 살았고 지금 집으로 이사하면서 처음으로 침대를 샀다. (새 세탁기와 냉장고를 가진 것도 이 집에서가 처음이다. 세탁기는 샀고 냉장고는 선물 받았다.) 서랍이 딸린 프레임이 20만 원, 스프링 매트리스가 10만 원이었다.
이사하고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쇄골이 부러졌다. 덧붙일 핑계가 없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냥 혼자, 아주 조금 속도를 내어, 걷다가 넘어지면서 뼈가 부러지자 겁이 늘었다. 넘어지는 일은 물론 달리는 일도 애초에 적었지만 길에서 달리는 일이 더욱 줄었다. 침대에서 마지막으로 떨어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지만 침대에 누울 땐 벽에 바싹 붙었다. 비싼 매트리스는 한쪽으로만 누워도 괜찮을까, 내 것은 그렇지 않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여전히 벽에 붙어 잤으므로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매트리스를 돌리면 되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프레임을 잘못 조립했는지 ― 설치기사가 와서 조립했고 당시엔 물론 괜찮아 보였다 ― 제대로 걸리지 않고 허공에서 내 무게를 견딘 수납함 뚜껑이 꽤나 휘어 있었다. 침대를 이리저리 흔드는 걸론 아귀가 맞추어지지 않았다. 옮겨 달 수 없는 형태였던 경첩을 아예 떼어내고 적당한 위치에 뚜껑을 뒤집어 올린 후에 나사를 박았다. 다시 몇 달이 지나자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여전히 무언가를 꺼내고 넣을 때면 나사를 풀었다 다시 박았다.
곰팡이와 바퀴벌레
버리려고 해체하면서 살펴보니 조립할 때 나사 하나를 빼먹었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휜 것인지 어쩐지는 실은 모른다. 문제의 뚜껑과는 반대쪽 끝에 있는 나사구멍이었고 애초에 그 사이에는 다른 나사 여럿이 박혀 있었으므로 딱히 문제될 건 없어 보였다. 침대를 분해하면서는 곰팡이를, 침대와 닿은 벽 두 면이 곰팡이로 가득할 것을 걱정했다. 원래도 머리맡에서는 벽을 타고 올라온 곰팡이가 조금 보였고 매트리스를 치우자 책 한권 넓이쯤이 보였다. 프레임에는 엷게 곰팡이가 앉아 있었지만 벽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책 한 권 너비만큼이 바닥까지 이어고 장판 끝선을 따라 듬성듬성 앉은 정도였다. 침대가 덮고 있던 방바닥은 습했고 닦으니 까만 게 묻어 나왔는데, 곰팡이인지 그냥 먼지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 번 집은 내가 산 곳 중에서는 처음으로 곰팡이가 심하게 슨 곳이었다. 한 번은 부엌 천장에 별안간 새카매졌다. 신기하게도 방은 괜찮, 은 줄 알았으나 이사를 나오면서 책꽂이를 옮기니 그 뒤가 모두 까맸다. 당시엔 네 벽을 따라 빼곡히 책꽂이며 책상이며가 있었고 잠자리는 방 한가운데 ― 남는 공간 전부 ― 였다. 모든 벽과 최대한 거리를 둔 곳. 볕이 잘 안 들고 환기도 열심히 하지 않았으므로 꿉꿉한 냄새는 종종 났지만 곰팡이 냄새는 딱히 맡지 못했다. 일상적으로 곰팡이 냄새를 맡는 것은, 그러니까 이 집에서 처음 겪은 일이다. 만으로 꼬박 3년, 대부분은 괜찮았고 책 한 권 너비로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 높이를 모두 채운 곰팡이가 트인 곳으로 나온 얼마 전부터의 일이다. 그 역시도 침대에 눕지 않으면 괜찮았다. 몇 번인가 물이 새서 반대쪽 벽에도 곰팡이 자국이 있지만 자라지는 않는 듯했다.
그러던 것이, 침대를 치우자 온 방으로 냄새가 퍼졌다. 사흘 전이었나 분해를 시작한 날이 그랬다. 저녁에 외출하면서 벽에 락스를 뿌렸다. 그날 밤에는 곰팡이 냄새와 락스 냄새를 모두 맡으며 잤다. 냄새는 하루를 더 갔다. 두통 속에 잠을 청하며 몇 건의 기사와 오래 전에 가족과 함께 살았던 반지하집을 생각했다. 매일 잠 제 양말 냄새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던 이가 폐에 곰팡이가 번져 죽었다던 기사, 흡연율이 낮은 가정주부가 폐암 발병률이 높은 것은 요리 연기와 독한 세제 때문이라던 기사. 두 번째 기사에는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더하다는 말도 있었다. 곰팡이 이야기도 있었던가는 기억나지 않았다. 고향집은 시골이지만 오래 전 한 해를 서울에 이사 와서 살았다. 반지하주택이라는 것도, 바퀴벌레라는 것도 그때 처음 보았다. 다시 시골집으로 이사를 나온 건 늦겨울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가 두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도 집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남아 있었다. 곰팡이가 슨 자리들이었다.
이삿짐에 딸려 온 바퀴벌레로 시골집은 몇 년을 어수선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독한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형태의 약을 썼다. 아침 일찍 식기는 마당에 옮겼고 옆집엔 연기가 보여도 소방서에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두었다. 밤늦게 들어오면 환기를 하고 바퀴벌레 사체를 쓸어 담았다. 아마도 몇 번에 나누어, 며칠을 이어 세탁기를 돌렸을 것이다. 옷가지에는 바퀴벌레가 숨을 곳이 많았으므로 식기처럼 빼두었다 들일 수는 없었다. 십 년을 넘게 그래도 바퀴벌레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보다는 내가 먼저 집을 나왔고, 드문드문 들를 때마다 조금씩 줄어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보지 못했다.
서울에서 옮겨 다닌 집들에서는 한 집 걸러 한 집씩 정도 바퀴벌레가 나왔다. 매번 그러지 않은 걸 보면 이사할 때마다 강박적으로 옷을 탈탈 턴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엔 씻어 둔 식기를 쓸 때마다 새로 설거지를 하다시피 했다. 고향집에 살 때 그랬고 나와서도 꽤 한참을 그랬다. 여전히 매번 ― 5분 전에 설거지한 그릇을 꺼내면서도 ― 물로 헹구긴 하지만 예전 같진 않다. 마른 그릇이 필요할 땐 헹구지 않고 쓸 수도 있게 되었다. 지금 집에도 바퀴벌레가 나온 적이 있지만, 습관이 되살아나진 않았다.
이 집에선 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를 몇 번 만났다. 보이는 건 모두 잡아다 밖에 풀었다. 몇 번 그런 후엔 어김없이 약을 놓는다. 그런 후에도 직접 죽이진 않는다. 바퀴벌레에 관한 일기를 여러 번 썼다. 내겐 바퀴벌레만이 침입자라고 썼고, 사실 그들로서는 제 집에 사는 것인데다 애초에 그 어디도 내 집이 아니니 내치지 않는다고 썼고, 그래놓고는 얼마 참지 못하고 이내 약을 뿌렸다고 썼다. 망설이고 무너지고 반성하고 또 무너지는 가운데 점잖은 위선 만 일관되다. 모기도 거미도 꼽등이도 죽이지 않지만 그 저아무렇지 않으니 둘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참거나 바꾸어야 하는 것은 바퀴벌레뿐이었는데, 결국 여태껏 참지도 바꾸지도 못했다.
멘토스
어제는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데서 내렸다. 편의점에 들러 우유를 샀다. 카운터 앞 줄에서 내 앞에 선 사람은 거나하게 취한 듯했다. 무언가를 잔뜩 올리고는 하나를 점원에게 준 모양이었다. 아직도 남은 물건이 많아서 하나하나 바코드를 스캔하고 결제하기까지 시간이 더 들었다. 카드 승인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딴 데서 산 짐에서 빵을 하나 꺼내 또 점원에게 내밀었다. 가족들이랑 드셔야죠, 라며 사양하던 점원은 승강이 끝에 결국 받아들기로 했다. 내 우유를 계산하며 거 재밌는 사람이네, 혼자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옆에 있던 멘토스 하나를 집어 내게 건넸다. 무어라 말을 했는데 들리지 않아 네? 하고 되물었다. 나도 받았으니 베풀어야죠, 하며 웃었다. 사양하기엔 민망한 말이었다. 물론 급히 가서 아무거나 집어다 나도 베풉네 하기도 멋했다. 웃으며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받아 넣었다. 생각했다. 다음번에 올 때 계시면 뭘 드리면 좋을까. 또 생각했다. 그렇잖아도 올 일이 없는 곳인데 한 달도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운 좋게도 또 그가 근무하는 시간대에 들를 일이 과연 있을까. 알고 있다, 적어도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에 맘먹고 찾아간다면 아마도 만날 수 있을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