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Crack Down!

지난 5월 3일, 두 명의 지도부가 연행된 다음 날 오전에 있었던 기자회견 때도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가 너무도 지루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3인 지도부가 연행되었을 때와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도부는 표적 단속으로 연행되었고, 그래서 모인 우리는 적었습니다. 심지어 모인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그대로였습니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여기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너무도 지루했지만, 이 사회 가장 낮은 곳에 연대하겠다는 결심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믿음으로 이 자리에 계속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서는 성명을 썼습니다. 다 쓴 성명을 학생회 홈페이지와, 다른 제가 속한 모임들의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또 한 번 고민을 했습니다. 광우병이니, 의료 민영화니 하는 정부의 엄청난 정책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미 가득 찬 게시판에 이 글을 올리면 과연 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정부, 실용 정부라는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정책을 멋대로 실시해 나라를 뒤흔든다면, 국민들이 맘 편히 살지 못하고 신경 쓰이게 만든다면 그것은 실용이 아닙니다. 16년 동안, 사고 한 번 치지 않고―정말 나쁜 짓 한 번 않고 살아 온 이주 노동자 한 명을 잡기 위해 몇 달을 감시하고, 미행하고, 열 명 넘는 사람을 투입한다면 그것은 실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부에서 실용적인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있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이름입니다. 보통 정부에서 뭘 하면, 온갖 좋은 말로 거창한 이름을 지어 붙이는데, 여기는 딱 있는 만큼만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름 그대로, 드나드는 사람의 명단을 작성해 관리하고, 나가지 않는 사람을 잡아다 내보낼 뿐인 이 곳을 우리가 바꿉시다. 들어 오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노동하고 여행할 수 있도록, 노동권을 보장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사무소로 우리가 만듭시다.

지난 5월 1일 메이데이와 그 전날 4월 30일일의 문화제 무대에서 토르나 동지는 ‘이주노동자 운동이 반신자유주의 운동이고, 이주노동자 운동이 비정규직 철폐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투쟁이 중요한 투쟁이고 그렇기에 많은 연대를 해달라는 뜻이었겠지만 단순히 그 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와, 저 더러운 정권에 대항하는 이 땅의 투쟁이 하나로 모여 싸워야 함을 말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적은 숫자지만, 이 자리에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 비정규직, 빈민, 철거민, 해고노동자, 학생―자본과 정권에 맞서 곳곳에서 투쟁하는 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 이 우리가, 길 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다른 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이들에게 연대를 호소합시다. 또한 그들이 우리를 외면할 수 없도록, 우리가 먼저 열심히 연대합시다. 그렇게 해서 사람을 모으고 투쟁을 모은다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열심히 투쟁하시는 분들 앞에서 길게 이야기를 하기가 부끄럽습니다. 구호 하나 하고 이만 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사무소나, 또 저기 대통령이나 잘 나가는 나라들만 대하고 굳이 거기 가서 남의 나라 대통령 차나 몰아주고 하다보니 우리말을 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야겠지만, 때로는 저들의 말로도 이야기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영어를 섞은 구호 하나 외쳐 봅시다. Stop Crackdown! 이주 노조 탄압 중단하라! 이주노동자에 대한 모든 탄압이 없어지고, 국적에 상관없이 노동권과 인권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열심히 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했다. 물론 저렇게 술술 말하진 않았고, 더듬거렸지만 대충 저런 내용이었다. 대체로는 진실을 이야기했고, 때로는 약간의 과장과 축소, 혹은 완곡어법을 사용했다. 정작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할 사람은 거기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자리 역시 지루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 깃발을 들고 있었다. 비에 젖고 바람에 날리는 깃발이 나를 흔들었다. Stop Crackdown, 사실 저 구호를 떠 올린 것은 앞에 앉은 이가 들고 있던 피켓을 보고서였다. 이주노조에서 만든 피켓이었고, 어느 나이 많은 철거민이 들고 있었다. 배운 것 없는 이들이 과연 그 말을 알아 들을까, 따라 할 수는 있을까를 걱정하느라 사설이 길어졌다. 정작 구호를 외치고서는, 그들이 따라하는지 어쩌는지를 살피지 못했다. 정말로 사실은, 구호로 끝낼 마음이 없었지만, 혼자 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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