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회색 물

마을은 조금 더 안 쪽에 있으므로, 물가를 따라 띄엄띄엄 앉은 몇 채 안 되는 집들, 그 중에서도 또 몇 안 되는 불이 켜진 집들, 그 사이사이 이따금 선 가로등. 물에 비치는 빛은 그것이 전부다. 별은 밝지만 그래봐야 별이어서인지 혹은 각도가 적당하지 않아서인지 물 위에는 뜨지 않는다. 보름을 겨우 며칠 지난 달이 지려면 두어 시간은 남았지만 산 뒤에 걸린 모양이다. 달이 보이지 않는 짙은 하늘을 반사하는 물은 청회색으로 흐른다.

지도에는 강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있지만, 그런 이름이 무색하지만은 않게 폭은 넓지만, 얕은 물이다. 겨울이므로 더 그럴 것이다. 급류가 소를 이룬 몇 곳을 빼면 대개는 걸어서도 건널 만한 깊이다. 낮에는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물이다. 마을사람은 물가를 두고 강가가 아니라 냇가라는 말을 썼다. 물을 두고 무어라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청회색 수면 여기저기 희끄므레하거나 어슴한 무언가가 있다. 모래톱이거나 마른 물풀이거나 작은 바위거나 얇게 언 얼음이다. 나는 색맹이므로, 또한 근시이므로, 게다가 사위가 어두우므로, 모래톱인지 풀섶인지 바위인지 얼음인지를 알려면 기억해 두는 수밖에 없다. 이튿날 밝을 때 다시 볼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얼음이라면 녹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모래도 풀줄기로 흘러가 버릴지도 모른다.

또한 나는 길을 잘 찾지 못하므로, 이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닿아 놓고도 모래나 풀잎이 사라지고 없다면 으레 그렇듯 길을 잃었으려니 하고 돌아갈지도 모른다. 청회색 물을 따라 한 시간 반나마 걸었다. 돌아올 즈음에는 검어져 있었다. 물가도 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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